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해외에서 성공한 한국 청년 TOP 3

조회수 2020. 9. 24. 14:1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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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국 떠나 전 세계에서 취업 셰프·창업·법조인 등 직종도 다양해
청년 해외진출 꾸준히 증가
세계각국에서 두각 드러내
한국은 좁다!

외국에서 일하는 것이 어색하지 않은 시대입니다. 해외로 눈길을 돌리는 사람이 점점 늘고 있습니다. 더불어 일찍 해외로 진출한 사람들의 이야기가 주목을 받고 있는데요.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인, 누가 있을까요? 


해외에서 성공한 한국인 TOP3를 뽑아봤습니다.

5성급 ‘팔라조 호텔’ 라스베가스·마이애미점 총괄 셰프 엄대호

mj Kim 제공

그가 일하는 팔라조 호텔은 라스베가스를 대표하는 랜드마크다. 객실 숫자는 3068실로 초대형 호텔이다. 그가 통솔하는 라스베가스 지점 직원만 250명, 손님은 하루에 1000여 명에 이른다.


성공해 보이는 그의 인생에는 숨겨진 흑역사가 있다. 8살 때 부모님이 이혼했다. 할머니 밑에서 자랐고 신문·우유 등 배달일을 닥치는 대로 했다. 초등학교 6학년 때는 길거리에서 떡도 팔아봤다. 노래방 카운터를 보거나 나이트클럽 삐끼 등 가리지 않고 일했다. 가게 구석에서 쪽잠을 자는 일도 허다했다. 


고등학생이 됐을 때 재혼한 어머니를 따라 미국에 갔다. 일식당 보조로 취업했다. 그야말로 '신의 한수'였다. 일식에 매료돼 1년 반 동안 열심히 일했다. 그의 열정에 주방장의 마음이 움직였다. 그 후 제대로 일식 요리를 배워 승승장구했다.

엄대호 제공

더 큰 무대를 찾아 이력서를 들고 라스베이거스로 이사했다. 매일 각 호텔의 식당을 찾아갔다. 

미국 땅은 아무도 먼저 밥상을 차려주지 않거든요. 될 때까지 도전해 본 거죠.

그렇게 한 호텔에서 일을 시작했다. 그곳에서 경력을 쌓자 더 많은 호텔에서 제의가 들어왔다. 이런 과정을 지나 지금의 자리까지 올라갔다고 한다. 

돈이 좋아서? 타이틀, 명예가 좋아서? 그런 걸 먼저 좇았다면 여기까지 못 왔을 거예요. 좋아하는 일을 찾고, 무조건하세요. 돈은 따라와요!

‘도지마롤’ 재일교포 김미화 사장

김미화 사장 / SBS 캡쳐

김미화씨는 원래 초등학교 교사였다. 유럽 여행을 하고 와서 교사를 그만뒀다. 대신 케익 가게를 열었다. 유럽 여러 나라에서 유명한 케잌과 디저트를 맛봤지만, 그녀 입맛에는 조금 느끼했다. 

생크림의 느끼함을 싫어하는 사람도 즐겨 먹을 수 있는 케잌을 만들어보자.

그녀의 단순한 생각이 일본을 뒤흔들었다. 일본의 도시 이름인 ‘도지마’에 착안해 만든 '도지마롤'. 일본에만 28개점, 한국 등 해외에 11개점이 만들어졌다. 연 매출은 600억원. 

도지마롤 제품 / 플리커 제공

김대표의 성공비결은 ‘정성’이다. 우유, 생크림 모든 재료는 최고급이다. 온도 관리에서부터 생크림 제조에 들어가는 공기의 양까지 관리한다. 매장 디자인, 의자 높이, 포장지 색깔도 모두 김 대표가 관리한다. 


그는 재일교포다. 아버지쪽 고향은 충청도, 외가는 경상도 출신이다. 때문에 한국에 더 좋은 품질의 디저트를 선보이고 싶다고 한다. 

브라질의 강철 여검사 김윤정

이 땅에도 정의가 있다. 뿌리는 대로 다시 돌아온다.제가 그 믿음이 없으면 검사 옷 벗고 다른 일 합니다.그 믿음이 있기에 힘들어도 참고 견뎌내죠. (김윤정 브라질 상파울루 주 검사)
김윤정 브라질 검사/ KBS 캡쳐

어느 나라나 법조계는 진입 장벽이 높은 곳이다. 더구나 언어나 문화 등 미묘한 부분까지 고려해야하기 때문에 외국인이 도전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할 정도이다.


브라질에서 최연소로 검사가 된 한국 여성 김윤정(37)씨. 


김 검사는 10살이던 1989년 브라질로 이민갔다. 봉제 공장을 운영했던 아버지의 사업은 거듭 실패했다. 집안 형편이 어려워지면서 김 검사는 불우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이대로 있다간 정말 미래가 암담하겠다.

그는 공부에 매달렸다. 화장실 갈 시간을 아끼려 물도 안 마셨다.  결국 2002년 브라질 최고 명문대 PCU 법학과를 졸업하고, 검사 임용시험에 최연소로 합격했다.


김 검사는 브라질에서 유명하다. 단순히 최연소 검사라는 타이틀 때문이 아니다. 정의를 실현하려는 그의 열정을 높이 사기 때문이다.


살인 피해자의 유가족은 살인범에게 예상보다 지나치게 낮은 형량이 선고되자 김 검사를 찾아왔다. 김 검사는 재수사를 해 적절한 형량을 받을 수 있도록 했다. 

KBS 제공

항소에 이긴 후 그녀가 말했다.

죽은 사람은 다시 돌아갈 수 없지만 그래도 정의가 있고, 누구든 바라보는 사람이 있다는 걸 알게 하는 것이 그게 제가 할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jobsN 강지수 인턴 기자

jobarajob@naver.com

jobs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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