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데뷔 30번 무산된 12년 연습생 →25살 '트로트' 가수로

아이돌 연습생 출신 트로트 여가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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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년간 아이돌 연습생 생활
우연히 출연한 방송으로 화제
2016년 트로트로 데뷔 "매 순간이 행복"

연예인이 ‘딴따라’로 불리던 시절이 있었다. 춤추고 노래하고 연기하는 직업을 모두 싸잡아 천대하던 표현이었다.

 

그러나 요즘 연예인은 선망의 직업이다. 청소년을 대상으로 장래희망 직업을 조사하면 1위에 오르는 경우도 많다. 2017년 1월 18일 현재 대중문화 예술기획업으로 등록한 기획사는 2032개. 한국콘텐츠진흥원 관계자는 “잠재적인 연예인 지망생이 100만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고 했다.

 

치열한 경쟁을 뚫고 데뷔하기 위해 오늘도 수많은 연예인 준비생들이 땀을 흘린다. 트로트 가수 설하윤(25)도 많고 많은 ‘미생(未生)’ 중 한 명이었다. 지나온 인생의 절반인 12년을 아이돌 준비생으로 살았다. 수십번의 데뷔 실패 경험을 딛고 2016년 트로트로 전향, 마침내 가수 데뷔의 꿈을 이뤘다.


서울 광화문에서 만난 그녀는 “데뷔도 못하고 사라지는 지망생이 무수히 많다”며 “앞이 안 보였던 절망의 터널을 지난 지금이 너무 행복하다”고 했다. 

성곡미술관 앞에서 포즈를 취하고 있는 설하윤

출처jobsN

◇축가 계기로 생겨난 일생의 목표

가수는 언제부터 하고 싶었나요 

어릴 적 보아 선배님을 보면서 가수 꿈을 키웠어요. 직접적인 계기는 초등학교 5학년때 친척 결혼식 축가를 부른 것이었습니다. 당시 부른 노래가 타이타닉 주제가(my heart will go on·셀린 디옹)였어요.

원래 노래를 좋아했지만 수많은 사람 앞에서 노래를 부른 것은 그때가 처음이었습니다. 너무 즐겁고 행복하더라고요. 가수를 해야겠다고 마음 먹었습니다.

처음에 어떻게 준비했나요 

가수가 되기 위해 연습생들이 다니는 아카데미라는게 있습니다. SM이나 YG 등 대형 기획사도 아카데미를 차려요. 노래와 춤을 가르치는 수업을 진행하는 동시에 가수 오디션을 볼 수 있는 기회도 제공합니다.

일과는 이렇습니다. 아침 7시반쯤 헬스장에 갑니다. 거기서 PT(개인트레이닝)를 받아요. ‘방송용 몸매’를 만드는 거죠. 카메라에서는 실제 모습보다 1.5배 정도 뚱뚱하게 나오니까요. 닭가슴살을 먹고 다이어트를 합니다. 거기서 오전을 보내고 아카데미로 이동하는거죠.

무슨 연습을 하나요

 

헬스장에서 나온 다음에 아카데미에서 보컬 트레이닝을 받습니다. 오후에 수업을 받죠. 하루는 화성악 또 다른 날은 보컬 레슨을 배우는 식으로 진행해요. 레슨 이후엔 자체 연습을 하고요.

저녁에는 춤을 배우는 또 다른 아카데미로 이동했습니다. 유연성을 기르기 위해 다리를 찢다가 핏줄이 터지는 친구도 있었어요. 밤 10시면 하루가 끝나고 집에 도착하면 자정입니다. 일요일 빼고 일주일에 6일 동안은 매일 그렇게 했어요.

12년 동안 그렇게 살았나요

회사 오디션도 지원하고 인터넷사이트에 이력서도 수없이 넣었어요. 그러다 처음 들어간 기획사가 젤리피쉬였어요. 기획사에 들어가면 춤 노래 연습은 회사에서 전담합니다.

그러나 데뷔 직전에 무산되고 말았어요. 이후에 신생 기획사, 연기자 기획사 등 기획사를 여러 번 옮겨다녔어요. 모두 마지막은 실패로 끝났죠. 데뷔가 잘 진행되다가도 막판에 틀어지는 경우가 많았어요. 오디션에 떨어지거나 데뷔 실패한 횟수를 모두 포함하면 30번은 되는 것 같아요.

성곡미술관 카페 인근 의자에 앉은 설하윤

출처jobsN

◇나이는 들어가는데…점점 멀어져간 꿈

가수의 꿈은 점점 멀어져갔다. 대학 진학도 포기하고 오로지 꿈을 위해 달렸던 가수의 길. 20대에 접어들면 아이돌 연습생 세계에서 ‘고령자’다. 함께 연습하던 몇몇은 데뷔의 꿈을 이루기도 했다. 그녀보다 어린 10대 연습생들이 밀물처럼 치고 올라왔다.

