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잘나가던 삼성맨→한국 최고 스타일리스트

조회수 2020. 9. 23. 11:31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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홈쇼핑, 예능프로그램까지 섭렵하는 신우식씨
30살에 패션공부 시작한 전직 삼성맨
광고만 1000편 이상, 국내 잡지 모두 섭렵
15년째 활동하는 핫 스타일리스트
고아라·박해진·황신혜·박소담···. 대한민국 스타라면 한번쯤 이 사람의 손을 거친다.

신우식(47) 나피스타일대표. 연예인 스타일링 뿐 아니라 수많은 패션잡지와 광고에서 의상 연출을 담당하고 있다. 홈쇼핑 방송과 예능 '렛미인' 등에 출연하며 방송인으로도익숙하다.


평생 패션 일만 했을 것 같은 그는 회사원 출신이다. 산업미술과를 전공해 1994년 삼성카드에 입사했다. 30살 때인 1999년 명예퇴직 후 일본으로 떠났다. 더 늦기 전에 패션 공부를 하기 위해서였다.   


돌아와 2001년 어시스턴트로 시작했다. 15년 동안 의상을 연출한 광고만 1000편 이상. 국내 잡지는 모두 경험했다. 


현재 배우 박소담, 황신혜, 임수향, 피아니스트 신지호 등 70여명을 전담하고 있다. 홈쇼핑방송, 사업가, 대학 교수, 팟캐스트 진행자로도 종횡무진 활약하고 있다. 그를 만나 인생과 직업에 대해 들어봤다. 

 

스타일리스트 신우식/jobsN

회사원일 때도 숨기지 못한 끼

어렸을 때부터 패션 감각이 남다르셨을 거 같아요

다르게 입기는 했어요. 파란색 스타킹이나 빨간색 셔츠를 입고 다녔거든요. '맨즈논노' 등 일본에서 수입된 패션잡지를 보고 자라서 영향을 많이 받았어요.

원래 회사원이셨다면서요?

네, 삼성카드에서 5년간 일했어요. 회사생활은 모나지 않게 잘하는 편이었어요. 표창이랑 상장도 많이 받았고요. 회식이나 체육대회에도 빠지지 않는 직원이었죠.

회사원이실 때도 독특하게 입고 다니셨나요?

그럼요. 파란색 더블 재킷이나 알 없는 뿔테안경을 쓰고 다녔어요. 체크무늬 정장도 입었고요. 각잡힌 정장을 입은 직원들 사이에서 눈에 띄었죠. 구내식당에 가면 다 쳐다봤어요. 지나가던 임원들이 '쟤 뭐야' 쳐다보곤 했죠.

회사에서 뭐라고 하지 않았나요?

전혀요. 옷으로 대놓고 트집 잡는 사람은 없었어요. 동료나 상사들에게 패션에 대한 추천도 해줬는 걸요. 당시 계열사 패션 매장에 원색 계열 옷이 있었어요. 다들 눈치보느라 못 입었는데 저는 그런 옷을 추천해줬죠.

회사를 그만두고 공부를 시작한 이유가 있나요?

97년 12월에 외환위기가 터졌잖아요. 회사 전체가 뒤숭숭했죠. 회사를 떠날 생각을 하는 동료들을 보면서 저도 미래에 대해 고민해봤어요. 10년, 20년 후를 그렸봤는데, 눈앞에 있던 과장님과 부장님이 오버랩되더라구요. 위에서 깨지지 않을까 노심초사해 하고, 똑같은 패턴을 반복하고. 그런 삶이 싫어졌어요. 회사를 나올때는 두렵기도 했지만 당시보다 나은 삶이 있으리라 믿었어요.

회사는 신씨의 사표를 쉽게 수리하지 않았다. 가족들은 그에게 '미쳤다'고 했다. 그러나 1999년 모두의 만류를 뿌리치고 미련없이 일본으로 떠났다.

하루 두끼 라면만 먹으며 버텨

일본에서는 어떻게 생활하셨나요?

