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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기업 2년 반만에 때려치고 동물원으로?..삼성 연봉과 맞먹는 그녀의 직업

조회수 2020. 9. 18. 14:0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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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0개 성대모사하는 앵무새의 '사람 엄마'는 누구? .."동물의 능력을 발굴해 주는 게 사육사 역할"
동물 표정 읽을 정도로 담당 동물과 교감 깊어야
동물사육사, 끊임없이 공부해야 하는 직업
동물 관련 학과 전공하는 게 유리

지난 22일 오전 10시, 에버랜드 애니멀원더스테이지에 100여 명의 학생들이 모였다. ‘혹시 보고 싶은 동물이 있냐’는 사회자의 질문에 어린 학생들은 “강아지요” “코끼리” “사막 여우 보여주세요”라고 소리쳤다. 이런 외침을 뒤로하고 눈앞에 등장한 건 무지갯빛 앵무새. 학생들은 다소 실망한 표정이었다.


“방울아, 날개를 펴주세요.” 

출처: jobsN
남지혜 사육사가 학생들 앞에서 홍금강 앵무새 '방울이'를 선보이고 있다.(왼쪽 사진) 남 사육사는 15년째 에버랜드 동물원에서 근무하고 있다.

그 작은 체구에서 갑자기 1m 가량의 양날개가 활짝 펼쳐지자 학생들은 일제히 손뼉을 쳤다. 사람 팔에 거꾸로 매달려 ‘꼴까닥’ 죽은 시늉을 하는 방울이의 귀여움에 여학생들은 자지러졌다. 거꾸로 매달리는 건 방울이가 속한 ‘홍금강 앵무새’들이 공통적으로 가진 습성이다. 하지만 사람들 앞에서 그 습성을 내보이기 위해 사육사와의 훈련 과정은 필수다. 그 훈련을 전담하는 방울이의 ‘사람 엄마’, 남지혜 사육사(여·35)를 만났다. 

‘아침 8시 출근, 밤 10시 퇴근’…동물사육사의 하루

에버랜드 동물원에는 200여종·20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정규직 동물사육사와 아르바이트생을 포함해서 동물원에는 총 300여 명의 직원이 근무한다. 작고 아담한 키에 앳된 얼굴을 한 남지혜 사육사는 나이에 비해 경력이 길다. 에버랜드 동물원에서만 벌써 15년째 근무하고 있다. 

출처: jobsN
에버랜드 동물원 남지혜 사육사.

-동물사육사의 하루 일과는 어떻게 되나


“아침 8시 30분 정도면 동물원에 나오는데, 출근하자마자 담당 동물을 관찰합니다. 동물들의 배변 상태나 체중 등을 측정하죠. 9시쯤이 되면 30분 정도 팀끼리 미팅을 해요. 그날그날 문제가 될 만한 일들을 공유하죠. 이게 끝나면 담당 동물 우리를 청소해주고 오전 사료도 배급합니다.


저는 공연을 담당하고 있어서 오후에는 1시 반부터 20분씩 총 4회 공연을 해요. 공연 진행이 끝나면 ‘결산’이란 걸 하러 사무실로 돌아오는데, 팀끼리 다시 모여서 아픈 동물은 없었는지 등을 공유합니다. 다시 담당 동물 우리 청소를 해주고 밤 사이에 먹을 사료도 넣어줍니다.


저는 맡은 일이 많아서 퇴근을 좀 늦게 하는 편이라 9시나 10시쯤 퇴근을 하지만 모두가 그런 건 아닙니다. 특근이 있는 날도 있지만 대체로 주 5일 근무를 하고 있어요.”

출처: 에버랜드 제공
에버랜드 동물원에는 200여종·2000여 마리의 동물들이 살고 있다.

60개 성대모사하는 앵무새…훈련시키는 게 아니라 능력 발굴하는 것

에버랜드에는 15살 앵무새 ‘랄라’가 있다. 랄라는 공연에서 60개 성대모사를 선보이며 관객들로부터 인기를 한 몸에 받고 있다.

