억대 연봉 받던 대형 로펌 변호사, 창업에 나선 이유는?

조회수 2018. 11. 6. 08: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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IT로 법률서비스 문턱 낮출래요
연봉 1억 7000만원 받던 변호사, 법률 IT 스타트업 창업
코딩 배워 직접 인공지능 시스템 개발 참여
법률서비스 기존 수수료의 5분의 1에 제공도

2001년 서울대 법학과 입학, 2006년 사법시험 합격, 2009~2015년 법무법인 율촌 변호사….


최고의 스펙을 자랑하며 잘 나가던 박효연(34) 변호사가 작년 5월 갑자기 회사에 사표를 들이 밀었다. IT벤처 사업을 하겠다는 설명에 다들 뜯어 말리려 했다. 당시 그녀의 연봉은 1억7000만원.


그러나 아무도 그녀를 말릴 수 없었다. 그녀는 지금 법률 IT 스타트업 ‘헬프미(help-me)’ 대표다. 변호사 2만명 시대. 변호사도 취업난을 겪는 상황에서 안정된 직장과 높은 연봉을 뒤로하고 창업에 나선 이유는 뭘까.


“변호사를 찾는 사람들은 ‘좋은 변호사를 만나기 어렵다’ ‘너무 비싸다’ ‘불친절하다’는 3대 고민이 있습니다. 그런데 지난 수십 년간 우리 법조계는 이 문제를 해결하지 못했어요.” 

출처: 박변호사 제공
고객과 상담 중인 박효연 변호사.

박 변호사는 IT를 이용해 이런 문제를 해결할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 비용을 낮춰 부담 없이 법률서비스를 받도록 하고, 이를 통해 새로운 수익을 창출할 수 있을 것이라 본 것이다. 그래서 회사의 사명(使命)을 ‘Help People, No Boundaries’(세상을 도와 문턱을 없앤다)로 정했다.

◇고연봉·안정적인 직장 뒤로한 채 창업 나서

창업을 결심하게 된 계기가 뭔가요?

2009년 검찰청에서 검사직무대리로 있을 때 사기 사건 피해자를 만난 적이 있어요. 법률구조공단에 도움을 청해보라고 했지만, '변호사가 아닌 직원이 상담해줘 큰 도움이 안 됐고, 피해 금액이 크지 않아 돈이 안돼 사건을 맡으려는 변호사도 찾지 못했다'고 하더라고요.

사법연수원 수료 후 대형 로펌에 들어가 만 6년을 일했지만, 변호사와 그의 도움을 필요로 하는 사람 사이가 너무 멀다는 생각이 강해졌어요. 변호사와 소비자를 가깝게 이어줄 수 있는 것은 뭘까 고민하다가 헬프미를 창업했습니다.

주위의 반응은 어땠나요? 말리는 사람도 많았을 텐데요.

멀쩡한 직장을 그만둔다고 했을 때 동료 변호사들도 ‘무슨 불만 있느냐’고 물었어요. 1년 정도만 더 회사에 있으면 지원을 받아 해외 유학을 갈 수 있었고, 미국 변호사 자격도 딸 수 있는 기회도 있었기 때문이죠.

가족들도 ‘미쳤냐’는 반응이었죠. 특히 남편의 반대가 거셌는데, 몇 달 간 끈질기게 설득하니 ‘맘대로 하라’고 하더군요. 어느 정도 헬프미가 자리를 잡았고, 법조계에서도 ‘의미 있는 일을 한다’는 반응이 조금씩 나오면서 지금은 든든한 조력자가 됐죠.

창업과정이 쉽지는 않았을 텐데요.

아무리 변호사라도 막상 회사를 세우는 일은 쉽지 않았어요. 혼자서 모든 일을 할 수 없기 때문에 함께할 사람을 찾았습니다. 연수원 동기로 ‘법률서비스 문턱을 낮춰야 한다’는 문제의식을 갖고 있던 이상민, 남기룡 변호사를 설득해 합류시켰어요.

처음엔 말도 안 되는 얘기라고 했지만, 새로운 법률서비스 분야를 개척할 수 있다고 설득했죠. ‘백수’들은 매일 도서관을 찾아 관련 책을 읽고 공부도 많이 했어요. 은행권청년창업재단 창업지원기구 디캠프(D. CAMP)의 지원을 받아 사무실 공간을 지원받으면서 본격적인 업무에 들어갔습니다.
출처: 박변호사 제공
(왼쪽부터) 남기룡 변호사, 박 변호사, 이상민 변호사

◇인공지능 이용해 5분의 1 비용으로 법률서비스 제공

헬프미는 지난해 7월 회사의 첫 서비스인 ‘법률상담 헬프미’를 내놨다. 헬프미 홈페이지에 변호사의 전문분야, 법률상담을 받았던 의뢰인의 후기 등을 올려놓고 고객이 이를 보면서 변호사를 쉽게 고를 수 있도록 했다. 영화표를 예매하듯 변호사의 시간표가 뜨면 클릭 한 번으로 상담 예약을 할 수 있는 서비스.


