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능 7등급→인문대→삼성전자→조종사 '흙수저 청년'의 도전기

조회수 2018. 11. 6. 10:33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꿈 없는 문과생에서 예비 조종사로 변신한 인생 도전기
반꼴찌 수준에서 삼성전자 입사, 이제 조종사로
'루저로 살지 않겠다' 다짐하고 한계와 싸워
장애 가진 청소년과 세계일주 꿈

수능 7등급, 반 석차 49명 중 43등. 꿈이 없던 청년은 인하대 프랑스문화학과에 들어가 처음 꿈을 꿨다. 체력의 한계에 도전했다. 철인3종 경기 참가, 히말라야 등정, 사하라 사막 마라톤 250㎞ 완주에 성공했다. 삼성전자에 입사했다. 사표 던지고 나와 꿈에 그리던 조종사 자격증을 땄다. 무스펙 ‘흙수저’에서 꿈을 이룬 청년 오현호(32)씨 이야기다.  


조종사가 되는 과정은 까다롭다. 대한항공이 신입 조종사를 채용하는 '항공대 조종훈련생 교육(APP) 과정'은 3단계다. 국내 3개월 교육→미국 플로리다 비행학교에서 연방항공청(FAA) 사업용 조종사 자격증 취득→제휴 맺은 미국 현지 항공사에서 15개월 부기장 실습 과정(또는 비행학교 교관 선택 가능)을 마쳐야 한다.


이후 1000시간 비행 경력을 쌓으면  대한항공 조종사 채용 전형 조건을 충족할 수 있다. 항공대 관계자는 “조건을 충족한 조종사가 대한항공에 입사하는 비율은 99%”라고 했다. 


오현호 씨는 FAA 자격증 취득하고 실습 과정에 있다. 미국 샌안토니오에 있는 화물용 항공사 아메리플라이트(Ameriflight)에서 부기장으로 일하며 비행시간을 쌓고 있다. 


꿈 없는 문과생에서 예비 조종사로 변신한 인생 도전기를 들었다.  

출처: 본인 제공
오현호씨

미국을 나는 조종사

-하루 일정이 어떻게 되나요. 

비치 크래프트(Beechcraft)라는 19인승 화물용 비행기 부기장을 맡고 있어요. 오전 6시 출근해 비행기를 점검하고, 오전 7시 샌안토니오에서 택배회사 UPS가 있는 코퍼스 크리스티로 날아갑니다. 이곳에서 화물을 싣고 텍사스 북쪽의 도시 미들랜드로 날아갑니다. 오전 10시30분쯤 도착해 화물을 내려주고, 오후 6시까지 쉽니다. 오후 6시쯤 다시 비행기 몰고 샌안토니오로 날아가 8시 30분쯤 도착해요. 화물 내리고 오후 9시 퇴근합니다.

-비행기 안에서 업무는요. 

비행기 조종과 모니터링으로 업무가 나뉩니다. 기장과 번갈아 하는데요. 모니터링은 도착지의 관제탑과 수시로 교신하는 일을 말합니다. 관제탑에 ‘휴스턴 센터~M플라잇99. 지금 2만5000피트 상공을 날고 있다’는 식으로 교신합니다. 그냥 영어도 어려워 죽겠는데 전문 영어를 쓰려다
보니 힘듭니다. 못 알아듣고 ‘뭐라고 하셨습니까'라고 되물어야 할 때도 많습니다.

-비행기 조종은 어떤가요. 

아직 내 마음대로 날지 않네요. 1초라도 눈을 팔면 8000피트에서 7500피트로 떨어집니다. 방향 틀기도 어렵습니다. 90도 틀어야 하는데, 바람 때문에 70도 밖에 못 꺾는 식이죠. 집중력이 떨어져 고도가 떨어지거나 방향을 잘못 잡으면 위험한 상황이 벌어집니다. 쉴 때도 비행상황을 머릿속에 그리며 연습해야 합니다.

-비행 조종을 하는 기분은 어떤가요.

처음엔 어안이 벙벙합니다. 두뇌 회전이 안돼요. 멀티태스킹을 해야 해서 정신이 없죠. 그래도 지금 모는 비행기를 땅에 내릴 사람은 이 세상에 저밖에 없다는 생각을 하면 뿌듯합니다.

20년 루저 인생이 변했다 

중학생 때 가정이 어려워졌다. 부모가 빚보증을 잘못 섰다. 공부에 소질이 없었다. 갑작스레 프랑스로 보내졌다. “부모님이 프랑스 지인에 부탁해 저를 보내셨어요. 프랑스 공립학교는 학비에 들지 않아 부담이 없죠. 부모님은 제가 프랑스에서 공부에 흥미를 찾길 원했습니다. 그러나 적응하지 못해 1년 만에 돌아왔어요.”


한국에서 꿈을 잃은 채 살았다. 


오토바이 타고 다니며 피자 배달 했고, 친구들과 싸움 하다 경찰서에 끌려가기도 했어요. 공부와 담을 쌓았습니다. 고3때 반 49명 중 43등이었습니다.

