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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독] 10년만에 파경 첫 고백 영턱스클럽 임성은 "일에서 삶의 보람 찾아"

조회수 2020. 9. 18. 11: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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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라카이와 사랑에 빠진 '스파 사장님' "내 인생, 파도처럼 바람처럼"

‘정(情)’이라는 노래로 1990년대 국내 가요계를 점령했던 영턱스클럽.


영턱스클럽의 리드보컬이던 임성은씨는 1997년 솔로 가수로 데뷔해 2003년까지 5장의 앨범을 내며 왕성하게 활동했다. ‘미련’, ‘짝사랑’, ‘용서’, ‘셋미프리(set me free)’ 등이 히트곡.


톱스타 반열에 올랐던 임씨는 2004년 이후 연예계 활동을 접고, 2006년 결혼 후 필리핀의 휴양지 '보라카이(Boracay)’ 섬으로 이민을 떠나 주변을 놀라게 했다. 당시 남편은 보라카이에서 다이빙 강사로 일하던 사람이었다. 현재 임씨는 보라카이의 대형 스파(spa)를 운영하는 성공한 사업가로 변신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다.


잡앤(JOB&)이 현지에 있는 임씨와 전화로 보라카이에 정착한 계기와 사업을 하면서 겪은 일들에 대해 물었다.  

출처: 임성은씨 제공, KBS캡처
임성은씨의 과거 연예계 활동 모습

’힐링’위해 떠난 여행지에 꽂히다

임씨가 보라카이를 처음 알게 된 건 2004년 봄이다. 10년 넘게 정신 없이 달려온 연예계 활동을 잠시 접고, 쉬던 때였다. 당시 친하게 지내던 동생들(탤런트 이혜근씨, 개그우먼 라윤경씨)이 “’보라카이’라는 지상 낙원이 있다는데 머리나 식히고 오자”고 해서 9박10일 일정으로 여행을 떠났다.


지금이야 ‘보라카이’가 유명 휴양지가 됐지만, 당시만해도 한국 관광객들 사이에는 많이 알려지지 않은 곳이었다. 임씨는 “친한 사람들끼리 떠난 생애 첫 여행다운 여행이었다”고 말했다.


보라카이에서 보낸 열흘은 임씨에게 ‘꿈 같은 시간’이었다. 임씨는 “보라카이는 날씨가 너무 좋고, 사람들은 여유가 넘치고, 자유롭고 편한 느낌의 휴양지였다”며 “떠나는 날 쉽게 발이 떨어지지 않았다”고 말했다. 

출처: mbc방송화면 캡처
필리핀 보라카이섬에 정착해 제2의 삶을 살고 있는 임성은씨

임씨의 ‘보라카이 앓이’는 한국에서도 이어졌다. 결국 임씨는 그해 12월 다시 보라카이로 떠났다. 6개월 과정의 ‘스킨스쿠버’ 교육을 받기 위해서였다.


한국에서 톱스타로 살던 딸이 혼자서 동남아의 작은 휴양지에 장기간 머문다고 하자 부모님은 강력히 반대했다. 하지만 딸의 진심 어린 설득에 결국 두 손을 들었다.


임씨는 6개월간 보라카이의 스킨스쿠버 학교를 다녔다. 세계 각국에서 온 학생들과 기숙사 생활을 했다. 빡빡한 일정의 연예계 활동만 하느라 세상 물정 몰랐던 임씨에게는 특별한 경험이었다. 임씨는 학교 생활을 하며 보라카이의 매력에 빠져들었고, 결국 정착했다.


“보라카이로 떠나겠다고 말씀드렸을 때 부모님 반대가 심했어요. 딸을 곁에 두고 자주 보고 싶어하셨는데, 떨어져 사는 것을 많이 서운해하셨어요. 동남아가 살기에 위험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하시기도 했고요.” 

출처: 임성은씨 제공
스파에서 고객들과 기념 촬영을 하고 있는 임성은씨

사업 초기 난관 극복하고 보라카이 ‘최고 스파’로 거듭나

임씨는 현재 보라카이에서 가장 큰 스파를 운영하고 있다. 2008년 10월 문을 연 스파는 11동(棟)의 단층 건물로 이뤄져 있고, 동마다 개인 풀장이 있다. 직원은 80명이 넘는다.


성수기에는 하루 100명 넘는 손님이 찾아온다. 중국·대만 손님이 한국 손님보다 많다. 러시아와 일본, 중동 관광객도 주요 고객들이다.


스파가 큰 인기를 끌다 보니 중화권 기업을 중심으로 프랜차이즈 지점을 내자고 제안하는 곳도 많다. 스파의 운영 시스템과 브랜드를 그대로 가져오고 싶다는 것이다. 

