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량진 가보니 "꼭 공무원 하지 않아도 되는 사람들이 내 일자리 뺏어가" 아우성

조회수 2018. 11. 5. 14:58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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합격해서 떠나거나 포기해서 떠나거나
2017년 국가직 9급 공무원 시험 접수 4일 앞으로
채용 인원은 4910명으로 작년보다 790명 늘어나
현장에서 "공무원하지 않아도 될 사람들이 지원한다" 아우성

올해 첫 폭설로 전국이 하얗게 뒤덮인 1월 20일 새벽 6시. 영하 9도의 칼바람이 부는 날씨에 두꺼운 패딩 점퍼를 입은 공시생 수십여명이 노량진역을 나와 줄을 지어 학원을 향해 눈길을 걷고 있었다.

 

A공무원 학원. 뜨거운 열기가 느껴졌다. 10~20명씩 들어가 공부할 수 있는 자습실은 학생들로 꽉 찼다. 복도와 계단 곳곳에 학생들이 삼삼오오 모여 책에 얼굴을 파묻고 있다. 공시생 60~70여명씩 줄을 지어 오전 7시에 시작할 수업을 기다리고 있었다. 첫수업이 오전 7시에 시작하지만 좋은 자리를 맡기 위해 줄을 서는 것이다.


학원들은 새벽 5시에 문을 연다. 5시에 이미 학원 앞엔 이미 공시생들이 서 있다. 일찍 들어가 좋은 자리를 잡기 위해서 새벽 4시가 넘으면 지하철을 나와 학원으로 걸어오는 사람들을 볼 수 있다.  

출처: jobsN
자리배치표에 이름을 적기 위해 새벽 일찍 나서는 공시생들

500명이 함께 한 강의실에서 수업을 받기 때문에 최대한 앞 쪽 자리를 잡는 것이 아침 눈을 뜬 공시생들의 중요한 일과다. 최대한 학원에 일찍 도착해 가장 먼저 수업 자리 배치표에 이름을 적어야 한다. 한 수험생은 "좋은 앞쪽 자리를 잡지 못하는 날엔 공부를 망친다"며 "매일 아침에 살얼음판"이라고 했다. 수험생들이 워낙 많은 탓에 요새 노량진에서는 '10분마다 한번씩 어깨빵을 한다'는 이야기가 나돌 정도다. 발 디딜 틈도 없어 복도나 길거리에서 어깨를 부딪히고 지나가는 공시생들이 많다는 뜻이다.  

출처: jobsN
스터디 출입을 금한다는 표지판에도 북적이는 한 프랜차이즈 매장

'스터디 출입을 금합니다.'


A학원 옆의 패스트푸드 매장 입구에는 다른 곳에선 보기 힘든 출입금지 표시가 붙어 있다. 자리 잡고 오래 공부하는 공시생들을 받지 않겠다는 것이다. 그러나 매장에는 스터디를 하는 공시생 수십명으로 만석이었다.


대전에서 상경해 노량진에서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김씨(26)는 "아침 식사를 해결하고 하루 종일 앉아 공부한다"며"스터디 출입을 원하지 않는 이유가 뭔지는 알겠지만 이만한 장소가 없다"고 했다.

  

◇최대 26만명 접수 예상 … 작년 경쟁률은 평균 53대1

출처: jobsN
지원자로 북적이는 학원 복도

2017년도 국가직 9급 원서접수가 4일 앞으로 다가오면서 노량진에 수험생들의 발길이 줄을 잇고 있다. 오는 4월 필기시험을 앞둔 올해 국가직 9급 채용 인원은 4910명으로 지난해보다 790명이 늘어났다.


작년에는 22만1853명이 지원해 53대 1의 경쟁률을 기록했다. 학원가는 채용인원은 늘어났지만 그만큼 지원자도 많아져 올해도 작년과 비슷한 경쟁률을 예상하고 있다.

 

노량진의 한 학원 관계자는 “ 최소 3만여명 늘어난 25~26만 명이 시험에 응시할 것으로 보인다"며 "합격 경쟁률, 합격 선도 5개 과목(국어, 영어, 한국사, 선택 2과목)이 평균 90점 이상으로 올라갈 것"이라고 말했다. 지난해 9급 국가직 일반분야 합격선은 396.25점. 과목당 평균 80점대를 받으면 합격할 수 있었다. 그러나 올해는 평균 성적이 더 올라간다는 설명이다. 

출처: jobsN
학원에서 대기표를 뽑고 순번을 기다리는 공시생들

지원자가 늘어나면서 수험생 연령대도 다양해졌다. 심지어 수능을 막 끝낸 18~19살 공시생들도 눈에 띄었다. 부모와 같이 학원 관계자들을 만나 상담하는 모습이었다.


