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년에 한 번 워런 버핏을 만날 기회를 파는 한국인
가치가 있는 콘텐츠에
기꺼이 돈을 내더라
콘텐츠·미디어 스타트업 퍼블리
업계 전문가 시각 담긴 온라인 콘텐츠 선봬
누적 판매금액 3억5000만‥좋은 영향 주고파
2016년 4월 펀드매니저 이기원(33)씨는 미국 네브래스카주(州) 오마하에 갔다. 세계적 투자회사 버크셔 해서웨이(이하 버크셔) 주주총회 참석이 목적이었다. 주총에는 버크셔의 CEO이자 '오마하의 현인'이라 불리는 워런버핏도 참석한다.
버핏이 운영하는 버크셔 해서웨이는 수십년간 세계 최고 수준의 투자 수익률을 기록하고 있다. 버핏은 기업 가치보다 주가가 낮을 때 주식을 사 장기보유한다는 이른바 가치투자를 한다. 저평가 상태인 주식을 사 오를 때까지 기다리는 것이다. 이 원칙을 지켜 투자한 결과는 대성공이었다. 버핏은 세계 1~2위를 다투는 부자다.
주총에 들어가려면 버크셔 주주여야 한다. 버크셔 주식을 1주만 갖고 있어도 주총 입장권 4장을 준다. 하지만 이씨는 주주가 아니었다. 그는 콘텐츠·미디어 스타트업 퍼블리(PUBLY)에서 입장권을 구입했다. 퍼블리는 경영·경제·테크·시사·문화 등 다양한 분야의 콘텐츠를 기획·판매하는 플랫폼이다.
이씨는 퍼블리에서 주총 입장권을 샀지만 왜 이 회사가 입장권을 파는지는 몰랐다. 그래도 워런 버핏을 꼭 보고 싶었던 그는 일단 입장권을 샀다.
콘텐츠를 파는 플랫폼에서 왜 주주총회 입장권을 팔았을까? 버크셔 주주였던 황준호씨가 자신의 몫으로 나온 입장권 3장을 내놨기 때문이다. 황씨는 주총에서 나온 이야기를 콘텐츠로 만들어 퍼블리에서 판매하기로 계약한 상황이었다. 함께 주총에 갈 사람도 퍼블리에서 구한 것이다. 그가 내놓은 입장권 가격은 장당 33만원. 나머지 항공권·숙박료도 구매자가 부담하는 조건이었다. 높은 가격이었지만 3시간만에 3장이 다 팔렸다.
주총이 끝난 후 주주 황씨가 쓴 온라인 콘텐츠 '2016 버크셔 해서웨이 - 워런 버핏을 만나다'는 140명이 샀다. 구입시기 등에 따라 다르지만 한 명당 콘텐츠 평균 가격은 6만원으로 높은 편이었다.
이씨는 올해 버크셔 주총도 봤다. 대신 장소는 미국이 아닌 한국이었다. 야후에서 버크셔 주총을 생중계한 덕분이다. 이씨와 황씨는 최근 2017년 버크셔 주총에 관한 콘텐츠(보러가기)를 만들었다. 기획과 판매는 퍼블리가 맡았다.
이 프로젝트를 기획한 퍼블리는 2015년 박소령(36)씨가 창업했다. 퍼블리에서 프로젝트를 기획해 올리면, 콘텐츠가 만들어지기 전에 일정기간 동안 구매 예약을 받는다. 목표 금액을 넘기면 콘텐츠가 생산된다. 이후에는 기간 상관없이 자유롭게 구입할 수 있다. 대신 시기별로 가격 차이를 뒀다.
만 2년 동안 약 40개 프로젝트를 올렸다. 목표 금액을 달성하지 못한 경우는 단 한 번. 콘텐츠 누적 판매금액은 3억5000만원이다. 직원은 박씨와 김안나 CCO(최고 콘텐츠 책임자) 두 명으로 시작해 현재 기획자·엔지니어 등 13명으로 늘었다.
유료 콘텐츠 시장은 크고 역사가 긴 회사도 성공하기 어렵다. 스타트업이 유료 콘텐츠 시장에 도전한 이유는 무엇일까?
창업 당시 박씨는 '가방끈 긴 백수'였다. 서울대 경영학과를 나와 맥킨지와 T-Plus에서 5년간 컨설턴트로 일했다. 회사를 관두고 대출받아 하버드대에서 유학했다. "똑똑한 사람들과 함께 공부하다보니 좌절할 때가 많았죠. 단지 영어가 서툴다는 것 외에도 '내가 많이 부족하다'라는 걸 깨닫게 됐습니다. 오히려 겸손을 배우는 좋은 기회가 됐습니다."
