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년 일했는데 평생하고 싶다"는 삼성맨의 유망직업은?

조회수 2018. 11. 5. 14:2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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운명 같은 첫 직업, 평생 하고 싶다

1993년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시작 때 합류  

훈련 위해 하루 평균 5~6시간씩 걸어 

시각장애인 안내견에 대한 편견 없애고파

 

"마루, 똑바로 해야지. 잘했어~" 


시각장애인 안내견 후보생 '마루'가 자꾸 벤치 아래에 머리를 들이밀었다. 바닥에 떨어진 나뭇잎에 코를 박고 킁킁댔다. 마루가 머리를 빼고 자세를 고쳐잡자 신규돌(49) 삼성화재안내견학교 훈련사가 '딸칵' 소리를 냈다. 클리커라는 작은 기구에서 나는 소리였다. "잘했다"라는 긍정적인 의미를 담은 칭찬이다. 안내견에게 일관된 신호를 주기 위해 기구를 이용한다. 


신 훈련사는 1993년부터 24년째 안내견 훈련사로 일한다. 지금까지 안내견 후보생 50여마리를 교육하고, 이중 20여마리를 안내견으로 키워냈다. 양성률 46%로 평균(30%)보다 높은 베테랑이다.  


그는 "시각장애인의 재활을 돕는 차원을 넘어 사람과 개를 모두 행복하게 만드는 안내견 훈련사가 꿈의 직업이자 천직"이라고 말했다. 


"보통 시각장애인 안내견은 평생 봉사만 한다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개는 차별을 안합니다. 주인이 장애가 있다고 싫어하지 않습니다. 오히려 하루 종일 주인과 지낼 수 있으니 좋지요. 집에서는 시각장애인이 안내견을 돌보기 때문에 일방적으로 도움만 받는 관계가 아닙니다."


현재 세계안내견협회 기준에 맞는 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사는 국내 6명 밖에 없다. 모두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소속이다. 국내에서 세계안내견협회에 등록된 기관은 삼성화재안내견학교가 유일하기 때문이다. 


안내견 훈련사는 안내견 뿐만 아니라 시각장애인을 교육하는 역할도 한다. 훈련사가 되려면 3~5년 정도 걸린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 훈련사는 에버랜드 소속 '삼성맨'으로 회사 내규에 맞춰 연봉을 받는다. 


시각장애인 안내견 역사가 긴 미국은 훈련사 연봉이 8만6000~9만2000달러(약 9500만~1억500만원) 정도다(기업 정보 사이트 글래스도어 기준). 선진국은 장애인 복지 관련 정책이 자리잡은데다 반려동물 시장이 커지면서 브리더, 동물 훈련사 등 관련 직업에 대한 수요도 늘고 있다.

출처: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제공
시각장애인 안내견으로 훈련중인 마루와 함께 한 신규돌 훈련사. 삼성에 안내견학교가 처음 생길 때부터 24년째 훈련사로 일한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는 1993년 경기도 용인시에 처음 문을 열었다. 삼성화재가 에버랜드(삼성물산 리조트부문)에 위탁해 운영한다. 지금까지 안내견 192마리를 무상 기증했으며 현재 60마리의 안내견이 활동중이다.

안내견 훈련사의 하루 일과

신규돌 훈련사의 하루는 오전 8시에 시작한다. 훈련사들끼리 모여 훈련 장소와 개의 건강 상태 등을 공유한다. 사육장을 치우고, 밥 먹이는 일도 훈련사 몫이다.


오전 9시쯤 개를 차에 태워 나간다. 훈련사 1명이 담당하는 안내견은 총 6마리. 훈련장소는 안내견학교가 있는 경기도 용인 근처다. 용인 재래시장, 경기도 분당에 있는 수내역·서현역 등에서 주로 훈련한다. 1마리씩 데리고 다니며 1시간 정도 교육한다. 6마리를 가르치다보면 신 훈련사는 하루 5~6시간씩 걷는다. 


길을 똑바로 걷게 하고 다른 개를 봐도 동요하지 않도록 가르친다. 주인이 장애물로 가려고 할 때는 가지 않게 하는 '지적 불복종'도 교육한다. 


훈련을 하다보면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알아보는 시민들이 많다. 사람들의 시선에 익숙해지고, 안내견과 함께 다니면서 어깨 근육이 생긴 것이 직업병이다. 


