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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해진 울린 ‘키 180㎝, 몸무게 100kg 넘는 건달 전문 무명배우’ 사연

막노동, 기름 배달, 수행원 등 20년간 생업 종사하다 늦깎이 배우된 금광산씨…불혹에 부르는 '거위의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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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이 40에 연기에 뛰어든 배우 금광산씨
엑스트라, 단역뿐이지만 "가장 행복한 나날"
미국 할리우드 영화 출연이 '꿈'

그를 보면 육중한 체구에 압도당한다. 6척(尺) 장신에 떡 하니 벌어진 어깨. 100㎏을 족히 넘어 보인다. 민머리에 수염으로 뒤덮인 얼굴은 우락부락하다. 절에 있는 ‘사천왕’이나 영화 속 ‘헐크’가 떠오른다. 

 

잔뜩 긴장한 채 그에게 다가가 조심스레 말을 건넸다. 자신의 체구에 비하면 너무도 아담한 톨(tall) 사이즈의 아이스 아메리카노를 홀짝이며 마시던 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안녕하세요”하며 벽돌같이 거칠고 투박한 손을 내밀어 악수를 청한다. 그리고 얼굴을 사정없이 구기며 환하게 웃는다. 힘이 아니라 미소에 무장해제 당했다. 


함박 웃음에 그의 눈가와 광대에는 깊은 주름이 패였고, 눈은 얼굴에 묻혀 사라졌다. 

단역 배우로 활동중인 금광산씨

출처jobsN

‘이 사람, 귀엽다….’


이 거구(巨軀)의 사나이는 올해로 배우 생활 3년차에 접어든 금광산(41)씨.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듯한 얼굴이다.


“기억 안 나시겠지만, 지난해 9월 개봉한 영화 ‘아수라’에서 극중 태병조 사장 수행원으로 3씬(scene) 정도 나왔고, tvN 드라마 ‘신분을 숨겨라’에서는 북한군 용병으로 짧게 몇 번 나왔어요. 대사는 없었고요, 하하.”

축구선수 출신의 늦깎이 배우 지망생 

금씨는 단역 배우다. ‘학생 1’, ‘사채업자 부하 1’처럼 극중 이름도 없는 역할을 맡는다. 금씨는 지난달 ‘백상예술대상’에서 단역 배우 32명과 함께 무대에 올라 가수 서영은의 ‘꿈을 꾼다’라는 노래를 불러 많은 이들에게 감동을 주기도 했다.  

함께 영화를 촬영한 배우 정우성(왼쪽)씨와 기념 촬영을 한 금광산씨.

출처금광산씨 제공

그는 서른아홉이던 2015년 배우가 되기 위해 고향인 경북 포항을 떠나 서울에 왔다. 지난 2년여간 금씨는 단역으로 영화와 드라마 20여편에 출연했다. 대부분 대사가 없는 ‘이미지 단역’이었다. 보조출연(엑스트라)한 것까지 합하면 출연작은 수십 개에 달한다. 주로 건달, 사채업자 부하, 레슬링 선수 등과 같이 폭력적이고 험악하거나 거친 역할을 맡았다.


“영화 ‘조선마술사’에서는 배우 곽도원씨 부하 역할을 맡고 표정에 엄청 신경 썼는데, 영화에는 무릎 아래만 나오더라고요. 그 씬을 찍으려고 낮 12시 현장에 도착해 다음날 아침7시까지 촬영했어요.”


금씨는 연기를 전공하지 않았다. 1995년 고등학교 졸업 후, 20년간 생업에 종사했다. 공사판 막노동부터 기름 배달, 바닥과 외벽에 대리석 까는 일, 가게 내부 철거, 해수욕장 보트·파라솔 대여, 수행원 등 온갖 일을 했다. 

젊은 시절의 금광산씨

출처금광산씨 제공

그는 원래 축구선수였다. 포항오천초등학교 3학년때 처음 축구화를 신었다. 방과 후 연습이 끝나면 빵과 우유를 마음껏 먹을 수 있다는 이유로 시작한 운동이었다.


