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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전엔 치과의사 오후엔 춤추는 번역가 정체

취미를 직업으로 만드는 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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치과의사, 폴댄서, 번역가로 활동하는 40대
20~30대 치열하게 보내며 3개의 직업 가져
"10년 노력하면 못할 것 없어"

다리를 폴에 걸어 자유자재로 돈다, 거꾸로 매달려 돌다가 그대로 멈춘다. 몸을 확 뒤집어 다시 날렵하게 비상해 빙빙 돌기도 한다. ‘폴댄스 추는 치과의사’ 오현진(41)씨를 보면 절로 탄성이 나온다.

폴댄스는 춤과 체조가 결합된 공연 예술의 한 분야. 세로로 된 철봉(폴)을 잡고 춤을 추거나, 폴을 중심으로 회전 혹은 폴에 매달려서 버티는 동작 등의 철봉 운동을 함께 해주는 것이다.  

치과의사 가운을 입은 오현진씨(왼쪽). 오른쪽은 폴댄스를 하는 모습

출처본인 인스타그램

오씨는 3개의 직업을 갖고 있는 ‘워킹맘’이다. 14살과 10살 아들이 있다. 직업 세 개는 치과의사, 2개의 학원을 운영하는 폴댄서, 그리고 번역가다. 그녀는 “우리나라에서 치과의사 출신 번역가, 폴댄서 모두 각각 유일한 것으로 안다”고 했다.


3개의 직업과 육아의 균형을 절묘하게 맞추고 있다. 각자의 업계에서 오씨의 인지도는 제법 높은 편이다. 주로 오전에는 출장검진의로 일한다. 오후에는 직접 교습을 하는 등 학원 운영에 신경을 쏟는다.


2016년에는 국내 최초의 폴댄스 교본을 펴냈으며 그동안 학원을 통해 배출한 강사만 100명이 넘는다. 협회 겸 학원인 ‘폴핏코리아’는 민간 자격증도 발급한다. 방송에도 종종 출연한다. 

주말 등을 이용해 틈틈이 번역가로 일한다. 한때는 번역 때문에 1년 내내 쉬는 날이 없었을 정도다. 주로 치과 쪽 의학 번역 수요를 스펀지처럼 빨아들였다.


이렇게 3개의 직업을 통해 얻는 수입은 월 1000만원. 대학 졸업 이후 치과의사로만 일했던 개업의 시절과 비슷한 수준이다. ‘페이닥터’가 되면서 치과의사로 벌어들이는 수입이 반토막이 났기 때문이다.


폴댄스 학원은 손익분기점을 조금 넘기는 수준이며 번역가로는 일반 직장인 월급 정도 벌어들인다. 몸이 2개라도 모자랄 것 같은 삶을 사는 오씨는 “버는 돈은 과거와 비슷할 지 몰라도 행복도는 비교할 수 없이 높다”고 했다. 그녀를 통해 ‘취미를 직업으로 삼는 법’을 알아봤다. 

13년만에 결실 맺은 하나의 꿈  

왼쪽은 폴 옆에서 찍은 모습. 오른쪽은 가운을 입은 모습

출처본인 제공, 본인 인스타그램

오씨는 ‘1만 시간의 법칙’을 얘기했다. “누구나 취미로 돈을 벌고 싶다는 생각은 하잖아요? 10년 이상의 노력이 있다면 충분히 가능하다고 생각합니다.”


오씨는 10년 이상을 내다보고 인생계획을 세웠다. 1995년 부산대 치대 입학 이후 세운 인생 계획이 ‘투잡으로 번역하기’였다. 1만 시간 노력했고 2008년 번역가로 자리를 잡았다. 번역을 번듯한 제 2의 직업으로 내세우기까지 13년이 걸린 셈이다.