"과거에는 안내견을 보자마자 소리를 지르거나 피하시는 분이 많았어요. 건물에 들어오지 못하게 막기도 했습니다. 2000년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건물에 출입할 수 있게 장애인복지법이 바뀌었고, '좋은 일 한다'라는 눈으로 보는 분이 점점 늘었습니다." 


오후 4~5시쯤 돌아와 훈련 일지를 작성한다. 개마다 특징이 다르다. 오전에 걷는 걸 좋아하는 개가 있는 반면 오후 훈련을 선호하는 개도 있다. 이런 내용을 구체적으로 적어둬야 더 잘 맞는 시각장애인에게 보낼 수 있다. 


"시각장애인 안내견 훈련은 구조견이나 군견과는 다릅니다. 시각장애인과 일상 생활을 같이 해야 하기 때문에 길을 걷고 건물을 오르고 에스컬레이터를 타는 것이 훈련입니다." 


안내견은 태어나자마자 훈련사를 만나는 게 아니다. 생후 7주쯤 됐을 때 일반 가정에 위탁을 보낸다. 사람들과 잘 지낼 수 있도록 사회화하는 과정이다. 이를 '퍼피워킹'이라 하고, 개를 돌봐주는 자원봉사자를 퍼피워커'라고 부른다. 퍼피워킹에 들어가는 사료와 병원비 등 모든 비용을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지원한다. 


이 기간 동안 훈련사들이 찾아가 시기별 교육 내용이나 특징 등을 알려준다. '초인종 소리가 들리면 짖는다' '낯선 사람을 보면 흥분한다' 등 개의 특성을 기록해둔다. 약 14개월간 퍼피워킹이 끝나면 안내견학교로 복귀해 훈련사와 생활한다. 이후 30주(약 7개월) 훈련 기간 중 3일은 훈련사의 집에 데려가 돌봐야 한다. 

출처: 정재형 트위터
2012년 시각장애인 안내견이 될 강아지를 키우는 '퍼피워킹'을 했던 가수 정재형씨. 안내견 이름은 '축복'이었다. 예능프로그램 등에 데리고 나와 퍼피워킹이 알려졌다. 정재형씨가 데리고 있던 축복이는 음악을 전공하는 시각장애인 선명지씨에게 입양됐다. 이후 정재형씨는 힘찬이라는 새로운 안내견의 퍼피워킹을 맡기도 했다.

안내견 훈련사가 되려면

안내견 훈련사는 역할에 따라 두 단계가 있다. 안내견만 훈련하는 트레이너(trainer)와 시각장애인을 함께 교육하는 인스트럭터(instructor)로 나뉜다. 국내 기준으로 안내견 6마리와 시각장애인 6명을 교육하면 훈련사 자격이 생긴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는 훈련사가 두 과정 모두 거친다. 


신규돌 훈련사는 대학에서 축산학을 전공했다. 부모님은 경기도 이천에서 농사를 지었다. 농촌에서 자라 개, 소 등 가축이 익숙했다. 덕분에 군대에서 군견병이 됐다. 


"셰퍼드는 덩치도 크고 외모가 우락부락해서 처음엔 좀 무서웠습니다. 함께 지내다보니 셰퍼드도 주인에게 사랑받고 싶어하는 보통 개와 같았습니다. 동물과도 파트너가 될 수 있다는 걸 알게 됐습니다." 


전역 후 삼성에 입사했다. 경비견 훈련부서에 있다가 '안내견학교'가 생기면서 자리를 옮겼다. 초창기 멤버는 신 훈련사를 포함해 3명이었다. 1994년 첫 안내견 '바다'를 분양했고, 1년 후 인원을 보강해 조직을 키웠다. 


처음에는 훈련 매뉴얼이 없어 외국에서 배워왔다. 안내견 선진국인 뉴질랜드에서 연수를 했다. 한국과 지형이나 건물 형태, 문화가 달랐기에 점차 한국식으로 바꿔나갔다. 설립 초기 훈련사가 전담했던 퍼피워킹도 일반 가정으로 보내기 시작했다. 