-담당하는 앵무새 ‘랄라’가 유명하던데


“랄라는 ‘아프리카 회색 앵무새’인데요, 저와 14년째 호흡을 맞추고 있습니다. 랄라가 ‘여보세요’라는 말부터 시작해서 고양이 소리, 게임 소리 등 60여가지 소리를 낼 줄 알아서 유명해졌어요.”


-훈련은 어떻게 시키나


“입사 초기에는 동물 훈련을 시킬 때 강압적인 면이 없지 않았어요. 하지만 지금은 달라요. 저는 랄라가 가지고 있는 능력을 ‘발굴’하는 일을 한다고 생각해요. 제가 가진 노하우는 랄라와 ‘대화’를 많이 하는 거예요. 어떤 단어를 가르치고 싶다고 계속 그 단어만 주입시키면 앵무새도 금세 까먹더라고요. 하지만 ‘잘 잤어’ ‘오늘은 기분이 어때’ 같은 대화를 계속 주거니 받거니 하다 보면 안 내던 소리나 표현들을 할 때가 있어요. 그 순간을 포착해서 계속 유지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거죠.”

출처: 에버랜드 제공
앵무새 '랄라'와 공연 중인 남지혜 사육사.

-동물과 대화가 통한다는 게 신기한데


“저는 동물이 사람과 똑같다고 생각해요. 폭력을 쓰지 않아도 랄라는 본능적으로 '목소리 톤'이나 '내용'만 듣고도 상대가 화가 났다는 것을 알아요. 이게 혼나는 건지 칭찬을 듣는 건지. 칭찬을 들으면 눈동자부터 달라진다니까요.”

흔치 않은 직업, 동물사육사 되는 법

남 사육사는 여상을 나와 졸업하자마자 한 대기업의 사무직으로 바로 취직을 했다. 하지만 2년 반 만에 사표를 썼다. 고등학생 때부터 꿈이었던 ‘동물사육사’에 대한 미련이 남았기 때문이다.


-입사 당시와 현재를 비교했을 때 동물사육사 채용 조건이 많이 달라졌나


“제가 입사할 때만 해도 전공 ‘학과’에 대한 전문성을 중요하게 여기지 않았어요. 그리고 예전에는 동물과 관련 있는 학과가 축산학과 정도였어요. 요즘은 사육사가 되고 싶다는 친구들이 워낙 많아져서 대학에서 관련 학과가 늘어난 걸로 알고 있어요.


축산학과를 비롯해서 애완동물 관리과, 동물자원학과, 동물조련이벤트과 등 동물과 관련된 학과를 전공하기만 하면 입사 지원하는 데 큰 무리가 없어요. 매해 채용 공고가 나는 걸로 알고 있는데 어떤 해에는 ‘전공 무관’ 조건일 때도 있죠. 하지만 대체로 동물 관련 학과를 졸업한 분들을 우대하는 걸로 알고 있습니다.”


-처우는 어떠한가


“신입사원 기준으로 연봉은 삼성그룹 4급 전문대졸 공채 사원과 비슷하게 받습니다. 다른 직군에 비해 노동강도는 센 편입니다. 돈을 보고 이 일을 시작한다면 사육사의 꿈을 이뤘다 해도 좀 힘들어할 수 있을 것 같아요.”


-동물사육사가 가장 갖춰야 할 요소가 있다면


“희생정신이 가장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단순히 동물을 좋아하는 걸 넘어서 그 동물을 위해 내 삶도 기꺼이 희생할 수 있는 수준이 돼야 한다고 봐요. 요즘은 ‘열심히 일한 만큼 또 내가 잘 쉬어야 한다’는 걸 강조하는 시대잖아요. 하지만 담당 동물이 아픈 날 제가 쉬었다가 그 사이에 동물이 죽는 경우도 발생할 수 있거든요. 그래서 꼭 희생정신을 강조하고 싶네요.”

