평범한 직장인의 술집 창업기"보증금 2천, 인테리어 2천.."

조회수 2020. 9. 18. 14: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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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광고 기획자'에서 성공한 '술집 사장님'으로.."벌이는 늘고, 일은 줄었어요"
안정적인 삶 포기하고 '술집 사장님'으로 성공
2년간 술집 2곳 열고, 조만간 1곳 더 낼 예정
'자영업 지옥'에서 살아남은 노하우 공개

3년 전 서울 상암동에 술집을 연 원부연(33)씨는 지난해 8월 신촌에 두 번째 술집을 냈다. 조만간 세 번째 술집도 낼 계획이다. ‘자영업 지옥’이라 불리는 한국에서 꽤 성공적인 창업기를 쓰고 있는 셈이다.


2015년 기준 우리나라의 자영업자 비중은 21.4%. OECD 평균(14.8%)의 1.5배에 가깝다. 2016년 국세청이 발표한 조사 결과를 보면 창업 후 1년 내 폐업률은 35%, 2년 내 폐업률은 55%, 3년 내 폐업률은 85%나 된다.


연세대 정치외교학과를 나온 원씨는 평범한 직장인이었다. 8년간 광고 기획자로 일했다. 회사 사원에서 자영업자로 변신을 결심한 뒤 개업을 준비하면서 겪은 일과 창업 관련 정보를 블로그에 올려 큰 호응을 얻었다. 현재 원씨 블로그의 누적 방문자 수는 20만명이 넘는다. 자영업자 지옥이란 한국서 망하지 않는 비결, 나아가 가게를 여러 개 낼 수 있는 비결을 물었다. 

고민하라, 무슨 가게를 왜 하고 싶은지

원씨는 유명 광고 회사에서 광고 전략과 전체 컨셉을 잡는 기획자로 일했다. 밥 먹듯이 야근과 주말 근무를 했지만 행복했다. 같이 일하는 사람들도 좋았고, 적성에 잘 맞았다. 벌이도 만족스러웠다. 대기업 평균보다 월급이 많았다. 

출처: 원부연씨 제공
원부연씨가 광고 회사에서 일하던 시절

앞만 보고 달려오던 어느 날, 자정 넘어 집으로 돌아가는 택시 안에서 갑자기 회의가 몰려왔다.


“내가 일의 중심인 것이 아니라, 불필요하고 비효율적으로 보이는 회사 시스템을 위해 시간을 할애해야 하는 느낌이 들었어요. 순수하게 광고 자체에 집중할 수 있는 시간이 갈수록 줄었죠. 내가 일의 주인이 되고 싶은 생각이 커졌어요. 퇴사를 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광고 기획자로 일한 지 7년이 조금 넘었을 때였다. 이후 자연스럽게 창업을 생각했다. ‘일의 주인’이 되기 위해서였다. 업종은 술집이었다. 이유는 단순했다. ‘술 마시는 게 너무 좋으니까.’


대학 시절 연극 동아리를 하면서 원씨는 일주일에 서너 번은 술을 마셨다. 술보다는 술자리를 좋아했다. 회사에서도 회식 자리를 웬만해선 빠지지 않았다. 좋은 사람들과 술 마시면서 긴장이 풀리고, 웃고 떠들고 때로는 진지한 이야기를 나눌 수 있는 분위기가 좋았다. 

출처: 원부연씨 제공
자신이 운영하는 술집에서

“벌써 세 번째 술집 오픈을 준비하고 있는데, 저는 항상 필요에 의해서 술집을 열어요. 술을 좋아하니까 항상 좋은 술집을 찾아 다녔는데, 예쁘고 아늑한 곳에서 편하게 술 마실 수 있는 곳이 의외로 많이 없더라고요. 제 또래 직장인들이 ‘친구 집에 놀러 가서 술 한잔 한다’는 기분으로 올 수 있는 가게를 운영해보고 싶어서 첫 번째 가게를 열었어요.


‘퇴사→돈 벌어야지→술집’이 아니라 ‘퇴사→술집→돈 벌어야지’였던 것 같아요. ‘장사해서 돈 왕창 벌어야지’라는 생각보다는 내가 좋아하는 음주 문화와 분위기를 만들어보고 싶은 마음이 컸어요. 직장 다니면서 창업 생각하시는 분들은 ‘왜 내가 그 업종을 하고 싶은지, 어떻게 하고 싶은지’를 꼭 생각해 보셨으면 해요.”

먼저 해봐라, 실제로

원씨는 술집 창업 전 테스트를 했다. 술집을 운영할만한지, 장사가 적성에 맞는지를 확인해보기 위해서였다. 뜻이 맞는 학교 선배와 함께 대학 생활을 했던 신촌의 한 술집을 인수했다. 퇴사 3개월 전이었다. 권리금과 보증금, 물품 구입비 등을 포함해 3500만원 정도가 들었다.


