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욕하면 전화 끊어'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 한마디에 콜센터 '와~'

조회수 2018. 11. 5. 13:5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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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화상담원도 행복할 수 있는 직장
현대카드 폭언전화 끊기 제도
소수 악성 고객 탓 선량한 고객 피해 커
상담원 만족도↑ 이직율↓

"성희롱이나 폭언을 하는 고객에게 2차례 경고한 후 그치지 않으면 상담원이 먼저 전화를 끊어라." 


2012년 2월 현대카드가 전화 상담 직원에게 내린 지침이다. 이후 4년 간 모니터링해 제도를 정비했다. 2016년에는 서울대 심리학과 곽금주 교수와 공동으로 연구해, 폭언·성희롱 외에도 인격모독이나 위협적 발언을 하는 고객의 전화도 끊을 수 있게 했다. 


"제도가 있어도 인사평가나 고객 불만이 더 커질 것을 걱정해 실행하기 어렵다" "폭언·성희롱 외에도 단호히 대처해야할 상황이 많다" 등 다양한 의견을 반영한 결과다. 


상담원 대상으로 조사해보니 '스트레스가 반 이상 감소했고, 오히려 상담 업무가 원활해졌다'라고 답했다. 제도 시행 후 상담원 이직율은 절반으로 줄었다. 


전화상담원은 대표적인 감정노동자다. 이직율이 높고, 스트레스를 견디다 못해 극단적인 선택을 하는 경우도 종종 있다. 왜 현대카드 전화상담사들은 행복해졌을까.  

출처: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트위터
2012년 현대카드 정태영 부회장은 전화상담원의 고충과 직접 상담 매뉴얼을 읽고 느낀 점을 트위터에 올렸다. 현대카드는 성희롱이나 욕설을 하는 고객의 전화를 끊을 수 있게 했고, 카피라이터를 고용해 상담시에 사용하는 표현을 대폭 손질했다. "이자가 나가십니다" 같은 어법에 맞지 않은 존댓말도 "이자가 부과됩니다"로 고치도록 했다.

"폭언 고객 전화 끊어도 좋다"

2017년 2월, 카드 사용액을 상담하던 A씨의 발언 

① 씨X. 

② 너 거기 앉아서 하는 일이 뭐야? 

③ 내가 너 그만두게 해줄까? 


약 5분 간 통화에서 ①욕설 ②인격모독 ③위협 발언을 쉬지 않고 했다. A씨를 응대한 현대카드 카드상담1센터 장현지(29) 상담원은 '엔딩 폴리시(Ending Policy·전화를 끊는 등 폭언 고객에 대응하는 현대카드 정책 전부를 의미)' 매뉴얼을 켰다. 


A씨의 폭언 수위가 높아질 때마다 단계별로 말했다.  


①  회원님, 원활한 상담을 위해 조금만 감정을 자제해주시길 부탁드립니다. 제가 회원님의 상황을 듣고 최대한 빠르게 도와드리겠습니다.  


② 회원님, 욕설은 자제해 주십시오. 상담내용은 녹음되고 있으며, 계속해서 욕설을 하시면 상담이 중단될 수 있습니다.  


③ (ARS음성으로) 회원님은 계속된 욕설 사용으로 인해 통화를 종료합니다. 전화 등을 이용하여 상대방에게 불안감 등을 조성하는 행위는 (정보통신망 이용초진 및 정보보호 등에 관한 법률) 제74조 1항 제3호에 해당하며, 법에 의해 처벌 될 수 있습니다. 


두 번 경고 후 전화를 끊었다. 곧바로 엔딩 폴리시 고객을 응대했다는 보고를 올렸다. 몇 분 후 A씨가 장씨를 지정해 상담을 요청했다. 하지만 엔딩폴리시 고객은 해당 상담원과 다시 통화할 수 없다. 대신 전문상담그룹으로 연결된다. 

출처: jobsN 육선정 디자이너

엔딩 폴리시 고객을 상담한 후 30분 간 휴식을 할 수 있다. 인사 평가에도 전혀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 '(상담원 잘못이 아님에도) 상담원이 직접 사과해야 마음을 풀겠다'라는 막무가내 요구에는 응하지 않도록 했다. 


장씨는 현대카드에 오기 전 홈쇼핑, 타 카드 회사에서 4년간 상담원으로 일했다. "경력이 쌓여도 폭언 전화를 받으면 심장이 두근거리고 눈 앞이 하얘진다"라고 말했다. 

"현대카드에는 마음을 추스릴 수 있는 제도가 있어 좋습니다. 무엇보다 모든 직원이 이 제도를 알고 지킬 수 있게 도와주는 게 고맙습니다."

