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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나래부터 황교익까지..'술 좀 마신다'하면 다 아는 이 사람

조회수 2020. 9. 18. 13: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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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리타분하고 맛없다'는 편견 깨고 우리 술 살리는 술꾼
전통술 콘텐츠 제작자 이지민씨
대동여주도·니술냉가이드 만드는 PR5번가 운영
'술 좀 마신다'하면 다 아는 이 사람

페이스북, 인스타그램 같은 SNS에 우리 전통술을 검색하면 관련 게시물이 수천개씩 뜬다. 전통술은 최근 ‘힙’ ‘트렌디'의 상징으로 자리 잡았다. 이런 분위기를 만드는 데 큰 역할을 한 사람이 있다. 음료와 주류 관련 콘텐츠를 만들고 홍보·마케팅·컨설팅하는 PR5번가 이지민(38) 대표다. 주로 우리 전통술을 소개하는 ‘대동여주도’와 국내외 술을 리뷰하는 ‘니술냉가이드(언니들의 술 냉장고)’를 만들고 있다. ‘술 좀 마신다’하는 사람들은 그를 알아보기 시작했다.


작년에 기획한 ‘우리 술 릴레이샷’ 캠페인은 인터넷에서 화제였다. 셰프 강레오, 레이먼 킴, 맛칼럼니스트 황교익 등 유명인사들이 자신의 SNS에 전통술을 원샷하는 영상을 릴레이로 올렸다. 몇년 전 루게릭 환자를 돕기 위해 유행했던 ‘아이스버킷챌린지’와 같은 방법이다. 일반 시민으로까지 퍼져 3개월 만에 400여명이 참여했다.


3~4년 전만 해도 ‘전통주’ 관련 콘텐츠는 인터넷에서 찾아보기 힘들었다. 있다 해도 2030 세대가 공감하기 어려운 내용이었다. 한자어가 난무하고 시조를 읊어야 할 것만 같은 ‘옛날 느낌’이 강했다. 젊은 세대는 ‘전통술’하면 도자기를 떠올렸고 마치 ‘박물관에 전시해야 할 고대 유물’처럼 대했다. 이씨는 이런 분위기를 180도 바꿔 놓았다. 

출처: jobsN

발랄하게 풀어내는 우리 술 

‘전통’이라 해서 근엄하거나 무겁지 않다. ‘조선시대 임금들은 무슨 술을 마셨을까?’, ‘우리 술 좀 마셔봤다면 아는 우리 술 별칭’, ‘별주부전과 춘향전에 등장하는 그 술’···. 톡톡 튀는 그림과 문구, 읽는 사람이 궁금하게 만드는 제목으로 눈길을 끈다. 그가 만든 콘텐츠를 보고 ‘덕분에 우리 술 매력에 빠졌다’는 사람이 한둘이 아니다.


그가 만드는 콘텐츠는 크게 2가지다. 1000개가 넘는 전통술을 소개하는 ‘대동여주(酒)도’와 국내외 술을 리뷰하는 ‘니술냉가이드’다. 전통술을 톡톡 튀는 콘텐츠로 풀어낸다.


칼럼, 웹툰, 영상, 인포그래픽 등 모든 수단을 총동원한다. 술을 만드는 과정, 역사와 일화, 술을 빚는 명인의 인생, 술을 즐기는 법 등을 다룬다. 이때 가장 중요한 건 ‘재미’다. 초반에 만들었던 웹툰에는 30대 젊은 여자 두명이 등장한다. 이름은 ‘지민’과 ‘쵸키’. 지민은 이씨, 쵸키는 함께 일하고 있는 ‘박초희’씨를 말한다. 두 사람은 2015년부터 전통술을 알리는 콘텐츠를 만들고 있다. 

출처: 이지민씨 제공
대동여주도 콘텐츠 일부.

“기존 전통술을 설명하는 자료는 너무 어려웠어요. 한자어가 많고 고리타분했죠. 마치 학창시절 교과서에서 시조를 공부하는 것처럼요. 또 ‘어르신들만 즐기는 옛날 술’이라는 편견도 있었습니다. 이런 편견을 깨기 위해 저희를 웹툰에 등장시켰어요.”