퇴근 후, 거의 매일 술집에 갔다. 학생인 대학 후배 1명이 술집에 상주하며 매장 관리를 했다. 원씨는 서빙과 요리, 돈 관리에 참여하면서 ‘사장님 수업’을 했다. 자신 이름을 단 술집을 내면서 이 술집 운영에서는 빠졌다. 

출처: 원부연씨 제공
원부연씨는 술집을 운영하면서 손님들과도 적극적으로 소통하는 편이다.

“부담이 클 줄 알았는데 막상 해보니 너무 재미있었어요. 성향에도 잘 맞고, 점주가 돼서 돈을 버는 것에도 눈을 떴고요. 제가 생각보다 장사에 소질이 있다는 것도 알게 됐어요.


낮과 밤이 바뀐다는 것, 안주를 빨리 만들기 어렵다는 것, 돈 관리 등 장사를 하면서 어려운 점도 미리 경험할 수 있었고요. 제 브랜드의 술집을 내도 ‘최소한 망하지는 않겠구나’라는 확신을 갖게 됐죠. ” 

배워라, 열심히 

원씨가 상암동에 문을 연 약 33㎡(10평) 정도 크기의 ‘원부술집’은 생각보다 빠르게 자리를 잡았다. 방송국 밀집 지역인 상암동에 당시 직장인들이 퇴근 후, 편안하게 술 마실만한 곳이 마땅히 없었기 때문이란 설명이다.


원씨는 지난해 초, 두 번째 창업을 결심했다. 이 가게 역시 돈을 더 벌고 싶어서라기 보다는 ‘왜 그런 공간이 없을까’하는 아쉬움에서 시작된 것이다.


“두 번째 술집은 ‘바’(bar)인데, 기존의 바들이 손님을 조금 불편하게 하는 구조라는 생각에서 시작했어요. 술자리를 좋아하니까 바도 자주 다녔는데, 바텐더들이 술에 대해 잘 모르면 약간 무시하는 것 같다는 느낌을 받을 때가 꽤 있었습니다. 퇴근하면서 혼자 들러 한 두잔 가볍게 마시기에 부담스러운 분위기와 높은 가격도 불편했어요. 직장 선배와 이런 얘기를 나누게 됐는데, 편한 분위기의 바를 내보면 어떨까 하는 공감대가 만들어졌죠.”

원부연씨가 지난해 신촌에 문을 연 '모어댄위스키'

원씨는 회사 선배와 같은 이름의 술집을 따로 내기로 했다. 선배는 지난해 5월 서울 용산구 해방촌에, 원씨는 8월 신촌에 원부술집과 비슷한 크기의 ‘모어 댄 위스키’라는 바를 열었다.


바를 열기 전, 원씨는 술에 대한 전문적인 교육을 받았다. 홍대에서 오랜 시간 바를 운영한 전문가에게 수업료를 내고 위스키의 이론과 유래, 칵테일의 종류와 만드는 법 등을 2개월 가량 배웠다.


“바텐더는 따로 있지만, 바를 운영하려면 술에 대해 잘 알고 있어야 해요. 그래야만 손님들과도 제대로 소통을 할 수 있고, 매장과 메뉴 관리도 효율적으로 할 수 있어요. 선배와 같이 수업을 듣고, 수 차례 회의하며 어떤 컨셉의 바를 만들지, 메뉴를 어떻게 만들지 등을 정했어요.” 

기록하라, 써야지 남는다 

원씨는 퇴사 2개월 전인 2014년 4월부터 본격적으로 창업을 준비했다. 입지 선정, 인테리어 작업 등을 시작했다. 막상 시작하려니 모르는 게 많았다. 인터넷을 뒤졌지만, 참고할만한 정보는 거의 없었다. 서점에서도 도움이 될만한 책을 찾기 어려웠다. 시행 착오가 많을 수밖에 없었다.


원씨는 돈을 아끼기 위해 인테리어 업체를 공정 별로 선정했다. 물어 물어 다음 업체를 소개받는 식으로 인테리어 작업을 이어갔다. 덕분에 전문 업체에 맡기는 것보다 인테리어 비용을 20~30% 이상 낮출 수 있었다. 주류판매 허가번호를 따기 위해 세무서 직원도 여러 번 만나야 했다. 집기류를 저렴하게 구입할 수 있는 곳도 백방 수소문해 찾아 다녔다.


보증금과 인테리어, 집기류 구매 비용 등을 모두 포함해 4000만원 정도가 들었다. 회사 퇴직금이 있었기에, 대출받을 필요는 없었다. 그리고 이 과정을 모두 자신의 블로그에 기록으로 남겼다. 