출처: jobsN
현대카드 카드상담1센터에 근무하는 이원효(왼쪽), 장현지씨. 두 사람은 "실제 놀랄 정도로 심한 폭언을 하는 고객은 1000명 중 1명도 안된다"면서 "예전에는 폭언을 들으며 속상해서 울 때도 있었는데 엔딩 폴리시 정책 덕에 자존감을 가지고 일할 수 있게 됐다"라고 말했다.

 1000명 중 1명이 문제 

엔딩 폴리시는 직원만 보호하는 게 아니다. 하루에 걸려오는 전화 8만여건 중 불만 고객은 1200명(1.5%)정도다. 이 중 욕설·성희롱·인격모독·위협에 해당하는 전화는 50건 이하다. 


현대카드 관계자는 "숫자는 적지만 폭언 고객은 보통 한 번 통화할 때 30분~1시간씩 통화하기 때문에 상담 대기 시간이 길어진다"며 "정보를 찾기 위해 전화한 다수 선량한 고객이 피해를 본다"고 말했다. 


다른 카드회사에서 일하다가 입사한 이원효(25) 현대카드 상담원은 "엔딩 폴리시 덕에 상담 내용의 질이 훨씬 좋아졌다"라고 말했다. 


이씨는 입사 6개월 동안 폭언 고객 전화를 끊어본 적은 없다. 대신 욕설을 한 고객에게 한 차례 경고를 해봤다. 한 고객이 '씨X, 니가 그것 밖에 안되니 전화나 받고 있지'라고 말했다. 욕을 한다고 무조건 전화를 끊는 게 아니다. 경고 멘트를 두 번 한다. 앞에 적은 ①, ②번을 읽어주는 것이다. 


"첫 경고를 하자 10초간 정적이 흘렀습니다. 이후 바로 경어를 쓰셨고, 정상적으로 상담했습니다. 상담이 끝나고선 '미안하다, 아까는 화가 나서 그랬다'라고 사과를 하셨습니다." 


폭언 고객을 응대하는 구체적인 표현도 큰 도움이 됐다. "정리된 매뉴얼을 보고 말할 수 있어 좋습니다. 예전 회사에서는 무조건 '죄송합니다'라고 말했습니다. 욕을 들어 정신이 하나도 없는 상황에서 말을 이어가는 게 힘들었습니다. 제도가 있단 것만으로도 든든한 방패막이 있는 느낌입니다."


고객 불만이 클 것이란 우려가 있었지만 결과는 달랐다. 폭언으로 전화가 끊긴 것에 대한 불만은 월 1건 수준이다. 전화가 끊어진 후 재상담을 요청한 고객의 97%는 정상적인 상담을 했다.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은 "(상담원 대응 정책을 실시한) 몇 년 간 얻은 교훈은 지속적으로 업데이트하고 관리하지 않으면 상담원들이 폭언과 희롱에 무너진다는 점"이라며 "녹취록에서 들어본 폭언과 희롱은 차마 페이스북에 올리기가 민망할 정도"라고 말했다.

출처: 정태영 현대카드 부회장 페이스북
2015년 현대카드·캐피탈 전화 상담원을 위해 마련한 캡슐호텔형 휴식공간. 현대카드는 업무 중에도 휴식이 필요하면 쉴 수 있도록 수면실, 요가실 등을 마련했다. 업무 스트레스를 낮추기 위해 심리상담 프로그램도 제공한다.

"상담원도 행복한 직업이다"

장현지·이원효 상담원은 "폭언 고객보다 궁금한 내용을 알려줘 '고맙다'라고 말해주는 고객이 훨씬 많다"며 "다른 사람을 도울 수 있는 직업이라 보람있다"라고 말했다. 


전화 상담원은 다양한 교육을 받는다. 음성·화법 등 전화 응대법은 기본이다. 고객 상담은 단순히 친절한 태도로 전화를 받는게 아니라, 필요한 정보를 제공해 문제를 해결하도록 하는 게 중요하다. 때문에 새로 나온 금융 상품에 대한 교육도 받는다. 


최근 장씨는 상담원으로서 전문성을 키우려고 텔레마케팅 자격증 시험을 봤다. "새로운 상품이나 서비스가 나오면 고객 입장에서 한 번씩 이용해 보고 궁금한 내용과 문제점을 정리해 봅니다. '다른 회사는 이렇게 하던데…'라며 비교해서 묻는 경우가 많아, 다른 회사 서비스는 어떤 게 있는지 찾아보기도 해요."


이씨는 "상담원을 하다보니 어느 곳에서든 조리있게 말할 수 있게 됐다"라며 "심한 폭언이 아니라면 어떤 상담도 기분 좋게 받을 수 있으니 자주 이용해달라"고 말했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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