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기업이 핵심 미래인재로 스카우트한 18세 천재

조회수 2020. 9. 29. 17: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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유명하지 않지만 묵묵히 세상을 지켜가는 이 시대의 천재 이야기
런던 국제기능올림픽 판금 금메달리스트
관련 분야 세계 1위 '기능 천재'
고1때 특성화고 입학해 기술 연마 10년째
18살에 현대중공업 입사, 25살에 현장 관리자

기업들이 가장 치열하게 경쟁하는 분야가 바로 기술이다. 기술이 없는 상품이나 서비스는 공허하다. 삼성·현대·한화 등 대기업은 고등학교 때 전국기능대회에서 우승한 학생을 뽑아 국제기능올림픽 국가대표로 키운다.


국제기능올림픽은 만 17세부터 22세 젊은이들이 모여 실력을 다루는 대회다. 동시에 기업과 국가의 기술력을 증명하는 자리다. 기업은 스포츠 못지않게 기능 올림픽 출전 선수를 적극 후원한다. 선수들은 1~2년간 기숙사에서 동고동락하며 평일·주말 구분 없이 훈련한다.


제41회 런던 국제기능올림픽 판금 직종 금메달리스트 전용재씨는 현대중공업 대표 선수 출신이다. 고3이던 2009년 입사했다. 20살에 자기 분야에서 최고로 인정받았다. 지금은 해양사업부 운반탑재팀 관리자로 일하고 있다. 25살에 7년차 직장인이다.


국제기능올림픽 금메달리스트는 상금 6720만원을 받는다. 관련 분야에서 1년 이상 지속적으로 종사하면 연 1200만원씩 연금(기능장려금)이 나온다. 남자는 군대에 가는 대신 2년10개월을 산업기능요원으로 대체 복무한다.

출처: jobsN
전용재 씨

취업 위해 시작한 기술

전씨가 2010년 졸업한 인천기계공고는 기술 특성화고 명문으로 통한다. 국제기능올림픽 대회에서 총 40개 메달을 획득했고 이중 금메달이 25개로 국내에서 가장 많다.


몸담고 있는 현대중공업은 기계·금속 분야 최강자다.

1978년 제24회 대회에 첫 출전한 이후 총 18번 참가했다. 금 27명, 은 15명, 동9명, 장려 22명 등 93명 입상자를 배출했다. 현장에는 각 분야 기능장 300여명이 활동 중이다. 

판금기술에는 언제부터 관심을 가졌나요? 

고등학교 입학을 앞두고 대학에 가도 취업이 힘들다는 뉴스를 자주 접했습니다. 전기기사인 아버지의 권유로 인천기계공고에 입학했어요. 전국대회에서 좋은 성적을 거두면 대기업에서 스카우트해요. 처음에는 취업이 목적이었죠.

국제대회 출전 계기는 무엇인가요?

고3 때 수능을 보지 않고 국가대표 후보 특별전형으로 현대중공업에 입사했습니다. 본래 꿈을 이뤘지만 3년 동안 기술을 연마한 만큼 최고라는 인정을 받고 싶었어요.

국제기능올림픽은 2년에 한번 열린다. 경쟁이 치열하다. 시∙도 대회 1∙2∙3등 선수는 그해 9월 전국대회에 출전한다. 2등까지 국가대표 후보 자격을 얻는다. 여기서 끝이 아니다.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해야 올림픽에 참가할 수 있다. 가령 2017년 아부다비 올림픽에 참여할 국가대표는 2015년 전국대회 1∙2등 선수와 2016년 1∙2등 선수가 선발전에서 겨룬다. 올림픽에는 직종별 단 한명만 참가할 수 있다.

출처: 런던 국제기능올림픽 홈페이지
2011 런던 국제기능올림픽 한국 대표팀

스포츠 올림픽 못지않은 치열한 경쟁

통상 4일에 걸쳐 24시간 동안 과제를 수행한다. 과제는 개최국과 직종에 따라 내용과 공개 시기가 다르다. 전씨가 참가한 런던 올림픽 때는 이전 대회인 캘거리 올림픽 직후 과제를 공개했다. 22시간 내 ‘야외 난로 만들기.’ 이전 대회와 동일했지만 훈련을 대충 할 순 없었다.

훈련 과정이 얼마나 힘든가요? 

새벽 6시 30분에 기상했습니다. 운동 후 7시에 아침식사를 했고 30분까지 훈련장에 모였습니다. 오전 8시부터 밤 9시 30분까지 훈련했어요. 점심∙저녁을 먹는 2시간을 빼고요. 철판을 구부리고, 접고, 꺾고, 용접한 다음 조립하는 훈련을 반복했어요. 10시에 기숙사로 돌아온 후에도 잠들지 않고 일지를 썼습니다. 오늘 배운 훈련과 개선점을 적어 기량을 발전시켰죠.
출처: jobsN
시합 때 전용재씨 모습

기계를 다루는 만큼 방심하면 큰 사고로 이어진다. 장기간 집중력이 필요하다. 근육이 혹사당해 스포츠 선수 못지않게 체력관리도 필요하다. 전씨는 혹독한 훈련 끝에 2011년 2월 국가대표 선발전에서 우승했다.


그해 9월 런던으로 출국했다. 심사위원 1명, 지도 위원 1명, 통역사 1명이 조를 이뤄 함께 움직였다.

올림픽은 어땠나요?

