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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석사 사장님 직원보다 월급 덜 받고 일하는 이유

조회수 2018. 11. 5. 09:2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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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둥이도 푹빠진 '허그돌'
대학 졸업작품 아이디어가 창업 밑거름
창업경진대회 우승상금 1000만원 자본금
아이들 눈높이로 만든 유아용품 판매 계획

“졸업 작품으로 삶이 달라질 거라고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정세경(28), 유수진(29)씨는 카이스트 졸업생이다. 같은 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석사 동기다. 학부 졸업 작품으로 냈던 아이디어로 사업을 함께 시작한 공동 창업가이기도 하다. 


정세경씨가 학부 졸업작품으로 내놨던 자동차 안전벨트에 연결하는 인형이 사업 아이템이 됐다. 대학원에 다니며 이 아이디어로 창업경진대회에 출전했는데 최우수상을 받고 창업까지 한 것이다. 


둥근 얼굴, 긴 목, 통통한 몸의 라마를 닮은 인형은 낙타과 동물 ‘라마’나 ‘알파카’를 닮았다. 단순해 보이는 디자인이지만 세계 3대 디자인 공모전으로 꼽히는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2014년에 디자인상을 받았다. 


대학 친구들처럼 취업을 생각하거나 계속 공부하는 길도 있었지만 과감히 창업을 선택했다. 석사까지 받은 두 사람이 제조업에 뛰어드는 데 고민은 없었을까?

출처: jobsN
정세경(왼쪽), 유수진(오른쪽)씨가 허그돌을 안고 활짝 웃고 있다.

창업경진대회 우승 상금 1000만원이 자본금

두 졸업생이 함께 만든 회사는 유아용품업체 '키두'. 안전벨트용 인형 '허그돌'을 제작·판매한다. 자동차 뒷좌석에서 아이들이 벨트를 매면 벨트가 얼굴을 가리거나 스치면서 얼굴에 상처가 날 수 있다. 안전을 위해 착용하는 벨트가 오히려 아이들에게 해가 될 수 있다.  그런데 안전벨트 맞춤용 인형을 벨트에 끼우면 그런 위험이 없어진다. 벨트가 아이들의 어깨를 지나가도록 각도가 벌어지면서 쿠션 역할을 하기 때문이다. 


"자동차 안전벨트는 어른 체형에 맞춰서 나옵니다. 아이들이 착용하면 벨트가 목이나 얼굴을 지나가기도 해요. 차가 급정거하면 벨트에 쓸려서 상처가 날 수도 있습니다. 아이들이 답답해서 안전벨트를 풀면 더 큰 문제가 됩니다.” 


자본금은 창업경진대회에서 받은 상금 1000만원이 전부. 창업 이후 지난 3년간 먹고 살기 빠듯한 금액만 월급으로 가져갔다. 지난해는 연 매출 4억원을 냈다. 폭발적으로 성장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외부 투자, 대출 한 푼 받지 않고 적자 없이 크고 있다는 것이 뿌듯하다고 했다. 두 사람은 사업 초기 월급으로 100만원을 받았다. 지금도 많이 늘지는 않았다고 했다. 함께 일하는 직원보다 적게 받는다고도 했다. 

대학 졸업작품 아이디어가 창업 밑거름

-창업에 뜻이 있었습니까


정 “석사 때 공부가 지루해지던 참이었습니다. 마침 학교에서 창업경진대회를 하더라고요. 같은 수업을 듣던 친구 4명이서 우리도 나가보자며 생각을 모았습니다. 각자 학부 때 졸업작품을 낸 게 있으니 거기서 아이디어를 발전시켜보자고 했습니다. 

출처: 키두 홈페이지 캡처
키두에서 만든 허그돌의 모습. iF 디자인 어워드에서 디자인 상을 받았다.

-창업경진대회에 아이디어로 허그돌을 택한 이유가 있습니까


유 “칫솔질할 때 음악이 나오는 제품이나, 인형놀이를 할 때 목소리가 변조되는 헤드셋 같은 아이디어도 있었습니다. 하지만  대량생산이 어렵다는 결론을 내렸죠. 남은 게 허그돌이었습니다.”


정세경씨는 “다른 제품들은 없어도 생활하는데 불편이 없지만, 허그돌은 불편을 해결하는 제품이라는 게 장점이었다”고 말했다. 


