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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백억 부자 용감한 형제 "전재산 모두 기부하겠다"

조회수 2018. 11. 5. 14:2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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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모은 돈, 20년 걸쳐 기부하겠다

K팝 대표 작곡가 용감한 형제

"전 재산 20년 걸쳐 환원하는 것이 인생 목표"

싸움 일삼던 문제아에서 최고가 되기까지


최근 서울 강남구 역삼동의 한 빌딩 앞. ‘BRAVE ENTERTAINMENT’ 라고 쓰인 간판 아래로 하얀색 마이바흐 차량이 주차돼 있었다.  에스컬레이터를 타고 2층으로 올라가자, 값비싼 한정판 농구화, 실물 사이즈의 아이언맨 모형으로 장식된 공간이 나타났다. ‘격투기 선수’를 연상케 하는 하얀색 턱수염의 남자가 걸걸한 목소리로 인사를 하며 손을 내민다. “안녕하세요. 용감한 형제입니다.” 


손담비의 ‘미쳤어’ ‘토요일 밤에’, 빅뱅의 ‘마지막 인사’ ‘거짓말’, AOA의 ‘심쿵해’, 거미의 ‘거울을 보다가’, 브라운아이드 걸스의 ‘어쩌다’‥ 용감한 형제(본명 강동철·38)는 K-팝을 대표하는 히트 작곡가이자 프로듀서다. 현재 한국음악저작권협회에 등록된 그의 곡만 400여개에 이른다. 수많은 히트곡으로 음원 수입으로만 수백억원을 벌었다.  2012년부터 본인이 직접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란 기획사를 차려 경영과 작곡활동을 병행하고 있다.

 

싸움 일삼는 고등학생→소년원→고등학교 중퇴→룸살롱 영업부장→일용직 막노동 겸 가수 준비생‥파란만장한 인생 끝에 큰 부자가 된 그는 ‘흙수저에서 자수성가한 스타 직업인’이다. 그런 그는 jobsN과 만나 한 가지를 약속했다. “전 재산을 사회 빈곤층에 모두 환원하겠다’는 것이다. 용감한 형제는 지난해부터 매주 한차례 탑골공원 등을 찾아 200~300여명에게 도시락이나 물품을 나눠주는 봉사를 직접 해왔다. ”인생 마지막 목표가 기부“라는 용감한 형제를 만났다.

출처: jobsN
용감한 형제와 그의 사무실과 차량

“1000억원 이상 현찰 모아 20년간 밥으로 기부하겠다” 

-인생의 마지막 목표가 왜 기부인가요. 

“어렸을 때부터 제 꿈은 성공하면 마지막에 모두 나누는 거였습니다. 오랫동안 가난했습니다. 돈을 번 이후에 좋은 집(그는 80평대 펜트하우스를 비롯해 여러 채의 집을 보유하고 있다)도 샀고 좋은 음식도 먹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 생활을 해보니 그렇게 행복하지 않아요. 이 대목에 ‘행복에 겨운 소리 하네’라는 반응을 보이실지 모릅니다. 그러나 제가 가장 행복해질 때를 곰곰히 고민해보니 피땀 흘려 번 돈을 나눠주는 데 있더군요."  


-음식 봉사란 어떤 겁니까. 

“한대당 500인분~1000인분의 음식을 대접할 수 있는 밥 차 30대를 사들일 겁니다. 한대에 500인분만 나와도 1주일에 1만5000인분, 한 달에 6만인분입니다. 1년으로 가면 80만명, 20년을 하면 최대 2000만명에게 음식을 대접할 수 있습니다. 대상은 독거노인, 형편이 어려운 청소년 등입니다. 제 인생 마지막 꿈이 대한민국 국민의 30%에 번 돈으로 밥을 한번 나눠 드리는 겁니다. 


사실 '왼손이 오른손으로 모르게 하라'는 성경구절이 있잖아요. 칭찬 받으려고 이야기하는 게 아니에요. 그런데 이 이야기를 지금 밝히는 이유는 약속을 반드시 지키기 위해서입니다. 제가 약해지면 안 되니까요. 꼭, 꼭 실천하고 싶기 때문입니다. 이르면 50세에 음악 사업을 접고 70세까지 20년간 밥 봉사만 하며 모은 재산을 모두 소진할 겁니다. 70세 이후에는 시골에 내려가 혼자 노후를 보낼 것입니다. 그때가 오기를 손꼽아 기다려요.” 

출처: 방송 캡처
방송에 등장한 용감한 형제의 80평짜리 펜트하우스. 마이바흐와 함께 세계 3대 자동차인 벤틀리도 보유하고 있다

-이미 큰 부자인데 지금부터 기부를 많이 하면 되지 않나요. 

