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습 떼는 데 5년 대신 평생 직업되는 기술

조회수 2020. 9. 29. 16:55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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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본 부부가 찾아와 "돈 달라는대로 줄테니 가르쳐달라"
46년째 명품 수선
루이비통에서 직접 찾아와 수리 맡기기도
개가 가방을 이렇게 물어뜯어놨어.

훼손된 멀버리 가방을 보며 ‘명동사’ 오창수(61) 사장이 한 말이다. 이걸 어떻게 고치냐고 묻자 거의 똑같은 가죽으로 교체한다고 했다. 보통 100만원이 넘는 멀버리 가방. 가죽이 망가져 수리 비용이 20만원이라고 했다. 평균 수리 기간은 7~10일이다.


국내 병행 수입이 꾸준히 늘고 있다. 하지만 국내에 A/S센터가 없는 등 사후 관리가 미흡해 소비자 불만이 급증했다. 정부는 명품 수선 전문 업체 12개를 ‘병행 수입 물품 A/S센터’로 지정하고, 병행 수입 물품 사후 관리를 하도록 했다. 그중 하나가 명동사다.


명동사는 40년 전에 김동주 회장(73)이 시작했다. 명동점과 강남점이 있는데, 오창수 사장이 ‘명동점’을 책임지고 있다. 김회장과 오사장의 인연은 40년이 훌쩍 넘었다. 두 사람은 1970년, 유명 수선집 ‘스타사’에서 구두 수선공과 견습생으로 만났다. 그러다 김동주 회장이 ‘명동사’라는 수선집을 인수했고, 오사장이 직원으로 일했다.

"칼로 찢은 명품 백도 고쳐줘요"

출처: jobsN
멀버리 가방을 고치고 있는 오창수 사장

명동사는 1970년대부터 손님이 끊이질 않는다. 요즘은 하루 60~70명의 손님이 방문한다. 비싼 명품을 아무 데나 맡길 수 없으니, 40년 전통이 있는 이곳으로 몰린다. 대기업 회장 사모님은 물론, 엄앵란, 박정수 등 유명인도 이곳에 방문한다.

여기는 어떤 사람들이 오나요?

90% 이상이 명품을 고치러 옵니다. 가방, 구두, 벨트, 지갑 등이죠. 옛날 루이비통 3초백이 유행할 때는 10~15%가 짝퉁이었어요. 하지만 내색하지 않고 수리합니다. 선물 받은 가방을 감정해 달라고 오는 사람도 많습니다. 근데 저는 안해줘요. 가방이 짝퉁이라고 선물한 사람 마음이 짝퉁은 아니잖아요.

사람들이 명동사를 찾는 이유는 뭐라고 생각하나요?

정확하게 하니까요. 아침마다 경리 담당이 검품을 합니다. 조금이라도 이상이 있으면 수선공에게 다시 하라고 보내요. 기분 나쁘다고 그만둔 사람도 많습니다. 하지만 꼼꼼하게 하지 않으면 명동사에 있을 수 없어요.

기술공은 얼마나 많나요?

명동점과 강남점을 합치면 50명 정도의 수선공이 있습니다. 숙련된 사람만 할 수 있는 일이라 나이가 많죠. 50~60대가 가장 많습니다. 대신 정년이 없어요. 지갑 수선공은 70대예요. 30~40대 젊은 기술자가 4명 정도 있는데, 웬만큼 일해선 수습 딱지를 떼기 힘듭니다. 5년 이상은 걸려요. 고난도 기술이 필요한 만큼, 숙련공 연봉은 대기업 부럽지 않은 수준이죠.
칼로 훼손된 프라다 가방과 수천가지의 가죽 / jobsN

수선 가격은 어느 정도인가요?

어디가 얼마나 아픈지에 따라서 다릅니다. 간단한 거는 만원에도 고치는데 심하게 훼손된 건 100만원이 넘어요. (프라다 가방을 보여주면서) 이런 건 수리비가 100만원이에요. 가죽을 완전히 갈아야 합니다.

가죽은 어디서 가지고 오나요?

가죽이나 금장 같은 부품만 찾으러 다니는 직원이 있습니다. 매년 홍콩에서 열리는 가죽 박람회에도 참여하구요. 그러다 보니 없는 가죽이 없어요. 수천 가지예요.

루이비통같이 마크를 프린팅한 가죽은요?

그건 안됩니다. 대신 중고백을 사다가 그 가죽으로 교체해줍니다.

