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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살에 전 세계가 화들짝‥'연수입 5천' 형제 대박비결

사상 첫 세계주니어 3쿠션 선수권 형제 우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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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년 스포츠'에 신선한 충격 일으킨 20대 형제
성격은 정반대지만 열정만은 판박이
당구로 먹고 살기 어렵지만 전망은 밝아

중년 남성이라면 대부분 당구장에 대한 추억이 있다. 담배에 찌든 쾌쾌한 냄새. "짜장면 왔습니다", 배달부의 목소리. 친구들과 내기 당구에서 돈을 땄거나 아니면 잃어서 쓰라린 기억들.


하지만 이런 장면들은 이제 '한물간' 과거다. 요즘 당구장에서는 젊은이들이 많지 않다. 예전에는 당구가 몇 안 되는 오락거리 중의 하나였지만 이제는 PC방, 플스방, 방탈출 게임방 등 새로운 놀이공간이 무궁무진하게 늘어났기 때문이다. 

(좌) 동생 김태관 선수 (우) 형 김행직 선수

출처kozoomkorea 페이스북

그러나 다시 당구계에 젊은 바람이 불고 있다. 주인공은 20대 당구선수 형제다. '돌연변이'의 등장에 한국 뿐 아니라 세계 당구계가 술렁이고 있다. '역대 최연소' '역대 최초' 기록을 써 내려가고 있는 김행직(25·전남연맹)과 김태관(20·경기연맹)형제가 주인공이다.


형이 먼저 길을 개척하고 동생이 뒤따랐다. 김행직은 2007년 당시 15살의 나이로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에서 우승했다. 한국 선수로는 역대 최초였다. 이후 세 차례(2010~2012) 더 정상에 오르며 총 4회 우승 기록을 세웠다. 대회 역사상 최다 우승이다. 2015년에는 역대 최연소 국내 랭킹 1위(당시 23세)를 기록했다. 2016년 11월에 열린 세계3쿠션선수권대회에선 역대 최연소(24세)로 결승에 진출했다. 결과는 아쉬운 준우승.


동생 김태관은 2015년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 정상에 올랐다. 형제가 이 대회를 우승한 것은 세계 당구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두 형제는 당구선수에 전념하기 위해 나란히 대학 진학을 포기했다. 한국 당구의 부흥을 꿈꾸는 둘을 만났다.

◇국어책보다 큐대를 먼저 잡았다

아버지가 운영하는 인천의 '김행직 당구장'

출처jobsN

인천 계양구 작전동에 위치한 '김행직 당구장'. 김행직의 아버지가 운영하는 곳이다. 가게엔 형제의 각종 대회 우승을 기념하는 플래카드가 곳곳에 붙어 있었다. 카운터에 앳된 얼굴의 20대 남성이 서있다. 사복 차림의 김행직이다.


대회에서 카리스마 넘치던 모습과는 달리 우리 일상에서 마주칠 수 있는 흔한 20대의 모습이다. 김태관은 성인인데도 귀여운 개구쟁이 소년처럼 느껴졌다. 형인 김행직이 과묵한 스타일이었다면 동생은 붙임성 있는 말투로 대화를 이어갔다. 

세계를 휩쓸고 있는 형제 당구 선수 (좌)동생 김태관, (우)형 김행직

출처jobsN

어떻게 당구를 시작하게 됐나요. 

김행직(이하 행직) 처음 큐대는 5살 때 잡았어요. 아버지가 당구장을 하셨거든요. 당구장이 놀이터나 마찬가지였던 셈이죠. 그때는 키가 작아 우유팩 박스를 밟고 올라가서 당구를 쳤어요.
아버지가 당구장을 그만두시면서 저도 한동안 당구를 잊고 살았죠. 그러다 초등학교 5학년 때 아버지가 당구 한 번 쳐보지 않겠느냐고 하시더군요. 원래 해본 적이 있으니 거부감은 없었죠. 본격적으로 당구를 시작했어요. 아버지의 권유로 시작한 길이지만 돌아보면 운명이었던 것 같아요

김태관(이하 태관) 저는 (형과 달리) 당구가 싫었어요. 형과 함께 바깥에 나가서 놀고 싶은데 형은 매일 당구장에서 살았거든요. 담배 연기나 냄새도 싫었고요. 그래서 절대 당구는 안 하겠다고 생각했죠.
차츰 시간이 흐르다 보니 당구가 좋아지더군요. 당구선수로 세계적인 성적을 올리는 형이 부럽기도 했고요. 중학교 때부터 본격적으로 당구를 시작했습니다.

얼마나 열심히 했나요 

(행직) 당구장에 살다시피했어요. 하루에 8시간 이상은 한 것 같아요. 하루라도 안 하면 티가 바로 나는 종목이 당구예요. 감이 떨어지는 거죠. 밥 먹고 당구만 쳤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에요.