번역가의 꿈을 이루기 위해 오씨는 예과 시절 그 흔한 미팅 한번 해본 적이 없었다. 선배들에게 찍힐 정도로 술 자리도 멀리했다. 단순히 영어를 잘하는 것만으로는 돈을 벌기 어렵다는 것도, 번역가의 전망이 결코 밝지만은 않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 “의학 분야에 대한 이해도를 바탕으로한 전문성과 함께 번역 스피드를 높이면 돈이 되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오현진씨 프로필 사진

출처본인 제공

학부 시절에는 경험을 쌓기 위해 선배 논문, 교수의 서신 등을 닥치는대로 번역했다. 무료 봉사였다. 졸업하고 병원을 차린 개업의 시절엔 일을 병행하면서 한국외대 통번역학과를 다녔다. 병원에선 잠깐의 휴식 시간에도 틈틈이 번역 공부를 했다. 심지어 가족 모임에 나가서도 번역 공부를 했다. 지하철, 설거지 직후 등 시간과 장소에도 구애받지 않았다.


2008년 드디어 번역을 통해 수입이 발생하기 시작했다. 한 번역회사에서 일종의 인턴으로 3년간 일했다. 자신감을 얻은 오씨는 2011년 프리랜서로 독립했다. “번역회사들은 프로젝트 형태로 인력을 운영하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그래서 번역가들이 대부분 프리랜서예요.”


일감의 대부분은 치의학과 의학 분야. 치과계에서 번역에 대한 수요가 의외로 많다고 한다. 논문, 해외 학회지, 수출입 계약 등에 쓰인다. 입소문이 나면서 이 수요를 상당 부분 빨아들였다. 의학용어를 제대로 이해하면서 글을 옮길 수 있는 번역가는 많지 않기 때문이다.

야외에서 즐기는 폴댄스는 또 다른 매력을 안긴다

출처오현진씨 인스타그램

오씨는 지금도 하루도 빠짐없이 영단어 공부를 한다. 당장 일이 없을 때도 감을 잃지 않기 위해 공부를 한다. 논문을 번역하면서 자연스럽게 치과계의 최신 트렌드와 학설도 자연스럽게 배우게 된다. 하나의 직업이 다른 직업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치고 있는 것이다.  

두번째 꿈 위해 한때 치과의사 관둬

나이가 불혹(不惑)에 가까워지면서 두번째 꿈이 고개를 들기 시작했다. 학창 시절부터 즐겼던 댄스 분야였다. 오씨는 어릴적 발레와 한국무용을 배웠다. 대학생 때는 번역을 제외한 유일한 취미가 에어로빅 등 댄스였다.


치과의사라는 직업도 ‘타협의 산물’이라고 했다. “체육은 못하지만 춤을 추면 그렇게 즐거웠거든요. 그러나 중학교 때 장래를 고민한 결과 그걸로는 밥 먹고 살기가 힘들다는 걸 알고 치과의사로 방향을 튼 거죠.” 

폴댄스는 고난도 운동이기 때문에 몸이 다치는 경우도 많다. 오른쪽은 굳은살이 박힌 모습

출처오현진씨 인스타그램

10년 넘게 개업의를 하면서 취미 수준으로 댄스를 즐겼다. 2011년 처음 접한 폴댄스는 오씨에게 신선한 충격을 안겼다. “이거구나 싶었습니다. ‘마약 같다’고 하면 정확히 이해가 될 것 같아요. 굉장히 어려웠지만 성취감은 다른 것과 비교할 수가 없었습니다. 올인하고 싶다는 생각까지 들었어요.” 2013년 치과의사로 일하며 모은 돈으로 학원을 차렸다.


한동안 학원과 병원을 병행했던 오씨는 병원을 그만두고 2년가량 아예 폴댄스 학원에 전념했다. 믿을 구석이 있었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폴댄스 학원은 당장 적자였지만 당시 번역가로서 어느 정도 반열에 올랐기 때문에 어느 정도 수입을 벌충할 수 있었다. 허리띠를 졸라매 지출을 줄였다. 


“처음에 병원을 그만둘 용기는 없었어요. 그러나 몸이 너무 힘들었습니다. 육아도 해야하니까요. 치과의사야 잠깐 쉬더라도 나중에 다시 할 수 있으니까요.” 주변에서 우려의 목소리도 있었고 심지어 ‘의료인의 품위를 손상시킨다’는 따가운 시선도 있었다. 그러나 오씨는 뚝심으로 밀어붙였다. "폴댄스는 노출이 심하다는 부정적 인식이 있습니다. 피부 마찰력을 이용하는 운동 특성상 안전상의 문제 때문에 의상이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잘 모르시는거죠. 좀더 대중화가 되면 그런 인식도 개선되리라 생각합니다."

