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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봉 6천~7천·5시 칼퇴·평생 일하는 데 사람부족하다는 직업

조회수 2020. 9. 18. 14: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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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유가 계속 뛰어다녔던 KTX는 가짜?..아스팔트도 깔고 전봇대도 세우는 상상초월 '세트 제작'의 세계
10년 차 세트 제작자 연봉 6000~7000만원 수준
오전 8시 출근 오후 5시 칼퇴, 주말은 따로 없어
망치 들 힘만 있으면 안 잘려…현장 젊은 인력 늘 부족

아스팔트 도로 양쪽으로 건물이 줄 서 있다. 벽이 다 부서져 철골구조물이 고스란히 드러나 있고 전봇대에 연결된 전선들은 다 끊어져 있다. 건물에 매달려 있는 간판들은 때묻거나 찌그러져 성한 것 하나 없다. 1990년대 ‘철거촌’이다.


그런데 좀 이상하다. 벽면을 손으로 만져보니 벽돌이 아닌 스티로폼. 튀어나와 있는 철골은 철이 아니고 고무라 말랑말랑하다. 1990년대 철거촌 풍경이지만 이 장소는 현실이 아니다. 한창 촬영이 진행 중인 춘천의 한 영화 세트장이다. 아스팔트를 깔고 전봇대도 직접 사다 세웠지만 다른 모든 건물들은 사람이 직접 만들었다. 이 현장 제작을 총괄한 세트 제작자, 나암아트센터 김정현(44) 실장을 만났다.

잘 알려지지 않은 직업, 세트 제작자

전남 광주가 고향인 김 실장은 학원에서 중·고등학생에게 수학을 가르치다가 서른넷 늦깎이 나이에 서울로 상경했다. 영화계에 발 담그고 있는 지인의 추천을 받아 ‘세트 제작’이라는 블루오션에 도전해보기 위해서였다. 김 실장은 영화 ‘부산행’ ‘아가씨’ ‘신과 함께’ ‘염력’ 등의 세트 제작을 총괄했다.


-처음에 세트 제작 분야에 도전한 이유는 뭔가


“텍스트로 돼 있는 시나리오를 가지고 상상을 해서 공간을 만들어낸다는 게 흥미로웠다. 스크린이나 텔레비전 화면을 통해 보던 배우들을 바로 눈앞에서 바로 볼 수 있다는 게 정말 신기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김정현 실장은 영화 ‘부산행’ ‘아가씨’ ‘신과 함께’ ‘염력’ 등의 세트 제작을 총괄했다. 영화 ‘아가씨’에 등장하는 서재도 김 실장의 작품이다.

-세트 제작자가 하는 일을 구체적으로 설명한다면


“기본적으로 세트 제작팀은 미술감독을 필두로 한 미술팀과 항상 협업한다. 아주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미술팀이 공간을 상상해서 도면을 그리면 세트 제작팀이 그대로 만든다.


예를 들어 1960년대 거리를 재현한다고 치자. 일단 시나리오를 읽어보고 미술팀이 도면을 그린다. 미술감독은 그 당시 실재했던 건물들에 대한 이미지 자료를 다 찾아서 세트 제작팀에게 넘긴다. 어떤 마감재를 써서 당시 건물의 느낌을 살릴지는 세트 제작팀이 고민한다.


세트 제작팀은 크게 목공팀과 작화팀으로 나눌 수가 있다. 목공팀은 미술팀에서 그려준 도면을 보고 전체 건물 골조를 세운다. 작화팀은 세워진 골조에 페인트 칠을 하거나 벽돌 이미지의 시트지 등을 붙여서 1960년대 거리 느낌을 만든다. 겉으로 보기에는 벽돌이지만, 실제로는 목조로 건물 골조를 세우고 스티로폼으로 벽채를 만드는 게 일반적이다. 현장에서 연기하는 배우들이 다치지 않도록 철골 구조물을 철재가 아닌 고무 소재를 가지고 작업할 때가 많다.” 

실제 KTX 빌려서 촬영한 줄 알지만 모두 세트

김 실장은 영화 ‘부산행’ 세트 제작을 총괄하면서 큰 도전을 했다. 영화 내내 등장하는 KTX 열차를 실내 세트로 제작하는 일이었다. KTX 세트는 김 실장이 국내에서 최초로 제작한 것이라고 한다.


-10년 동안 가장 제작하기 힘들었던 세트는 무엇이었나


“영화 ‘부산행’ 작업할 때 만든 KTX 세트가 기억에 많이 남는다. 코레일로부터 KTX 열차를 빌렸을 거라고 생각하시는 관객분들이 많던데, 다 실내 세트장에서 촬영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 ‘부산행‘ 작업을 하면서 김 실장은 국내에서 최초로 KTX 세트를 제작했다.

실제 KTX 열차를 이용하면 공간적인 제약 때문에 원하는 화면을 카메라 앵글에 다 담을 수가 없다. 세트를 만들면 촬영을 위해 한쪽 벽을 뜯어내는 작업을 수차례 한다. 이를 우리 용어로 ‘댕깡’이라고 말한다.