사연 있는 가방도 있겠어요

가끔 할머니가 주신 악어 백을 가지고 오는 손녀들이 있습니다. 50년이 넘어 만지기만 해도 가죽이 뚝뚝 떨어지죠. 소장이라도 하게 해달라며 가져옵니다. 떨어진 부분의 모양대로 가죽을 잘라서 붙이는 식으로 고치죠.

90년대부터 버버리·구찌·페라가모···브랜드마다 쌓아놓고 일해

오창수 사장 / jobsN

오창수 사장은 16살 나이에 상경해 처음 수선을 배웠다. 월급 3000원을 받으며 구두를 닦거나 밑창에 풀칠하는 일만 하던 그. 지금은 명품 수선의 대가다.

김동주 회장님과는 어떻게 만나신 거예요?

같이 ‘스타사(수선집)’에서 일하던 직원이었어요. 제가 회장님한테 일을 배웠습니다. 나중에는 회장님이 3평짜리 ‘명동사’를 인수했고, 저는 군대 다녀온 후 직원으로 일했어요.

그때부터 잘됐나요?

밖으로 수십명씩 줄을 섰습니다. 하루 매출이 100만원인 날도 있었어요. 자장면이 350~500원 일 땐데 말이죠. 옛날에는 신발을 한 켤레만 가진 사람들이 많았어요. 그러니 자리에서 수선해 바로 가져갔습니다. 손님이 줄줄이 기다리고 있어도 맘에 안들면 처음부터 다시 했어요.

처음 명품을 수리할 땐 어떠셨나요

외제라고는 생각했는데 명품인 줄은 모르고 했습니다. 한 손님이 루이비통 가방을 들고 와서는 자꾸 잘 고칠 수 있냐고 물어보더라구요. 지퍼를 갈아야 했는데, 실을 풀어서 버리지 않고 썼어요. 손바느질로 구멍 그대로 4줄을 다 꿰맸습니다. 보통 미싱으로 하는데 말이죠.

시대마다 유행하는 브랜드가 있나요?

70~80년대에는 금강, 에스콰이아 같은 국내 브랜드 구두가 많았습니다. 그러다 90년대에는 발리, 테스톤이 많았어요. 그다음 수입자유화로 프라다 · 아르마니 · 페라가모 · 버버리 등 다양하게 들어오더라구요. 브랜드별로 쌓아놓고 했습니다. 수선공도 버버리 담당, 페라가모 담당 이런 식으로 나눴구요.

위기는 없었나요?

서울올림픽 때 운동화가 유행하면서 구두 고치러 오는 손님이 줄었습니다. 다행히 1990년대부터 명품 가방이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그때부터 본격적으로 명품 가방을 수선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중에는 백화점에서 수선이 필요한 고객에게 우리를 찾아가라고 하더니, 백화점 입점 제의가 왔어요. 한 5년 일했죠.

기술을 배우고 싶어 찾아오는 사람도 있나요?

있죠. 어느 날은 일본인 부부가 찾아왔어요. 돈은 달라는 대로 줄 테니 기술을 알려달라구요. 말도 잘 안통하고 번거로워서 거절했어요.

루이비통에서 러브콜, 그러나 2년 만에 명동사로 돌아가

출처: jobsN
수십년된 미싱(왼쪽), 가방 고치는 숙련공

오창수 사장은 루이비통 본사에 수리센터를 만들고, 2년 넘게 일했다. 그러다 명동사로 돌아왔다.

루이비통에서 일하셨네요.

처음에는 1~2개 고쳐보라고 하더라구요. 그러다 3~4개 맡기고. 잘하니까 본사로 들어와서 수리센터를 운영해 달라고 했어요. 홍콩 루이비통 A/S센터에서 교육받고, 한국 본사에서 2년 넘게 일했죠.

그런데 왜 나오셨나요

회장님이 루이비통 회사 앞으로 찾아왔어요. 강남점을 낼 건데, 다시 명동사로 와달라고 했죠. 루이비통에서 일하는 게 답답했어요. 흔쾌히 명동사로 가겠다고 했죠.

수선하는 일이 좋으시죠?

좋아서 하는 사람이 얼마나 되겠어요. 다만 자부심에 일하는 거죠. 옛날에 비하면 손님은 많이 줄었어요. 하지만 우리의 실력은 점점 쌓여가죠. 앞으로도 명품 수선 최고 장인이 될 거예요.

글 jobsN 김가영 인턴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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