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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익 580점으로 미국 가 연봉 1억에 80평 집까지? 비결은

해외취업 첫번째 걸림돌은 비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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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연봉 한국 2배
한국 비해 야근 없고 수평적 문화
학생비자로 시작해 영주권 따기까지

미국 소프트웨어 개발자 평균 연봉은 약 10만 달러(약 1억1500만원). 미국 USA투데이가 얼마전 '최고 직업 10선'을 발표하면서 소프트웨어 개발자를 3위 꼽았다. 참고로 1위는 치과의사였다. 반면 한국 IT개발자는 박봉에 장시간 노동을 한다. 평균 임금은 4289만원(재벌닷컴 조사)선이다.


한국과 미국 대표적인 소프트웨어 업체에서 일해 본 개발자들은 두 나라 근무환경을 어떻게 평가할까? 잡스엔이 실제 그런 경험을 가진 개발자와 만났다.


한국에서 직장을 다니다가 2000년대 중반 미국 취업을 한 최준식(44)씨. 미국 제너럴모터스(GM)에서 개발자로 일한다. 연봉은 10만~12만 달러(약 1억1500만~1억4000만원) 수준. 그는 한국에서 대학을 나온 토종 개발자다. 영어는 토익 580점, 석박사 학위도 없다. 한국과 미국을 오가며 5군데 직장을 다녔다.


그는 토종 개발자가 미국에서 일할 마음을 먹었을 때 가장 큰 걸림돌은 비자(VISA)라고 했다. 최씨가 미국 영주권을 받기까지 10여년 동안 치른 '비자와의 전쟁'을 소개한다. 

한국의 안정적인 직장 대신 미국 취업을 선택한 최준식씨 가족. 10여년간 취업비자와 영주권을 받기 위해 고군분투했다.

출처본인 제공

1. 한국 IT개발자의 삶


최씨는 홍익대 화학공학과 출신이다. 대학 3학년 때인 1996년 삼성 소프트웨어(SW) 연수 프로그램에 뽑혔다. 덕분에 서류전형을 면제받고 면접 후 삼성에 갔다. 1998년 삼성SDS 사원증을 받았다. 외환위기로 취업이 힘든 때 '하늘이 주신 기회'라고 생각했다.


"일은 재밌었지만 근무한 7년 2개월 동안 휴가는 2주일 정도 밖에 못 썼습니다." 야근은 일상이었다. 오후 11시 퇴근이 당연했다. 아버지 임종도 못했다.


2005년 한 통신사의 고객관리시스템을 개발했다. 팀원끼리 내기를 했다. '1분도 안 자고 누가 더 오래 버틸까?'. 최씨는 3일을 샜다. 프로젝트 매니저는 6일간 잠을 자지 않아 최장 기록을 세웠다.


"팀장으로서 부담감이 얼마나 크면 그랬을까요? 그런데 '내 미래가 저런 모습일까' 생각하니 아찔했습니다." 마침 당시 프로젝트에 미국 직원이 있었다. 개발자도 여유롭게 생활한다는 미국에 가고 싶었다. 우선 6개월 휴직을 했다.


2. 처음 받은 미국 학생 비자


학생비자를 받아 어학연수를 시작했다. 처음 도착한 지역은 미국 뉴올리언스. 3개월 후 캘리포니아 산호세로 옮겼다. IT 심장부인 실리콘 밸리에 머무르고 싶었다. 초반 정착 비용이 꽤 많이 들었다.


미국에 온 지 6개월, 직장을 구하진 못했지만 일단 삼성SDS에서 퇴사했다. "미국에서 성공하겠다"라는 마음 때문이었다. 집 근처 커뮤니티 컬리지에 등록했다. 학생비자를 유지하기 위해서였다. 낮에는 취업준비를 하고 밤에는 학교에 갔다.

미국에 온 지 1년 9개월만에 처음 구한 직장의 동료.

출처본인 제공

3. 첫 직장 얻기까지 1년 9개월

 

취업하려 수백군데 전화를 돌렸다. 집 밖을 나가지 않고 이력서 수백통을 보냈다. 영어는 여전히 서툴렀다. 얼굴 표정이나 손짓을 알 수 없는 전화에는 더욱 취약했다. "영어를 못합니다(I can not speak English)"라는 말만 하다가 전화를 끊었다. 