"뉴질랜드는 구획이 잘돼 있는데 반해 한국은 골목길이 많습니다. 체격도 미국이나 뉴질랜드에 비해 한국인이 좀 작아서 안내견 몸집도 처음 35㎏에서 지금은 25~32㎏ 정도로 작아졌습니다." 


지금은 한국의 훈련법이 많이 발전해 대만이나 일본에 안내견과 훈련 방법을 무료기증한다. 안내견 훈련사가 되는데 필요한 전공은 정해져있지 않다. 업무 특성에 맞춰 수의학, 사회복지학 전공자가 많은 편이다. 


대신 성격이 중요하다. 감정 기복이 적고 안내견에게 일관된 신호를 줄 수 있어야 한다. 

출처: 삼성화재안내견학교 제공
훈련사들이 안내견과 함께 걷는 모습. 시각장애인 안내견을 표시하는 조끼를 입고 있다. 안내견과 함께 걸을 때 잡는 줄을 하네스라고 부른다. 안내견의 이름은 같은 시기에 태어난 강아지에게 ㄱ,ㄴ,ㄷ 순으로 붙인다. 예를 들어 ㄱ돌림자면 강토, 강산 등 초성을 맞춰 이름을 짓는다. 훈련사들은 길에서 안내견을 만났을 때 ① 주위를 분산시킬 수 있으니 먹을 것을 주지 말고 ②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위해 강아지를 일부러 부르지 말고 ③ 시각장애인의 프라이버시를 침해하지 않도록 사진을 찍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안내견에 대한 오해와 진실

신 훈련사가 처음 훈련시킨 안내견은 '지구'. 1995년 서울 여의도에 있던 아파트에서 퍼피워킹을 하던 것부터 입양된 이후까지 생생하게 기억한다. 


"안내견에서 탈락하는 개가 훨씬 많습니다. 마음 아플 때도 있습니다. 하지만 시각장애인의 안전을 생각하면 조건이 까다로울 수 밖에 없습니다. 그 과정에서 더 좋은 훈련 방법을 찾을 수 있어 성장하는 계기로 삼습니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에서 한 해 키우는 안내견은 10여마리다. 한 마리당 훈련비가 1억~2억원 가량 든다. 보통 10마리를 훈련시키면 안내견이 되는 건 3마리 정도다. 건강, 품행, 기질, 수행 등 영역을 나눠 평가한다. "안내견이 해야할 일을 즐기고, 적성에 잘 맞는 개만 합격한다"라고 말했다. 안내견에서 탈락한 개는 무료로 분양한다. 이때 퍼피워커로 해당 개를 키운 가정이 우선 순위다.  


교육 과정도 강압적이지 않다. 2006년부터 "안 돼"라는 말 대신 "잘했어"라고 말하는 긍정 강화 교육방법을 도입했다. "이전에는 자꾸 '안된다'라고만 하니까 개들도 재미가 없는지 하라는 것만 했습니다. 칭찬하는 방식으로 바꾸니 개들의 표정도 달라졌습니다." 


보통 안내견하면 '좋은 일 한다'라고도 하지만 '희생한다' '불쌍하다'라는 반응도 많다. "사람 입장에서는 퍼피워킹을 할 때 걷는 건 산책, 훈련사와 걸으면 교육, 시각장애인과 걸으면 일로 보이죠? 하지만 개는 사람을 가리지 않습니다. 누구와 걷든 함께 지낼 수 있으면 행복해합니다." 


'격무에 시달리고 수명이 짧다'라는 고정관념도 있다. 안내견은 하루 2시간 정도 걷는다. 나머지는 시각장애인의 활동 반경에 따라 대부분 사무실이나 학교 등에서 지낸다. 


안내견은 2살 때까지 훈련 받고 이후 약 8년간 활동한다. 10살이 지나면 다시 안내견학교로 돌아와 자원 봉사자 가정에서 지낸다. 삼성화재안내견학교 관계자는 "주인과 함께 시간을 많이 보낸 안내견이 다른 반려견에 비해 수명이 길고 스트레스를 적게 받는다는 연구 결과가 있다"라고 말했다.   


신 훈련사는 "우리 둘째 아이가 안내견 훈련사가 되겠다고 하는데 정말 기분이 좋다"며 "지금까지 50여마리를 훈련시켰는데 앞으로 100마리를 채워 안내견들이 더 좋은 세상을 만들게 하고 싶다"라고 말했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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