흥미롭지만 가볍진 않다. 당장 신문이나 방송에 나가도 손색없을 만큼 '프로'답게 만든다. "저희 콘텐츠로 공부하고 있다는 쪽지, 회사에서 발표를 하는데 자료를 써도 되냐는 메일, 주류 회사에서 직원 교육을 할 때 참고하고 있다는 글을 받습니다. '잘 보고 있다'는 쪽지나 메일을 받을 때 기쁘고 책임감을 느껴요." 

출처: 우리 술 릴레이 영상 캡처
우리 술 릴레이 캠페인 영상. (왼쪽부터) 강레오 셰프, BJ 대도서관, 개그우먼 박나래, 서현진 아나운서, 앤드류 새먼 더타임즈 특파원, 황교익 맛칼럼니스트

영세한 우리 양조장 보고 충격받아..콘텐츠의 힘으로 전통술 살리겠다 

술·음료와 인연, 그 뿌리가 깊다. 2004년 홍보회사에 들어가 4년 동안 수입 주류를 홍보하는 일을 맡았다. 이후 LG상사 주류사업 부문에서 상품기획·마케팅을 맡았다. 허영만 화백과 함께했던 ‘12간지 띠 와인’이 대표적인 작품이다. 2012년부터는 CJ 커피음료사업부에서 일했다.


하지만 정작 우리 전통주에는 관심이 전혀 없었다. 2014년 5월 허영만 화백과 함께 한 국내 양조장 투어가 그의 삶을 바꿨다.


“유럽 와이너리(와인 양조장)는 관광 명소이고 문화 산업입니다. 양조장에 가면 오너가 손님을 맞이하면서 술과 브랜드의 역사를 설명해줘요. 술 만드는 방법을 보고 시음하면서 그 술에 반하죠. 반면 우리나라 양조장은 마음 아플 정도로 초라했어요.”


우리나라 양조장은 ‘노후화’가 심했다. 술을 빚는 사람은 대부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었다. 젊은이들은 눈 씻고 찾아봐도 보기 힘들었다. 주류 업계도 전통주를 외면했다. 4조원 규모 주류시장에서 전통술이 차지하는 비율은 0.5%.


그런데 막상 술 명인들에게 전통술을 만드는 방법이나 숨겨진 이야기를 들어보면 흥미로웠다. 별주부전에서는 별주부가 ‘용궁에 가면 감홍로(甘紅露)가 있다’며 토끼를 꼬드긴다. 선녀들이 마셨다는 ‘송화백일주(松花百日酒)’, 마시면 신선이 된다는 ‘추성주(秋成酒)’ 같은 전설도 있다. 1000년, 1500년이 넘는 역사를 가진 술도 있다. 

출처: 이지민씨 제공

“10년 넘게 홍보·마케팅을 하면서 깨달은 한 가지가 있어요. 홍보하려는 제품과 콘텐츠가 좋지 않으면 홍보하기가 힘들어요. 억지로 신문·방송에 홍보해달라고 요청하거나 사람들에게 알리기 위한 이벤트를 벌여야 하죠. 반면 제품이나 콘텐츠 그 자체가 좋으면 따로 힘을 들일 필요가 없어요. 저절로 알려져요. 그런데 전통주는 제품이 좋은데 편견에 쌓여있어 안타까웠어요.”


편견을 깨기로 했다. 우리 술이 갖고 있는 이야기 자체가 매력적이라 생각했다. 사람들이 재미를 느낄 수 있는 콘텐츠로 알리면 전통주도 와인, 맥주 못지않게 인기를 끌 수 있을 거라 봤다.


문배술 양조장을 처음 찾았다. 문배술은 문배나무에서 열리는 배와 같은 향기가 난다 해서 붙은 이름이다. 고려시대 때 왕이 마시던 술로 1000년 넘은 역사를 자랑한다. 우리나라 중요무형문화재 86-가호 기능보유자 이기춘 명인이 만들고 있었다. 