1년이 넘어가자 한국에서 모은 돈이 점점 떨어졌다. 운좋게 인도계 인력회사에서 취업비자(H1B)를 우선 받았다. 하지만 인력회사에서 일자리를 구하진 못했다. 


미국에 온 지 1년 9개월째. 통장 잔고는 딱 1000달러(약 115만원). 한국에 돌아가려고 마음 먹었을 때 한 대기업 면접을 봤다. 산호세 지역과 떨어진 플로리다에 있는 회사였다. 비슷한 시기 산호세에 있는 한 스타트업(eMeter)에도 합격했다. 실리콘밸리 문화를 경험하고 싶어 스타트업을 택했다. 2달 뒤 정규직이 됐다. 


4. 첫번째 해고 


2008년 금융위기가 찾아왔다. 많은 회사들이 직원을 해고했다. 1년 후 최씨도 회사에서 나가야했다. 취업비자가 있었지만 소용 없었다. "당시 제 비자는 H1B였는데, 회사에서 잘리면 무조건 미국을 떠나야 하는 비자였습니다. 계속 머무르면 불법 체류였죠." 아내와 딸을 먹여살려야 하는 가장으로서 큰 시련이었다. 


불법이었지만 한국으로 돌아가지 않고 취업자리를 알아봤다. 한 주 동안 30~35번씩 전화 면접을 봤다. 호주, 싱가포르 등 미국 외 국가 취업도 알아봤다. 


"H1B 비자로 해고되면 다음 직장을 구하기 어렵습니다. 고용하려는 회사에서 다시 돈을 내고 비자 스폰서를 해줘야 하거든요." 비자 스폰서 비용은 대략 연봉의 10% 수준이다. 기업 입장에서는 영주권자나 시민권자를 채용하면 비용을 아낄 수 있다.


 "비자 문제가 커질 것을 우려해 한국으로 갔다가 4일 만에 관광비자로 다시 입국했습니다. 비행기값 80만원이 큰 부담일 정도로 어려울 때였습니다."

2009년 금융위기로 다니던 회사에서 해고 당한 최씨는 미국 산호세에서 가장 방값이 싼 지역으로 옮겨 살았다. 거실이 따로 없는 방이라 매트리스와 소파를 한 공간에 둬야 했다.

출처본인 제공

5. 계약직으로 다시 시작


취업이 안되자 한국으로 완전히 돌아가기로 했다. 자동차를 팔려고 내놨다. 가격을 계속 내려도 안 팔렸다. 차를 보고 갔던 사람이 다시 한 번 찾아왔다. 지나가는 말로 '차를 왜 팔려느냐'고 물었다. 사정을 설명했다.


"지금 돌아가는 것은 실수다. 내가 인력회사에 다니는 지인을 소개할테니 기다려보라"고 했다. 큰 기대는 하지 않았다. 금융 위기 이후 비자 발급이 전보다 어려워졌기 때문이다. 실제 직장을 구하지 않으면 인력회사에서도 취업비자 받기가 어려웠다.


그 즈음 전 직장(eMeter)에서 연락이 왔다. 6주 계약직으로 단기 프로젝트를 제안했다. 계약직이었지만 일단 직장을 구하니 취업비자를 다시 받을 수 있었다. "언제, 누구에게, 어디서 도움을 받을 지 모르는 게 인생이더군요."

야후에 근무하던 시절. 6개월 계약직으로 시작해 1년 4개월만에 정규직이 됐다. 당시 알고 지낸 인도계 개발자들은 재취업을 할 때 큰 도움이 됐다.

출처본인 제공

6. 야후 계약직으로 시작해 정규직 되다


단기 프로젝트를 하면서 계속 일자리를 알아봤다. 2010년 야후에서 채용공고가 나왔다. 6개월 계약직이었다. "계약이 연장될 확률이 높고, 정규직 전환도 가능할 것 같았습니다. 무엇보다 야후라는 큰 회사에서 배우고 싶었습니다."


