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윰블리' 정유미가 윤식당 찍기 전 들렀던 식당의 셰프는?

조회수 2020. 9. 18. 13: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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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광-니스', '동해-나폴리'란 요리 들어보셨나요?..서촌의 숨은 고수 '김태윤 셰프'
서울 서촌의 숨은 고수 '김태윤 셰프'
동·서양 문화가 어우러진 색다른 메뉴 개발
'방랑벽'이 만든 요리들, 미식가들 입맛 사로잡아

지난 몇 년간 먹방(먹는 방송), 쿡방(요리방송) 열풍이 불면서 요리에서 ‘쇼잉’(showing·보여주기)이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늘었다.


TV로는 맛을 볼 수도, 냄새를 맡을 수도 없다. 시청자의 눈과 귀를 사로잡아야 ‘성공한 음식’이 되는 아이러니한 상황이다. 셰프들의 퍼포먼스와 입담, 패션이 음식 자체보다 주목받는 일이 비일비재해졌다. “셰프테이너(셰프+엔터테이너) 시대가 열렸다”는 말도 나온다.


김태윤(38) 셰프는 최근의 ‘셰프테이너’ 흐름과 정반대에 서 있는 듯한 사람이다. 차분하고 조용하다. 화려하고 재미있는 셰프에 익숙해진 사람이 그를 만나면 ‘심심하다’는 느낌을 받을 수 있다.


서울 경복궁 옆 서촌을 근거지로 활동하는 그는 실험 정신에 입각해 동·서양 문화가 융합된 음식을 다양하게 시도한다. 서울 강북의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꽤 이름이 알려졌다.


그는 ‘하퍼스 바자’, ‘바 앤 다이닝’ 등의 잡지에 수시로 음식 관련 글을 기고하며 독자들과 소통한다. 전주의 국제한식조리학교와 인천문예실용전문학교에서 강의도 한다. 하지만 방송 출연은 하지 않는다. 

출처: 김태윤 셰프 제공
서울 서촌에서 활동하는 김태윤 셰프

jobsN이 만난 김 셰프는 자신이 어쩌다 요리를 하게 됐고, 어떻게 요리를 배웠고, 지금 어떤 음식을 만들고 있는지를 특유의 느린 저음(低音)으로 또박또박 말했다.


한 순간도 소리가 높아지거나 말이 빨라지지 않았다. 조곤조곤한 그의 얘기에 빠져들다 보니 1시간 예정이었던 인터뷰가 2시간 가까이 이어졌다.

손으로 만드는 게 좋아서 하게 된 요리

김 셰프는 서강대 사학과를 나왔다. 2학년 마치고 군대 가기 전까지는 남들과 비슷하게 지냈다. 수업 안 듣고, 공부보다는 놀기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미래에 대한 진지한 고민은 군대에서 했다. 회사에는 가기 싫었다. 전공에 흥미가 있었지만, 대학원 가서 오래 공부하는 것도 싫었다. 그러면 ‘뭘 해서 먹고 살아야 하나’ 생각해봤다.


어려서부터 손으로 무언가 만드는 것을 좋아했던 기억이 떠올랐다. 조립식 장난감을 완성했을 때 큰 희열을 느꼈다. 어머니를 도와 주방 보조 역할을 할 때 행복했다. 가끔 친구나 가족들에게 음식을 해주면 “솜씨 좋다”고 칭찬받았던 기억도 났다. 결심이 섰다. ‘그래, 요리다. 요리를 해보자.’


2002년 군 제대 후, 요리학원 새벽·야간반을 다니면서 한식·양식·일식 자격증을 땄다. 학기 중에는 음식점 주방 보조 아르바이트를 했다. 친구들은 도서관에서 토익 공부를 하고, 자소서 작성과 입사 면접을 준비할 때였다.


“주변 친구들과 다른 길을 간다는 것에 대한 불안은 없었어요. 군대에서 정한 진로가 정말 나한테 잘 맞는지 확인하기 위해서 열심히 요리학원도 다니고, 음식점 아르바이트를 했던건데 하면 할수록 ‘내 길’이라는 확신이 들었거든요. 그간 했던 일이 공부와 같이 정적인게 많았는데, 요리는 매우 동적인 활동이었고, 상상한 대로 바로 반응이 오니까 육체적으로 힘들었지만 즐거웠습니다.”  

출처: 김태윤 셰프 제공
두바이 호텔에서 일할 때, 동료들과 함께

일본 요리학교, 두바이 최고급 호텔 주방을 거쳐 서촌 오너셰프로

대학 졸업 후, 2008년 일본 도쿄의 ‘핫토리영양전문학교’에서 1년간 요리를 배웠다.