당구 치는 게 뭐 그리 어려운 일이냐고 얘기하시는 분들도 있어요. 그런 분에게 되묻고 싶어요. 혼자 1시간만 쳐보시면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아실 겁니다. 너무 지루하거든요. 지인들과 함께 치는 당구랑은 달라요. 뭐든지 혼자서 하는 걸 좋아하다 보니 체질에 맞았던 것 같아요. 당구가 적성인 셈이죠.

(태관) 형이랑 성격이 완전히 반대예요. 나가서 노는 것도 좋아하고 활동적인 성격이죠. 그래도 연습할 땐 다릅니다. 형만큼은 아니지만 매일 최소 6시간은 당구 연습을 해요. 그래도 형이 워낙 연습을 많이 하다 보니까 아버지가 보시기에는 부족한가 봐요. 혼도 많이 났어요.

◇용감한 형제, 세계 당구를 호령하다 

2015년 세계주니어3쿠션 선수권대회에서 김태관(오른쪽)이 우승한 뒤 활짝 웃고 있는 김행직, 김태관 형제

출처대한당구연맹 제공

실력이 상승한  계기가 있나요 

(행직) 전북 익산에 살았어요. 그런데 수원 매탄고에서 당구부를 만들면서 스카우트 제의가 들어왔죠. 당시 유일한 고등학교 당구부였어요. 망설임 없이 매탄고에 진학했어요. 그때부터 혼자 자취 생활을 했죠.

자취를 한 곳이 원룸이나 기숙사가 아니었어요. 아는 분이 당구장 안의 작은 공간에서 숙식할 수 있도록 도움을 주셨어요. 일자로 누우면 몸이 꽉 차는 비좁은 공간이었죠. 하루에 반나절 동안은 당구만 쳤어요. 죽도록 힘들었어요. 하지만 돌이켜보면 그때 실력이 많이 늘었던 것 같아요.

김행직은 "독일에서의 경험도 자신의 당구 인생에서 중요한 자산이 됐다"라고 말했다. 2011년부터 2년간 독일 프로당구 분데스리가 1부 리그 명문팀 호스터에크에서 활동했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뒤 더 넓은 무대를 경험하고 싶었어요. 대신 대학은 포기했습니다. 대학 가는 게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았거든요. 운이 좋게도 응원해주시던 지인분 중 한 명이 직접 구단을 소개해줬어요. 그게 호스터에크였죠.

당시 세계 랭킹 1위 브롬달 선수가 뛰는 팀이 바로 그곳이었습니다. 워낙 뛰어난 선수가 많아 1년 정도는 예비 선수로 뛰었어요. 가령 브롬달 선수가 개인 사정 등으로 출전을 못하면 제가 '땜빵'을 하는 식이었죠. 하지만 예비 선수로 남아있을 수만은 없잖아요. 첫 1년 동안 정말 밥만 먹고 당구만 치면서 기회를 노렸습니다. 그 결과 2년 차에는 팀의 주전 선수로 뛸 수 있었죠.

(태관) 절대 잊을 수 없는 대회가 있어요. 바로 2015년 세계주니어3쿠션 선수권 대회예요. 당구 인생의 전환점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원래는 대회 출전 자격이 안 됐어요. 그런데 다른 나라 선수들이 불참하면서 나가게 된 거예요. 그야말로 행운이었죠.

2015년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에서 우승한 후 기뻐하고 있는 김태관 선수

출처대한당구연맹 제공

세계주니어3쿠션선수권대회는 아시아 3개국에 각각 1명씩 출전 쿼터가 주어진다. 한국과 일본, 베트남이다. 이 중 베트남 선수가 불참하면서 한국의 출전 티켓이 2개로 늘어났다.


하지만 김태관은 국내 예선 5위였기 때문에 여전히 대회 본선 진출이 불가능했다. 여기서 또 운이 따랐다. 유럽 선수들 몇몇이 출전을 포기하면서 총 5명의 한국 선수가 대회에 나갈 수 있었다. 김태관이 '막차'를 탄 셈이다.

대회 중반까지는 컨디션이 안 좋았어요. 그런데 8강부터는 저도 모르게 몰입이 되더라고요. 결승에서 김준태 선수(한국체대)를 만났어요. 모두가 제가 아닌 상대방의 우승을 예상했죠. 김준태 선수는 고교 시절에 1인자였을 정도로 실력이 좋았거든요.

하지만 결과는 저의 우승이었죠. 그때 응원하던 형의 모습을 지금도 잊을 수 없어요. '돌부처'나 다름없는 그 무뚝뚝한 형이 환하게 웃더라고요. 그 이후로 더 열심히 하게 됐어요. 그야말로 자극제였던 대회였습니다.

슬럼프는 없었습니까.

(행직) 많았어요. 어떤 날은 공이 이상하게 잘 안 맞는 날이 있어요. 머릿속으로 생각한 방향과 실제로 공이 가는 방향이 다른 겁니다. 그런 경우엔 더 많은 시간을 연습했죠. 때로는 10시간 15시간씩 공을 쳤어요. 슬럼프에 빠지면 더욱 저를 몰아붙이는 거예요. 그러다 보면 다시 원래 컨디션으로 돌아오더라고요.