디자인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다. 인형을 안고 있으면 자연스럽게 안전벨트의 각도가 벌어지게 만들어야 했다. 정씨는 “처음에는 팔다리가 있는 사람의 형태로 디자인했는데, 실용성이 없었다”며 “현재의 모양을 만들기까지 네 사람이 몇 달 동안 머리를 맞댔다”고 했다. 기숙사, 카페, 빈 강의실에서 틈만 나면 만났다. 각자 디자인 한 것을 공유하고 아이디어를 교환했다. 


“허그돌이 라마를 닮았다고 하시는 데 특정 동물을 염두에 두고 만든 인형은 아닙니다. 실용성을 따져서 디자인하다 보니 이런 모양이 나왔습니다.” 유수진씨는 인형이 형태를 갖춘 뒤에 눈코입과 귀를 붙여 얼굴을 만들었다고 했다. 

출처: 키두 홈페이지 캡처
어린이가 차에서 안전벨트를 하고 있는 모습. 허그돌을 착용한 안전벨트(우)는 각도가 벌어져 아이의 얼굴이나 목을 지나가지 않는다.

-어떻게 사업을 시작했습니까


정 “경진대회 최우수상 상금이 1000만원이었습니다. 그런데 조건이 있었습니다. 이 상금을 받으려면 창업을 해야 한다는 겁니다. 사람도 있고 자본금도 생긴 데다 나름 경진대회에서 우승했다는 자신감도 있었습니다. 사업을 해보자고 마음먹었습니다.”


우승한 것은 2013년 6월이었지만 창업 때문에 석사를 포기할 수는 없었다. 유수진씨는 “졸업한 뒤에 창업할 수 있도록 해달라고 학교에 양해를 구했지만 무한정 보류할 수는 없었다”며 “논문을 마무리 한 뒤 이듬해 2월 졸업과 동시에 회사를 차렸다"고 했다. 


카이스트는 창업경진대회 우승자에게 교내에 8평짜리 사무실을 제공했다. “카페를 전전하다가 좁지만 우리 공간이 생기니 너무 좋았습니다.” 정세경씨는 “당시 백수라는 걸 깨닫지 못해 마냥 즐거웠다”고 했다. 

난방 안되는 사무실 생활까지도 즐거운 추억

그러나 정작 사업은 역경의 연속이었다. 인형을 만들기 위해선 원단이 필요했다. 공장을 알아보거나 거래처를 접촉하려고 해도 서울로 와야 할 일이 많았다. 카이스트가 있는 대전에서 서울을 다녀오면 하루 종일 다른 일을 할 수 없었다. “대전에서는 사업하기 힘들다고 생각했습니다.” 정세경씨는 “판교에 있는 거래처 사무실에서 2~3달 생활하기도 하고, 선릉에 있는 디캠프에서 잠시 있기도 했다”고 설명했다. 대회에 함께 했던 네 사람 중 한 명은 다른 창업을, 다른 한 사람은 취업을 준비하며 각자의 길을 걷기로 했다. 


2014년 11월, 두 사람은 잠실 방이동에 사무실을 얻었다. 구리에 사는 정세경씨와 수지에 사는 유수진씨가 만날 수 있는 거리상 중간쯤 동네였다. 인형을 쌓아두려면 넓은 공간이 필요했다. 값은 저렴해야 했다. 마침 그런 곳을 찾아서 좋아했는데 그게 끝이 아니었다. 


“난방이 하나도 안 되는 곳이었어요, 겨울에 얼마나 추운지 손가락으로 키보드 자판을 누를 수 없을 정도였습니다.” 부모님이 회사를 들를 때면 ‘이런 곳에서 무슨 사업을 하느냐’며 안쓰러워했다. 저렴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모텔과 술집이 즐비한 유흥가 한가운데 있는 곳 이어서 찾는 사람이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두 사람은 그곳을 '할렘'이라고 불렀다. 그래도 즐거웠다며 웃었다. “너무 추우니까 석유난로를 사다가 우리가 있는 곳만 켜놓고 고구마를 구워 먹기도 했습니다. 그게 재밌었어요.” 사업 초기 인형 주문량이 적을 땐 포장과 배송까지 두 사람이 담당했다. “박스와 인형을 1000개씩 쌓아놓고 주문을 받아 하나씩 포장해 보내드렸습니다.” 순면으로 만든 인형은 개당 가격이 6만 9000원, 벨보아 원단으로 만든 인형은 3만 9000원이다.

출처: jobsN
유수진 대표.

-언제쯤 사업이 자리를 잡았다는 생각이 들었습니까 


“2015년 4월쯤 허그돌이 우연히 방송에 나왔습니다. 이때 주문이 확 늘었습니다.”