출처: 임성은씨 제공
임성은씨가 보라카이에서 운영하는 스파 내부

임씨는 “장기적으로는 프랜차이즈화 시키고 싶은 마음이 있지만, 지금 당장은 지점의 세부적인 서비스까지 제가 직접 체크하기에는 역부족일 것 같아서 거절했다”고 말했다.


임씨의 사업이 처음부터 순탄했던 것은 아니다. 초기 3~4개월 정도는 직원들 월급 챙겨주기도 어려웠다. 임씨는 지인들과 부모님에게 돈을 빌리면서 이 시기를 버텼다. 임씨는 “급여일이 숨막힐 정도로 빨리 다가왔다”며 “어떻게든 적자 나는 것을 막기 위해 매일 밤 잠을 설치며 머리를 쥐어짰다”고 말했다.


임씨는 스파를 알리기 위해 적극적으로 영업에 나섰다. 보라카이와 필리핀 수도 마닐라 등에 있는 각국 여행사들을 찾아 스파를 소개했다. 블로그 등을 통한 온라인 홍보에도 공을 들였다. 

출처: 임성은씨 제공
임성은씨가 운영하는 스파에서 직원들이 근무하는 모습

마사지사 수준을 높이기 위해 전문 자격증이 있는 현지인을 채용한 후에도 스파에서 따로 3개월 가량의 교육을 했다. 교육이 끝나면 임씨가 직접 마사지를 받아보고, 합격한 사람만 실전에 투입했다. 고객들 대상 마사지 만족도 조사를 해서 평가가 좋은 직원에게는 두둑이 보너스를 줬다. 스파 운영에 체계가 잡히면서 매출이 늘기 시작했다.


임씨는 “오픈 후 6개월이 지나면서부터 적자에서 벗어나기 시작해 1년쯤 지나자 어느 정도 자리를 잡았다”고 말했다.


임씨는 요즘도 수시로 해외나 필리핀 내 다른 지역 스파를 방문해 ‘벤치마킹’을 한다. 임씨는 “보라카이에는 셀 수 없이 많은 스파와 마사지숍이 있어서 긴장을 늦출 수 없다”고 말했다. 

"지난해 이혼의 아픔…보라카이에서 매 순간이 행복해” 

지난 2015년 임씨는 19년 만에 한국에서 영턱스클럽 전 멤버들이 뭉쳐서 전국 투어 공연을 했다. 방송 출연도 여러 번 했다. 한 달에 5~6회씩 한국과 필리핀을 부지런히 오갔다. 임씨를 기억하는 국내 팬들의 반응은 폭발적이었다. 전국 공연을 갈 때마다 수천명의 구름 관중이 몰렸다. 

출처: mbc방송화면 캡처
임성은씨는 2015~2016년 필리핀과 한국을 오가며 영턱스클럽으로 국내에서 공연과 방송활동을 했다.

임씨는 “20년 가까운 시간이 흘렀는데도 내 몸이 당시 안무를 기억하고 있는 게 신기했고 즐거웠다”고 한다. “하지만 보라카이에서의 삶이 있기 때문에 활동을 계속 이어나가기에는 어려움이 많았다”는 설명이다.


임씨는 올해로 보라카이에 정착한 지 12년째다. 임씨는 현지 한국인 외국인 친구들을 집에 자주 초대한다. 주로 한국 음식을 만들어 대접한다. 임씨가 만든 음식 중 가장 인기있는 메뉴는 감자탕이라고 한다. 여가 시간에는 주로 스쿠버 다이빙이나 요가를 하며 보낸다. 한국에는 2개월에 한 번 꼴로 방문해 가족과 친구들을 만난다.


임씨는 지난해 5월 이혼의 아픔을 겪기도 했다. 결혼생활 10년 만에 서로의 행복을 위해 어려운 결정을 내렸다. 임씨에게 자녀는 없다. 임씨는 “지난 몇 년간 서로에게 소홀해진 것 같다는 생각을 많이 했고, 삶에 대한 가치관 차이를 실감하면서 갈라서기로 했다”며 “서로가 행복해지는 길은 각자의 삶으로 다시 돌아가는 것 뿐이라고 생각해 어렵게 용기를 냈다”고 말했다. 

출처: 임성은씨 제공
스파 사무실에서 업무를 보고 있는 임성은씨

“한국에서 연예계 활동을 할 때는 너무 치열하게 살았어요. 즐기면서 한 일이었지만, 앞만 보고 달려갔습니다. 그러다 우연히 보라카이의 매력에 빠져서 정착까지 하게 됐네요. 바람이 지나가듯 자연스러운 일이었던 것 같아요. 언젠가는 한국에 돌아가야 한다는 생각을 하지만, 당장은 그럴 계획이 없습니다. 현재 보라카이에서의 매 순간이 너무 소중하고, 행복합니다.”


글 jobsN 김지섭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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