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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억 회사 일군 20대 청년 사업가에서 대기업 신입사원으로 "괜찮다, 행복하다"

조회수 2018. 11. 5. 14:49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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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 나가던 청년 사업가에서
회사 막내 사원으로
2011년 버블티 음료 창업, 연매출 50억원
죄책감과 불안감에 대표 자리 내려 놓고
서른 살에 대기업에 신입으로 새 인생

허정용(30)씨는 잘 나가던 사업가였다. 2011년에 버블티 음료 전문점을 창업했다. 고려대 사회학과 2학년에 때였다. 개구리 알 같은 타피오카 펄(식물 '카사바' 뿌리에서 얻는 전분)이 둥둥 떠다니는 버블티는 단숨에 대세 음료로 떠올랐다. 하지만 위기관리를 하지 못해 회사가 위기에 빠졌고 그는 회사를 떠나야 했다.


시원하게 사업을 말아 먹은 그가 작년 12월 대졸 신입으로 LG생활건강에 입사했다. LG생활건강 자회사 코카콜라음료 썬키스트팀 마케터로 일하고 있다. 본사 직원수만 40명, 가맹점 50개를 거느렸던 사업가가 이제 대기업 말단사원이다. 

출처: jobsN
허정용씨

◇20대 중반에 음료사업으로 대박

대학 새내기 시절부터 사업을 해보고 싶었다. 동대문에서 ‘삼선 슬리퍼’ 100만원어치를 사서 비가 많이 오는 날 학교 앞에서 팔기도 했다. 2010년 5개월간 대만 버블티 전문점에서 아르바이트를 했다. 그때 버블티를 맛보고 ‘이거다’ 싶었다. 국내 버블티 시장을 분석해봤다. 2000년대 초 ‘버블티’ 열풍이 불었지만 당시엔 버블티를 먹는 사람이 없었다.


“그때 버블티는 버블티 흉내만 낸 음료였습니다. 또 타피오카 펄이 발암물질이란 논란이 있었어요. 원재료를 직수입하면 신뢰를 높일 수 있을 거라 생각했어요.”


2명 함께 창업하기로 했다. 23살 때였다. 아르바이트와 과외를 하며 종잣돈 3000만원을 모았다.


“거래처와 수입 절차를 알아보면서 전국에 있는 유명 음료수 가게를 돌아다녔어요. 가게가 문을 닫으면 쓰레기통을 뒤졌습니다. 어떤 재료를 쓰는지 알고 싶었습니다.” 

출처: 플리커
버블티는 밀크티 등 음료에 타피오카 펄을 넣어 만든 대만 특산 음료다. 대만 이름은 '쩐주나이차(珍珠奶茶)'.

대만에서 맛보는 것과 같은 버블티를 만들었다. 한국인 입맛에 맞춘 ‘스무디 버블티’ 등 신메뉴도 개발했다. 2011년 5월 홍대 근처에 2평짜리 공간을 빌려 9월 문을 열었다. 매장은 파스텔톤으로 아기자기하게 꾸몄다. 20~30대 여성을 중심으로 입소문이 나기 시작했다. 2년 만에 전국에 가맹점 50개를 냈다. 명동에는 3층짜리 직영점도 세웠다. 2012년 매출은 50억원. 본사 직원과 가맹점을 포함해 직원이 100여명에 달했다.


그러나 영광은 오래가지 않았다. 버블티 시장에 뛰어드는 이들이 늘었다. 경쟁이 치열해졌다. 


“‘위기 관리 능력이 부족했습니다. '대표’라는 직함이 맞지 않다고 느꼈습니다. 매출을 다시 올리기 위해 노력했지만 역부족이었습니다. 회사를 믿고 가맹계약을 맺은 점주들의 일자리를 지켜주지 못했습니다. ‘이런 능력으로는 사업은 못하겠다’고 생각했습니다.” 

출처: 허정용씨 제공
버블티 음료 사업할 때.

◇서른 살 늦깎이 취준생 고군분투기

2015년 6월 퇴사했다. "초심으로 돌아가 체계가 잘 잡힌 큰 조직에서 일을 배워야겠다 마음먹었습니다."


취업을 준비하기로 했다. 경력직을 알아봤지만 스타트업 경험을 경력으로 쳐주지 않았다. 스펙을 돌아봤다. 대학생 신분에 서른을 앞둔 나이, 사업 실패 경험이 마음에 걸렸다. 대학교 2학년 때부터 사업에만 몰두해 인턴, 자격증, 해외연수같은 스펙을 갖추지 못했다.


“사업 경험, 많은 나이 때문에 불안했습니다. ‘삶에 빈틈을 주지 말자’고 결심했습니다. 모든 취업 카페를 뒤졌고, 동기와 선후배 가리지 않고 무조건 물어봤습니다. 스터디를 너덧개 씩 했습니다. 매일 오전 오후 스터디 모임을 했습니다. ”


허씨는 스터디라면 모조리 했다. 기상 스터디(아침에 일어나면 창밖을 찍어서 메신저로 스터디원에게 보고하는 것), 운동 스터디(헬스장에서 운동하는 모습을 스터디원에게 보내주는 것)도 했다. 언론사 준비 스터디에도 참여했다. 기자나 PD를 꿈꾸는 학생들과 논술 공부를 하며 사회 흐름을 공부했다.