왼쪽은 오현진씨가 펴낸 폴댄스 교본. 오른쪽은 바디빌딩 대회에 나갔을 당시 모습

출처본인 제공, 본인 인스타그램

폴댄서에 가장 큰 무게추를 두었던 기간은 머릿속으로 꿈만 꾸던 것들을 실현한 기간이었다. 그야말로 하고 싶은 것을 다 해봤다. 우리나라 최초의 폴댄스 교본 ‘오현진의 폴댄스 피트니스(2016년)’를 펴냈다.


“이쪽 업계는 체계없이 가르치는 경우가 많았어요. 용어도 통일돼 있지 않았습니다. ‘스포츠’라고 할 정도가 되려면 이런 혼선을 정리하는게 중요하다고 생각했어요.” 책을 펴내기까지 해외 자료까지 찾아가며 2년 정도 걸렸다.


학원이 안정세에 접어들자 다시 치과계에도 컴백했다. 다만 하루종일 일하는 업무가 아닌 한 병원의 ‘출장 검진의’로 활동하고 있다. 기업을 돌아다니며 검진을 하는 일이다. “저로서는 치과의사도 하려면 이런 식으로 일을 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 가지 방법을 검토했는데 이게 최선이었습니다. 스케줄을 어느 정도 조절할 수 있으니까요.” 

취미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이들에게  

오씨는 폴댄스에 대해 ‘무한 예찬론’을 폈다. “여러 가지를 해봤는데 폴댄스만큼 몸의 변화가 눈에 보이는게 없었습니다. 전신 운동이니까요. 재미있는데다 운동효과까지 있으니 1석2조인 셈입니다. 먹고 싶은 것을 제대로 먹으면서 몸무게도 유지되는 운동입니다.” 고난도 동작을 성공했을 때, 자신이 스스로 고안한 동작을 실전에 응용했을 때의 쾌감도 높다고 한다. “똑 같은 것을 반복하는 다른 운동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직접 폴댄스를 가르쳤던 가수 가희(왼쪽 사진의 왼쪽)와 트레이너 양정원(오른쪽 사진의 왼쪽)씨와 함께 찍은 모습

출처오현진씨 인스타그램

오씨는 “꿈을 위해 20~30대는 치열하게 살았다”며 “앞으로의 10년은 현재 상태(3개의 직업)을 유지하면서 살 것”이라고 했다. “새삼 육아의 소중함을 점점 더 크게 느낍니다. 앞으로는 엄마의 역할이 가장 중요할 것 같아요. 그게 1번이에요. 직업간 균형을 맞추는 건 이제 어느 정도 유지가 되는 수준이니까요.” 마지막으로 오씨는 자신의 인생을 토대로 취미를 직업으로 삼고 싶은 이들에게 다음과 같은 조언을 남겼다.


①메인잡을 완전히 버리지는 말라

취미를 돈벌이로 연결시키는 것은 무척 어려운 일이다. 나도 그랬다. 원래 직업이 있다면 완전히 버리지는 말라. 조금 시간이 걸리더라도 취미가 직업으로 안정되기까지 병행하는 것이 좋다. 이상과 현실은 다르다는 점을 똑똑히 알아야한다.


②목표가 섰다면 소신껏 밀어붙여라

전문직 특성상 치과계도 보수적인 곳이다. 심지어 “우리 아내가 저런 일(폴댄스)을 하면 다리를 부러뜨리겠다”는 사람도 봤다. 그러나 나는 폴댄스는 예술이자 스포츠라고 생각한다. 자신의 신념이 중요하다. 또한 내가 아니더라도 직업을 바꾸려는 사람이 주변에 있다면 응원을 많이 해주자.


③취미가 일이 되면 싫어질 수도 있다

아무리 좋은 취미라고 해도 막상 직업이 되면 싫어질 수 있다. 어떤 직업도 순탄한 직업은 없기 때문이다. 폴댄스 학원을 운영하며 별의별 일을 다 겪었다. 스트레스가 없을 것이라는 환상을 깨야한다. 슬럼프에 빠지더라도 이 직업이면 내 삶이 정말 즐거울 것 같은지 한 번더 고민해봐야한다. 나는 폴댄스만 하면 힘든게 다 잊혀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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