 

그만두고 싶었던 적은 없나요 

너무 많았죠. 하루 종일 춤 노래 연습하고 다음날 일어나면 근육통 때문에 제대로 일어나지도 못해요. 토하거나 어지러워서 쓰러진 적도 있어요. 그러나 육체적인 고통은 정신적인 고통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닙니다.

아픈건 파스 붙이면 되잖아요. 하지만 점차 깊어지는 불안함은 쉽게 사라지지 않더라고요. 많이 울었어요. 될 듯 하다가 안 되니 더 쓰라리더라구요. ‘희망고문’이잖아요. 어떻게든 이겨내려고 긍정적인 생각을 하며 버텼던 시간이었습니다.

비용도 만만치 않을 것 같은데요 

아카데미의 경우 한달에 등록비가 60만원쯤 됩니다. 노래만 배우는 비용이에요. 추가로 춤을 배우거나 연기까지 공부하게 되면 돈이 배로 들죠. 학원 다니며 사교육받는 일반 학생들보다 돈이 더 들어가는 셈이에요.

기획사 들어간 이후로는 춤과 노래 수업을 제공하니까 비용은 줄어듭니다. 하지만 나이가 들면서 부모님에게 도움만 받는 것이 죄송스러웠어요. 게다가 외동딸이었거든요. 고3때부터 아르바이트로 생활비를 벌어나가기 시작했어요.

어떤 아르바이트를 했나요 

뷰티제품과 쇼핑몰 신발 액세서리 등의 모델 알바를 주로 했어요. 레스토랑과 이자카야(일본식 선술집) 서빙 PC방 알바 등을 새벽까지 한 적도 있어요. 약국에서 계산 알바를 한 적도 있고요.

알바는 주로 연습이 끝나고 밤에 했습니다. 기획사에서 데뷔가 일찌감치 무산됐는데 계약기간이 남은 경우도 있어요. 1년 단위로 계약을 하는데 기존 계약에 묶여있으니 다른 곳으로 갈 수도 없죠. 방송 출연도 기획사의 허락을 받아야만 가능하거든요. 그렇게 애매하게 묶여있을 땐 하루종일 알바만 했어요.

힘든 시기를 어떻게 버텼나요 

천상 가수인가봐요. 시련을 이겨낸 힘도 노래에서 나왔습니다. 힘들 때면 이선희 선배님의 ‘인연’을 많이 불렀어요. 팝송도 좋아해서 제시카의 ‘굿바이’ 캘리 클락슨의 ‘비코스 오브 유’도 즐겨 불렀습니다. 지금도 스트레스를 풀고 싶을 땐 집에서 클럽 음악을 틀어놓고 춤을 춰요. 그게 저만의 방법인 것 같아요.

왼쪽은 엠넷 '너목보'에 출연할 당시의 모습. 오른쪽은 데뷔 쇼케이스 공연을 펼치는 모습이다

출처방송 캡처

◇우연히 만난 트로트, 인생의 변곡점 

자포자기의 심정에 빠진 설하윤은 2015년 케이블 채널 엠넷의 ‘너목보’ 출연을 계기로 인생의 전환점을 맞았다. 너목보는 유명한 가수가 게스트로 출연, 노래 실력을 숨긴 일반인을 대상으로 음치인지 혹은 실력자인지를 맞추는 예능 프로.

 

당시 ‘불멸의 연습생 S양’이란 이름으로 방송에 출연한 설하윤은 수준급 가창력을 뽐내며 화제를 모았다. 당시 그녀의 나이는 23세였다. 

어떻게 출연했나요 

연기쪽으로 진출하라는 제의를 받았을 때였어요. 하지만 음악의 꿈을 포기할 수없었어요. 그래서 방황하던 차에 너목보에 출연 신청을 했죠. 출연할 수 있을지 없을지는 몰랐죠. 제 사연을 잘 봐주셔서 운 좋게 나갈 수 있었던 것 같아요.

방송에 나온 건 그때가 태어나서 처음이었어요. 그동안 속상해서 음악 방송을 보지도 않았거든요. 그때 방청객으로 어머니가 오셨는데 많이 우셨어요. 무대에서 노래하는 모습을 본 건 어머니도 처음이셨어요.

연습생만 12년, 무수히 실패를 겪은 설하윤의 사연이 알려지자 여러 기획사의 러브콜이 쏟아졌다. 

회사에서 먼저 연락이 온건 처음이었어요. 항상 먼저 연락하는 입장이었잖아요. 감격했죠. 유명 기획사에서도 연락이 왔어요. 그런데 생각지도 않은 곳이 있었어요. ‘곤드레만드레’를 만든 이승한 작곡가님한테 연락이 온 거예요.

아이돌 준비만 했던 설하윤에게 트로트라는 장르는 당연히 낯설었다. 더군다나 20대 중반의 트로트 여가수는 그야말로 ‘희귀 동물’ 수준이다. 

그래서 어떻게 했나요 

 

일단 만났어요. 거기서 나중에 저의 데뷔곡이 된 ‘신고할거야’를 들었는데 소름이 돋더라고요. 어릴 적에 할아버지 할머니 밑에서 자랄 때 생각이 났어요.

