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기차 테슬라가 극찬한 '연필꽂이(?)' 만든 한국인

조회수 2020. 9. 18. 11:42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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테슬라가 극찬한 '무선 충전 기술' 컵안에 스마트폰을 쏙
패드형 무선충전 뛰어넘는 3차원 충전 기술 개발
구글글라스·드론까지 무선충전 영역확대 가능
"어떤 실패라도 다른 기술의 밑거름 된다고 확신"

한국전자통신연구원(ETRI·에트리)이 내놓은 ‘E-Cup(E컵)’은 어떻게 봐도 꼭 연필꽂이다. 직경 10cm인 원통은 볼펜이나 연필 한 움큼을 넣어놓으면 딱 좋은 크기다. 그런데 여기에 연필 대신 스마트폰이 들어있다.


‘문구회사에서도 충분히 만들 수 있을 것 같이 생긴 연필꽂이를 국내 정보·통신·전자 분야 최대 정부 출연연구기관이 왜 만든 것일까?’


이런 의문이 들 때쯤 스마트폰이 충전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할 수 있다. 단순한 연필통으로 보였던 E컵이 3차원 무선충전기로 밝혀지는 순간이다.

출처: ETRI 제공
조인귀 ETRI 전파·위성연구본부 책임연구원.

2015년 삼성전자가 패드 형태의 무선충전기를 선보였을 때, IT 업계에서는 ‘혁신적’이라는 평가를 받았다. 충전 패드 위에 스마트폰을 올려놓기만 해도 충전을 가능케 하는 방식이었다. ETRI가 개발한 E컵 기술은 그 이상이라는 평가다. 패드형 무선충전기는 스마트폰을 어떻게 올려놓느냐에 따라 충전 속도가 달라졌는데 3차원 무선 충전기는 이런 걱정에서 자유롭다.


ETRI는 E컵에 들어가는 무선 충전 기술을 S등급으로 분류했다. 매년 수백개가 넘는 특허가 나오는 ETRI에서 S등급을 받는 기술은 1~2개에 불과하다. 귀하신 몸, 특별관리대상인 셈이다. 이 기술의 개발 책임자가 조인귀(46) ETRI 전파·위성연구본부 책임연구원이다.

패드형 무선충전 뛰어넘는 3차원 충전 방식

-이런 기술을 개발한 계기가 있습니까


“사람들이 자유로와지게 만드는 기술을 연구합니다. 결국 편리함이죠. 과거 유선전화기를 쓸 때 휴대전화가 이렇게 보급되리라고 누가 생각했겠습니까. 스마트폰이 나온 뒤 유선 충전 방식에서 무선 충전으로 바뀐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무선 충전 기술을 더 쓰게 편하게 만들자는 연구의 일환입니다.”


-시중에는 패드형 무선 충전기도 보급돼 있습니다


“지금 있는 기술도 좋은 기술이지만, 한계가 있습니다. 스마트폰을 일정한 방향으로 정확하게 패드 위에 올려놓지 않으면 충전이 잘 되지 않습니다. 열이 나기도 합니다. 효율성이 떨어지는 거죠. 반면 E컵에는 아무렇게나 넣어놓기만 해도 충전이 됩니다.


요즘은 패드형 무선 충전기를 설치한 자동차도 많은데, 아무래도 자동차가 움직이다 보면 충전효율이 떨어질 수 있습니다. 스마트폰도 따라서 움직일 수 있으니까요. 하지만 컵홀더에 E컵을 설치하면 스마트폰을 쏙 넣을 수 있습니다. 차가 흔들려도 문제 없이 충전할 수 있습니다. 컵 안에 스마트폰을 두 개 넣어도 동시에 충전할 수 있습니다.”


E컵에는 ‘자기공명’ 기술을 적용했다. '자기(磁氣)'는 쇠붙이를 끌어당기는 자석의 힘이다. 쇳가루는 아무 장치 없이도 자석으로 끌려가는데 이런 방식으로 E컵이 에너지를 배터리에 전달한다. 이때 충전기와 배터리의 자기장 주파수를 똑같이 맞추면 에너지 전달 효율성이 커진다. 

출처: ETRI 제공
ETRI에서 선보인 3차원 무선충전기 E컵(왼쪽), 자동차 컵홀더에 적용시킨 E컵. 연필꽂이 형태로 생긴 E컵은 책상 위에 둬도 잘 어울린다.

구글글라스·드론까지 무선충전 영역확대 가능

-이런 기술을 어디에 활용할 수 있습니까?