지난해 '판다 커플' 국내 입국…14번째 판다 보유국 돼

국내에는 유일하게 에버랜드에만 ‘판다’가 살고 있다. 지난 2016년 3월 초 중국 쓰촨성 두장옌 판다 기지에서 암컷 ‘아이바오’와 수컷 ‘러바오’를 들여왔다. 2014년 한중 정상회담 당시 ‘판다 공동 연구’에 합의한 결과였다. 이로써 우리나라는 14번째 판다 보유국이 됐다.   

출처: 에버랜드 제공
지난해 국내 입국한 '판다 커플'. 왼쪽이 암컷 '아이바오'이고 오른쪽이 수컷 '러바오'이다.

아이바오와 러바오에게는 ‘사람 아빠’가 있다. 바로 경력 13년 차 송영관 사육사(38)다. 송 사육사는 침팬지나 오랑우탄 같은 유인원을 담당하다가 지난해 판다 커플을 새로 맡게 됐다.


-희귀동물을 담당하고 있는데 어려움은 없나


“다른 동물들도 다 중요하지만 판다가 희귀동물이다 보니까 부담을 느낄 때가 많습니다. 판다는 생긴 것과 달리 주변 환경에 예민한 동물이에요. 지금까지는 문제가 없었지만 혹여 판다 변이 이상하다거나 먹는 게 정상적이지 않을 때는 신경을 많이 쓸 수밖에 없죠.”


-판다가 대식가라고 하던데


“하루에 대나무를 15kg 이상 먹습니다. 대식가가 맞죠. 판다의 그날 컨디션을 가장 크게 좌우하는 게 ‘대나무의 상태’예요. ‘자신이 좋아하는 신선한 대나무를 먹느냐 못 먹느냐’가 판다의 기분을 좌우해요. 경남 하동 지역에서 가져오는 대나무를 하루 4번 먹이고 있어요. 판다는 하루 24시간 통틀어서 절반은 먹는 데 쓰고 절반은 자는 게 일이죠.”


-처음에 러바오와 아이바오가 에버랜드에 들어왔을 때 어땠나


“중국에서 한국으로 들어온 것이니까 환경이 급작스럽게 바뀐 거잖아요. 안정감을 주기 위해서 저와 선배 사육사가 24시간 판다들 옆에 있었어요. 제 목소리도 많이 들려주고 냄새도 맡게 해주고 손도 핥게 해주고 먹이도 많이 주고. 동물들도 결국에는 그렇게 계속 관심 가져주고 애정을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거든요. 한두 달 지나니까 판다들이 따르기 시작했어요.”

판다 '서식 조건' 배우기 위해 중국 연수 마다하지 않는 사육사들

출처: 에버랜드 제공
에버랜드 판다 커플을 담당하고 있는 송영관 사육사.(왼쪽 사진)

송 사육사는 동물사육사가 되고자 하는 사람들에게 ‘외국어’ 공부를 추천했다. 선진 동물 기술을 배우기 위해 사육사들은 해외 연수도 마다하지 않는다고도 했다.


-동물사육사가 되고자 하는데 외국어를 잘 하면 좋은 이유가 뭔가


“판다는 중국의 국보이잖아요. 그만큼 중국이 판다에 대한 연구 정보도 많고 선진 기술을 잘 갖추고 있어요. 그걸 빠르게 습득하기 위해 언어가 참 중요하더라고요. 꼭 연수를 가지 않더라도 미국이나 일본어로 돼 있는 학술지, 전문지 등으로 공부를 하면 좋으니까 외국어 능력이 뛰어날수록 도움이 크게 됩니다. 사육사는 계속 공부해야 하는 직업 같아요.”


-동물사육사로서 중요한 기질이 있다면


“‘관찰력’이 중요하다고 생각해요. 평소 담당 동물에 대한 관찰이 잘 돼야 이상 징후를 보일 때 빠르게 대처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말로 표현하긴 어렵지만 미묘하게 판다도 표정이 읽히는 동물이에요. 감정이나 기운, 컨디션 같은 게 다 느껴지는 거죠. 세심함과 꼼꼼함을 갖춘다면 동물들에게 든든한 사육사가 될 수 있을 겁니다.”


글 jobsN 박가영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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