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대통령 낡은 구두' 만든 회사 왜 3년만에 망했을까?

조회수 2020. 9. 18. 11: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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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 기업 좋은 목표'만' 갖고 시작해선 안돼
문재인 대통령 신은 구두 브랜드 '아지오'
청각장애인 자립 위한 사회적 기업
냉정한 시장분석, 기술력 등 뒷받침 돼야

지난 5월 문재인 대통령이 5년째 신는 구두가 세상의 주목을 받았다. 브랜드는 '아지오'. 이탈리아어로 '편하다'라는 의미다. 청각장애인을 고용한 사회적 기업 '구두를만드는풍경'에서 만든 신발이었다.


생소한 브랜드인 "아지오 신발을 사고 싶다"는 사람이 많았지만, 구두 회사는 이미 2013년 폐업한 상태였다.


'구두가있는풍경'은 2010년 당시 경기도 파주복지관장이던 유석영(56)씨가 만든 회사다. '눈썰미와 손재주가 좋은 청각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마련해주자'는 게 설립 목적이었다. 설립 취지에 공감한 유시민 작가, 성우 배한성씨 등이 모델료로 '구두 한 켤레'를 받고 광고 모델로 나섰다. '아지오'는 대형 인터넷 쇼핑몰에까지 진출하는 등 주목을 받았다.


좋은 설립 취지와 유명 인사들의 지원 사격 속에서도 회사가 3년 만에 문 닫은 이유는 뭘까. 현재 경기도장애인판매시설 원장직을 맡고 있는 유석영씨는 "단지 뜻이 좋다고 해서 사업에 뛰어들면 실패할 수 밖에 없다"며 사회적 기업을 이끌던 당시의 애로 사항을 털어놨다. 사회적 기업도 기업이다. 어떤 기업도 이익을 내지 못하면 연명 할 수 없다. 그의 실패기는 아무리 목적이 좋아도 그것만으론 생존하고 나아가 번영할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 준다.

출처: 본인 제공, YTN 캡처
유석영 경기도장애인판매시설 원장. 2009년 청각장애인을 모아 '구두를만드는풍경'이라는 회사를 설립해 수제화 브랜드 '아지오'를 만들었다. 당시 유시민, 배한성 등 유명 인사가 구두모델을 해줬지만 3년 만에 문을 닫았다.

1. 감성만 갖고 접근하면 안된다.

유석영 원장이 사회적 기업을 세운 이유는 단순했다. '청각장애인에게 안정적인 일자리를 주자'. 어린 시절 시력을 잃은 그는 장애인을 위한 라디오 방송 리포터 등으로 활약하고 있었다. 그는 경기도 파주시복지관장을 맡게 되면서 다양한 사연의 장애인을 만났다. 그들의 가장 큰 고민은 취업이었다.


청각장애인의 경우, 구두 공장에서 일하는 경우가 많았다. 그런데 인건비 상승 등의 부담으로 1980년대 공장들이 해외로 대거 이전하면서 상당수 청각장애인들이 일자리를 잃었다.


유 원장은 실직한 청각장애인들을 돕고 싶었다. 그들이 잘 적응할 수 있는 구두 회사를 만들기로 했다. 청각장애를 가진 직원 6명과 함께 일을 시작했다. 구두 관련 경험이나 지식은 전혀 없었다. 처음 해보는 일이었지만 어떻게든 꾸려나갈 수 있으리라 생각했다.


"구두 공정은 20가지가 넘습니다. 복잡하고 일도 고됩니다. 생산·투자·마케팅 등의 계획 없이 시작했습니다. 일이 중복되거나 빠져 시간이 많이 걸리는 등 낭비 요소가 많았습니다. 좋은 마음으로 시작했지만 주먹구구식이었던 게 실책이었죠."


그는 사회적 기업이라도 냉정한 현실감각을 갖춰야한다는 걸 깨달았다. 물건을 지속적으로 팔려면 품질을 높이고 시장에서 신뢰를 쌓아야 했다. "아무리 사회적기업이라도 소비자들에게 '뜻이 좋은 기업이니 부족한 부분은 양해해달라'고 요구하는 걸로는 살아남기 힘들다"고 말했다.

출처: 인터넷 캡처
문재인 대통령 취임 후 소셜미디어(SNS)에서 화제가 됐던 구두

2. 기본 자금과 투자처를 확보하라.

자본금은 1억원 남짓이었다. 유 원장이 사비를 털고 한국장애인개발원 지원사업에 응모해 1억1000만원 가량을 받았다. 구두 공장을 운영하려면 넓은 부지가 필요했다. 경기도 파주시에 265㎡(약 80평)짜리 조립식 공장을 얻었다. 월세는 80만원이었다. 나머지 자본금은 구두를 만드는 기계와 장비를 사는데 썼다.

초반 연매출이 1억원 밖에 안돼 여윳돈이 없었다. 투자 받는 것도 쉽지 않았다. 금융회사는 이윤이 많이 남지 않는 일에 선뜻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 당시 그는 파주시복지관장을 겸했던 터라 복지관과 중복으로 지원 받을 수 없었다. 개인 투자자를 찾기도 어려웠다. 사정이 어려워질 때마다 지인에게 급전을 빌리는 식으로 해결했다. 

출처: 구두를만드는풍경 페이스북 페이지
2012년 구두를만드는풍경 직원들이 구두를 만들고 있다.