“제 손으로 직접 나누고 체험하는 기부를 하고 싶거든요. 그냥 모은 돈을 던지고 평소대로 누릴 것 다 누리며 사는 것은 제가 추구하는 나눔과 거리가 멉니다. 그래서 제 목표를 실천하려면 바쁜 음악 일을 관둬야 합니다. 그러나 지금 모은 돈으로는 수십년 밥을 장기 기부할 수 없어요. 그래서 더 많은 돈을 모으겠다는 겁니다. 이 계획을 달성하려면 1000억원 이상의 현찰이 필요하더군요. 다만 시간이 지나 목표를 이루지 못하면 기부계획이 탁상공론에 그칠 수 있습니다. 그래서 매주 하루를 정해 식사와 물품 봉사를 수백명 대상으로 하고 있어요.”  


-기부 수단과 방법이 많은데 왜 하필 밥입니까. 

“세상에서 가장 서러운 것이 뭔지 아세요. 밥 못 먹는 겁니다. 음악을 시작하고 가난할 때 먹고 싶은 치킨을 못 사 먹어 운 적이 있어요. 그때 생각했습니다. 나중에 성공하면 가진 돈으로 밥 못 먹는 사람을 먹이고 싶다는 생각을 말입니다. 가장 기본적인 기부가 사람들에게 필요하다고 보거든요.” 

출처: 브레이브 엔터테인먼트, 펀치 인스타 캡처
용감한 형제가 키우고 있는 가수 펀치. MNET 프로듀스 101에 출연하는 그는 4개국어를 구사할 줄 안다

문제아에서 작곡가가 되기까지 

그는 “불과 15년 전만 해도 매주 정기적으로 기부할 만큼의 돈과 유명세를 가질 것이라고 생각도 못했다”고 했다. 인터뷰 도중에도 용감한 형제를 찾는 가수들과 연예계 관계자들의 전화가 쇄도했다. 그는  자기 소속사 가수들의 곡도 만들지만 다른 기획사 소속 가수들의 앨범도 제작해 납품한다.   


“지금 7개의 앨범을 작업 중입니다. 제가 만드는 곡으로 매달 가수 3~4팀이 데뷔하거나 컴백하고 있어요. 요즘에는 제가 키우고 있는 가수  ’펀치‘(본명 김사무엘) 때문에 무척 바쁩니다. 아시아의 ‘저스틴 비버’처럼 만들고 싶은데 벌써 해외 팬들이 많습니다. MNET 방송의 ‘프로듀스 101’에도 등장합니다. 16살이라고 믿기 어려운 랩과 춤에 재능을 가졌습니다.” 


용감한 형제는 서울에서 태어나고 자랐다. 초등학교 시절에는 모범생이었다. “수학·과학·독후감 경시대회 상은 모두 탔어요.” 

출처: jobsN
용감한 형제와 사무실 내부 모습

그러나 중학교에 올라가면서 엇나갔다. 싸움하는 친구들과 어울리면서 공부와 멀어졌다. 고1 때는 큰 싸움 끝에 소년원에 수감됐고, 2년 후 보호관찰에서 풀려난 뒤로 룸살롱 영업부장으로 일했다. “잘못된 길이라는 생각이 들더군요. 인생에 회의가 들어 소주 10병을 마시고  죽으려는 시도도 했어요. 자해도 했습니다. 그러다 미국의 유명 힙합 가수 ‘사이프러스 힐’의 노래를 들었습니다. 이 노래를 듣고 난생 처음 ‘나도 못 할 게 뭐가 있느냐’는 각오가 생기더군요.” 


2000년 들어 룸살롱 영업부장을 그만뒀다. 만 21살이었다. 서울 망우리에 월세 10만원짜리 지하 단칸방을 얻었다. 각종 음악 장비와 음악 컴퓨터 프로그램을 구할 수 있는 종로 낙원상가를 매일 찾았다. “주변 지인들에게 1만원~5만원씩 빌려 컴퓨터로 음악을 만드는 70만원짜리 소프트웨어 프로그램과 10만원짜리 신디사이저를 구했습니다. 악보를 볼 줄 몰라요. 코드도 짜는 공부를 해본 적이 없습니다. 그러나 컴퓨터로 음악을 만들려면 거창한 음악 이론을 꼭 알 필요 없습니다. 음악은 기술로만 하는 게 아니거든요. 밥 먹는 시간 빼고는 매일 골방에 틀어박혀 건반을 눌러보고, 컴퓨터 프로그램으로 비트를 짜고 편곡했습니다.” 

출처: 나무위키, 유튜브 방송 캡처
용감한 형제의 곡으로 대박을 친 가수들. 왼쪽부터 손담비, 빅뱅, 씨스타

-생활비는 어떻게 했나요. 

“입에 풀칠도 못하고 살 때가 잦았습니다. 주머니에 1000~2000원으로 하루 버텼습니다. 당시 막노동을 하면 하루 일당 3만5000원을 받았습니다. 그 돈으로 1주일 버티기도 했습니다.” 


