재벌도 찾는 75만원 수제화

조회수 2020. 9. 23. 10:5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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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대째 등산화 만드는 신발 장인 아버지와 아들
1936년부터 4대째 이어온 수제화 장인
고객의 요구에 맞춘 단 하나의 신발
80년의 노하우에 젊은 감각을 접목하고파

지하철 2호선 을지로3가역에서 청계천으로 이어지는 골목길. 이곳에 접어들면 4층짜리 건물이 하나 눈에 들어옵니다. 


'서울 미래 유산'.

허름한 건물을 특별하게 만드는 이 간판의 주인공은 좁은 계단을 따라 3층에 올라가면 나오는 작은 신발가게 '송림수제화'입니다. 


시장통에 붙어 있다고 무시해선 안됩니다. 4대째 가업을 잇고 있는 81년 전통의 수제화 업체입니다. 최고 75만원짜리 등산화와 60만원 하는 구두를 만들죠.


고객 명단이 화려합니다. 산악인 중에선 고상돈, 허영호 씨가 오랜 고객입니다. 정치인 중에는 김영삼 전 대통령, 이기붕 전 부통령이 단골이었다네요.


재계에선 현대家가 즐겨 찾는 곳으로 유명합니다. 정몽헌 전 현대그룹 회장이 생전에 애용했고, 현대자동차·현대중공업 등 계열사 사장들이 지금도 이곳을 찾고 있습니다. 수십년 째 찾아오는 외국인 고객도 많다고 하네요.

4대 임승용 씨(왼쪽)와 3대 임명형 대표 부자. 임승용 씨가 들고 있는 신발은 대한민국 최초의 수제 등산화, 임명형 대표가 들고 있는 신발은 허영호 대장이 2014년 에베레스트 등반 당시 신었던 등산화/jobsN

송림수제화의 4대 째 주인공은 올해로 25살인 임승용씨입니다. 그는 어린 시절 수제화가 싫었습니다. 학교를 마치고 돌아와 아버지인 3대 임명형 대표를 돕는 일이 많았는데요. 발 모양을 뜨기 위해 석고 틀 작업을 하는 동안 옷이 더러워지고 냄새 배는 게 싫었기 때문입니다.


“어린 시절 꿈은 카센터, 전자제품 수리 쪽이었어요. 기계 만지고 조립하는게 제일 재밌었어요. 그러다 사춘기가 지나고 고등학생이 되면서 한층 성숙한 눈으로 공정을 다시 보게 됐습니다. 신발도 기계처럼 조립하는 재미가 있겠다는 생각이 든 거죠.

자연스레 가업을 잇기로 마음 먹고 보니 길은 이미 정해져 있었습니다. 대학도 신발패션산업과로 진학했습니다. 군복무를 마치고 대학을 졸업하자 마자, 바로 가업을 잇기 시작했습니다. 지금은 매일 아버지와 함께 일하며 열심히 배우고 있죠.


송림수제화는 1936년 1대 이귀석 옹(작고)이 개업한 ‘송림화점’으로 시작했습니다. 이귀석 옹은 1996년 취임한 2대 임효성 대표(작고)의 외삼촌입니다.  이후 3대 임명형 대표, 지금의 임승용씨에 이르기까지 81년의 세월동안 맥이 끊기지 않고 있습니다. 


임명형 대표의 자부심은 대단합니다. 

"우리가 국내 최초로 등산화를 만들었다고. 50년대 후반 쯤? 그때는 쌀 몇가마니씩 줘야 등산화 한 켤레 살 수 있었어요. 저 녀석(임승용씨)은 이제 시작이죠. 아직 많이 배워야해.”

자부심은 기술에서 나옵니다. 히말라야의 험준한 산악지형과 혹독한 추위를 견디기 위해서는 등정 단계마다 다른 신발이 필요합니다. 송림수제화는 단계별 신발을 모두 만들죠.


그중 정상에 오르는 마지막 단계의 신발은 삼중화로 만듭니다. 이 신발을 사기 위해 40년 이상 연을 이어오는 허영호 대장은 젊은 시절 두 달 이상 막노동을 한 적이 있다고 합니다. 