3. 핵심 기술은 갖고 시작하라


구두 제작 기술을 배워야 했다. 청각장애 직원 6명 중 구두 관련 일을 해본 사람은 한 명뿐이었다. 그마저도 제작이 아닌 수선 업무였다. 인맥을 총 동원해 구두 기술자를 구했다. 최대한 줄 수 있는 월급은 200만원이었다. 구두 기술자는 보통 300만~400만원을 줘야했다. 10여번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며 함께 일하자고 설득했다.


월급 줄 형편이 안돼 디자이너는 뽑지 못했다. 기존 신발 디자인을 구해 성별·연령대에 맞춰 변형하는 수준으로 제품 생산을 시작했다. 초기에 만든 남성용 5개, 여성용 1개 디자인 외에는 새로 만들기 어려웠다. 


집중력이 좋은 청각장애인들은 기술 교육을 잘 따라왔다. 제품을 출시하기 전 몇 개월간 집중적으로 훈련해 어느 정도 기술을 갖췄다. 하지만 청각장애인과 생활해보지 않은 기술자들은 소통이 쉽지 않았다. 적은 급여 뿐 아니라 의사 소통이 어려워 그만둔 기술자도 있었다.


그는 "소비자들이 돈 내고 살만한 물건을 만들려면 디자인, 제작 기술, 훈련 삼박자가 잘 맞아야 한다"라며 "무작정 시작하지 말고 체계를 잡기까지 잘 견딜 수 있는 체력을 키워야 한다"라고 말했다. 

구두를만드는풍경에서 제작한 구두 브랜드 '아지오' 홍보 포스터. 유시민 작가, 방송인 서유석, 성우 배한성씨 등이 모델로 나섰다.

4. 가장 적합한 판매 플랫폼을 찾아라

첫 주문 수량은 수녀들이 신을 구두 300켤레였다. '가볍고, 미끄럽지 않고, 튼튼한' 제품을 만들어달라고 했다. 3개월을 꼬박 매달렸다. 몇 번을 고친 끝에 납품에 성공했다. 구두 가격은 16만원대였다. 수제화치고 저렴했지만 이름 없는 브랜드라 선뜻 사려는 사람이 없었다.

평소 친분이 있던 유시민 작가, 성우 배한성씨 등에게 모델 출연을 요청했다. 모델료는 구두 한 켤레였다. 따로 매장을 낼 수 없어 유 원장이 주변 지인들에게 도움을 청했다. 영업사원을 뽑을 여력이 안돼 혼자 판로 개척에 나섰다. 경기도청, 국회, 서울역 등 정부 기관과 일반 기업을 찾아가 단기 판매행사를 했다. 2012년 국회 행사 때 당시 국회의원이던 문재인 대통령이 구두를 사갔다.

하지만 지속적으로 물건을 팔기 어려웠다. 행사 규모에 따라 몇 백켤레를 팔 때도 있었지만 직원 월급을 주고 나면 빠듯했다. 구두가 화제가 되면서 대기업이 운영하는 인터넷 쇼핑몰에 입점할 기회를 얻었다. 예상만큼 매출이 늘지 않았다.

"인터넷 쇼핑몰은 제품 가짓수가 많아야 합니다. '구두'를 검색했을 때 브랜드가 많이 노출돼야 판매량도 늘거든요. 이익을 내려면 디자인 패턴이 100개 정도는 있어야 했어요. 저희는 그럴 여력이 안됐습니다. 인터넷 쇼핑몰 안에서 존재감이 없었던 거예요."

발에 꼭 맞는 수제화를 선호하는 소비자를 찾지 못한 게 실책이었다. 그는 규모와 자본금이 적은 기업일수록 물건을 어디서, 어떻게 팔 지 전략을 잘 세워야 한다고 조언했다. 

출처: 구두를만드는풍경
2012년 국회에서 홍보 행사를 할 때 당시 국회의원이었던 문재인 대통령이 방문해 구두를 샀다.

5. 소비자의 인식도 변화시켜야 한다.

기술 개발로 품질을 높인다고 끝이 아니었다. 소비자와 업계가 '믿을 수 있는 제품'이라고 생각하게 해야했다. 유 원장은 "사회적 기업 경영자 뿐 아니라 사회적 분위기도 바뀌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구두를 팔러 식당에 갔다가 "1000원 줄테니 그냥 가라"라는 말을 들었다. 구걸하러 왔다고 생각한 것이다.

최근 '대통령 구두'로 주목 받으면서 유 원장에게 "다시 한 번 해보자"라는 사람들이 생겼다. "구두를 살 수 없냐"는 전화도 셀 수 없이 받았다. "그동안 '장애인은 생산적인 일을 할 수 없다'라는 편견이 가장 서러웠습니다. 또 장애인이 만든 물건은 품질이 낮을 거라는 생각도 바꾸기 어려웠어요. 사회가 변했으니 다시 시작할 수 있다는 희망도 생깁니다. "

사회적 기업 A to Z

사회적 기업은 영리를 추구하는 일반 기업과 달리, 취약 계층을 위한 일자리나 사회서비스 제공 등 사회적 목적을 실현하면서 이윤을 내는 기업이다. 2017년 현재 국내 사회적기업은 1741개다. 고용노동부에서 인증한다.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으려면 재무제표, 근로자가 취약계층임을 증명하는 서류 등을 준비해야 한다. 자세한 인증 절차는 한국사회적진흥원 홈페이지(www.socialenterprise.or.kr/index.do)에서 볼 수 있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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