2년 노력 끝에 형 흑철(41)씨와 함께 ‘용감한 형제’라는 이름의 힙합 듀오를 결성해 데모 테이프를 만들어 기획사에 뿌렸다. 여러 기획사 가운데 YG 양현석 사장 연락이 왔다. YG에 들어와 앨범을 준비해보라는 것이었다. “‘도라이’ ‘골 때리는 이야기’ ‘방아쇠를 당겨’라는 제목을 보면 아시겠지만, 수위 높은 가사가 많은 갱스터 음악이었어요. 독특했지만 사회적으로 안 좋은 이미지가 생길 수 있다고 양현석 사장님이 판단해 데뷔를 못했습니다. 그러다 양 사장님이 ‘가수 말고 프로듀서로 전향할 생각이 없느냐’고 하더군요. 음악을 너무 하고 싶고 알리고 싶었기 때문에 바로 수락했습니다.”  

 “히트곡의 비결은 스마트폰 메모장”

렉시의 ‘눈물 씻고 화장하고’란 곡을 만든 이후 프로듀서로 날개를 달았다. 손대는 노래마다 대박을 치면서 ‘히트곡 제조기’란 별명을 얻었다. 2004년~ 2008년까지 YG의 프로듀서로 일했다. YG를 나와서 여러 가수의 앨범을 만들고 제작하다 2012년 정식으로 기획사를 설립했다. 그는 자신의 작곡 노하우라며 스마트폰 메모장을 열어 보여줬다. 메모장 안에는 평소 메모해놓은 1000여개가 넘는 노래 제목과 가사 아이디어가 빼곡히 담겨 있었다.  

출처: jobsN
용감한 형제의 스마트폰 메모장 모습. 다양한 곡 아이디어들이 빼곡히 정리돼 있었다

-일상생활의 영감이 히트곡의 원천이군요. 

“아무리 기술이 좋아져도 음악의 본질은 사람 감성을 건드리는데 있습니다. 그 본질은 누구나 겪는 일상생활에서 나오거든요. 그래서 대중음악은 듣는 입장에서 만들어야 해요. 지금까지 만든 히트곡은 가만히 있다가 머릿속에 떠오르는 단어가 출발점인 경우가 많았어요. 


예를 들어 유키스의 ‘만만하니’란 히트곡이 있어요. 이건 예전에 제 친구가 저에게 황당한 행동을 했을 때 제가 뱉은 말이거든요. 씨스타의 ‘가십걸’은 포장마차에서 소주를 먹고 있는데 옆 테이블에서 수다 떠는 여자들 이야기를 듣다가 ‘진짜 가식적이다’는 생각이 들어 ‘가십걸’이란 제목으로 곡을 지었어요. 코요테의 ‘했던 말 또 하고’란 곡도 마찬가지입니다. 주변에 아는 친구가 술에 취해 새벽에 매일 전화해 했던 말을 반복하곤 했는데 그걸 곡으로 옮겼어요. 좋은 노래 키워드가 떠오르면 바로 스마트폰에 저장하고 작업실로 뛰어갑니다. 10년 넘게 유지하는 원칙입니다. ” 


그의 하루 일정은 일반 직장인과 정반대다. 낮에는 회사 경영에 집중하고 오후 4시부터 곡 작업에 들어간다. 집에서 새벽 내내 작업하고 오전 7시~8시에 잠에 든다. 3~4시간 쪽잠을 자고 나면 다시 일상이다. 통상 한 앨범에 들어가는 곡은 5개. 한 곡을 녹음하고 믹싱·마스터링 작업까지 하는데 2~3개월이 소요된다고 했다.

-매일 새벽 작업을 하면 건강을 해치잖아요. 

“네.건강이 안 좋습니다. 당뇨, 고지혈증, 공황장애도 겪고 있습니다. 불면증과도 싸워야 합니다.” 


-건강을 해치는데도 왜 합니까. 

“음악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또 제가 번 돈으로 어려운 사람에게 나누고 싶기 때문입니다. 사실 음악을 처음 시작했을 때 ‘이걸로 먹고살아야겠다’는 생각으로 시작하지 않았습니다. 돈을 벌든 못 벌든, 한 획을 그어야겠다는 각오로 시작했습니다. 돈을 버는 목적으로 시작했다면 중간에 그만뒀을 겁니다.” 


-작곡가나 프로듀서가 꿈인 청년들에게 조언한다면. 

“대단한 용기가 필요합니다. 취미가 음악 듣기라고 해서 도전하면 안 됩니다. 그리고 아르바이트를 정기적으로 하면서 음악과 병행하는 것은 두 마리 토끼를 다 놓치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이렇게 하면 아르바이트가 본업이 되고 음악 활동이 취미가 되는 경우가 많아요. 하루 20시간 음악만 해도 모자랍니다. 죽지 않을 정도의 돈만 있다면 무조건 음악에만 몰입해야 합니다. ” 


-앞으로 목표가 있다면. 

“사실 스트레스가 많습니다. 용감한 형제가 만든 외부 가수 곡은 다 뜨는데 소속사 가수가 뜨지 않는다는 인식이 있거든요. 그러나 아직 창업 5년차에요. SM이나 YG도 역사가 20년이 넘었는데 초창기부터 ‘빵’ 터진 게 아닙니다.  아시아의 최고 엔터테인먼트 회사를 만들 겁니다. 빨리 큰 돈을 벌어야 하루 빨리 기부계획을 실천할 수 있습니다.” 


글 jobsN 이신영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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