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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놈 얼굴을 찾아라' 결정적 단서 그리는 몽타주 담당 수사관의 세계

조회수 2018. 11. 5. 14:54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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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격자가 말하는 그대로 그린다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이창호 형사
2008년부터 몽타주 전담 수사관으로
이제는 '장기실종자 찾기'에 집중

2008년 7월, 20회에 걸쳐 여성 혼자 운영하는 찻집에 들어가 강도 강간을 한 박모(당시 42세)씨가 붙잡혔다. 박씨는 2007년 10월부터 서울 강북구 미아동과 성북구 장위동 일대에서 찻집 주인에게 수면제를 탄 커피를 마시게 했다. 주인이 정신을 잃으면 성폭행하고 금품을 훔쳐 달아났다. 주로 목격자가 뜸한 심야나 새벽에 범행을 저질렀다.


박씨를 잡는 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건 ‘몽타주’다. 경찰은 수사에 어려움을 겪었다. DNA 분석도 별 진척이 없었다. 결국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가 나서 몽타주를 만들었다.


피해 여성은 “키는 평균이었고 말랐으며 광대와 턱이 발달했지만 볼이 움푹 패였다”고 진술했다. 형사들이 범행 장소 주변에 몽타주를 뿌렸다. 몽타주를 본 목격자가 신고했다. 몽타주를 뿌린 지 두달 만에 범인을 잡았다.

출처: jobsN
이창호 수사관

당시 몽타주를 만든 사람이 이창호(45·경위) 수사관이다. 사실 그는 그때 난생 처음 몽타주를 그려봤다. 이 수사관은 “만들어보니 엉성해서 긴가민가했는데 범인을 잡고나니 많이 비슷해서 나도 놀랐다”고 했다. 이 수사관은 미대 출신 미술이 아니다. 그림에 소질도 없다. “미술에 미자도 몰랐다”고 했다. 전임자가 승진해 나가면서 이 수사관이 몽타주를 제작하는 업무를 맡았다.


그러나 그는 국내 최고의 몽타주 전문가 중에 하나란 평가다. 여태껏 그린 몽타주는 100여장. 이중 이 수사관이 그린 몽타주만으로 범인을 잡은 사건은 10여건이다. 다른 수사기법과 함께 범인은 잡은 사례까지 합치면 40건이 넘는다. 비결이 뭘까?

출처: 이창호 수사관 제공
이창호 수사관이 처음으로 그린 몽타주

◇그림실력보다 현장·심리 수사 경험이 중요


이 수사관은 서울시립대 행정학과를 졸업해 1999년 116기 일반순경공채시험에 붙었다. 2008년에 몽타주를 그리던 전임자가 승진하면서 이 수사관이 임무를 물려받았다. 미술전공자도 아닌 그가 몽타주 전문가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배경엔 기술 발달이 있다.


1970~80년대에는 미술 전공자를 몽타주 담당 수사관으로 특채했다. 당시엔 그림 실력이 중요했다. 그러나 곧 상황이 달라지기 시작한다. 1995년 컴퓨터로 몽타주를 만들기 시작했다. 몽타주 제작 프로그램이 갖고 있는 얼굴형, 이목구비 자료에서 가장 비슷한 것을 선택하고 편집, 조합하는 식이다. 그림 실력이 업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크게 줄었다.


대신 현장 경험과 심리 수사 실력이 중요한 요소로 떠올랐다. 이 수사관은 현재 서울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 소속 31명 중 유일한 몽타주 전문 수사관이다. 10년동안 이 분야를 전담하고 있는 이유는 현장에서 얻은 경험 덕분이다. 

출처: jobsN
3D 몽타주 제작 프로그램 '폴리스케치'로 몽타주를 제작하는 모습

“동숭파출소 등을 거쳐 경찰청 현장감식반에서 일하며 많은 범인과 피해자, 목격자를 만났습니다. 또 많이 그리다 보니 설명만 들어도 범인의 인상착의를 쉽게 떠올릴 수 있는 감(感)이 생긴 것 같습니다.”