극중 좀비들이 계속 뛰어다녀야 하다 보니까 복도를 실제 KTX보다 1.5배 넓게 제작했다. 제작비가 한정돼 있다 보니 열차 세 량만 만들어서 돌려가며 활용했다. 디테일을 살리는 게 중요했는데 특실·일반실 의자로 매번 갈아 끼워가며 작업을 했다. 

출처: 네이버 영화 스틸컷
영화 ‘부산행‘

오전 8시부터 시작해서 오후 5시 칼퇴, 주말은 없어

세트 제작 분야는 사람들에게 잘 알려져 있지 않다. 그래서 흔히 ‘막노동’ ‘3D 업종’이라는 오해를 사기도 한다. 하지만 김 실장은 ‘세트 제작자’가 어느 직업군보다 경제적으로 안정적이라고 자부한다.


-‘3D 업종’이란 말을 듣는데 처우는 괜찮은가


“5년 내지 10년을 바라보고 시작하면 ‘평생직업’으로 삼을 수 있다고 자신한다. 10년 차 정도가 되면 6000~7000만원 수준의 연봉을 받는다. 맨 처음 막내로 현장에서 시작할 땐 표준근로계약을 맺고 10~11만원 정도의 일급을 받는다.   


업무 시간은 아주 칼이다. 오전 8시에 시작해서 오후 12시부터 1시 사이에 점심을 먹는다. 오후 4시 반쯤 되면 슬슬 마무리 작업에 들어가고 5시면 칼퇴다. 야근을 하는 경우도 분명 있다. 하지만 미리 업무량을 공지하고 야근 일정을 조율해서 작업을 한다.


쉽게 말해 그날그날 ‘쳐내야 할 분량’을 정해서 일을 하는 건데, 업무량이 많은 날은 10명 고용하던 걸 15명으로 늘려서 시간 내에 작업할 수 있게 한다. 그래서 항상 현장에선 인력 수급이 문제다. 사람이 부족하다. 근로자 입장에서는 언제나 일자리가 넘치는 셈이다. 영화 현장은 계속 있기 때문이다.”


-주 5일 일하나


“우리 분야는 일반 회사와 다르다. 주말 없이 매일 일한다. 매일 일하는 게 절대 강제는 아니다. 설명했다시피 그날그날 마무리 지어야 할 분량이 정해져 있기 때문에, 인력 조정을 위해서 미리 말만 해주면 언제든 쉴 수 있다. 하지만 이 업계는 ‘내가 일한 만큼 벌어간다’는 생각을 갖고 뛰어드는 분들이 대부분이다. 마치 ‘개인사업자’ 같은 개념이라고 생각하면 쉽게 이해할 수 있을 거다.”

출처: 김정현 실장 제공
김 실장이 총괄했던 영화 ‘암살’ 세트 현장.

세트 제작 분야 ‘구조조정’ 없어…젊은 인력 충원 시급해

김 실장은 세트 제작 업계에 ‘구조조정’ '정년퇴직'이 없다고 했다. 기술 전문직 분야이기 때문에 망치 들 힘만 있으면 계속 일할 수 있단다. 현장에서 한창 일하고 있는 60~70대 세트 제작자를 만나는 건 예삿일이다. 보통 한 현장에 최소 2명 이상이 일하고 있다. 그만큼 고용 안정성이 높다는 뜻이다. 반대로 사람을 쓰는 입장에선 젊은층의 인력 수급이 시급하다는 말이다.


-세트 제작자가 되기 위해선 뭘 준비해야 하나


“특별한 전공도 필요 없다. 필요한 목공 기술은 일단 이 업계에 발을 들이는 순간부터 차차 배워나갈 수 있다. 개인적으로 중요하다고 생각하는 건 배우려는 열정과 기본적인 근성 그리고 예의다.”


-예의는 왜 중요한가


“세트 제작자 중에서 주축을 이루는 세대는 40대이다. 60~70대 제작자들도 많다. 그분들은 숱한 시간 쌓아온 기술이 있으니까 현장에서 계속 일할 수 있는 거다. 고용 안정성은 높다고 볼 수 있겠지만, 잘 알려지지 않은 분야이다 보니 세대교체가 잘 이뤄지지 않고 있는 게 사실이다.


그래서 이번에 고양지식정보산업진흥원에서 진행하는 세트 제작 전문 인력 양성 과정에 강사로 참여하기로 했다. 저뿐만 아니라 현직에서 활동하고 계신 분들이 참여해 세트 디자인과 제작 분야 실무를 가르칠 예정이다. 많은 청년들이 관심을 가지고 참여해서 세트 제작 분야에 세대교체 시작점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세트 제작은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직업이다. 현재 이 분야에서 일하고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알음알음으로 인맥을 통해 업계에 진출한 사람들이다. 한국 영화 산업의 발달로 관련 인력 수요는 크게 늘고 있지만 지금 같은 방식으로는 대규모 채용이 힘든 상황이다.


그래서 업계와 지자체가 힘을 모아 관련 인력을 키우고자 만든 것이 세트 제작 전문 인력 양성 과정이다. 세트 제작 전문 인력 양성 과정에 대한 자세한 문의는 고양지식정보산업진흥원에서 올린 모집 공고문(www.mediajob.co.kr/recruit/recruit.htm?cmd=view&rec_idx=141054)을 참고하면 된다.


글 jobsN 박가영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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