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4살 부산소녀 연매출 50억 사장님

조회수 2020. 9. 23. 11:23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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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세에 천연성분 화장품으로 창업
19살에 화장품회사 차린 김다해씨
어렸을 때 겪은 아토피→창업 아이템
해외 진출까지

회사 직원의 90%가 창업자보다 나이가 많은 벤처기업이 있다. 창업자가 회사를 설립했을 당시 나이는 만 19살. 당시 대학 중퇴생이었다. 창업 이후 5년이 지나 지난해 연 매출은 50억원, 순이익 15억원이다. 그런데 아직 만 24살이다. 화장품업체 보나쥬르(BONAJOUR)의 김다해 대표 이야기다.

천연화장품 브랜드 '보나쥬르' 김다해 대표/jobsN

올해 75억원 매출 올리겠다는 '24살 사장님' 

언니! 화장품 마케팅 계획서 좀 부탁해요.

인천 남동공단의 보나주르 사무실. 새하얀 블라우스를 입은 단발머리인 김 대표가 마케팅을 담당하는 직원 임효진(28)씨에게 이렇게 말했다.

대표님이 우리 의견을 적극 받아주고 반영해주세요. 정말 재밌고 편안하게 일하고 있어요. 아직 '애티'가 풀풀 나잖아요.

김 대표는 “직원들에게 편안하게 언니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나이가 많으신 직원분들은 저를 ‘다해씨’라 부르기도 해요”라고 말한다. 직원 10명인 소기업. 은행을 퇴직하고 물류 관리를 맡은 50대 직원도 있다. 영화 '인턴'의 실사판인 셈이다. 

젊은 나이에 본인보다 나이가 많은 직원을 여럿 고용한 그는 크림·로션·세럼 등 70여종의 천연 화장품을 개발해 온라인 쇼핑몰(bonajour.com)에서 판다.


병풀, 부활초, 깻잎 등 다양한 천연 재료로 만든 화장품으로 유분·여드름·피지 같은 피부 트러블을 겪는 여성을 공략한다. 하루 4000~5000여명이 방문하고 한 달 1만여명이 제품을 산다. 반품률은 0.2%.

경쟁이 치열한 화장품 시장에 나름 안착한 것 같아요. 화장품은 마진이 많이 남는 아이템이거든요. 좋은 재료를 얼마나 넣느냐에 따라 가격이 2000원일 수 있고 200만원이 될 수 있어요. 일반 화장품 업체는 원가 비중을 정하고 화장품을 개발해요. 그러나 저는 원가를 따지지 않고 제품부터 만들어 마케팅 담당 직원들에게 늘 혼나요. 많은 화장품업체가 마진을 50% 이상 남기지만, 우린 마진이 낮아요. 좋은 천연 재료를 한약방, 해외 학술지에서 등에서 찾아 아낌없이 넣습니다. 가격 대비 원가 비중이 90%가 넘는 제품도 있답니다.

인도네시아와 남미 시장에 진출한 보나쥬르는 올해 75억원의 매출을 낼 전망이라고 한다. 어떻게 나이 19살에 창업할 생각을 했고, 지금의 회사를 만들었을까.

김다해 대표는 직원들보다 어리지만 스스럼 없이 대한다./jobsN

아토피 피부 트러블로 얻은 화장품 지식을 창업으로

부산 영도에서 태어나고 자란 김 대표는 어릴 때부터 아토피성 피부에 여드름이 많았다. 울긋불긋한 얼굴과 코 때문에 별명이 ‘딸기코’였다. 집 근처 봉래산에 따온 피부에 좋다는 깻잎을 푹 우려 다린 물을 얼굴에 바르는 것이 일상이었다. 

어성초, 유황, 부활초 어렸을 때부터 피부에 맞는 원료를 찾아 썼거든요. 저만의 화장품 원료 ‘버킷 리스트’가 저절로 만들어졌어요. 시중에서 산 화장품은 피부에 맞지 않았거든요.

어린 시절 집이 어려운 편이었다. 7평짜리 월세방에 할머니와 살았다. 유통업을 했던 하는 부모는 전국을 돌아다녔다. 하지만 사업에 번번이 실패해 나중엔 빚이 10억원이 넘었다. 

집에 채권추심업자들이 얼마나 들이닥쳤는지 몰라요. 여기저기 압류 딱지가 붙어 있었고, 이사도 수십번이나 갔습니다. 초등학교 시절에 ‘학급 운영위원회비 내세요’라는 선생님 말씀에 항상 가슴을 졸였고요. ‘내가 과연 대학에 갈 수 있을까’ 생각에 우울했죠. 돈이 너무 무서워 저는 지금도 카드는 안 쓰고 현금만 써요. 남 전화받는 것도 안 좋아하고요.