포항대도중, 대구공고에서도 축구부 주전으로 활약했다. 주 포지션은 중앙 수비수였다. 그밖에 측면 수비수, 수비형 미드필더 등 수비 포지션을 폭넓게 맡았다. 선수들 중에서도 돋보일 만큼 체격이 좋다 보니 자연스럽게 맡은 역할이었다.


축구로 먹고 살 줄 알았던 금씨는 고3때 전국대회에 출전했다가 부상을 당하며 선수 생활을 접었다. 오른쪽 무릎이 크게 돌아가면서 연골 수술을 받았다. 이후 닥치는대로 먹고 살기 위해 일했다. 공부를 해본 적도 없고, 배운 기술도 없었다. 몸으로 때우는 일들을 주로 했다. 그럭저럭 먹고 살만 했다. 

금광산씨가 촬영 현장에서 말 타는 연기를 하는 모습(왼쪽). 함께 촬영한 배우 김옥빈씨(오른쪽)와 함께했다. (오른쪽) 지난 5월 열린 백상예술대상에서 금광산씨 등 단역배우 33명이 모여 축하공연을 했다. 이 모습을 보고 배우 유해진씨 등이 눈물을 보여 화제가 됐다.

출처금광산씨 제공

3년 전 만난 아내의 격려 덕에 생업 접고, 배우의 길로 

금씨가 늦깎이 배우지망생이 된 건 아내 김민희(37)씨의 영향이 컸다. 금씨는 학창시절부터 미국 할리우드의 ‘근육질 스타’ 아놀드 슈왈제네거와 실베스터 스탤론을 동경해왔다.


금씨는 “축구를 그만둔 후에는 미국으로 건너가 건장한 몸을 무기로 근육질 영화배우나 모델이 되는 것을 잠시 꿈꾸기도 했다”고 말했다. 하지만 당장 먹고 사는 것이 급했기 때문에 꿈은 그냥 꿈으로 버려뒀다. 금씨는 고등학교 졸업 후, 형편이 넉넉하지 않았던 집을 나와 혼자 살았다.


생업 전선에 뛰어든 후로 시간은 쏜살같이 흘렀다. 2014년 아내 김씨를 만난 것은 금씨 인생의 전환점이었다. 금씨는 가끔 일 때문에 서울에 올라왔는데, 아내는 두어 번 들려서 와인을 샀던 가게의 종업원이었다. 두 사람은 몇 차례 대화를 나누며 금세 가까워졌고 연애를 시작했다. 

함께 촬영한 배우들과 찍은 기념사진들. 왼쪽 사진은 배우 황정민씨, 오른쪽 사진에서는 배우 마동석씨가 보인다.

출처금광산씨 제공

2015년 금씨가 서울에 올라오며 두 사람은 살림을 합쳤고, 혼인신고를 했다. 금씨는 20대 초반 결혼했다가 2년 만에 이혼했는데, 그때 얻은 고등학생 아들이 있었다. 하지만 금씨의 과거는 두 사람의 사랑에 아무런 장애물이 되지 않았다.


아내는 금씨가 배우의 꿈을 오랫동안 간직해왔다는 말을 듣고, “뭘 망설이느냐, 나이 더 먹으면 시도조차 못할 수 있으니 지금이라도 도전해보라”며 금씨를 지지해줬다. 직장인인 아내는 “부부 중 누가 돈을 더 많이 버는지는 중요하지 않다”며 금씨를 격려했다. 금씨는 아내 말에 큰 힘을 얻고, 하던 일을 정리하고 본격적으로 연기에 도전해 보기로 했다.


금씨는 보조출연(엑스트라)으로 연기에 발을 들였다. 한 달 평균 3~4회 자리가 났고, 최저시급을 받았다. 한 번 촬영장에 가면 30분을 하든 10시간을 하든 4만8000원 정도를 받았다. 차 기름값을 빼면 일을 나가는 게 마이너스였지만, 일을 배운다는 생각으로 2~3개월 정도를 열심히 나갔다.


보조출연으로 촬영장 분위기를 익힌 금씨는 이후 적극적으로 배역을 잡기 위해 문을 두드렸다. 경력 사항과 이미지를 넣은 개인 프로필을 만들어서 영화사나 드라마 제작사 수십 곳에 돌렸다. 처음 한 달여간 돌린 프로필이 400부였다.


