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직장 8년 쉰 31살 엄마..사탕 팔아 '월수 300'의 행복

조회수 2018. 11. 5. 09:4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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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성북구 정릉시장. 정육점, 수산물 가게, 지물포, 금은방, 통닭집…길가에 늘어선 가게들을 지나 10분쯤 안으로 걸어 들어가면 재래시장과는 다소 어울리지 않아 보이는 작은 가게가 나온다. 


이름은 ‘THANKS LOLLIES’(땡스 롤리). 전면 유리벽 안으로 기다란 테이블 하나와 카운터, 그 뒤에 조리실이 그대로 들여다보이는 7평 남짓한 조그만 사탕가게다.   보기에 작지만 지난 2~3월 평균 월 매출 800만원이 나왔다. 이익은 매출의 30~40%. 사탕 수요가 늘어나는 밸런타인데이, 화이트데이 특수 덕분이었다. 


세 아이의 엄마이면서 경력단절녀이기도 한 홍미선(31)씨는 이곳에서 직접 사탕을 만들어 판다. 월 순수입은 300여만원쯤 된다. 2008년 직장을 관두고 주부로 산지 8년만인 지난해 서울시가 진행한 전통시장 창업 프로젝트에 참여하면서 창업했다.  시장에서 수제 사탕을 만들겠다며 손을 들었다.


그는 “엄마가 즐겁게 일하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아이들에게 보여주고 싶었다”고 했다. “아이들이 자라는 걸 보면서 해주고 싶은 말이 많아졌습니다. 특히 ‘너희가 행복한 일을 찾았으면 좋겠다’, ‘무언가를 할 때는 즐거워야 한다’는 말이요. 그런데 이게 말로는 설명할 수 없더군요.”  

출처: jobsN, 땡스롤리 인스타그램 캡처
홍미선 땡스롤리 대표.

'행복해야 한다'는 말 대신 행복한 엄마 모습 보여주려 일 시작 

그가 찾은 ‘일’은 사탕과 캐러멜을 직접 만들어 파는 것이었다. 8살, 6살, 5살짜리 세 남매에게 간식을 만들어주던 노하우를 살렸다. 2016년 5월 무작정 구청에 찾아갔다.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부서였는데 공무원을 붙잡고 이야기했죠. ‘선생님 저 창업하고 싶은데 도움 받을 수 없나요?’”  


서울시에서 청년 창업을 지원하는 프로그램을 곧 시작할 예정이라는 대답을 들었다. 자기소개서부터 만들었다. 왜 사업을 하고 싶은지, 어떤 것을 만들어 팔 수 있는지, 사업을 하면 어떤 효과를 기대할 수 있는지 차분히 메모했다.   


“어릴 때 엄마 손을 잡고 시장에 가면 즐거웠던 기억이 있습니다. 엄마 손 꼭 잡고 말 잘 들으면 엄마가 번데기와 호떡을 사주셨어요. 그게 너무 좋아서 시장 가는 날만 기다리기도 했습니다. 정릉시장에 우리 사탕을 먹는 아이들이 있다면 그런 추억을 남겨줄 수 있겠다고 생각했습니다. 또 엄마들도 얼마든지 ‘일’을 할 수 있다는 걸 보여주고 싶기도 했습니다.” 

출처: 땡스롤리 인스타그램 캡처
홍미선씨가 만드는 레고모양 사탕(왼쪽), 꽃사탕(가운데), 캐러멜(오른쪽).

서울시 심사위원 5명 앞에서 면접을 보던 날 이런 이야기를 하며 직접 만든 사탕과 캐러멜을 나눠줬다. “그날 심사위원 중 한 분이 맛있다며 하나 더 달라고 하셔서 드렸던 게 생각이 납니다.” OK 사인이 났고 2016년 10월 정릉시장 한켠에 가게를 차릴 수 있었다. 인테리어비 700만원, 1년간 월세를 지원 받았다. “제가 투자한 건 700만원쯤 됩니다. 아끼느라 테이블과 의자 서랍장 같은 건 다 친구한테 얻어왔습니다. 중고에요.” 


메뉴는 사탕과 캐러멜이 전부다. 4개가 한 묶음인 레고 모양 사탕은 한 봉지에 3500원, 식용 꽃을 넣은 꽃사탕은 한 개에 3000원이다. 캐러멜은 개당 1000원에 판다. 캐러멜은 소금 맛과 아몬드 맛이 있다. 주로 혼자 만들지만 일주일에 한번 아르바이트생을 부르거나, 교회 지인들이 도와주기도 한다. 


 홍씨는 9시에 출근해 10시에 가게 문을 연다. 퇴근 시간은 6시다. 토요일, 일요일은 쉰다. “회사원과 근무시간이 비슷하다”고 했다. 매출의 대부분은 인터넷 판매로 나온다. 캐러멜 포장은 홍씨가 직접 한다. “남편은 사탕 포장만 도와주고 있습니다. 캐러멜은 종이로 싸야 하는데 남편이 하면 예쁘지 않아서 제가 못하게 했어요.”

출처: 땡스롤리 인스타그램 캡처
정릉시장 땡스롤리 가게(왼쪽), 홍미선씨 모습.

9년 차 주부, 경단녀에서 청년 창업가로

홍씨는 9년 차 주부다. 2008년에 결혼하면서 2년간 다녔던 여행사를 그만뒀다고 했다. 여행사에서는 인터넷으로 여행사 배너광고를 하고 홍보하는 일을 했다. 월급이 많지는 않았다. 200만원이 채 안됐다. 당시 나이 스물세살이었다. 결혼 이듬해 첫 아들을, 2011년에 둘째 아들을 낳았다. 2012년에는 셋째 딸이 생겼다. "아이가 너무 좋아서 주변에서 안 말렸다면 넷째도 낳았을 거에요"라고 했다. 남편은 여행 가이드로 일한다. 