(태관) 저는 형이랑 반대예요. 오히려 슬럼프가 오면 아예 며칠 동안은 큐대를 잡지 않아요. 뭐가 잘못됐을까 고민하는 거죠. 다른 선수의 영상을 보거나 머릿속으로 당구를 치는 상상을 하죠. 그 이후엔 조금씩 연습을 하고요. 그러다 보면 극복이 되더라고요.

어떤 상황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것으로 유명한 김행직 선수

출처대한당구연맹 제공

◇아직은 직업 당구선수 생계 팍팍…하지만 전망 밝아 

한국에서 당구만으로 먹고살기는 어렵다. 최상위권 선수 몇 명 정도만이 연간 7000만~8000만원의 수입을 올린다. 나머지 다른 선수들은 부업을 병행하지 않으면 생계를 유지하기 어렵다.

당구선수로 먹고 살 수 있습니까 

(행직) 당구만 해서 먹고살기는 힘들어요. 상금도 다른 종목과는 큰 차이가 있습니다. 대회 출전에 들어가는 경비를 제외하면 별로 남는 것도 없는 게 현실이에요. 가령 상금이 높은 세계대회 1등 상금이 1000만원 수준입니다. 2등은 그 절반으로 뚝 떨어지고요. 보통 후원금을 받아 생활하는데 극히 일부를 제외하면 후원을 받기가 어렵잖아요. 그래서 동생이 당구 선수를 하는 게 마냥 기쁘지 않았어요. 이 길이 힘들다는 것을 누구보다도 잘 알고 있으니까요.

국내 톱클래스에 속하는 김행직은 당구선수로 '얼마나 버느냐'를 묻자 즉답을 피했다. "브롬달 같은 정상급 선수의 경우 연간 1억 정도 버는 것으로 알고 있다"고 했다. 김행직은 대기업 LG유플러스의 후원을 받고 있다. 이를 포함해 1년에 5000만원 이상의 수입을 올리는 것으로 추정된다.  

웃고 있는 천재 당구 형제 김행직, 김태관

출처jobsN

당구선수를 꿈꾸는 이들에게 조언을 한다면요 

(행직) 무작정 당구가 좋다고 시작하는 게 아니라 정말 열심히 해서 톱클래스에 들어갈 수 있을지 생각해봐야 해요. 최상위권이 아니면 먹고살기 힘든 게 이 바닥이니까요. 하지만 정말 당구를 좋아하고 잘할 자신이 있으면 전망이 좋은 직업이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노력한 만큼 보상이 주어지는 종목이니까요. 보통 30대가 되면 은퇴를 걱정하는 다른 종목과 달리 50대가 넘어도 선수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도 장점입니다.

(태관) 아직 형만큼 당구를 오래 치지는 않아서 누구에게 조언할 입장은 못 됩니다. 하지만 당구를 좋아하는 사람에게 최고의 직업이라는 말은 자신 있게 해드릴 수 있습니다. 좋아하는 일, 취미를 매일 일로 하는 거니까요. 다른 종목과 비교해보면 전반적으로 비용도 적게 듭니다. 당구를 좋아하시는 분이라면 이 직업에 도전하는 것을 추천드립니다.

 목표가 뭔가요.

(행직) 대체 불가능한 선수가 되고 싶습니다. 축구로 치면 펠레 농구로 치면 마이클 조던 같은 선수요. 당구는 오래 할수록 유리한 종목이에요. 다른 스포츠와 달리 40~50대가 전성기죠. 지금처럼만 계속 연습해서 세계에서 가장 많이 우승을 하는 선수가 되고 싶어요.

당구계의 '4대 천왕'으로 불리는 토브욘 브롬달(55·스웨덴), 프레드릭 쿠드롱(49·벨기에), 다니엘 산체스(43·스페인), 딕 야스퍼스(52·네덜란드)는 수십 년 동안 현역이다. 최근 세계 랭킹에서도 여전히 이들이 1~4위다. 쿠드롱이 1위, 야스퍼스가 2위, 산체스가 3위, 그리고 브롬달이 4위다. 브롬달은 김행직의 우상이자 롤모델이다. 김행직의 현 세계랭킹은 6위다. 

(태관) 제 목표는 랭킹 올리는 거요. 아직 성인 대회는 참가한 지가 얼마 안 돼서
국내 랭킹이 100위 정도예요. 턱없이 부족하죠. 일단 국내 대회 시상대에 오르는 게 목표예요. 꾸준히 연습해서 형만큼 잘하는 아우가 될 겁니다.

인터뷰를 마치고 '김행직당구장'을 나섰다. 문을 열고 나가기 전 당구장 안을 보자 큐대를 잡은 김행직의 모습이 아른거렸다. 처음 봤을 때 느꼈던 평범한 20대 청년 같다는 느낌은 사라졌다. 대신 세계대회를 호령하는 '선수 김행직'으로 다시 보였다.

글 jobsN 김수현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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