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8년간 민원 전화 받다가 청력 잃은 공무원의 법정싸움

조회수 2020. 9. 18. 10:4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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판결문으로 본 '직업병'
업무와 인과관계 중요
[판결문으로 보는 JOB&]
직업별 업무상 재해로 본 '직업병'
집배원-디스크, 전화상담-청각장애 등
인정받으려면 업무와 직접적인 관련 있어야

2014년 7월 건설 현장에서 일하던 A씨. 주된 업무는 10㎏ 짜리 파이프를 동료에게 넘겨주는 일이었다. 일을 시작한 지 1주일 만에 허리를 다쳐 디스크 판정을 받았다. 다리와 허벅지에 저림 증상이 나타났다. A씨의 질병은 업무상 재해일까?


법원은 CCTV 영상과 진료 기록 등을 근거로 건설 현장에서 일하다가 허리 디스크가 생긴 것으로 인정했다.


'업무상재해(산업재해)'는 근로자가 일을 하는 과정에서 부상이나 장해(업무를 하다가 부상을 당하거나 질병에 걸려 치료된 후에도 영구적으로 남는 노동력 상실·감소 상태), 질병이 생기거나 사망한 경우를 말한다. 산업재해보상보험법에 따라 관련 업무를 하는 근로복지공단에 신청해 보상을 받을 수 있다. 근로복지공단이 거부할 경우 소송을 해야한다.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사립학교교직원연금, 별정우체국직원연금 등 특수직역연금 가입자는 산재보험 적용 대상이 아니다. 대신 각 연금에서 재해보상금을 지급한다.


근로자 100명당 발생하는 재해자수를 의미하는 재해율은 1998년(0.68) 이후 증가하다가 2003년(0.90)을 정점으로 점점 줄어 2015년에는 0.50까지 떨어졌다(통계청). 예를 들어 0.50은 근로자 200명 중 1명 꼴로 산업재해가 발생한다는 의미다.


jobsN은 근로복지공단이나 각 직역연금공단에 재해보상금을 신청했다가 거절 당한 뒤 법원에 소송을 낸 사례를 분석해 직업별로 흔히 생길 수 있는 질병을 분석했다. 

출처: 조선DB
한 상담직원이 민원 전화를 응대하고 있다.

① 민원 전화 업무하다가 청력 잃어


B씨는 1978년부터 2016년까지 세무공무원으로 일했다. 일반 세무서에서 민원인 상대로 전화 업무 비중이 높았다. 2012년부터 부가가치세과 계장, 민원봉사실 실장을 맡아 전화로 민원인을 상대하는 업무가 늘었다. 주로 "세금이 너무 많다"며 흥분한 납세자의 항의 전화였다. 전화를 잘 들어야 민원 내용을 이해할 수 있고, 업무에 대해 설명해야 했기에 통화가 길어졌다.


처음에는 오른쪽 귀로 전화를 받다가 귀가 잘 안 들리게 됐다. 이후 왼쪽 귀로 전화를 받았지만 한쪽 귀마저 잘 안 들리게 됐다. 회의를 할 때 상대방 소리가 안 들릴 정도였다. 결국 2015년 10월 한 대학병원에서 '청력 회복불가능 상태'로 장애 확정 판단을 받았다. 청각 장애가 생겨 정년퇴직을 3년 4개월 앞두고 명예퇴직을 해야 했다.


공무원연금공단에 장해급여를 신청했지만 "난청이 평소 업무와 근무 환경 때문에 발생했다고 볼 객관적 자료가 없다"며 거절했다. 공무원연금급여 재심위원회에 심사청구도 했지만 기각됐다. 업무상재해를 인정 받지 못한 B씨는 법원에 소송을 냈다. 최근 재판부는 "공무를 수행하면서 장기간 심한 소음에 상당히 노출됐고, 공무 수행 이외에 난청에 영향을 미칠 다른 원인은 없다"라며 B씨의 손을 들어줬다. 