전업주부의 삶은 정신없을 만큼 바빴다. “저도 어렸습니다. 아이들을 어떻게 키워야 하는지 어떤 음식을 주면 좋고 나쁜지도 잘 알지 못하는 서툰 엄마였어요. 첫째 아이는 돌 좀 지나서 사탕을 처음 준 것 같습니다.”  


셋째 아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조금 여유가 생겼다. 아이들의 먹거리에도 신경 쓰기 시작했다. 가장 손쉽게 접할 수 있는 간식은 사탕이었다. “사탕은 아이들한테 주는 선물이기도 하고, 달랠 때 쓰는 마법 같은 도구이기도 합니다.”  


그는 사탕이 건강식품은 아니라고 했다. "하지만 꼭 필요할 때가 있습니다. 그럴때 가능하면 좀더 나은걸 먹이고 싶었습니다."

출처: 땡스롤리 인스타그램 캡처
땡스롤리 꽃 사탕(왼쪽)과 홍미선 대표.

사탕은 설탕, 물, 물엿 등을 넣고 끓여서 식히면 만들 수 있다. 말로 설명하자면 쉬운 일 같지만, 노하우를 얻는데 5개월이 걸렸다. 숱한 시행착오를 거쳤다. 온도가 맞지 않으면 설탕 시럽이 타기 일쑤였다. 맛을 다르게 하는 것도 어려웠다. 향을 조금만 강하게 하면 너무 자극적인 맛이 나왔다. 향이 부족하면 맛도 없었다. 바닐라 씨앗을 넣어 향과 맛을 살렸다.  


설탕을 고르는 일도 단순하지 않았다. “처음엔 비정제 설탕을 사용해봤습니다. 미네랄이나 영양분이 그대로 남아있어서 정제한 설탕보다 좋거든요.” 하지만 비정제 설탕은 사탕 만들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다. 물을 묻히거나 끓이면 커피색이 나왔다. “약간 탄 냄새가 났고, 맛은 ‘달고나’ 같았습니다.” 그래서 사탕을 만들 때는 백설탕을 쓴다. 대신 당분이 몸에 덜 흡수되는 자일로스 성분이 들어간 설탕을 사용했다.   


비정제 설탕으로는 캐러멜을 만들었다. 설탕에, 우유, 꿀, 생크림을 넣고 걸쭉하게 만든 뒤 4시간 동안 약한 불에서 뭉근하게 끓이면 캐러멜이 된다. 그냥 두면 타기 때문에 4시간 내내 주걱으로 휘휘 저어줘야 한다. 


아이들에게는 엄마가 사탕과 캐러멜 만드는 것 자체가 이벤트였다. 홍씨는 아이들이 즐거워하는 것도, 맛있게 먹는 모습을 보는 것도 기뻤다고 했다. 그래도 사탕은 일주일에 한 개씩만 준다고 했다. 


이렇게 만든 사탕은 주변 친구들에게 나눠줬다. 동네 벼룩시장이 열리면 가지고 나가 팔아보기도 했다. 평이 괜찮았다. ‘사탕이 자극적이지 않아서 좋다’, ‘캐러멜이 슈퍼에서 파는 것과 맛이 다르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본격적으로 사업을 해봐도 괜찮다고 생각했던 계기였다.  

출처: jobsN
조리실에서 홍미선씨가 사탕을 들어보이고 있다(왼쪽).

가족과 보내는 저녁 있는 삶이어서 더 행복 

그는 장사가 잘 돼도 계속 시장에 남을 계획이라고 했다.  애들과 나눠 먹으라며 꿀떡을 챙겨주는 이웃 떡집 아주머니, 이사한 친구네 집에 가느냐며 족발을 가득 그릇에 담아주는 족발집 아저씨 모두 가족 같은 존재다.   


장사를 크게 하고 싶다는 욕심은 없다고 했다. “아이들과 행복하려고 하는 일인데, 일에만 몰두하면 그 의미가 사라지는 것 같습니다.” 주문이 밀려 집에 늦게 들어갈 때는 “내가 뭐하고 있지? 하는 생각도 든다”고 했다. 아이들과 보내는 시간이 줄기 때문이다.  


4월이 돼서야 저녁이 있는 삶으로 돌아왔다. 가게 문을 닫고 집에 가면 7시 쯤 된다. 아이들과 간식을 먹으며 ‘뒹굴뒹굴’ 한다. “누워서 책을 읽거나 아이들이 유치원에서 오늘 뭐 했는지 이야기 하고 장난치는 걸 뒹굴뒹굴이라고 해요.” 금요일이나 토요일 저녁은 영화 데이로 정하고 집에서 가족끼리 팝콘을 먹으며 영화를 본다.  

  

홍씨는 다시 일을 할 수 있다는게 행복하다고 했다. “특별한 기술도 아니고 누구나 할 수 있는 일입니다. 그래도 힘내라고 응원해주시는 분들이 있어 가능한 일입니다. 특히 시부모님께서 낮에 아이들을 봐주기 때문에 할 수 있는 일입니다. 아직 우리나라에서 누구 도움을 받지 않고 워킹맘으로 일어선다는 건 너무 힘든 것 같아요. 욕심내지 않고 즐겁게 일할 수 있도록 열심히 하겠습니다.” 


글 jobsN 이병희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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