그는 '좋은 콘텐츠'를 생산·유통하고 싶어 미디어 전략가를 꿈꿨다. 대학 시절 읽은 책 '렉서스와 올리브나무'에 나오는 '세계를 설명해야 할 저널리스트와 세계를 만들어가야 할 전략가는 급변하는 시대에 가장 중요한 직업이다'라는 구절 때문이었다.
"유학을 다녀와 국내 언론사 수십군데에 문의했습니다. 제가 하고 싶은 미디어경영이나 전략 분야에서는 채용을 안하더군요. 취업이 어렵다면 직접 만들기로 했습니다."
'얼떨결에' 창업했지만 퍼블리의 포부는 명확했다. '우리 시대 지적 자본이 될 수 있는 유료 콘텐츠 시장을 만듭니다.' 사람과 사회에 좋은 영향을 줄 수 있는 콘텐츠를 만들기로 했다.
창업 초반에는 타깃과 콘텐츠 주제의 방향을 잡는데 주력했다. 콘텐츠는 각 분야 전문가에게 맡기기로 했다. 깊이있는 정보를 전달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대신 콘텐츠 판매 수익을 저자와 나누기로 했다.
여기에는 자신의 경험이 밑바탕이 됐다. 그는 어릴 때부터 책, 만화, 신문·잡지 등 콘텐츠를 좋아했다. 인터넷이 자유로워지면서 외국어로 된 자료를 접하게 됐다. 2000년대 중반 트위터 등 소셜미디어(SNS)를 하면서 인생이 바뀌었다. "다양한 정치 스펙트럼, 소수자 문화에 대해서 알게 됐어요. 이전에는 콘텐츠를 좋아했지만 관심이 경제·경영 분야에 많이 치우쳐있었던 거예요. 다양한 시각과 지식을 경험했습니다."
퍼블리가 만들려는 콘텐츠는 ① 세상에 없던, 최소한 한국어로는 없었던 기획 ② 글쓴이는 특정 주제에 대해 깊이 고민한 전문가 ③ 단순 정보 전달이 아닌 저자의 주관이 강한 내용이다.
"예를 들어 '버크셔 해서웨이 주주총회'라는 말은 유명합니다. 하지만 이 행사에서 실제 어떤 이야기가 오가는지, 무엇을 배울 지를 금융 전문가의 시각에서 정리한 콘텐츠는 거의 없었습니다. 행사 기사나 간단한 후기가 아니라 업계 전문가가 깊이있게 풀어내는 콘텐츠가 필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퍼블리가 다루는 주제는 다양하다. 세계 최대 가전제품 박람회인 CES에 참가해 스마트카만 파고든 콘텐츠, 한국 조선업 40년 역사를 다룬 보고서…. 퍼블리에서 기획해 저자를 찾기도 하고,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먼저 아이디어를 제안하기도 한다. 공통점은 각 분야 전문가가 '기사보다는 깊지만 전문 서적보다는 가벼운 내용'을 다룬다는 것이다.
가격 전략도 독특하다. 우선 구입 시기에 따라 금액이 다르다. 예를 들어 콘텐츠가 나오기 전 미리 구입하면 1만9000원, 여기에 저자와의 만남 행사를 포함하면 8만9000원으로 올라가는 방식이다.
"다양한 시도를 해보고 있습니다. 최근 나오는 콘텐츠는 종이책 가격과 비슷하게 1만원대로 팔고 있어요. 콘텐츠를 매달 정액제로 볼 수 있는 모델도 준비중입니다. 독자들이 콘텐츠에 기꺼이 돈을 낼 수 있는 접점을 찾고 있습니다."
한 가지 생산품이 다양하게 변화하는 원소스 멀티유즈 전략도 폈다. 지난해 버크셔 해서웨이 주총은 디지털 콘텐츠만 사는 경우(3만9500~4만4000원), 콘텐츠에 저자와 오프라인 행사를 포함하는 경우(7만7000원), 여기에 주총에서 사온 기념품을 구매하는 경우(11만원) 등 3가지 상품을 내놨다.
퍼블리의 올해 목표는 두 가지이다. 첫째는 글을 쓰고 싶은 사람이 먼저 퍼블리에 제안하는 프로젝트 기획을 늘리는 것이다. 나머지는 퍼블리가 외부 기관이나 기업에 협업을 제안해 매력적인 유료 콘텐츠를 기획하는 것이다.
"아직 생존을 위해 노력하는 중이지만 콘텐츠가 좋으면 사람들이 기꺼이 돈을 낸다는 걸 확인했습니다. 출판사·연구소·언론사 등 다양한 기관에서 좋은 아이디어가 있어도 상업화하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앞으로 좋은 콘텐츠를 사람들에게 알려 세상을 바꾸는데 일조하고 싶어요."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잡스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