그때 재롱 떨어보라고 하면 장윤정 선배님의 ‘어머나’를 불렀거든요. 트로트를 하려고 이만큼 고생했나 싶더라구요. 가수 수명이 길다는 점도 매력으로 다가왔어요.

그때 트로트 전향 결심을 한건가요

네 맞습니다. 트로트 가수가 되기 위한 연습을 했어요. 꺾기나 강약 조절이 중요합니다. 유튜브 영상도 많이 봤어요. 심수봉 선생님 영상이 특히 많이 도움이 됐어요.

‘뽕끼(트로트 스타일)’가 저도 모르게 점점 스며들더군요. 쇼케이스를 했던 2016년 9월27일은 제 인생에서 잊을 수 없는 날입니다. 그날 울었어요. 노래를 부르면서 ‘드디어 데뷔를 하는구나’라는 생각에 뭉클하더라고요. 그동안 아픈 기억들도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고….

나이가 웬만한 아이돌보다 많은데 호칭은 어떻게 했나요 

가수 세계에선 나이를 불문하고 무조건 데뷔 시기로 선후배를 따져요. 저보다 어리지만 선배인 아이돌도 많죠. 음악 방송 나가면 일일이 인사를 드렸어요.

한 번은 웃지 못할 일도 있었어요. 어떤 아이돌 선배가 저를 보고 인사하더군요. 나이가 많으니까요.

설하윤 이미지컷

출처TSM 엔터테인먼트 홈페이지

◇12년 연습생이 가수 지망생에게 바치는 조언 

데뷔에 성공한 설하윤은 방송 출연과 함께 지방 행사를 뛰며 인지도를 높이고 있다. 온라인에서는 '직캠(팬이 직접 촬영한 캠코더 영상)'을 통해 젊은 세대에게도 얼굴을 알리고 있다. 그녀의 유튜브 영상은 많게는 조회수가 10만건에 달한다. 일부 온라인 커뮤니티에서는 ‘제2의 장윤정’ 혹은 ‘제2의 홍진영’이라는 말도 나온다.


트로트 가수 수입의 원천인 행사의 경우 설하윤은 몇년 선배와 비슷한 개런티를 받는다. 광고 출연 문의나 예능 프로 섭외 요청도 적지 않게 들어오고 있다. 이런 흐름이 지속된다면 소속사인 TSM엔터테인먼트는 2017년 상반기 중에 '정산'이 가능할 것으로 예상하고 있다.


가요계에서 쓰이는 정산이란 개념은 소속사가 가수에게 들인 투자비용과 이익을 계산, 손익 분기점을 넘겼을 때 소속사와 가수가 수익을 나눠 갖는 것을 뜻한다. 가수를 키우는데 만만치 않은 투자비용이 드는만큼 소속사가 완전히 투자금을 회수하기 전까지 가수에게 수익이 돌아가지 않는 것이다.


톱급 걸그룹인 AOA도 데뷔 3년만에 처음으로 정산을 한 사실이 알려지며 화제가 된 적도 있다. 업계에선 보통 데뷔 2년은 넘겨야 정산이 가능한 수준이 되는 것으로 보고 있다. 아직 데뷔 반년도 안된 설하윤은 훨씬 이른 시기에 정산을 바라보고 있는 셈이다. 

요즘은 기분이 어떤가요

 

데뷔라는 큰 짐을 털어내니 작은 것 하나 하나에 감사해지더라고요. 무대에 서는 것 자체가 행복해요. 관객들이 함께 즐기면서 박수를 쳐주시면 오히려 제가 기운을 얻어가는 것 같아요.

바로 앞에 관객이 보일 정도로 무대가 가까운 경우가 있어요. 표정까지 보이죠. 밝게 웃으시면서 세상 행복한 표정을 지으면 저도 행복해집니다. 예전을 생각해보면 요즘은 천국이나 다름없어요.

오늘, 지금도 가수를 꿈꾸며 땀을 흘리는 많은 이들이 있습니다. 

아직 데뷔 못한 친구들을 많이 알고 있어요. 정말 많아요. 어린 친구들이 연습생하는 것 보면 마음이 너무 아파요. 애틋하죠. 얼마나 힘든지 누구보다 잘 아니까요.

이런 말을 해주고 싶어요. 자기가 편하고 즐겁고 잘할 수 있는 노래를 하라고요. 단점을 고치기보다는 있는 장점을 더 살리라고요. 가령 허스키한 목소리라면 리드미컬한 노래 위주로 가는거죠.

설하윤은 “오랫동안 활동하는 가수가 되고 싶다”고 했다. 

트로트뿐만 아니라 발라드 팝송 등 다양한 장르를 소화할 수 있는 가수가 되고 싶어요. 다양한 음역대를 소화하는 ‘아리아나 그란데(미국의 여자가수·24세)’가 롤모델입니다. 꿈에 대한 열정, 노래에 대한 열정을 가슴 속에 품고 사람들에게 행복을 주는 가수가 되겠습니다.

글 jobsN 오유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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