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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온한 일상을 깨뜨려야 하는 이유

오바마와 빌게이츠를 뒤흔든 '이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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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 작성일자2016.12.27. | 30,827 읽음
“진지하게 하나 물어보자. 한 쪽에는 못되고 병든 하찮은 노파가 하나 있어. 모두에게 해만 끼치는 존재일 뿐만 아니라, 내일 죽는다고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은 노파지. 다른 한 쪽에는 도움을 받지 못해 죽어가는 무수히 많은 젊은 사람이 있어. 노파를 죽이고 그 돈을 빼앗아서 무수히 많은 가난한 사람을 도울 수 있다면 어떻게 해야 할까.”

학창 시절 한 번쯤 읽어봤을, 아니면 들어봤을, 아니면 어디 국어 문제집 지문에서라도 스쳐 지나가봤을 구절이다. 내일 죽는다 해도 전혀 이상하지 않을 만큼 나이가 많을뿐더러 평생 주변 사람들을 괴롭히기만 했던 악독한 노파를, 주인공이 정말로 죽이는 소설. 그렇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이다.


누군가에게는 제목만 아는 소설이고, 누군가에게는 등장인물들의 기나긴 이름에 식겁해 내던진 소설일 수도 있다. 그런데 또 누군가에게는 ‘대한민국 고딩’의 무기력한 일상을 산산조각 낸 소설이기도 하다.

겨울방학의 절반 가까이를 《죄와 벌》을 끼고 살았다. 처음에는 몇 장을 넘기기가 힘들었다. 등장인물들의 이름이 복잡하고, 무슨 상황인지도 파악할 수 없었다. 긴 문장에 익숙하지 않았던 까닭에 집중이 되지 않았다. (...) 마지막 페이지를 덮었을 때는 많은 것이 달라져 있었다. 나의 무기력한 일상은 산산조각 났다. 무한의 시간이 천천히 흐르는 칠흑 같은 내 영혼의 골방엔 깊은 균열이 생겼다. 빛이 새어 들어왔다. 나는 무엇인가 잘못 건드렸다는 걸 강하게 느꼈다.

-채사장, 《열한 계단》 中

50명 중 40등을 했던 한 소년이 어느 날 문득 태어나 처음으로 책을 읽었다. 그리고 처음으로 질문을 품었다. 지금까지 한 번도 의심해보지 않았던 법, 도덕, 관습, 종교를 넘어설 수 있는 사람, 그러니까 세상에 ‘죄’를 지어도 되는 사람이 있단 말인가. 소년의 일상을 깨뜨린 이 책은 그의 첫 번째 계단이었고, 이후 열 개의 계단을 더 밟아 그 소년은 밀리언셀러 작가 채사장이 되었다.

출처 : 채사장, 《열한 계단》

지금 우리에게 큰 사랑을 받는 사람들에게는 이처럼 인생을 뒤흔든 한 권의 책이 있었다.

미국 최초의 흑인 대통령이자 임기가 한 달도 안 남은 지금도 56%의 지지율을 자랑하는 버락 오바마. 그는 2012년 정계와 문화계 인사 13명에게 자유의 메달을 수여하면서 젊은 시절 자신에게 큰 영감을 줬던 한 소설에 대해 언급했다. 미국 시민으로서 국가의 이익을 위해 노력하거나 각 분야에서 탁월한 성취를 남긴 사람들에게 주는 자유의 메달은 미국 내 가장 명예로운 상으로 꼽힌다.

버락 오바마 미국 대통령과 소설가 토니 모리슨.

오바마 대통령은 “젊었을 때 토니 모리슨의 소설 《솔로몬의 노래》를 읽으며 글 쓰는 방법뿐 아니라 어떤 사람이 될지, 어떤 생각을 해야 할지 알게 됐다”고 말했다. 1977년 발표된 이 소설은 자수성가한 흑인 가문에서 유복하게 자라난 청년이 흑인이라는 이유만으로 험난한 삶을 살아야만 하는 주변 사람들을 통해 자신의 정체성을 찾아가는 성장 과정을 그렸다.  

다독가로 유명한 빌 게이츠에게 큰 영향을 끼친 책은 헤밍웨이의 《노인과 바다》다. 거대한 물고기와 사투를 벌이다 뼈만 남은 잔해를 끌고 돌아오는 늙은 어부의 짧은 이야기 속에, 비극적인 삶 속에서도 빛나는 인간의 용기와 인내를 보여주는 소설이다. 결과물과 관계없이, 삶에 맞서는 불굴의 의지 자체가 얼마나 숭고한지 빌 게이츠는 이 책을 통해 깨달았던 걸까. 이미 11조가 훌쩍 넘는 자신의 배당금을 자선활동에 쓴 것도 모자라, 죽은 뒤 79조원에 이르는 유산마저 기부하기로 결정한 것을 보면 말이다.

사람은 파멸당할 수는 있을지언정 패배하진 않아.
-어니스트 헤밍웨이, 《노인과 바다》 中

《노인과 바다》를 들고 독서 캠페인 포스터에 등장한 빌 게이츠.

미국 추리소설의 거장 스티븐 킹은 자신의 ‘인생 책’에 추천사를 쓰기도 했다. 스티븐 킹 같은 작가들은 추천사를 써달라는 부탁을 하루에 50번은 받을 것이고, 그 또한 추천사 청탁에 쉽게 응하는 사람은 아니다.


그가 흔쾌히 추천사를 써내려간 책은 윌리엄 골딩의 소설 《파리대왕》이다. 무인도에 고립되어 야만 상태에 놓인 소년들을 통해 권력에 대한 인간의 욕망을 우화적으로 그려낸 이 작품은 스티븐 킹의 오랜 사랑이었다. 킹의 소설에는 ‘캐슬록’이라는 가상의 마을이 자주 등장하는데 캐슬록은 《파리대왕》의 주인공 잭이 요새를 만드는 곳의 이름이다.

독서 캠페인에 동참한 스티븐 킹.

출처 : 미국공포작가협회

당신은 지금의 당신을 있게 한 첫 번째 책을 기억하는가. 내가 믿던 세계를 무너뜨린 첫 번째 책이 무엇인지 떠올릴 수 있는가.


채사장은 다음과 같이 기억한다.

당신도 기억하고 있을 거라 생각한다. 세계가 무너지는 것을 처음으로 목도했을 때를 말이다. 견고하던 세계에 균열이 가고 삶의 방향을 크게 바꿔야만 했던 시점을. 나는 비교적 정확히 기억하고 있다. 그건 고등학교 2학년이 끝나가던 겨울방학, 《죄와 벌》 의 마지막 장을 덮었을 때다. 나의 첫 번째 계단은 문학이었다.

-채사장, 《열한 계단》 中

한 사람의 성장은 평온한 일상 속에서는 이루어지기 어렵다. 성장은 자신을 깨뜨리는 것에서 시작된다. 그리고 일생이라는 제한된 시간 속에서 자신을 깨뜨리는 데 가장 좋은 외부의 힘은 나를 불편하게 하는 오래된 지혜, 즉 책이다.


어쩌면 의식하지 못해도,

우리는 모두 단 한 권의 책을 건너

지금 여기까지 왔을지도 모른다.

지적 대화를 위한 팟캐스트 방송.
채사장, 이덕실, 김도인, 깡선생의 <지대넓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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