그는 “어릴 때부터 스스로 ‘꼭 성공해 돈을 많이 벌겠다’고 주문을 외웠다”고 했다. 학교 시절 반장도 하고, 집에 굴러다니는 중고 물건을 온라인에 걸어 팔기도 했다. 고등학교 시절 인천에 이사 오면서 부모가 작은 화장품 제조공장을 차렸다.  김 대표는 “부모님이 다른 화장품업체에게 납품하는 화장품을 만들고 포장하는 일을 도우며 공부했다”고 했다. 


경기도의 한 전문대에 입학했지만 바로 자퇴했다. 안정적인 공기업 입사를 위해 4년제 대학을 가기로 한 것이다. 그러나 그때 안정적인 직장 준비 대신 도전적인 사업을 권유한 사람이 있었다. 아버지였다. 

너에게 사업가의 기질이 있다고 생각한다. 또 아토피 피부 때문에 누구보다 고생했잖아. 좋은 천연 원료에 대한 지식과 경험을 사업으로 연결해봐.

김 대표는 "보통 부모라면  대기업이나 공기업 입사를 준비하라고 했겠지만, 우리 부모님은 제가 잠재력을 발휘해보길 원하셨어요"라고 했다. 6개월 고민한 끝에 창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우리 공장의 주요 고객은 20~30대인데도 온라인 화장품 쇼핑몰을 열어 큰 성공을 거둔 젊은이들이 많았다"며 "우리 딸의 인생을 생각해보니 대기업 입사보다 훌륭한 창업자로 커나가도록 독려하는 것이 좋겠다 싶었다. (아버지 김관용씨)
보나쥬르에서 출시한 제품/jobsN

딸이 부모의 고객… 부모에게 월 5000만원씩 주는 딸 

부모는 딸에게 창업자금 1000만원을 건네면서 사업에 대한 지식을 전수했다. 당시 부모는 10억원이 넘는 개인과 회사 채무를 환율 변동에 힘입어 갚은 상태였기에 딸의 창업이 가능했다. 


김 대표는 이 돈으로 온라인 화장품 쇼핑몰을 만들었다. 무엇보다 부모가 적극적으로 화장품에 대한 노하우와 지식을 전수하고, 공장 시설과 연구개발팀을 적극 활용하도록 도왔다.


공장 연구실에서 어릴 때부터 자신이 쌓은 원료 배합 노하우를 바탕으로  공장의 화장품 연구원들과 같이 제품을 만들었다. 

연구원분들에게 '이런 제품 출시하고 싶으니까 샘플을 내달라'고 부탁을 많이 드렸죠. 화장품이 부작용이 없는지는 피부 트러블을 오래 겪어온 제 피부로 테스트를 했답니다.

그렇게 스킨, 로션 등 화장품 5종 세트를 만들었다. 2011년 판매하기 시작했다. 하지만 반응이 거의 없었다. 연 매출이 500만~600만원에 불과했다.  


창업은 했지만 막막했다. 학업에 욕심이 나서 편입시험을 준비해 국민대 신소재공학부에 입학했다. 인천에서 학교까지 하루 왕복 3~4시간을 썼다. 도서관에서 과제를 하고 나면 교정에서 노트북을 펴들고 사업에 매진했다.


친구들은 ‘화장품 테스트’ 대상이었다.

제품이 나오면 친구들에게 써보라고 줬죠. 목표는 ‘안 좋은 피드백 듣기’였어요. 귀담아들을 만한 반응이 나오면 제품을 개선했죠.

동시에 블로그를 운영하면서 화장품을 홍보했다. 블로그에 방문자가 급증하자 매출도 따라 늘었다. 하루 방문자가 2만명까지 늘었다. 인기 제품은 50만개가 팔려나가기도 했다. 

김다해 대표는 직접 화보를 찍는 등 홍보도 열심히 한다./jobsN

보나쥬르는 100% 김다해 대표 소유다. 부모의 지분은 없다. 대신 부모의 화장품공장에서 제품을 생산하고 매달 비용으로 5000만원씩 지급한다. 딸이 부모의 고객이다. 19살에 창업한 것이 후회되지는 않지만 힘든 점도 많다. 

외부 거래업체나 관계사들이 일이 안 풀리면 ‘대표가 나이가 어려서 그래’란 말부터 한다고 들었어요. 한국 사회에선 어쩔 수 없는 것 같아요.

대학교 시절에는 ‘요즘엔 개나 소나 창업해’라는 비아냥거림도 들었다. 그러나 요즘 김 대표의 친구들은 취업준비에 바쁘다. 

미팅도, 클럽도, MT도 모두 포기하고 살았어요. 예전엔 친구들이 부럽다고 생각했지만, 지금은 오히려 저를 부러워 해요.

그의 앞으로 꿈은 무엇일까? 

앞으로 사업을 확장하면서 일반인들이 화장품을 직접 체험하고 만드는 공간도 만들고 싶습니다. 직원이 많아지면 어린이집을 사내에 만드는 것이 꿈입니다.

jobsN 블로그팀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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