요리와 식재료를 대하는 일본인들의 자세와 정신, 자국(自國) 음식 중심인 프랑스·이탈리아 등의 유럽 학교와 달리 다양한 종류의 요리를 배울 수 있는 커리큘럼 등이 일본 학교를 선택한 이유였다.


요리학교 수료를 눈 앞에 두고, 두바이 최상급 호텔 주방에 취직해 1년 반정도 일했다.


2010년 한국에 돌아와 한 유명 요리 아카데미에서 케이터링 셰프와 요리 강사로 일했다. 그리고 2011년 10월 서울 통인동에 자신의 첫 음식점 '7PM'을 냈다.


슈니첼(우리식의 돈가스와 비슷한 오스트리아 음식), 굴라쉬(헝가리나 폴란드 지역의 소고기 수프), 프리카세(화이트 크림으로 요리한 고기) 등의 유럽 가정식을 전문으로 하는 식당이다.


식당 단골의 제안으로 4년 뒤, 근처(사직동)에 식당을 하나 더 냈다. '주반(酒飯)'이다. 인도와 동남아시아 지역 등에서 많이 쓰는 향신료가 들어가, 매콤한 음식이 주가 되는 식당이었다. 주반은 서울에서 쉽게 맛 볼 수없는 독특한 음식들을 선보인 덕에 SNS에서 화제가 되며 '핫플레이스'가 됐다. 


 tvN 인기 예능 프로그램인 '윤식당' 출연진이 최근 인도네시아 발리로 떠나기 전, 주반에서 사전 만남을 갖기도 했다. 

출처: tvN 화면 캡처
최근 인기를 끈 tvN 예능프로그램 '윤식당'의 촬영지가 됐던 주반

식당을 2개나 운영하는 바람에 정신이 없어질 무렵인 2016년 말 그는 과감히 통인동 식당 문을 닫았다. 미식가들 사이에서 입소문이 나서 멀리서도 예약하고 찾아오는 손님들로 테이블이 꽉 찰 만큼 반응이 좋은 식당이었다. 문을 닫는다고 하자, 주변 모두가 말렸지만 뜻을 굽히지 않았다.


“요리에 대한 저의 생각이나 접근 방식, 컨셉은 계속 바뀝니다. 점점 제게 맞는 색을 찾아가는 과정인 것이죠. 그런 관점에서 봤을 때, 통인동 식당은 뭔가 정립이 안 된 상태였고, 조금씩 수정하면서 나아가기에는 한계를 느낄 때가 많았어요. 요리에 집중하지 못한 채 식당 2개 운영하며 장사만 하는 것은 제가 원했던 길이 아니었고요. 올해는 우선 식당 한 곳에만 집중하면서, 새롭게 어떤 요리를 해야할지 모색하는 단계입니다.”    

요리들의 이름은 다 어디서 왔나

김 셰프는 식당에서 30여가지 요리를 판매한다. 전부 개발한 메뉴들이다. 가장 유명한 메뉴는 ‘영광-니스’, ‘홀리축제’, ‘호텔 자이살메르’ 등이다. 이름이 모두 특이하다. 


“제가 식당에서 선보이는 요리는 한국과 유럽, 동남아, 인도, 중국, 중동 등 세계 전역의 요리가 다양하게 합쳐져 탄생한 것들입니다.”


예컨대 ‘영광-니스’는 ‘먹물 라바쉬 위에 올린 굴비 브란다드’라는 설명이 붙어있다. 브란다드(Brandade)는 염장한 대구살에 올리브오일·마늘·감자와 우유를 곁들여 무스로 만든 프랑스 요리다. 여기에서는 염장 대구 대신 영광 굴비를 이용했다. 그리고 페르시아 지역에서 먹는 플랫브레드인 ‘라바쉬(Lavash)’를 곁들였다.

출처: 김태윤 셰프 제공
김태윤 셰프가 만든 요리들. 왼쪽이 '영광-니스', 오른쪽은 '피피 아일랜드'로 태국식 남찜소스를 곁들인 통영 석화요리다.

‘동해-나폴리’라는 메뉴는 우리나라 동해의 문어를 재료로 이탈리아 나폴리풍 샐러드를 만든 것이다.


‘홀리축제’는 닭을 요거트와 향신료에 절였다가 숯불에 구워내는 닭꼬치 요리다. 홀리축제(다양한 색상의 물감을 서로에게 던지면서 복을 기원해주는 힌두교 봄 축제)라는 이름을 붙인 이유는 마·파프리카·비트 등을 말려서 가루로 만들어 그 위에 알록달록하게 뿌려주기 때문이다. 