취업에 도전했다. 40개 회사 중 10곳이 서류전형에 붙었다. 그러나 면접에만 가면 탈락했다. 두 가지 질문에 제대로 대답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나이가 많은데 그동안 뭘 했나’, ‘대표였던 사람이 회사원 생활할 수 있겠나.’ “큰 물에서 놀고 싶었다”고 답했지만 번번이 탈락의 고배를 마셨다. 판에 박힌 답변처럼 보인 탓이었다. 불합격 소식을 들은 지인들은 “창피하지 않느냐"며 "차라리 다시 사업을 하라”고 했다.

출처: 허정용씨 제공
대학생 때 친구와 함께 학교 앞에서 '삼성슬리퍼'를 팔던 모습

◇실패한 사업 경험이 취업 스펙으로 

2016년 하반기 LG생활건강이 ‘스펙이나 학벌을 보지 않은 괴짜를 뽑겠다’며 공고를 냈다. 입사지원서 대신 PPT, 동영상, 사진 등으로 자신을 표현하도록 했다. 인턴, 대외활동, 어학연수처럼 흔한 스펙 대신 지원자의 ‘덕후 기질’ 또는 고유의 전문성만 보고 뽑겠다는 취지였다. 


허씨는 버블티를 팔아 본 경험이 있기 때문에 유리할 것이라 기대했다. 음료사업부 마케팅 직무에 입사지원을 했다. “3장짜리 PPT로 카드뉴스를 만들었습니다. 첫째 장에는 버블티 음료 사업으로 낸 성과를, 두번째 장에서는 사업하며 맞닥뜨린 위기를, 마지막 장에는 사업의 흥망성쇠를 겪으며 얻은 역량을 회사에서 어떻게 발휘할지를 표현했습니다. 디자인은 별로였지만 ‘이런 마케팅 방법도 알고 있다’는 점을 어필하고 싶었습니다.” 


1차 전형에 합격했다. 이어진 실무진 면접에서는 ‘화장품 판매 차별화 전략’이 주제로 나왔다. 깜짝 놀랐다. 


“면접관이 문제를 잘못 제출했다고 생각했습니다. 음료사업부에 지원했는데 갑자기 화장품 전략을 발표하라고 했으니까요. 알고보니 면접관이 일부러 그랬더군요. 지원자의 순발력과 기지를 보기 위해서였던 것 같아요.”

출처: LG생활건강 홈페이지 캡처
LG생활건강에서 다루고 있는 음료 제품들. 허씨는 '썬키스트' 브랜드를 담당하고 있다.

주어진 준비시간은 20분. 음료산업에 대한 지식을 발표에 연결지었다. 


“제가 좋아하는 음료는 자양강장제이지만 청년도 즐겨 마십니다. '힘내라, 청춘'과 같은 문구가 청년 고객층에게 어필했기 때문입니다. 화장품도 마케팅 문구를 ‘지친 취업준비생의 피부를 응원한다’로 바꿔보면 어떨까요. 화장품의 효능을 전달하고 브랜드 이미지도 확장할 수 있다고 확신합니다. ”


‘사업하다 회사원으로 적응 할 수 있겠나. 자네보다 나이가 어린 선배들이 많다. 하물며 부하 직원들도 많지 않았는가’는 질문에는 이렇게 대답했다.


“20대에 내딛는 한걸음과 서른에 접어든 지금 내딛는 한걸음은 다릅니다. ‘한번 해볼까’하는 식의 가벼운 마음가짐이 아닙니다. 사업했을 때보다 지금 더 간절합니다. 작은 회사였지만 CEO 경험이 있습니다. 선후배 입장을 누구보다 더 잘 이해할 수 있다고 자신합니다.”

출처: jobsN
허정용씨

결과는 최종합격. 의사결정을 하는 CEO에서 사원, 대리의 지시를 받는 신입사원이 됐다. 주위에서 ‘사업하다 직장생활하니 답답하지 않느냐’ 묻는다고 했다. 그럴 때마다 허씨는 이렇게 대답한다.


“제가 했던 사업보다 지금 다루는 코카콜라, 썬키스트 같은 브랜드의 매출이 훨씬 큽니다. 계속 개인 사업을 했다면 다뤄보지 못했을 인기 브랜드를 다루고 있습니다. 제 마음은 아직도 CEO입니다. 그때와 같은 절박한 정신으로 마케팅과 제품관리를 합니다. 이제서야 깨닫는 점도 있네요.  ‘직원들을 배려했어야 했는데’, ‘지시를 더 구체적으로 내려야 했는데···’ CEO때는 눈에 보이지 않았던 것들을 피부로 뼈저리게 느낍니다. 얼마나 반성을 많이 하는지 모릅니다.”


창업했다 실패한 이들에게 어떤 조언을 할까. “사업가는 성공했을 때 맛본 단맛을 잊기 힘들어요. 그래서 어떻게든 사업을 이어가려고 합니다. 그러나 운이 좋아 사업이 잘 풀려도 한순간에 어떻게 될지 모르는 일이더군요. 그럴 땐 오만함을 버려야 합니다. 겸손히 스스로를 돌아봐야 새출발할 수 있습니다.”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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