헬프미는 의뢰인과 변호사를 연결해줬지만, 따로 수수료를 받지 않았다. 올해 7월엔 회사가 수익을 낼 수 있는 서비스를 시작했다. ‘지급명령 헬프미’다. 지급명령은 돈을 떼인 사람이 법원에 ‘누구로부터 받을 돈이 있다’는 내용의 신청서를 제출하면 법원이 ‘돈을 주라’고 명령하는 제도다.


지급명령을 신청하려면 ‘지급명령신청서’를 작성해야 하는데, 보통 사람이 요건에 맞춰 쓰기가 쉽지 않다. 보통 지급명령서 작성하는데 100만~200만원 정도의 비용이 드는데, 헬프미는 5분의 1 정도로 비용을 확 낮췄다. 입소문이 퍼지면서 출시 5달 만에 300명이 넘게 이용했다.

어떻게 비용을 낮출 수 있었나요?

각 사건마다 구체적인 내용이 다르기 때문에 변호사나 법무사가 돈을 빌려준 상황이나 받지 못한 이유 등을 모두 듣고 요건에 맞춰 지급명령신청서를 작성해야 합니다. 인건비가 많이 들 수밖에 없는 구조입니다.

온라인으로 몇 가지 질문에 답하면 지급명령서를 만들 수 있는 인공지능(AI) 시스템을 개발해 인건비를 낮췄습니다. 아직까지 시스템이 완전히 개발되지 않아 변호사들이 부족한 부분을 채워 넣어야 하지만, 시스템이 더 정교해지면 비용을 더 낮출 수 있을 겁니다.

IT가 익숙지 않았을 텐데 어떻게 프로그램을 개발했나요

?

법률을 잘 아는 변호사가 전체적인 시스템을 설계해야 최적의 서비스를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직접 코딩을 배웠습니다. 로펌을 그만두고 한동안 낮에는 창업 준비, 밤에는 동영상 강의를 듣고, 책을 뒤져보며 전체적인 시스템을 이해하기 위해 노력했어요. 물론 실제 개발은 헬프미에 합류한 엔지니어가 하지만, 시스템 개발과정에 계속 참여하고 있습니다.

AI가 고도화되면 변호사가 직업을 잃게 되는 게 아닌가요?

개별 사건마다 사실관계가 다 다르기 때문에 AI가 변호사를 완전히 대체하기는 어렵지 않을까요? 기계적인 서류 작성은 AI가 하고, 최종 검수나 전문 상담은 변호사가 하는 식으로 효율성을 높이게 될 겁니다.
출처: 박변호사 제공
박효연 변호사

◇창업 과정에서 얻은 아이디어…다른 스타트업에도 도움

박 변호사는 올해 10월 ‘법인등기 헬프미’를 선보였다. 법인등기 서비스는 창업을 준비할 때 인연을 맺었던 스타트업들이 등기 관련 업무에 애를 먹고 있는 것을 보고 이 서비스를 구상했다.


회사 설립·운영 과정에서 등기 관련 업무를 빈번하게 하게 되지만, 갖춰야 할 서류가 많아 까다롭다. 헬프미는 지급명령 서비스와 마찬가지로 인공지능 시스템을 활용, 20만원가량이었던 기존의 수수료를 절반으로 낮췄다.

창업 과정에서 안 스타트업들도 고객이겠네요.

저희 법인 등기 서비스의 주요 고객이죠. 설립등기를 많이 필요로 하는데요, 이건 일종의 ‘출생신고’입니다. 관련 서류를 모두 갖춰서 신청해서 완료돼야 공식적으로 법인이 탄생하는 거죠. 스타트업 대표들이 등기부등본을 들고 ‘한고비를 넘겼다’고 좋아하는 모습을 보면 뿌듯합니다.

예전에 받던 연봉보다 수입이 적을 것 같은데, 후회하지는 않는지요?

올해 헬프미의 매출은 4억원 정도입니다. 물론 순이익은 그에 못 미치죠. 아직까진 로펌에서 일할 때보다 덜 버는 게 맞습니다. 하지만 법률서비스 문턱을 낮추고자 하는 꿈도 이루고, 매 분기 꾸준히 매출도 늘고 있는데 제가 후회할 필요는 없지 않을까요?

글 jobsN 안중현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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