방랑벽이 만든 요리들  

‘국적 불명’ 요리들은 철저히 그의 방랑벽(放浪癖)에서 비롯됐다.


요리사가 되기로 마음 먹은 뒤, 대학 시절 1~2개월 가량의 긴 배낭여행을 5번이나 떠났다. 행선지는 아시아 전역이었다. 중국, 인도, 태국, 몽골 등 중앙·동남·서남아시아를 두루 거쳤다. 인도는 대학 때만 세 번을 갔다. 여행 경비는 모두 음식점 아르바이트로 마련했다. 

출처: 김태윤 셰프 제공
김태윤 셰프의 요리 '호접몽'. 스파이시한 토마토 소스에 조리한 번데기에 삶은 메추리알과 루꼴라, 식용꽃을 올린 요리다.

졸업 후에도 일본 요리학교 입학을 미루고, 1년 3개월 가량 세계 일주를 했다. 대학 시절 모은 돈 300만원 들고, 중국 칭다오로 배를 타고 건너가서 실크로드를 따라 중국·파키스탄·이란·터키까지 아시아 대륙을 횡단하고, 동유럽을 거쳐 영국으로 갔다. 13개국을 거치는 여행이었다. 인도 캘커타에서는 6개월간 마더테레사 하우스에서 봉사활동을 하며 체류하기도 했다.


긴 여행 동안 비행기는 2번만 타고, 전부 버스나 열차를 이용하며 경비를 아꼈다. 게스트하우스에서 요리를 해주며 숙박비를 벌기도 했다.


여행지에서의 모든 식사는 훌륭한 실습의 장이었다. 맛과 향을 기억하며 먹었고, 어떻게 만들었는지 감이 안 잡히는 음식은 식당 주방장에게 슬쩍 비법을 물었다. 수년 간에 걸쳐 살아있는 공부를 한 셈이다. 그의 요리가 “창의적이고, 신선하다”는 평가를 받는 이유다.


주입식 교육을 통해 완성된 요리가 아니라, 살아가면서 자연스럽게 터득한 것들이 서로 어우러지며 예상치 못한 조화를 이뤄가는 ‘현재 진행형’의 요리다. 

출처: 김태윤 셰프 제공
여행을 다니던 시절, 현지 시장에서 요리 재료를 고르는 김태윤 셰프

두바이 최고급 호텔에서의 경험도 그의 요리 경력에 있어 소중한 자산이 됐다. 두바이 호텔에서는 하루 15시간 이상 주방에 있을만큼 일을 많이 했다. 숙소에 돌아올 때마다 녹초가 됐지만, 유럽·인도·중동 등 다양한 지역의 음식들을 단시간에 집중적으로 배울 수 있던 시기였다.


“두바이 호텔 주방에서 함께 일한 친구들은 인도와 중동 음식 분야 최고 권위자들이었어요. 그들이 만든 음식을 맛보고, 함께 일하며 조금씩 요리법을 배운 것이 지금 요리를 만드는데 큰 도움이 되고 있습니다.” 

“실패 한 번 없는 인생이 정말 잘 살아온 인생일까”

김 셰프는 자신은 “금수저는 아니지만, 흙수저도 아니다”고 했다.


좋은 요리사가 되기 위해, 열심히 살았지만 부모한테 돈 한 푼 안받고, 이 악물고 살면서 ‘무(無)에서 유(有)를 창조’한 유형의 사람은 전혀 아니라는 것이다.


그렇지만 진로를 고민하는 청년들, 내가 뭘 좋아하는지 잘 모르거나 알지만 실패의 두려움 때문에 일단 취업 준비만 하고 있는 학생들에게 해주고 싶은 이야기가 있다고 했다. 

출처: tvN 화면 캡처
tvN 윤식당에 나왔던 주반의 모습

“흔히 사람이 하고 싶은 일만 하고 살 수는 없다고 말하지만 저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습니다. 하고 싶은 일을 했을 때 포기해야하는 기회비용이나 목표치를 낮춰야하는 상황이 발생하게 되는 것이죠. 지금 하고 있는, 하고자 하는 일이 진정 원하는 일이 아니더라도 상관없습니다. 중요한 것은 나는 무엇을 원하는지, 어떤 일이 내 가슴을 뛰게 하는지 지속적으로 들여다보고 스스로에게 물어보는 일입니다.


100세 시대에 접어든 세상에서 적어도 50년 가까이 일해야 하는데, 좋아하는 일을 언제든 한 번쯤은 해봐도 상관없지 않을까요. 실패도 마찬가지라고 생각합니다. 50년 가까운 시간동안 실패 한 번 없는 인생이 정말 잘 살아온 인생이라고는 할 수는 없을 겁니다.”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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