그동안 모은 돈과 퇴직금을 합쳐 2000만원을 들고 갔어요. 집세와 학비로 금세 동이 났죠. 낮에는 패션학원에서 공부하고 밤에는 닥치는 대로 아르바이트를 했어요. 호텔에서 시트를 갈거나 이자카야에서 철판을 닦았어요. 식사는 제대로 챙겨먹지 못했죠. 아침은 친구들이 보내준 라면으로 해결했어요. 점심은 굶었고 저녁은 편의점에서 파는 인스턴트 우동으로 때웠어요. 6개월 만에 몸무게가 20kg 이상 빠지더라구요.
신우식씨가 스타일링한 아이유의 광고/광고화면 캡쳐

힘들었겠어요.

가장 힘들었던 시기죠. 그런데 하루하루가 행복했어요. 진부한 말이지만, 하고 싶은 공부를 하면서 앞으로 뭘 할까 상상하는 것만으로도 견뎌낼 수 있었어요.

스타일리스트 일은 언제 시작하신 건가요?

2001년 졸업 후 일본에서 진로를 고민하던 중 대학 동기 전화를 받았어요. 스타일리스트 일하던 친구였는데, 제게 한국에 들어와서 본격적으로 일해 보지 않겠나고 제안했어요. 당시 정윤기 실장님 등 남자 스타일리스트가 인기였거든요. 바로 귀국해서 동기가 있는 팀에서 어시스턴트로 일하기 시작했습니다. 3년 간 사수 밑에서 온갖 허드렛일을 다 했어요.

당시 수입은 어땠나요?

한달 10만원이요. 경력이 쌓여서 올라 봐야 30만원, 50만원 수준이에요. 웬만한 마음가짐으로는 버티기 힘들죠. 그나마 팀을 이끄는 사람을 실장이라 부르는데요. 실장이 밥이나 간식, 차비는 다 해결해주니까 버틸 수 있었어요. 바쁘니까 돈 쓸 시간이 없었던 점도 있구요.

스타일리스트는 스스로 연출해 자기 명의로 스타일을 선보이는 게 중요하다. 처음 이런 일을 할 때 '데뷔했다'고 표현한다.

정식 데뷔는 언제 하셨나요?

2003년 패션잡지 GQ의 전자제품 화보로 데뷔했어요. 자세한 건 기억이 안나네요. 청계천에서 냉장고를 찾아오는 컨셉이었던 거 같아요. 아, 핑크색 전화기도 기억나네요. 잡지 밑에 제 이름이 딱 나오는데, 정말 짜릿했죠. '스타일리스트' 하면 연예인부터 떠올리시는데, 잡지도 가장 큰 무대 중 하나예요. 잡지가 스타일리스트로서의 끼를 제대로 발산할 수 있는 곳이거든요. 요새 잡지가 외면받고 있어 안타까워요.

광고도 많이 스타일링 하셨는데, 가장 기억에 남는 광고는 뭔가요? 

2005년 김윤진씨가 출연한 커피음료 CF요. 진짜 대작이었어요. 김윤진씨가 레드카펫에서 카메라 셔터 세례를 받는 컨셉이었는데요. 배우뿐 아니라 엑스트라 200명의 의상도 다 신경써야 했어요. 일주일 넘게 동대문, 아울렛을 다 뒤지고 다녔어요. 운전을 못해서 택시타면서 들고 다녀야 했죠. 그렇게 골라서 촬영지인 중국 상해까지 그 많은 옷을 바리바리 싸들고 갔어요. 입국 심사에 걸려 시간이 지연되고, 추가요금도 지불했죠. 이민갈 때 쓰는 가방을 10개 넘게 들고 갔으니까요. 양이 많으니 정산도 힘들었어요. 촬영 후 돈 계산 하느라 정말 머리 터지는 줄 알았어요.
2005년 김윤진씨가 출연한 커피 광고 스타일링을 신우식씨가 담당했다./광고화면 캡쳐

힘들었던 기억은요?

제가 전담하는 배우가 찍는 광고 촬영이었어요. 9시 집합인데 새벽 4시에 광고주에게서 전화가 왔어요. 기존 컨셉이 마음에 안드니 바꾸겠다고요. 갑질의 전형이죠. 저는 못하겠다 했어요. 배우에게 '네게는 미안하지만 이런 대우 받고는 못하겠다'고 따로 사과했어요. 그후 감히 스타일리스트가 광고주 말을 안듣는다고 소문나 힘들었어요. 하지만 저는 당당했고 후회하지 않아요. 장기적으론 간섭 받지 않는 스타일을 만드는 계기도 됐구요.