“처음에는 명인에게 ‘전통술을 홍보하고 싶다’고 저희 취지를 설명해도 거절하셨어요. 대부분 명인들이 그동안 상처를 많이 받으셨어요. 홍보해주겠다 하고 돈을 줬는데 사기당한 분도 계시고, 큰 돈 들여 홍보해도 별다른 변화가 없는 거죠. 수십 번 찾아가 설득했어요. 제대로 해보겠다구요. 신뢰를 얻기 위해 ‘앞으로 홍보 계획과 방안 그리고 기대 효과’를 상세히 설명드렸습니다.”


문배술의 역사, 에피소드, 추천 음식을 담은 인포그래픽과 만화를 페이스북과 블로그에 올렸다. 문배술을 맛볼 수 있는 서울 맛집을 함께 소개했다. 2014년만 해도 서울에서 문배술을 맛볼 수 있는 음식점은 많지 않았다. 하지만 지금 전통술을 다루는 음식점이라면 어디서나 문배술을 마실 수 있다. 

출처: 이지민씨 제공
문배술 관련 콘텐츠 일부. http://blog.naver.com/prnprn

전통술을 소개하는 대가로 양조장에서 돈을 받지는 않는다. 술병 디자인을 바꿔달라든지, 마케팅을 해달라는 요청이 들어올 때만 돈을 받는다. 주로 음식점이나 식재료·음료·주료 관련 협회에서 의뢰를 받거나 정부사업으로 돈을 번다. “억대 연봉까지는 아니어도 직장에 다닐 때보다 많이 벌고 있습니다.”


그는 자신의 관심사를 직업으로 삼은 ‘덕업일치’ 사례다. ‘퇴사 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직장인에게 “3락(樂)을 생각해보라”고 조언한다. “우리나라 대부분 사람들이 자신이 무엇을 좋아하는지 몰라요. 관심사는 살면서 계속 바뀝니다. 제 관심사도 바뀌었지만 그 중심에 항상 ‘술’이 있었어요. ‘평생직장’ 개념이 사라진 시대입니다. 그런데 자기가 좋아하는 게 뭔지 확신이 들면 적어도 풍파를 견딜 힘은 생깁니다.” 

출처: 이지민씨 제공

술 맛있게 먹는 법 3

우리 전통술은 크게 곡식과 누룩, 물로 만든 막걸리(탁주), 침전물을 걸러낸 약주, 증류해 만든 증류주로 나뉜다. 증류주를 만드는 과정에서 과일을 넣으면 과실주, 국화를 넣으면 국화주가 된다. 지역은 물론 집집마다 술 만드는 방식과 재료가 다르다. 막걸리 종류만 해도 2000개가 넘는다.


1. 술병에 붙은 성분표를 보자

"해외 와인 문화에서 부러운 게 술을 마시기 전에 전문가에게 설명을 듣는다는 거예요. 음식이든 술이든, 어디서 왔고 무엇으로 만들었는지 알면 훨씬 맛있습니다.


한편 막걸리에 대한 오해가 '마시면 다음날 머리 아프다'는 건데, 아스파탐 같은 화학성분 때문에 그렇습니다. 사카린, 아스파탐이 없는 막걸리를 골라보세요."


2. 전통술이라고 '도자기'나 '사발'에 먹지 않는다

"손님에게 술을 드릴 때 반드시 칵테일잔이나 온더락 같은 유리잔에 따라드려요. 술을 알려면 색을 보고 향을 맡아야 합니다. 전통술이라고 무조건 도자기나 사발에 먹어야 한다는 건 편견입니다."


3. 한국술에는 한국음식만 고집하지 않는다

"안주를 추천할 때 일부러 한식을 피하는 경향도 있어요. 편견을 깨기 위해서입니다. 빨간쌀로 만든 '홍국주'는 빵, 치즈하고 잘 어울려요. 막걸리 같은 탁주는 피자나 파스타와도 궁합이 좋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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