1대 이귀석, 2대 임효성, 3대 임명형 대표(왼쪽부터) / 송림수제화 제공,jobsN

수제화라 하루 작업량 고작 7~8켤레

'발볼이 넓어 신발 사이즈를 맞추기 힘들다'는 제 이야기를 해봤습니다. "길이가 남더라도 한 두 사이즈 큰 신발을 신어야만 불편함이 없어요." 발을 훑어본 임명형 대표가 무심한 듯 이야기합니다. "발볼이 넓은게 아니고, 발이 틀어져서 신발이 불편한거야. 우리 신발은 그런 부분까지 편하게 신을 수 있게 만들어줘."


신발을 신은 채 앉아 있는데, 한눈에 파악해 버립니다. 지난 세월 수천명 이상의 발을 보며 족형을 떠온 덕분에 자연스럽게 눈에 보인다고 하네요.


족형 제작 공정 이야기에 들어가자 목소리가 커집니다. 다른 업체에서 절대 흉내낼 수 없는 핵심 공정이라고 자랑하네요. 족형 본을 뜨는 공정은 기계로 이뤄지는 경우가 일반적입니다. 하지만 송림수제화는 석고와 나무로 족형틀 뜨는 과정을 손으로 직접 합니다. 

“하루 등산화는 3~4켤레, 일반화는 2~3켤레정도 작업해요. 많아야 총 7~8켤레 정도죠. 무리하면 하루 10켤레 정도 할 수 있어요. 하지만 무리하지 않아요. 품질을 희생할 수 있기 때문이죠.”

그래서 임 대표 부자를 포함한 총 8명의 기술자가 쉴 새 없이 일해도 하루 작업량에 한계가 있죠. 한달을 기준으론 평균 100 ~ 120족 정도, 많으면 180족 가량 생산합니다.


등산화의 가격은 35만 ~ 75만원, 일반화의 가격은 40만 ~ 60만원입니다. 수제화의 특성상 계절마다 성수기·비성수기가 나뉩니다. 여름에는 주문량이 줄고, 겨울에는 주문량이 늘어나는 식입니다.

일반 제품과 똑같은 공정을 통해 만든 초대형 등산화. 사이즈 맞는 주인이 나타나면 바로 선물하겠다고 한다 /jobsN

브랜드 아이덴티티 정립이 꿈

가게 운영을 놓고 간혹 부자간 충돌이 벌어진다고 합니다. 아들은 젊은 감각에 맞춰 디자인에 변화를 주고 싶은데, 아버지가 완강히 반대하는 거죠. 편안함과 내구성을 지키려면 디자인이 다채로워지기 어렵다는 게 아버지 설명입니다.


실제 송림수제화는 81년간 편안함과 튼튼함을 가장 강조해 왔습니다. 그래서 일반 스니커즈화 같은 디자인을 구현하기 힘들다고 합니다. 일반 스니커즈화 같이 얇게 만들면 내구성이 현저히 떨어지기 때문이죠.


“일본인 고객이 한 번 구매하더니, 한국에 올 때마다 여행용 트렁크 한가득 우리 신발을 들고 와요. A/S 받을거 받고, 새로 맞출거 맞추고. 그렇게 20년 넘었어요. 캐나다에서 수백만원 들여 장애인용 특수화를 맞춰오셨던 분이 우연히 찾아오셨는데, 우리 신발이 더 편하다고 하더라고요. 그분도 그렇게 20년째에요.”

아버지는 디자인 때문에 이런 고객을 포기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아들 임승용 씨의 생각은 다릅니다.

“그런 고객들의 힘으로 지금까지 이어왔던 것은 맞아요. 계속 손님 발을 더 편하게 만들어주고 싶어요. 하지만 디자인 문제도 계속 고민하고 연구해서 개선시켜야죠. 우리 신발을 신고 나가면, 보기만 해도 우리 신발인 걸 알 수 있도록 브랜드 정체성을 확립하고 싶어요. 궁극적으로 디자인과 편안함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다 잡아야죠. 그게 저에게 주어진 과제가 아닐까요?”

부자 간 의견차이는 어떻게 결론날까요? 어쨌든 큰 결과는 변함이 없을 것 같습니다. 이런 열정이 식지 않는 한 100년, 200년 이상 가는 기업이 될 것 같은 느낌입니다.


jobsN 금상준 인턴기자

jobarajob@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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