직업 20개,직장인 월급 3배,교과서에 실린 남자 직업은?

조회수 2020. 9. 17. 16: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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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레슬러, 스포츠 해설가, 강사, 작가..경험한 직업만 20개가 넘죠
2014년 ‘진로와 직업’ 교과서에 등재
프로레슬러, 해설가, 작가 등 경험한 직업만 20개
10대와 같은 호기심으로 끊임없는 도전 중

'피겨 여왕 김연아, 라이언킹 이승엽, IMF 희망 박찬호, 박세리...'

요즘 교과서엔 세종대왕 이순신 장군 뿐 아니라 노력과 열정으로 최고의 자리에 오른 스포츠 스타들도 등장한다. 

2014년, 이런 스타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며 교과서에 등장한 남자가 있다. 바로 격투기 해설위원 김남훈(43) 씨다.


격투기 해설가인 동시에 20여개 직업을 가진 사람으로 2014년 진로와 직업 교과서에 소개됐다. 가장 애착이 가는 직업, 좌절 극복 방법, 고교생들에게 전하는 말 등 진로 선택을 앞둔 고교생들에게 도움을 주는 그의 인터뷰가 교과서에 실렸다. 

출처: jobsN
김남훈 씨

그는 WWE (World Wrestling Entertainment) 스맥다운 해설, TV 블로그 꼼지락 녹화 등 8개의 방송 스케줄을 소화한다. 사람들 인생에 동기부여가 될 수 있는 내용을 주제로 주 3회 이상 강연도 다닌다. 그 외 시간에는 책을 쓴다. 지금까지 출간한 책은 실용서와 계발서를 포함해 10권이 넘는다.


20개 직업을 가진 남자는 얼마나 벌까? "프리랜서로 일이 많은 시기에는 일반 직장인 월급의 3배 정도 법니다. 일이 없으면 수입이 줄기 때문에 균형을 생각하며 생활합니다." 정확히 밝힐 수는 없지만, 일반 직장인보다는 많이 번다는 의미다. 

인터넷 방송 '엽기 일본어'로 유명세

대중들에게 처음 이름을 알린 건 1999년에 진행했던 인터넷 방송 '엽기 일본어'를 통해서다. 방송을 진행하는 웹 쟈키(web jockey)로 인기를 얻고 책도 출간했다. "사람들이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신기했어요."

출처: 김 씨 블로그 캡처
책 엽기 일본어와 모터 사이클 탄 김남훈

-방송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무엇인가요.

"어학 교재가 지루하다고 생각했어요. 당시 유행하던 엽기코드를 이용해 야쿠자식 인사, 시체처리 방법 등을 소재로 재미있게 일본어를 알려줬죠. 수동형 문장은 '야쿠자에 의해 시체가 드럼통에 넣어지고 시멘트가 부어진 후 바다에 버려진다(ヤクザによって死体はドラム缶に入れられセメントが注がれた後、海に捨てられる)'를 예문으로 들어 알려주고, 명령형은 '시체를 버려라(死体を捨てろ)'로 알려줬어요."


-왜 일본어였나요.

"고등학교 때 모터사이클을 좋아해서 관련 잡지를 샀는데 온통 일본어였습니다. 처음엔 사진만 보다가 내용이 궁금해서 하루에 10시간씩 일본어를 공부했죠. 몇 달 후에 잡지를 펴보니 상형문자 같던 글자가 읽히더군요."

김남훈을 대표하는 직업, 프로레슬러

엽기 일본어를 통해 언론에도 자주 소개된 그는 한 인터뷰에서 프로레슬러가 꿈이라고 밝혔다. 프로레슬러였던 최태산 관장이 기사를 보고 김 씨를 영입했다. 그때 나이 28살이었다.

출처: 유튜브, 김 씨 블로그 캡처
프로레슬러 김남훈

-왜 프로레슬링을 하고 싶었나요.

"어릴 때부터 프로레슬링은 로망이자 판타지였어요. 링 위에서 싸우는 선수들을 보며 '나도 해보고 싶다'는 꿈을 가졌죠. 직접 경기를 하고 나서는 팬들과의 짜릿한 교감이 좋아 계속하고 있습니다."


-언제 데뷔했나요.