출처: 조선DB

② 실적 압박 받은 은행원 급성심근경색

1990년 한 은행에 입사했던 C씨. 그는 실적이 좋아 은행에서 주는 상을 여러 차례 받았다. 2013년부터 서울 여의도에 있는 금융센터장을 맡았다. 실적이 저조했던 해당 지점의 월간 실적을 1등으로 만들었다. 휴일에도 고객들과 골프 약속을 잡고 술자리를 가지며 노력한 결과였다. 이 과정에서 원형탈모증이 생길 정도로 스트레스를 받았다.


하지만 연말 최종 평가는 2등이었다. 이듬해 인사발령 때는 직원 상당수가 승진에서 밀려났다. 그즈음 송별회 자리에서 직원들에게 "미안하다" "내가 노력이 부족했다"라고 말하며 자책했다. 술에 취해 집에 돌아간 C씨는 다음날 의식이 없는 상태로 발견된 뒤 숨졌다. 추정 사인(死因)은 급성심근경색이었다. 


유족들이 근로복지공단을 상대로 업무상 재해를 인정해달라며 낸 소송에서 법원은 "실적에 대한 스트레스와 과로가 C씨의 죽음에 간접적 영향을 끼쳤다"라고 판결했다. "업무상 스트레스가 고혈압, 고지혈증 등 이씨의 기존질환을 급격히 악화시켜 급성심근경색을 유발해 사망에 이르게 한 것으로 볼 수 있다"는 것이다.   

출처: 조선DB
지난 5월 9일 치러진 제 19대 대선을 앞두고 서울에서 일하는 집배원이 대선후보 공약집이 담긴 선거 공보물 봉투를 우편함에 집어넣고 있다. 선거 때마다 집배원 한 명당 500~1700통의 공보물 배송을 맡는다고 한다.

③ 명절 앞두고 우편물 싣던 집배원 허리디스크


경력 8년차였던 집배원 D씨는 2015년 9월 우편물을 차량에 싣다가 허리를 다쳤다. 추석을 앞두고 배달물이 몰리던 시기였다. 허리 뿐 아니라 어깨 통증도 심해졌다. 명절이라 업무가 크게 늘어나 병원에 갈 시간조차 없을 정도로 바빴다. 바쁜 시기가 지나고 뒤늦게 진료를 받았다. 병명은 허리 염좌(관절을 지지해주는 인대가 외부 충격 등에 의해서 늘어나거나 일부 찢어지는 것), 허리 디스크, 어깨 물혹이었다.


D씨가 공무상 요양 신청을 내자 공무원연금공단은 "허리 염좌에 대해서는 공무상 요양을 인정하지만 허리디스크·어깨물혹은 공무와 인과 관계가 없다"라고 결정했다.


하지만 법원은 "D씨가 집배원으로 임용된 이후 상당 기간 택배·소포 우편물 분류, 차량 적재 등 업무를 해왔다"라며 "업무 중 허리에 부담이 되는 작업이 있어 허리디스크는 공무와 인과관계가 있다"라고 판단했다. 

출처: 조선DB

그러나 업무와 관계를 입증하지 못한 질병은 업무상 재해로 인정되지 않는다. 집배원 D씨는 어깨 물혹에 대해서는 법원에서도 업무상 재해로 인정받지 못했다.


한 통신사 콜센터에서 일하다 쓰러져 뇌출혈 진단을 받은 E씨도 업무상 재해를 인정받지 못했다. 그는 "쓰러진 날이 월요일인데 업무 특성상 월요일 오전은 평상시보다 업무량이 30% 이상 증가한다"며 "게다가 전달 영업실적이 하락해 스트레스가 심했고 불만전화 상담으로 인간적 모멸감을 느껴 병이 생겼다"라고 주장했다.


하지만 근로복지공단과 법원은 "발병 전 E씨의 주당 평균 업무 시간은 40시간 미만이었고 발병 직전 3일은 휴가나 휴무라 일을 하지 않았다"라며 "발병 직전 3개월간 처리한 고객 불만도 매달 10여건에 불과해 동종 근로자보다 감내하기 어려운 수준의 업무량이 있었다고 보기 어렵다"라고 봤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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