원부연씨가 서울 상암동에 문을 연 첫 번째 술집. 원씨는 창업 과정을 모두 블로그에 공개했다.

“처음 시도하는 사람에게는 너무 막막한 일일 수 있겠다 싶었어요. 창업을 준비하는 누군가는 내가 겪었던 일을 참고해 고생을 조금 덜 했으면 하는 마음이 있었어요.


창업을 준비할 때 공정 별로 얼마가 들었고, 어디에서 재료들을 구했는지, 어떤 점이 문제였는지 등을 자세히 적어뒀기 때문에 나중에 가게 인테리어를 조금 바꿀 때도 도움이 되고, 장사가 힘들 때마다 마음을 다잡는 계기가 되기도 하고요.” 

안주하지마라, 변해야 산다  

비교적 순탄하게 술집이 자리를 잡았지만 힘든 시기도 있었다. 원부술집이 문을 열고 2년쯤 후, 손님들의 발길이 끊겼다. 처음에는 신선하고 새로운 느낌에 많은 손님들이 찾았다. 그러나 손님들의 발길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시간이 지나면서 싫증을 느낀 것이다.


손님들의 외면한 시기는 6개월 가량이다. 이 기간 매출이 월 평균 30% 감소했다. “장사가 안돼서 불안하고 우울했다기 보다는 고민을 했어요. ‘어떻게 해야하나, 무엇을 바꿔야 다시 손님이 올까’ 계속 생각했죠.”


원씨가 내린 결론은 술집의 ‘체질 개선’이었다. 당장 손님 숫자를 늘리기 어렵다면, 지금 오는 손님만으로도 운영이 가능하게끔 가게를 바꿔야 했다. 객단가를 높이는 전략을 펴기로 했다.


매출 비중이 높았던 소주를 메뉴 판에서 뺐다. 소주를 안 파는 것은 아니지만 처음 온 손님들이 주문할 때 볼 메뉴 판에서 없앤 것이다. 칵테일이나 생맥주, 양주 위주로 메뉴 판을 구성했다.


안주도 양을 늘리거나 고급화한 신 메뉴를 개발해서 가격을 올렸다.

변화는 성공적이었다. 손님 수가 줄었지만, 테이블당 매상이 늘면서 가게 매출이 예전 수준으로 올라갔다.


“예전에는 소주 마시러 오는 손님도 많았지만, 변화를 감행한 이후로는 양주나 칵테일 마시러 오는 분들이 늘었어요. 손님 군이 바뀌는 거죠. 소주 좋아하던 분들이 조금 서운해 하시긴 하죠. 그래도 그 상태로는 가게 유지가 안됐으니 어쩔 수 없었죠.


너무 자주 바꾸면 안되겠지만, 변화를 너무 두려워해서도 안돼요. 앞으로 분명 또 위기가 올 테고, 그러면 시대 흐름에 맞춰서 술집도 변해가겠죠. 그것 말고는 방법이 없어요.”

출처: 원부연씨 제공
남편과 함께

현재 원씨는 술집 2개를 운영하며 회사 다닐 때보다 30~40% 정도 많은 수익(연봉 기준)을 올리고 있다. 근무 시간은 훨씬 줄었다.


오후 5시 원부술집을 오픈 하며, 하루 일과를 시작해 자정쯤 문을 닫고, 신촌 모어댄위스키로 이동해 업장을 체크한 후 새벽 1~2시쯤 퇴근한다. 오후 5시 전까지는 온전히 자유 시간이다. 

신촌 '모어댄위스키'의 평소 풍경

“운영하는 술집이 모두 소규모에요. 바는 바텐더가 있어야 하기 때문에 어쩔 수 없지만, 원부술집은 저 혼자서도 운영이 충분히 가능해요.


인건비가 따로 안 들죠. 프랜차이즈도 아니기 때문에 로열티를 낼 필요도 없고요. 월세도 시내 중심가보다 훨씬 저렴해서 매달 나가는 고정 비용이 적은 편이에요. 여유가 생겨서 제가 평소 하고 싶은 활동도 적극적으로 하고 있어요. 삶의 만족도는 훨씬 커졌습니다.


‘자영업 지옥’이 완전히 틀린 말은 아니지만, 완전히 맞는 말도 아니라고 생각해요. 의외로 꼼꼼히 준비하지 않고 장사를 시작하시는 분들이 많습니다. 내가 왜 이 업종을 하고 싶은지에 대한 답을 갖고 있고, 다양한 사전 테스트를 경험한 뒤, 꼼꼼히 창업 과정을 체크하며 사업을 시작하세요. 성공한 사장님이 되는 것이 아주 어려운 일은 아닐 거라고 생각합니다.”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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