"2001년 AWF(아시안 레슬링 페더레이션) 경기를 통해 데뷔했습니다. 프로레슬링에는 착한 역할과 나쁜 역할이 있어요. 악역으로 링 위에 올랐습니다."


-하반신 마비를 겪었다고 했습니다.

"2005년 경기 도중 목으로 떨어지는 사고를 당했습니다. 구급차로 실려 가는 데 허리 밑으로 감각이 없었죠. 하반신 마비 판정을 받았습니다. 하늘이 무너지는 기분이었어요."


-어떻게 극복했나요.

"다시 걷게 된 두 가지 이유가 있습니다. 첫 번째는 아버지가 제 손을 꼭 잡고 잠들어 계셨어요. 아버지 곁에 있는 이 순간도 좋지만 일어나서 안아드리고 싶었습니다. 두 번째는 갓 나온 햄버거가 정말 먹고 싶었습니다. 직접 매장에 가서 먹고 싶었죠.


재활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처음엔 기어서 화장실 다녀오는 것이 목표였습니다. 첫 번째 목표를 이루고 나선 벽을 짚고 대문까지 다녀왔죠. 작은 목표를 설정하고 하나씩 이루다 보니 다시 걸을 수 있었습니다. 일어나서 아버지를 안아드렸고, 매장에 가서 햄버거도 먹었어요."

출처: 김 씨 블로그 캡처
챔피언 벨트를 맨 김남훈

2006년 복귀한 그는 일본 DDT 프로레슬링 챔피언, 국내 프로레슬링 단체 PWF (Pro Wrestling Fit) LOTC 챔피언 타이틀을 얻었다. 2016년부터는 서문야시장에서 기획한 프로레슬링 경기에 출연하며 재능 기부 겸 프로레슬링의 맥을 잇고 있다. 오는 5월 열릴 2017년의 첫 경기를 앞두고 있다. 

하고 싶으면 한다...프로레슬러에서 격투기 해설가로

-그다음엔 격투기 해설을 했습니다.

"운동하는 사람으로서 선수들이 어떤 노력을 하고, 얼마나 치열하게 경쟁하고 싸우는지 누구보다도 잘 압니다. 이 모든 것을 시청자들이 알기 쉽게 설명해주고 싶어서 해설을 시작했습니다."


-전에 해설 경험이 없었는데...

"2007년 7월, 제가 썼던 레슬링 칼럼을 보고 격투기 중계 채널에서 오디션을 제안했습니다. 얼떨결에 합격은 했는데 많이 부족했죠. 격투기를 쉽고 재밌게 알려주는 '격투기 완전정복 시리즈' UCC를 제작해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고 인기도 얻었죠."


-월수입은 어떻게 되나요.

"격투기로 시작해 프로레슬링, 배틀로봇(상대 로봇을 파괴하는 경기), 스트롱맨 대회(스트렝스 스포츠의 한 종목)의 해설도 맡았습니다. 종목마다 다르지만 월 180만원에서 500만원 정도 법니다."

20개 넘는 직업을 경험하게 한 원천은 왕성한 호기심

인터넷 웹 쟈키, 프로레슬러, 스포츠 해설가 말고도 단역 배우, 빵집 사장 등 20개가 넘는 직업을 경험했지만 도전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작가로서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 자신의 소설을 바탕으로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하고 싶다고 한다. 아직도 꿈이 있는 그는 "10대처럼 왕성한 호기심이 그 원천"이라고 말한다.

출처: jobsN

"호기심이 생기는 분야에 도전하다 보니 자연스럽게 다양한 직업을 경험했고, 때로는 실패도 맛봤죠. 그런데 제가 어렸을 때는 뭘 하든 먹고 살 수 있던 시대였어요. 도전하는 것을 두려워하지 않아도 됐던 거죠. 저와 달리 도전이라는 것 자체를 할 수 없는 요즘 청년들의 삶이 안타깝습니다."마지막으로 청년들에게 꼭 해주고 싶은 말이 있다고 한다. "직업도 중요하지만 어떤 일을 했을 때 가장 행복한지 깨달았으면 좋겠어요. 공부, 취업 외에 자신의 삶을 즐겁게 만들어줄 무언가를 꼭 찾길 바랍니다. 그럼 자연스럽게 경제적·가치적 이익을 동시에 얻을 수 있는 일을 할 수 있을 거예요."


글 jobsN 이승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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