많이 아프셨던 적이 있으셨다 들었어요

2008년 직장암 진단을 받고 수술을 했어요. 들어오는 모든 일을 거절하지 않고 다 하던 때였어요. 건강을 챙길 겨를이 없고 스트레스가 쌓여 있었죠. 그런데 어느날 직장암으로 투병하셨던 어머니가 겪은 증상이 저에게 나타난 거예요. 다행히 1기에 발견을 해서 완치했습니다.

20년은 해봐야 전문가 소리 부끄럽지 않아

홈쇼핑 방송 준비를 하는 신우식씨/jobsN

지난 7월 12일 오후 4시 신세계TV쇼핑 뷰티풀라운지 녹화 현장. 신우식 스타일리스트가 쇼호스트 김효은, 이소민, 한지원씨와 방송 준비를 하고 있다.


오늘도 신씨의 스타일은 눈길을 사로잡는다. 단정하게 빗어 올린 포마드 머리, 검은색 동그라미가 여러개 새겨진 하얀셔츠, 검정 스카프와 바지. 은색 무광구두가 화룡점정을 찍는다.


"마젠타 색깔을 가운데에 두는 게 낫지 않아?" 방송에서 판매할 가방의 위치를 이리저리 바꿔보며 세심하게 확인한다. 카메라에 빨간 불이 들어오자 한톤 높아진 목소리가 녹화장에 울려 퍼진다.

안녕하세요, 스타일리스트 신우식입니다.

정말 바쁘세요. 쉬기는 하나요?

일요일에 무조건 쉬어요. 정말 급한 촬영이 아니면요. 쉬는 날에는 음식을 만들어 먹거나 여행을 다녀요. 여행을 통해 영감을 많이 얻어요.

현재 연봉은 어느정도인가요?

음, '억대' 정도로 표현할게요. 과거에 고생했던 걸 이제 돌려받는 거 같아요. 일한지 10년 정도 됐을 때 이제 뭘 좀 알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20년 가까이 해보니 전문가 소리가 부끄럽지 않게 됐어요. 지금의 위치에 오르기까지 20년 정도 투자한 셈이죠. 그래도 100살까지 산다는데, 이 정도 투자는 아깝지 않다고 생각해요.

화려한 모습을 보고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사람들이 많아요

연예인과 일하고 멋진 옷을 입는다는 이유만으로 스타일리스트를 꿈꾸는 친구들이 많은 것 같아요. 하지만 무대 뒤는 화려하지 않아요. 겉모습만 보고 따라가지 않으면 좋겠어요.

지망생들에게 조언을 해주신다면요?

체력과 인내심이 필요해요. 새벽 4~5시에 끝나도 6시에 다시 일하러 갈 수 있어야 해요. 고객을 상대하는 직업이기 때문에 소심한 사람은 일하기 힘들어요. 또 영화를 볼 때 울줄 알면 좋겠어요. 창의적인 일을 하는 사람들은 감성스펙이 필요해요. 제가 가르치는 신한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학생들에게도 똑같이 조언해요.

감성스펙이라··· 좀 더 자세히 설명해주실 수 있나요?

제가 여행을 좋아하는 이유와 같아요. 일요일 아침 8시에 신사동 가로수길 가보셨어요? 평일에는 그렇게 붐비는 곳이 이때는 한산하거든요. 말로 설명하기 어려운데, 그 느낌이 묘해요. 간판이 다르게 보일 정도예요. 남들 가지 않는 시간대 혹은 가지 않은 곳을 경험해보세요. 그건 정말 천지창조에 가까워요. 그런 경험들이 쌓여서 감성스펙이 만들어져요.

고객의 옷을 입히는 것과 내가 옷을 입는 것의 차이점은 뭔가요? 

저는 칙칙하고 밋밋한 게 싫어요. 색감이 화려하고 역동적인 게 좋아요. 인생도 그래요. 다이나믹하고 즐겁게 살고 싶어요. 하지만 고객은 그 개성에 맞도록 멋있고 예쁘게 입혀야 해요. 어두운 색깔이라도 멋있어 보인다면 추천해요.

앞으로 꿈은 뭔가요?

제 SNS에 '죽는날까지 쇼핑하기, 평생 여행하기, 평생 사랑하기'라고 써있어요. 저는 지금 세가지를 다 하고 있어요. 감사하고 행복한 일이죠. 딱 지금처럼만 계속 살고 싶어요.

jobsN 이연주 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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