“휴대전화는 배터리를 넣기 참 좋게 생긴 제품입니다. 납작하고 손에 착 들어옵니다. 책상 위에 올려놓기도 편하고 유선 충전기를 꼽기도 좋습니다. 하지만 ‘구글 글라스’나 작은 ‘드론’ 같을 제품을 예로 들어보겠습니다. 이런 것들은 배터리를 분리하기도 쉽지 않고 모양도 각양각색입니다. 충전이 쉽지 않습니다.


그런데 통안에 넣는 것만으로도 충전을 할 수 있다면 편리하지 않겠습니까. 지금은 E컵 크기가 연필꽂이 수준이지만, 기술을 보완해 크기를 키운다면 다양한 형태로 기술을 적용할 수 있습니다.”


-가치는 어느 정도나 됩니까


“2016년 기준 전 세계 스마트폰 무선 충전기 시장을 2조 5000억원 정도로 보고 있습니다. 이 시장을 거의 삼성이나 LG가 꽉 잡고 있습니다. 애플이나 구글 같은 다양한 회사들이 가세하면 그 규모는 더 커질 것으로 봅니다. 올해 초 미국에서 열린 세계 가전전시회(CES)에 무선 충전 기술을 선보였을 때 도요타나 테슬라 같은 자동차 회사들도 ‘상용화하면 도입하고 싶다’고 하더군요.”


다만 이 기술을 상용화하기까지 넘어야 할 산이 있다. 효율성이 유선 충전 방식의 60%에 불과하다. 상용화하려면 충전 효율성을 70% 이상으로 높여야 한다. 충전기 크기를 키우는 것도 남은 과제 중 하나다. 민간기업에 기술을 이전하는 방안도 고려 중이다.


"원천기술을 저희가 개발했지만, 제품을 만들어 파는 상용화 단계까지 가기는 쉽지 않습니다. 좋은 기술이라고 꼭 인기있는 기술이라는 보장은 없습니다. 이 기술을 일상 생활에 적용할 수 있는 수준으로 만들 기업을 찾고 있습니다." 

출처: ETRI 제공
기술을 설명하는 조인귀 책임연구원(맨 오른쪽).

"어떤 실패라도 다른 기술의 밑거름 된다고 확신" 

조인귀 책임연구원은 1999년 ETRI에 들어왔다. 오전 9시 출근, 오후 6시 퇴근시간이 정해져 있지만, 퇴근 시간은 의미가 없다고 한다. “저희 일은 공정이 정해진 제조업 분야랑은 조금 성격이 다릅니다. 시간이라고 딱 퇴근하는 게 아닙니다. 생활에 뭐가 필요한지, 어떤 기술이 앞으로 더 가치가 있을지 고민해야 합니다. 그러다가 연구를 시작하면 밤낮을 가리지 않기도 합니다.”


보통 연구과제 하나를 끝내는데 3~5년이 걸린다고 했다. “입사한 뒤에 5~6개 정도 사업을 했습니다. 빛을 못 본 사업까지 합치면 더 많습니다.”

-연구에 실패하면 심정이 어떻습니까


“‘실패란 무엇인가’라는 물음을 먼저 던져야 할 것 같습니다. 기술을 상용화하는 게 성공이라고 본다면 아마 거의 대부분의 연구가 ‘실패’일겁니다. 하지만 저는 그 실패가 진짜 실패라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어떤 형태로든 이런 연구가 다른 기술을 발전시키는 밑거름이 된다고 믿습니다. 기술이전을 몇 건 했느냐, 특허를 냈느냐 못 냈느냐 하는 식으로 따지는 건 연구원들의 미래에 도움이 안 될 수 있습니다.”


그는 “실패를 자신이 성장하기 위한 디딤돌로 활용해야 한다"며 "쉽게 좌절하지 않고 끊임없이 연구하고 고민할 수 있는 사람이 연구원이 됐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그렇다면 ETRI 기술 개발자들이 받는 처우는 어느정도 수준일까. 이들은 기술개발에 대한 보상금을 따로 받는다. 기술료 수입의 50%가 해당 기술을 개발한 연구원들에게 돌아간다. 물론 기술 수준이나 가치에 따라 연구원이 받는 금액은 달라진다.


연봉보다 많은 돈을 기술료로 받는 사람도 있다. 2012년에는 한 팀장급 연구원이 11억 8500만원을 받기도 했다. 당시 ETRI는 830명의 직원에게 158억원의 상금을 지급했다. 2016년 기준 ETRI 1인당 정규직 평균 연봉은 9987만원이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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