유일하게 갖고 있던 ‘스펙’이 프랑스어 경시대회 입상 상장이었다. 동아줄이 됐다. "인하대에서 프랑스어 특기생을 수시전형으로 4명 뽑더군요. 그런데 면접자가 저 포함해 3명. 기적처럼 합격했어요."


운좋게 대학에 입학하면서 각오를 다졌다. “20년간의 루저 인생을 버리고 끊임없이 어려운 상황에 맞서보자”고 다짐했다. 해병대에 입대했다. “주관 없이 끌려가는 성격이 바뀌었습니다."


제대 후 무조건 해외로 나가보기로 했다. 한달 150만원 주는 빌딩 보안요원 아르바이트를 6개월 해 돈을 모아 호주 워킹홀리데이를 떠났다. 시급 16달러 주는 청소부로 일하다, 한 면세점에 들어가 시급 23달러 받고 일했다. “한 달 380만원(세전)쯤 벌기도 했습니다.”


복학 후에도 도전을 멈추지 않았다. 대기업이 후원하는 유럽 여행, 철인3종경기, 전국 무전여행, 히말라야 등반, 사막 마라톤까지. 자기 의지와 싸울 수 있는 일이면 뭐든지 했다.  

-뭘 얻었나요. 

20년간 뒤처진 인생만 살아와 정말 강해지고 싶었어요. 육체와 정신이 강해지면 내가 상상하지 못한 새로운 일을 해볼 길이 열린다는 자신감을 얻었어요. 내가 마음 먹고 다가가면 다른 사람들이 기회를 준다는 사실도 깨달았어요.
출처: 본인 제공
호주 워킹홀리데이 시절 스킨스쿠버 자격증 취득 모습(왼쪽), 철인3종 경기 참가(가운데), 사막마라톤 참가(오른쪽)

삼성 그만두고 조종사에 도전하다 

2010년 삼성전자에 지원했다. 면접에서 ‘삽질정신’을 강조했다. “조직이 요구하는 사람은 똑똑한 사람이 아닙니다. ‘무식하게 잘 따라올 사람’이에요. 면접에서 제 무식함을 강조해 합격했습니다.” 중동총괄팀으로 발령받아 두바이로 떠났다.

-어떤 일을 했습니까.

신입사원이 혼자 연간 60~70억원 예산이 드는 마케팅을 담당했어요. TV, 신문 광고 등을 집행했죠. 삼성 버블세탁기가 출시될 때 레바논 호텔 빌려 ‘비키니 파티’를 열기도 했어요. 버블 세탁기를 파티장에 비치하고 버블 비누거품을 쏘며 노는 행사였죠. 호응이 좋아 매출 증대로 이어졌습니다.

-왜 삼성전자를 그만뒀습니까.

2년 반 동안 신나게 일하다 어느날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내 앞에 앉은 부장님 모습이 10년 후 내 모습이다.’ 그렇게 되고 싶지 않았습니다. 더 넓은 세상에서 자유롭게 살고 싶었습니다. 어릴 때부터 꿈꿔온 조종사에 도전하고 싶어졌습니다.

회사 나올 때 동료 선후배에게 이메일을 보냈다. ‘남자는 삶에 대망의 가능성을 품고 있어야 한다.’  

 

2013년 4년제 대졸자나 직장인이 조종사의 꿈을 안고 오는 항공대 APP과정에 지원했다. 30개월간 1억5000만원 정도의 교육비를 월별로 분납한다. 


삼성전자에서 모은 월급과 퇴직금으로 충당하다, 작년 교육비가 떨어져 교육과정을 잠시 쉬었다(APP과정은 질병, 교육비 부족 등 문제로 휴학 가능). 지


난 1월 취업 도전기를 담아 ‘부시 파일럿, 나는 길이 없는 곳으로 간다’란 책을 냈다. 인세와 강연 수입으로 남은 교육비 5000만원을 마련했다.  

-문과생이 조종사 공부하기 어렵지 않습니까. 

공대생에 비해 솔직히 이해속도가 느립니다. 시간을 더 투자해야 합니다. 쉴 때 시뮬레이터(비행기 모의 조종 훈련)를 한번이라도 더 해보고, 운동을 통해 누구보다 강한 체력을 유지합니다. 무선통신사 등 여러 자격증도 땄습니다.

-안정적인 삼성을 그만둔 것이 후회되지 않나요.

지금 통장 잔고가 ‘0’원에 가깝습니다. 그래도 후회하지 않습니다. 특정 위치에 안주하는 삶을 살면 성장 멈춥니다. 기성세대가 되는 거죠. 내면의 목소리를 따라 왔습니다. 자유롭게 하늘 나는 날만 기다립니다.
출처: 본인 제공
아메리플라이트 부기장으로 하늘을 나는 모습

-조종사로 어떤 인생을 살 계획인가요. 

대한항공 조종사에 합격하는 것이 첫째 목표입니다. 그리고 언젠가 경비행기로 세계 일주를 해보고 싶어요. 장애를 가진 청소년을 선발해 비행기 조종석에 태워줄 겁니다.

글 jobsN 이신영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