키·몸무게 묻는 이력서에 반기든 대학생

조회수 2020. 9. 29. 17:46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신체·가족 정보 묻는 이력서에 대처하는 청년들이 자세
청년 3명, 공공기관 입사지원서 조사
신체·가족 묻는 문제적 이력서
조례나 법률 제정까지 요구할 계획
키와 몸무게를 써라.
가족의 학력, 직장, 직위를 써라.

2016년 상하반기에 모집한 일반 기업의 입사지원서 항목입니다. 업무와 상관없는 신체·가족 정보를 묻고 있습니다. jobsN은 올해 상하반기에 걸쳐 이 문제를 지적했습니다. 

지난 9월 정의당 청년위원회 소속 3명이 '문제적 이력서'에 반기를 들었습니다. 부산 지역 공공기관 49곳의 입사지원서를 분석했습니다. 출생지나 가족 관계 등 업무 능력과 관련없는 항목을 요구한 기관을 발표했습니다. 이후 부산시는 산하 공공기관에 업무 관련성이 적은 항목을 삭제한 표준이력서 사용을 권고했습니다. 


나아가 이들은 기업들이 반드시 표준이력서를 쓰도록 하는 법안을 제안했습니다. 이들 중 한 명인 이영봉(21·대학생)씨와 인터뷰했습니다. 

출처: 본인제공
부산 지역 공공기관 입사지원서를 분석해 표준이력서 사용을 제안한 청년들. 왼쪽부터 김경일, 이강일, 이영봉씨

매년 지적되는 문제…청년들이 나서야

지난해 12월 부산에 사는 이영봉·김경일(25·대학생)·이강일(30·회사원)씨는 '공공기관 이력서 분석 프로젝트'를 시작했습니다. 49개 공공기관의 자체 이력서를 내려받아 업무와 관련 없는 문항을 추렸습니다. 사진을 붙이도록 한 기관은 48곳, 키·몸무게·질병 등 신체정보를 요구한 기관도 9곳이나 됐습니다. 부동산이나 세대원소득을 물어본 기관도 한 곳 있었습니다. 

왜 이력서 문제를 다루게 된거죠? 

주변에 입사지원서 쓰면서 고민하는 선배들을 많이 봤습니다. "대체 이걸 왜 써야 되냐"고 하면서도 불이익을 받을까봐 꾸역 꾸역 채워넣더군요. 고용노동부가 2007년 표준이력서를 내놨어요. 매년 채용시즌만 되면 '이력서 항목이 문제 있다'라고 하지만 변하는 게 없어서 답답했습니다. 왜 안 바뀔까 고민하다보니 차라리 직접 나서서 해보기로 했습니다.

취업을 앞두고 있는데 불이익이 걱정되진 않던가요? 

물론 취업하는데 좋지는 않을 거예요. 하지만 일단 저와 제 친구들이 맞닥뜨릴 문제이고 비슷한 처지의 사람들이 많은 만큼 적극 나서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공공기관을 대상으로 조사한 이유는 뭔가요?

채용 관련 이슈가 나오면 항상 나오는 이야기가 있습니다. '민간기업까지 강제로 바꾸라고 하기 어렵다'는 건데요, 사회 전체가 당장 바뀔 수 없다면 우선 공공기관이라도 살펴보기로 했습니다. 정부에서 만든 표준이력서이니 공공기관에서만큼은 지켜야 하지 않나 생각했습니다.

조사는 언제부터 했나요? 

지난해 연말에 기획해서 올해 1월부터 시작했습니다. 기관 홈페이지에 올려놓은 이력서를 일일이 찾았습니다. 50곳이 넘는 부산지역 공공기관 중에서 자체 입사지원서 양식을 갖춘 곳 49군데를 골랐습니다. 이력서를 출력해서 비교하는 작업을 하니 3월에야 마무리 됐습니다.

