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원조 프로 불편러,
모든 것을 의심하다

궤변론자들의 논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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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 작성일자2017.02.08. | 6,275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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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는 왜 이렇게 불편한 게 많아?

예민한 성격, 트집 잡는 사람들이 등장할 때마다 프로 불편러라는 수식어가 자연스럽게 따라붙는다. 이들은 상황에 따라 적확한 지적을 한 사람으로 공감받기도, 쓸데없는 고집을 피우는 사람으로 취급받기도 한다. 프로 불편러라는 말은 물론 최근에 생긴 신조어지만 끊임없이 의심과 불만을 제기한 원조 불편러는 고대부터 존재했으니, 바로 소피스트다.

<아테네 학당>, 라파엘로, 1509-1510년

소피스트는 고대 그리스 아테네 정치판에 막대한 영향을 끼친 사람들로, 자신들이 가진 웅변술과 철학을 접목해 정치가와 공직자들에게 수사학, 즉 말싸움 잘하는 법을 가르쳤다. 그들은 회의주의적인 관점으로 진리와 정의에 대해 끊임없는 의심과 불확실성을 제기했다.


소피스트는 흔히 ‘궤변론자’로 번역된다. 궤변詭辯은 참이 아닌 것을 참처럼, 도리에 맞지 않는 것을 맞는 것처럼 꾸밈을 뜻한다. 사전적 의미대로라면 소피스트들은 권모술수에 능했던 사기꾼이었다는 것인데, 아테네 민주정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음에도 그들이 ‘궤변론자’라고 불린 이유는 무엇일까?


진리라는 말이 불편해


소피스트들은 사람들이 진리라고 여기는 것들을 '진짜 진리라고 확신할 수 있는가'에 대해 의심했다. 객관적·절대적 진리는 존재하지 않으며 사람에 따라 주관적이거나 상대적인 진리만이 존재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주장은 정치에서 다원주의, 상대주의 측면에서 수용할 만한 이야기였으나, 소피스트들은 이러한 점을 악용했다.


주관적인 내 진리를 다른 사람들에게 관철시키는 방법을 본인들이 가르칠 수 있다며 언변술이 필요한 정치인들을 꼬셨다. 그들은 정치인들을 대상으로 비싼 수업료를 받으며 기세등등하기 시작했고, 바로 이 지점을 소크라테스는 불편해했다. 소피스트와 소크라테스, 불편러들의 대화가 담긴 글이 바로 플라톤의 『고르기아스』 다.

<소크라테스의 죽음>, 자크루이 다비드, 1787년

싫은 소리하는 쟤네들이 불편해


고대 그리스는 명제가 쏟아지던 시기였다. 열심히 탐구한 끝에 내린 명제에 소피스트가 계속해서 불편을 제기한다면? 지식인들에게 소피스트들의 회의주의적인 관점은 당연히 배척하고 싶은 대상이었을 것이다. 당시 지식인들은 소피스트들이 가지고 있던 극단적 회의주의를 지적하면서, 그들이야말로 잘못된 인식을 참이라고 주장하고 있으며 때에 따라 유리한 점을 내세우는 편향된 사람들이라고 비판했다.


싫은 소리만 골라할 수밖에 없었던 그들의 철학은 때에 따라 유리하게 자신을 대변한다는 의미의 ‘궤변’으로 규정되었고, 소크라테스와 플라톤 학파가 거대 담론으로 자리 잡게 되면서 자연스레 몰락했다. 의심과 회의가 부정적인 것으로 간주되면서 종교의 교리를 의심하는 사람도, 과학의 진리를 의심하는 사람도 점점 줄어들었다.


프로 불편러의 양면

소피스트들은 ‘싫은 소리한다’는 명목으로 기성 지식인들에게 고소를 당해 사형당하거나 유배되었다. 아테네 정치에서, 다양한 목소리를 인정하는 민주정에서 그런 일이 발생했다니 좀 의아하기도 하다. 물론 그들이 개인적 이윤을 극대화하기 위해 수사학을 악용한 측면을 부정할 수는 없지만, 소피스트가 탐구한 인간 본질에 대한 문제와 객관·주관에 대한 심도 깊은 질문들은 ‘궤변’이라는 단어에 함몰되어서는 안 될 것이다.

불편러를 다루는 방식은 또 다른 불편을 낳기도 한다. 몇몇 방송은 시청자들에게 쓴 소리를 듣기도.

출처 : tVN SNL 시즌7 AOMG편

채사장은 우리가 기본적으로 '고정된 진리는 존재하지 않는다'는 상대주의와 여기서 파생되는 다원주의 담론을 불편해 한다고 지적한다. 합의와 절충이 아닌 '옳고 그름의 문제'로 다루려고 하는 것은 우리 안에 진리가 실재한다는 이념이 견고하게 자리하고 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이에 대해 독실은 ‘진리가 없다’는 무의미한 규정 보다는 ‘알 수 없다’는 규정이 더 발전적이라고 반박한다.


이에 이어 진리가 없다면 현상에 대한 설명 자체가 아예 불가능하다는 김도인의 이야기를 통해 궤변론자들이 뜬구름 잡는 이들이라고 생각될 수도 있다. 하지만 깡선생의 말처럼 자신이 맞다고 맹신한 자들의 문제를 상기해보자. 회의주의적 관점은 개인과 사회에게 냉정한 반성의 기회를 제공하는 중요한 역할을 수행한다. ‘진리라고 믿는 것이 진짜 진리인가’ 의심하는 것부터 시작해보자. 2시간의 논쟁 끝에 패널들이 내린 답이기도 하다.

언변술에 능했으나 잘못된 과신으로 세계를 위험에 빠트린 희대의 독재자, 아돌프 히틀러.

내가 지지하는 후보, 내가 찍은 정당, 내가 지켜온 신념을 지나치게 확신하는 사람들이 어떤 일들을 저질렀는지 우리는 지금까지 잘 봐왔다. 확신했던 것들에 대해 모두 불편러가 되어보자. 더 이상 불편러를 불편해하지 않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야말로, 좋은 논쟁이 필요한 우리에게 가장 필요한 밑거름일 것이다.

지적 대화를 위한 팟캐스트 방송.
채사장, 이덕실, 김도인, 깡선생의 <지대넓얕>

지대넓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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