KBS에서 방영하는 육아 예능 프로그램 ‘슈퍼맨이 돌아왔다’에 허그돌이 등장했다. 프로그램에서 배우 송일국씨와 그의 세쌍둥이 아들 ‘삼둥이’가 캠핑을 가는 장면이 나왔다. 송씨는 자동차를 타고 장시간 이동하는 아이들에게 라마를 닮은 파란색 인형을 하나씩 안겨줬다. 차에서 신나게 놀던 삼둥이는 인형을 안고 이내 잠이 들었다. 간접광고나 협찬은 아니었다. 송일국씨가 개인적으로 사용하던 제품이었다고 했다. 정세경씨는 “이때 매출이 서너배 늘었다”고 했다. 2015년 키두의 연 매출은 약 2억원 수준이었다. 


이후 허그돌은 ‘삼둥이 인형’으로 알려지면서 유명해졌다. 이듬해 매출은 두 배가량 늘었다. 수도권 백화점 50여곳, 온라인 쇼핑몰, 유아용품 전문 매장 등에 입점했다. 현재는 온라인에서만 판매하고 있다. 


다른 인형도 안전벨트에 끼우면 '허그돌'처럼 사용할 수 있지 않을까? 정세경씨는 "인형 중간에 구멍을 어떻게 내는지가 중요하다"고 했다. 다른 기업이 따라하거나 디자인을 도용할 수 없도록 디자인권과 실용신안을 등록했다. "지난해 한 대기업이 비슷한 디자인으로 인형을 만들었다가 생산을 포기한 적도 있습니다."

출처: 키두 제공
기아자동차가 삼둥이 캠핑기를 촬영할때 만세군이 허그돌을 안고 있던 모습.

-어려운 일은 없었습니까


정 “인형을 만드는 공장에서 불량품이 나온 일이 있습니다. 한두 개가 아니라 한꺼번에 수백개가 쏟아졌습니다. 귀가 얼굴 옆에 붙어있어야 하는데 머리 위에 달려서 나오고, 코가 없이 나온 인형도 있었습니다. 당시 주문이 늘어서 물건 보관, 포장, 배송하는 업체를 따로 구했을 때였습니다.” 유수진씨는 “2년간 같이 일한 공장이었는데도 이런 문제가 생겼다"며 "아무리 바빠도 꼼꼼히 확인해야 한다’는 것을 배웠다”고 했다. 


두 사람은 오전 10시에 출근하고 오후 7시에 퇴근한다. “퇴근은 늦어질 때가 많지만, 출근 시간은 지키려고 합니다” 정세경씨는 “내 사업이라고 생각하니 퇴근해서 집에 가면 컴퓨터 앞에 앉아 일할 때가 많다”고 했다. 국내 마케팅과 영업, 기획은 주로 정씨가 맡고, 유씨는 해외 수출과 수입, 제품 개발을 맡고 있다. 

출처: jobsN
정세경 대표.

아이들 눈높이로 만드는 유아용품 판매 계획

-창업을 후회하지는 않습니까


유 “큰 회사 들어가서 월급 많이 받고, 저녁에 여유 있게 생활하는 친구들 보면 부럽기도 합니다. 하지만 장단점이 있는 것 같아요. 저희는 당분간 경제적인 여유는 없을지 모릅니다. 하지만 기업 경영하는 노하우를 얻잖아요.영업, 기획, 마케팅, 중요한 의사결정까지 배웁니다. 이런 경험은 돈으로 환산할 수 없을 거 같습니다. 지금 월급으로 사치만 하지 않으면 살 만 합니다.” 


최근에는 유치원 어린이를 대상으로 하는 진로 체험 프로그램 사업을 준비하고 있다. 가령 고고학자라는 직업이 있다면 이 직업을 간접 경험할 수 있도록 해준다. 검은 상자에 공룡 카드를 넣고 공룡이 어떻게 생겼는지, 습성이나 특징이 무엇인지 알려준다. 어린이들은 흩어진 뼈 카드를 맞춰 공룡 형상을 만들기도 한다. 이런 직업 정보와 체험 프로그램을 50여가지 축적하고 매달 2개씩 유치원에 공급하는 사업을 기획 중이다. 


정세경씨는 “사용자 입장에서 생각해야 하는 게 중요하다는 걸 느낀다"고 했다. "특히 유아용품이 그래요. 사용하는 사람은 아이들인데, 어른 눈높이로 만드는 게 많더군요. 가능하면 아이들에게 정말 필요한 제품을 파는 종합회사로 키워갈 생각입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잡스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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