고객관계관리(CRM) 업무를 맡았다. 인도인 개발자 14명과 함께 일했다. 특유의 성실함으로 성과를 인정받았다. 기간이 맞아떨어져 영주권도 얻었다. 1년 4개월 후 정규직이 됐다.


취업 정보 서비스인 링크트인 프로필을 '야후에서 근무'로 바꾸자 수많은 지인이 연락했다. "당시만 해도 야후는 IT개발자라면 누구나 가고 싶어하는 회사였습니다. 정규직이 된 게 신기할 정도였습니다."


7. 야후 떠나 한국으로


2012년 야후를 퇴사하고 한국에 돌아왔다. "어느날 친구가 전화를 했어요. '보고 싶다'라고 하는데 갑자기 한국에 있는 가족과 친구들이 그립더군요." 잘 다니던 야후를 퇴사하고 귀국 준비를 했다. 미국 컨설팅회사 소속으로 한국에 왔다.


한국 개발자의 삶은 여전했다. 오전 7시에 출근해 오후 11시에 퇴근했다. 그토록 보고 싶던 친구는 한국에 온 지 6개월만에 처음 만났다. 한국에서 개발자로 살 지 않겠다고 결심했다. 1년만에 빈손으로 미국에 돌아갔다."경력과 스톡옵션까지 포기하고 왔는데 허탈했습니다."


기술 변화가 빠른 IT 업계. 최씨가 가진 기술을 필요로 하는 미국 회사는 없었다. "야후를 그만둔 게 너무 후회됐습니다. 함께 일하던 동료들은 페이스북이나 애플, 링크트인 등으로 옮겼더군요. 계속 남아서 새로운 기술을 배웠다면 더 좋은 기회가 있었을 겁니다." 

6번 도전해 취업에 성공한 제너럴 모터스(G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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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6번 지원해 합격한 GM


컨설팅 회사를 다니며 다시 구직활동을 했다. 영주권이 있어 안정적 신분이 되니 마음은 편했다. 2016년 초 GM 홈페이지에 채용공고가 올라왔다. 그동안 5번이나 지원했다가 떨어졌던 회사였다.


큰 기대없이 지원했다. "이력서를 넣고 링크트인을 보니 야후에서 함께 계약직으로 일한 개발자 동료가 GM에 근무하고 있더군요. 메시지를 보내봤습니다. 현직자에게 정보를 얻겠다는 단순한 생각이었어요." 몇 시간만에 답장이 왔다. "빨리 인터뷰를 잡아보겠다"고 했다.


다음날 화상 면접 날짜를 잡았다. 이례적이었다. 일반적으로 전화 면접과 대면 면접을 거친다. 화상 면접 당일에야 그 동료가 해당 부서 실무면접자라는 걸 알게 됐다. 경력 중심으로 1시간 동안 집중적으로 대화를 나눴다. 다른 개발자와도 면접을 봤다. 일주일 후 채용됐다.

안정적인 일자리를 구하고 30년 장기 대출을 받아 구입한 집. 현재 살고 있는 미국 오스틴 지역은 실리콘밸리에 비해 집값이나 생활비가 훨씬 적게 들어 삶의 만족도가 높다고 한다. 면적은 약 264㎡(80평)으로 방 4개에 마당이 딸려있다. 최씨는 "미국에 와서 10여년간 고생했기 때문에 안정된 생활을 하게 돼 꿈만 같다"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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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 '비자와의 전쟁' 치르고 나니


"영어부터 시작해서 비자 문제까지 쉬운 게 없습니다. 친구가 없어 외롭기도 합니다. 인생을 바꾸는 일이니 두려운 건 당연합니다.


그래도 한국 개발자들이 외국에 많이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한국에서는 능력을 인정받지 못하고 혹사 당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전 너무 모르는 상태에서 미국에 왔습니다. 돈이 떨어져 노숙자 생활 직전까지도 가봤습니다.


하지만 준비를 잘하면 가능성이 큽니다. 설사 미국 취업이 잘 안되더라도 영어라는 경쟁력이 생깁니다. 한국으로 돌아가 생활하다보면 또 다른 기회가 생길 수 있습니다."


※최준식씨가 말하는 ②미국과 한국개발자의 삶 ③해외 취업영어 ④실리콘밸리 근무의 장단점이 다음 회에 이어집니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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