너무 익숙해 문제라 생각 못하기도 

이들은 고용노동부가 만든 표준이력서, 서울시가 세대별 노동조합 '청년유니온'과 함께 만든 표준이력서 등을 참고했습니다. 

조사해보니 어떤 점이 놀랍던가요?

가족관계나 출생지, 키·몸무게 같은 정보를 여전히 물어본다는 게 놀라웠습니다. 10여년 전부터 계속 문제가 됐던 항목인데 없어지지 않았습니다. 아울러 저희는 병역 관련 항목도 바뀌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복무기관이나 면제 정도는 기입할 수 있지만, 병과(주특기)나 군번까지 적으라는 곳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한국 현실상 병역은 기본 정보에 해당하지 않나요? 

고용노동부 표준이력서에도 병역을 마쳤는지 면제 받았는지 정도만 표시하게 돼 있습니다. 군대에서 맡았던 업무(주특기)나 최종 계급은 업무와 관련없는 항목입니다. 조기 제대 이유가 질병이나 집안사정이라면 내밀한 개인정보인데 너무 쉽게 묻고 있었습니다. 평소 그런 질문에 익숙해져 있어서 대부분 문제가 된다고 생각조차 못하는 게 아닌가 싶었습니다.
출처: 국회톡톡 캡쳐
대학생들이 표준이력서 법제화를 제안한 시민입법 플랫폼 '국회톡톡'. 누구나 자유롭게 이곳에 법안을 제안할 수 있다. 1000명이 동의버튼을 누르면 국회 소관 상임위원회 의원들에게 메일이 간다. 해당 메일을 받은 국회의원은 국회톡톡 플랫폼에 직접 댓글을 남기고, 시민들이 제안한 내용을 입법활동에 참고한다. 이미지를 클릭하면 국회톡톡으로 이동할 수 있습니다.

표준이력서 법제화를 위한 첫걸음 

이영봉씨는 올해 9월 시민입법 플랫폼인 '국회톡톡' 사이트에 '표준이력서를 법제화하자'는 제안을 했습니다. 국회톡톡(http://toktok.io/)은 누구나 법안을 만들어 제안할 수 있는 공간입니다.


해당 제안에 시민 1000명이 공감하면 관련있는 상임위원회 국회의원들에게 메일을 보냅니다. 국회의원들이 국회톡톡사이트에 직접 댓글을 달거나 법안에 참고할 수 있습니다. 


이씨의 제안에 공감한 사람은 아직 600명입니다. 더불어민주당 권미혁 의원이 응원하는 댓글을 남겼습니다. 

출처: 국회톡톡 캡쳐
권미혁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이 이영봉씨가 올린 '표준이력서 사용' 제안에 남긴 댓글

공감하는 시민들이 남긴 댓글도 70여개나 됩니다. 

이력서 사진을 찍으려 10만원이나 들었다, 이력서에 차별성 없는 내용을 넣다보니 면접도 부실해진다

해외이력서를 본 이씨는 "많이 놀랐다"고 했습니다. 

"미국 등 다른 나라 이력서를 보면 주로 어떤 활동이나 공부를 했는지를 중심으로 씁니다. 면접도 심층적일 수 밖에 없고요."
실제로 최근 미국 유학생 타일러 라쉬(서울대 정치학과 대학원)는 "인턴에 지원하다가 사진을 붙이라고 해 충격받았다"며 "미국에서는 사진을 붙이거나 성별·나이·인종 등이 드러나는 질문을 하면 고소할 수 있다"라고 말했습니다(JTBC '비정상회담')

이 씨의 앞으로 계획은 무엇일까요? 

표준이력서를 반드시 사용하도록 하자는 내용의 법안은 예전에도 몇 번이나 발의가 됐습니다. 하지만 다른 법안에 밀려 제대로 처리가 안됐습니다. 사회 분위기도 바뀔 수 있도록 지속적으로 문제 제기를 할 계획입니다.

글 jobsN 감혜림 

jobarajob@naver.com

잡아라잡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