금씨는 “아무런 인맥도 없고, 가진 돈도 없고, 그야말로 ‘맨 땅에 헤딩’하는 심정으로 나를 알리기 위해 무작정 프로필을 들이밀었다”고 말했다. 

영화와 드라마에 출연한 금광산씨의 모습

출처금광산씨 제공

노력 끝에 금씨에게도 조금씩 섭외 요청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처음에는 주로 대사 없는 ‘이미지 단역’이 많았다. 금씨의 건장한 체격과 우락부락한 모습이 필요한 배역들이었다.


금씨는 “원래 이미지 단역은 회당 15만~20만원 정도 받는데, 나처럼 머리가 없는 사람은 ‘삭발비’라고 해서 돈을 30만~40만원씩 주기 때문에 벌이가 그나마 좀 나았다”고 말했다.


이미지 단역을 하면서 오디션을 통해 대사나 동작이 조금씩 있는 배역을 따내기 시작했다. 한 달 평균 10~20일 정도 촬영장에 나가면서 금씨가 지난해 번 돈은 3000만원 정도. 교통비 등을 빼면 얼마 남지 않았지만, 금씨는 “인생에서 가장 행복한 순간”이라고 말했다. 금씨는 지난해 말부터 일주일에 한 번씩 연기 레슨을 받고 있다.


“아직까지는 강렬한 인상 때문에 비교적 쉽게 단역을 맡고 있지만, 연기적으로 성장 정체 상태라고 생각합니다. 실력을 키우기 위해 작년 1월부터는 엑스트라는 안하고 있어요. 올해부터는 대사가 없는 역할은 자제하면서 내공을 키우는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금씨는 최근 8월에 크랭크인 하는 영화 '안시성'에 돌궐족 대장으로 캐스팅됐다. 지금까지 맡은 역할 중 비중이 가장 크다. 금씨는 연기를 시작한 후 "영화 '아수라'의 김성수 감독님, 드라마 '38 사기동대'의 한동화 감독님, 마동석 선배와 박성웅 선배에게 특히 많은 신세를 졌다"고 했다.  

촬영장에서의 금광산씨. 오른쪽 사진에서 함께 있는 사람은 배우 이선균씨와 안재홍씨.

출처금광산씨 제공

"유명인보다는 좋은 조연되고파…5년 내 美 할리우드 영화 출연 목표"

금씨의 최종 목표는 연기 잘하는 ‘좋은 배우’가 돼서 나이 들어서도 꾸준히 촬영장에 나가는 것이다. 어린 시절 동경했던 미국 할리우드에 진출해 ‘근육질의 동양인 액션 배우’가 돼 보고 싶다는 목표도 있다.


금씨는 언젠가 이뤄질지 모르는 꿈을 위해 미드(미국 드라마)를 보면서 틈틈이 영어 공부를 하고 있다. “2년 정도 후에는 맡은 역할에서 대사가 조금씩 늘어날 테고, 그러면 영상 포트폴리오를 만들어서 할리우드 영화사들에 프로필을 보낼 겁니다."


금씨의 카카오톡 프로필은 미국 LA의 할리우드 지역을 내려다보는 언덕에 세워진 간판인 ‘할리우드 사인’이 배경으로 돼 있다. 

배우 금광산씨

출처jobsN

“사실 주연은 생각도 못해요. 원하지도 않고요. 단역을 넘어서 조연으로 캐스팅 되고, 나이 들어서도 촬영장에서 꾸준히 찾는 배우가 되고 싶어요. 유명해지고 싶다기보다는 좋은 배우가 되고 싶다고 생각합니다. 살면서 수없이 많은 일을 해왔지만, 이 일만큼 재미있게 열정적으로 해본 게 없어요.


요즘 제 스트레스는 ‘연기’ 하나 뿐입니다. ‘어떻게 하면 연기를 더 잘 할 수 있을까’하는 고민이 머릿속에 가득해요. 그런데 그 고민이 머리가 아프고 힘든게 아니라 재미있고 설렌다는 게 신기합니다. 5년 안에 단역이라도 할리우드 영화에 출연하고 싶어요. 근육질의 액션 배우를 동양인이라고 해서 못할 이유는 없잖아요?”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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