시합 때 사용할 장비를 전날 시험해 볼 시간이 있어요. 그런데 생전 처음 보는 장비라 당황했어요. CNC절곡기라고 철판을 구부려주는 기계였는데요. 컴퓨터 프로그래밍으로 수치를 입력해 사용하는 방식이었어요. 훈련할 때는 수동 절곡기를 썼거든요. 1시간 동안 써봐도 작동법을 몰랐어요. 다른 나라 선수들은 30분 만에 작동법을 익히고 자신 있어 했습니다. 큰일이다 싶었죠. 통역사와 하루 종일 다른 선수를 관찰하며 부랴부랴 작동법을 익혔어요. 시합 첫날 3시간 내 야외 난로 내부 프레임을 만들어야 했습니다. 훈련 때 1시간 30분 만에 끝냈던 터라 조급해하지 않았어요. 묵묵히 하던 대로 만들었습니다.
출처: jobsN
시합 때 전용재씨 모습

총 과제 시간은 22시간이었으나 전씨는 18시간을 목표로 훈련했다. 장비 때문에 당황했던 시간은 잠시. 실수 없이 마감 30분 전 작품을 완성했다. 선수 중 가장 빨랐다. 꼼꼼히 확인한 뒤 5분 전에 제출했다. 타국 선수들이 다가와 “환상적이다”, “축하한다”며 엄지를 세웠다.


대회 마지막 날인 10월 9일. 전 세계 선수와 관계자들이 모여 폐회식을 즐겼다. 전광판에 ‘Sheet Metal Technology’라는 종목명과 후보 선수 이름이 떴다. 화면이 바뀌며 태극기와 전씨의 영문 이름(YOUNG JAE JUN)이 박혔다. 고1 때부터 5년간 한 분야를 파고들어 얻은 값진 결과였다. 전씨는 “상을 받았을 때는 얼떨떨했다. 한국에 계신 부모님과 통화하다 ‘수고했다’라는 말에 눈물을 펑펑 쏟았다”며 당시를 회상했다.

메달리스트로 만족하지 않아

전씨는 현재 판금 직종 후배 양성에 힘쓰고 있다. 주말마다 판금을 다루는 특성화고에 나가 멘토 역할을 한다. 2015년 상파울루 대회에는 지도위원으로 참가했다. 전씨가 지도한 판금 선수 원현준씨는 은메달을 땄다.

후배에게 어떤 조언을 하나요?

메달을 딴 후의 삶과 직업에 대해 조언합니다. 전국 대회를 준비하는 학생들은 모두 우승을 바랍니다. 올림픽 메달리스트를는 영예로운 자리죠. 하지만 사회생활에 지나지 않아요. 우승했다고 겸손함을 잃거나 입상하지 못했다고 방황하는 친구들이 많습니다. 앞으로 ‘어떤 기능인’으로 성장할지 고민했으면 좋겠습니다.

해외에서 한국 기능인에 대한 인식은 어떤가요?

한국은 참가할 때마다 메달을 휩씁니다. '기술강국코리아'라 하죠. 견제가 심해요. 통역사와 한국말로 수다만 떨어도 ‘통역사가 전문가 아니냐’고 의심합니다. 동시에 한국 기술을 익히고 싶어 하는 국가도 많습니다. 우리나라로 전지훈련을 오거나 훈련 체계를 배워 가요. 우리나라 기능인이 해외로 나가 가르치는 사례도 많고요. 9월에 열린 전국대회에서 러시아와 베트남 선수들이 참관해 친선경기를 열기도 했습니다. 아프리카 나미비아는 우리나라 훈련∙대회 시스템을 벤치마킹했습니다.
출처: jobsN
2009 전국기능경기대회 시상식에서 전용재씨

인식이 많이 좋아졌군요

아니요. 기술은 산업 전반에 걸쳐 있지만 중요성은 깨닫지 못해요. 3D업이라 무시당하기 일쑤고요. 특히 기능올림픽을 아는 분들이 몇 없어요. 스포츠 올림픽은 선수가 입국할 때 취재 열기가 뜨겁잖아요. 우승하면 검색어에 오르내리고요. 기능인은 그렇지 않죠. 인식이 좋아야 훌륭한 인재들이 뛰어들 텐데 아쉽습니다.

3D프린터와 인공지능 출현으로 제조업이 위협받고 있는데요

아무리 기술이 발달해도 제조업이 기반입니다. 기능올림픽에 뛰어드는 인재가 많지 않아 틈새시장이라는 말을 들어요. 미래기술은 인간을 보조할 뿐 대체하리라 생각하지 않아요. 고도 지식을 지닌 인간이 필요해요. 판금 기술도 자동화됐지만 수치는 사람이 제어합니다. 드론을 예로 들어 볼게요. 운송업 일자리가 없어지리라 예상하지만 드론 조종사 등 새로운 직업이 생겼어요. 고장 나면 고쳐야 하고 조정 지식도 더 체계화해야죠.
출처: jobsN

인식을 개선하려면 어떻게 해야 할까요

우리나라 기능인은 실력에 비해 대우받지 못 합니다. 대중의 관심부터 끌어올려야 할 것 같아요. 예능 프로 ‘우리동네 예체능’처럼 연예인이 기술을 배우는 ‘예기능’ 같은 방송 혹은 영화나 드라마를 제작할 수도 있죠. 요리나 미용분야는 이런식으로 인식이 좋아졌어요. 금속분야는 그렇지 않죠. 교육 현장에서는 청소년이 재능을 깨달을 기회가 생기면 좋겠어요. 가령 그림을 잘 그리면 미술 말고 기술직도 생각할 수 있어요. 전개도를 구상한다는 점에서 미술적 요소를 갖고 있거든요.

글 jobsN 이연주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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