학원 관계자는 "원하지 않는 대학교에 갈 바에는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겠다는 학생들이 많아지고 있다"며 "갓 고등학교를 졸업한 지원자가 전년에 비해 5~10% 정도 늘어난 것 같다"고 했다.


늦은 나이에 공무원 시험에 도전하는 사람도 많다. A학원의 최고령 준비생 나이는 52세. 작년 합격자 통계를 보면 34세 이상 합격자가 589명으로 전체의 14%다.

출처: jobsN
학원 1층 자습실 모습, 공시생들의 열기가 느껴진다

다양한 연령대의 지원자들이 늘어나는 흐름에 일부 수험생들은 "굳이 공무원을 할 필요가 없는 사람들까지 시험에 뛰어들고 있다"고 하소연했다. 한 학원 관계자는 "3년 이상 장기수험생이 50%에 달한다. 새롭게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는 지원자들을 곱지 않은 시선으로 본다"고 했다.


 9급 일반 행정직을 1년 반 준비한 이씨(26)는 “10대 때부터 준비하는 사람들을 좋은 시선으로 보기 어렵다"고 했다. "아직 어리니 더 많은 것을 경험하고 난 뒤 준비해도 늦지 않을 것 같아요. 절박한 사람들도 많은데, 다양한 인생 경험이 우선인 10대들이 볼 시험은 아니라고 생각해요."


어린 공시생 뿐 아니라 나이 든 공시생들을 삐딱하게 보는 사람들도 있다. 3년째 9급 공무원 시험을 준비하고 있는 박모씨(25)는 "늦은 나이에 도전하는 4-50대가 20대가 할 일을 뺏는 느낌이 든다"고 말했다.


물론 어린 공시생이나 나이 든 공시생들은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직장을 그만두고 최근 공무원 시험에 도전한 최모(48)씨는 "공무원 시험만큼 공평한 시험이 없다"며 "자식을 부양하려면 당분간 안정적인 직장이 필요해 요즘 청년들만큼 나도 절박하다"고 했다. 

◇ 1년에 총 드는 수험비용 1500~2000만원…아르바이트 없이 불가능해

출처: jobsN
점심시간 북적대는 노량진 거리

오후 1시 점심시간이 되자, 학원가에서 공시생들이 길거리로 쏟아졌다. 가장 많이 몰리는 곳은 5~7평 크기의 근처 분식집들. 학생들이 워낙 많아 어떤 분식집이든 손님으로 가득 찼다.


자리를 잡지 못한 학생들은 가격이 저렴한 편의점 김밥으로 한 끼를 때운다. 한 분식집 주인은 "4월 필기 시험을 앞둔 1월에 학생들이 가장 많다"며 "요즘이 대목"이라고 했다.


학원가에선 공시생 1명이 쓰는 비용을 1년에 1400만~1500만원으로 추정한다. 학원비(400~500만원) 교제비(40~50만원)를 포함해 식대, 고시원에 쓰는 돈이다.


9급 일반 세무직을 준비하는 김씨(25)는 "작년까지 알바로 모아둔 돈으로 생활하고 있다"며 "통장 잔고 바닥이 보여 알바에 다시 뛰어들어야 할 것 같다"고 했다. 학원에서 여러 강좌를 동시에 듣는 수업의 수강료는 7개월에 150만원선이다. 한 과목만 듣는 경우 과목당 25만원선. 일반 행정직을 준비하는 이씨(26)는 "학원비와 식비도 만만치 않다"며 한숨을 내쉬었다.


아예 근처에서 사는 사람도 많아 원룸 시세도 만만치 않다. C부동산 중개업체를 운영하는 이모(43)씨는 "화장실이 없는 2~3평짜리 고시원은 월세가 25~40만원, 화장실이 있는 일반 4평짜리 원룸은 50만원이 넘는다"고 했다. "그런데도 방이 거의 다 찼어요. 학생들은 한 번 방을 잡으면 나가질 않아요.”

◇ 쓸쓸한 노량진…합격해서 떠나거나 포기해서 떠나거나

결국 노량진을 떠나는 사람은 두 부류다. 합격하는 사람, 포기하는 사람. 그런데 최근 노량진을 떠나지 못하는 지원자 비율이 더 높아졌다. 경쟁률이 치솟았기 때문이다.


국가직 9급 공무원 지원자들이 합격하는데 걸리는 기간은 평균 18개월이다. 이런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합격한 9급 공무원의 2017년 첫 월급은 139만 3524원(세전)이다. 

글 jobsN 이승아·김수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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