그대로 보고 그리는 초상화와 달리, 몽타주는 목격자의 말만 듣고 그린다. 목격자에게 증언을 잘 이끌어 내야 한다. 이 수사관은 ‘형사’하면 떠오르는 과격한 이미지와 달리 목소리가 차분하고 나긋나긋했다.


“몽타주를 그릴 때 그림 실력보다 피해자나 목격자와의 라포(Rapport)를 만드는 게 중요합니다.“ ‘라포’란 피해자 또는 목격자와 만드는 공감대를 말한다. 수사관이 얼마나 피해자·목격자의 심리에 공감하고 마음을 편안하게 하느냐가 중요하다.”다짜고짜 ‘범인 얼굴이 어땠습니까’라고 물어서는 안됩니다.” 불안한 상태에서는 정확한 진술을 받기 어렵다. 

출처: jobsN

이 수사관은 먼저 목격자에게 취미나 좋아하는 영화 등 일상적인 질문부터 한다. 사건에 대해서는 최대한 묻지 않는다. 1시간 넘게 다른 주제로 대화하고 나서야 ‘당시를 마음속으로 떠올려 보라’고 말한다.


그 다음 목격자와 함께 컴퓨터 앞에 앉아 몽타주를 만들기 시작한다. 맨 처음 얼굴형부터 선택한다. 18개 얼굴형 중 가장 비슷한 후보 4개를 선택한다. 그 다음 또 다시 18개 중 비슷한 얼굴형을 고르는 식이다. 이 과정만 10단계. 그 후 이목구비, 머리 모양, 수염이나 흉터 등의 특징을 고른다.


마지막으로 후보정을 한다. 포토샵을 이용해 광대나 입이 튀어 나온 부분에 명암을 표현해준다. 몽타주 한 장을 완성하기까지 6~7시간 정도 걸린다. “몽타주는 목격자의 기억에 따라야 합니다. 설령 목격자가 기억하는 모습이 실제 범인 모습과 다를 지라도, 기억하는 모습 그대로 표현해야 합니다. 목격자와 의사소통을 잘해서 몽타주 이외 결정적인 단서를 잡아내는 것도 중요하니까요.” 

출처: 이창호 수사관 제공
(위에서 첫번째) 2000년 4월 서울 중랑구 망우동의 한 놀이터에서 놀다 실종된 최준원(당시 만 4세)씨. 당시 최씨는 어깨까지 내려오는 긴 생머리에 청색 점퍼를 입고 청색 운동화를 신고 있었다. 나머지 사진은 현재 만 21세인 최씨를 그린 몽타주다.

◇범인 검거에서 장기 실종 수사로


국내에선 총 18명이 몽타주 담당 수사관이 활약중이다. 각 지방경찰청 과학수사계마다 1~2명이 있다. 5~6년 전만 하더라도 한 명당 한해 30장~40장을 그렸다. 지금은 연 1~2건 정도에 불과하다. CCTV나 첨단 과학수사기법 발달로 범인을 잡기 위한 몽타주는 거의 쓰이지 않고 있다.


이 수사관은 “몽타주 요원은 꼭 필요한 직무”라며 “어두운 밤이나 CCTV가 없는 곳에서 주로 발생하는 성폭력 사건에서 몽타주만큼 효과적인 수사 기법이 없다”고 반박했다.

또 몽타주는 범인이나 그 가족의 심리상태를 불안하게 만들어 검거기간을 줄인다. “한번은 몽타주 전단지가 자꾸 훼손된 적이 있습니다. 담당 형사가 잠복했더니 어떤 아저씨가 자꾸 떼더랍니다. 그 사람을 잡고보니 범인의 아버지였던 거죠. 이런 사례가 종종 있습니다.”


강력범죄 용의자의 얼굴을 그릴 일이 줄어든 대신, 장기 실종자를 찾기 위한 몽타주 제작은 늘어나고 있다.


2015년 12월에 도입한 3D 몽타주 프로그램 '폴리스케치' 덕분이다. 시간이 흐르면서 바뀐 얼굴 생김새를 반영할 수 있다. “저는 작년에 실종아동 몽타주를 6~8건 그렸습니다. 올해부터는 더 많이 그릴 겁니다. 작년 6월에 경기도에서는 38년 만에 잃어버린 아들을 찾은 가족이 있었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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