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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직 문을 여는 이들만이 살아남는다

현실의 벽을 곱씹게 하는 세 개의 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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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 작성일자2016.11.04. | 15,561 읽음

[지대넓얕 AS] 지대넓얕에서 화제가 됐던 방송을 애프터서비스 해드립니다.

※ 이 글에는 다량의 스포일러가 포함되어 있으니 아직 영화를 보지 않은 분들은 주의 바랍니다.



새하얀 눈을 뚫고 앞을 향해가는 기차. 기차는 기상 이변으로 꽁꽁 얼어붙은 세계에서 간신히 살아남은 이들을 태운 채 달린다. 배고프고 추운 꼬리 칸과 호화로움의 절정인 앞쪽 칸으로 구성된 열차가 달린지도 어언 17년. 빈민굴 같은 꼬리 칸의 해방과 엔진 쟁취를 부르짖으며 꼬리 칸의 캡틴인 커티스가 혁명의 불꽃을 피운다.



어찌 현실을 대입해보지 않을 수 있겠는가.

"누구도 신발을 머리 위에 쓰진 않아. 신발은 그러라고 만든 게 아니니까. 애초부터 자리는 정해져 있어. 신발은 발밑에, 모자는 머리 위에. (…) 내 자리는 앞쪽 칸, 너희 자리는 꼬리 칸. 발 주제에 모자를 쓰겠다는 건 성역을 침범하겠다는 얘기지. 자기 주제를 알고 자기 자리를 지킨다, 내 발밑에서."

출처 : Daum 영화 - 설국열차

돈도 없는 주제에 열차에서 먹여살려주면 감사한 줄 알고 이 폭압적인 질서에 따라라, 가 바로 이 열차의 순리다. 이 열차 안에서 사람은 숫자일 뿐, 희생될 꼬리 칸의 사람들은 많은 혜택을 누리는 앞쪽 칸에서 결정한다. 왕권을 유지하려는 집단과 의회를 설립하려는 집단, 산업혁명 이후 부르주아와 프롤레타리아의 대립, 건물주와 세입자, 고용주와 비정규직. 익숙한 대립이 문을 열 때마다 펼쳐진다.

엔진으로 가기 위한 문 출처 : Youtube - 설국열차 캡처

엔진으로 가기 위해서는 굳건히 닫힌 문을 열어야 하고, 문을 열기 위해서는 기차 보안설계자 남궁민수(a.k.a 냄쿵민수)가 필요하다. 그들은 남궁민수에게 환각제인 크로놀을 주는 조건으로 문을 열어달라고 부탁한다. 그렇게 하나씩 문이 열리고, 그들은 앞쪽 칸이 만들어 놓은 시스템에 맞서 싸운다. 꼬리 칸 사람들도, 기차도, 앞으로 향한다. 예카테리나 다리 위 전투를 기점으로 앞쪽 칸의 실상을 마주하게 된다. 아이들에게 ‘위인 윌포드’를 주입시키는 학교 칸, 마약과 술로 가득한 향락의 칸을 지나 엔진의 문 앞에 선다. 이곳이 끝판왕이라고 생각했을 관객들에게, 이 문은 전혀 다른 방식으로 열린다.  

희망을 걸어 잠근 문 출처 : Daum 영화 - 설국열차

꼬리 칸의 지도자 커티스는 지금까지 문을 열어온 일이 혁명이라고 생각했지만, 이것이 모두 '빅브라더 윌포드'의 큰 그림 안에 있었다는 걸 절감한다. 기차에서 벌어지는 모든 일들은 기차를 유지시키기 위한 수단이었으며, 꼬리 칸의 선동 또한 적정 인원 유지를 위한 방법이었음을 깨닫고 커티스는 좌절한다. 이때 윌포드는 자신의 후계자가 되어줄 것을 제안하고, 커티스의 표정은 이 시스템의 필수 불가결함을 느낀 것처럼 허망해 보인다. 그때 요나가 달려와 바닥으로 난 문을 열어 타냐가 그토록 보고파했던 아이인 티미를 보여준다. 사람을 부품처럼 여기는 윌포드를 부정하고 커티스는 내놓지 못했던 팔을 잘라 티미가 문을 열고 나올 수 있도록 돕는다.  

남궁민수와 커티스는 엔진을 앞두고 서로 다른 문으로 향한다. 커티스는 엔진으로, 남궁민수는 그 밖으로. 그들은 서로 다른 상대를 마주한 채 치열하게 싸운다. 하지만 그들의 싸움은 결국 하나의 지점에서 만나게 된다. 이 더러운 기차 안에서 아이들을 지키는 것, 약자의 희생을 강요하는 시스템에서 벗어나는 것. 엔진은 멈추고 기차는 전복된다. 요나와 티미만 살아남은 듯하다. 그들은 기차에서 나와 새하얀 눈밭을 걷는다. 많은 사람이 언급했지만 한 번 더 적자면 요나는 성경 속 인물로 물고기 뱃속에서 살아나온 선지자, 예언자다. 구약성경 《요나》에 그의 이야기가 상세히 나오는데, 이 텍스트 또한 열린 결말로 끝난다는 게 의미심장하다. 영화의 결말과 《요나》의 마지막 질문이 주는 메시지는 비슷하지 않을까 짐작해본다.

결말이 너무 절망적이었다는 패널들의 이야기와는 다르게 봉준호는 영화를 통해 희망을 말하고 싶었다고 한다. 모두가 죽고 아이 둘이 살아남은 결말에서 희망의 메시지를 찾는 것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하지만 ‘엔진만 있으면 돼’라는 자본주의 기차를 깨부수고 탈출한 이들을 희망 아닌 다른 것으로 해석할 수 있을까? 잘 모르겠다. 이런 의심이 자꾸 든다면 열차를 진두지휘했던 감독의 말을 듣고 안도하길 바란다.

“저는 기본적으로 오해가 편해요. 서로 마주보고 진실을 말하는 장면을 쓰면 제가 부담스러워요. (…) 오해와 헛소동! 그것에 늘 끌려왔던 것 같고. 그런데 사회 내지는 세상은 그 모든 게 헛소동이라는 걸 인정하고 싶어 하지 않는 거지요.”
<씨네21> 800호, 2011년 5월

출처 : Daum 영화 - 설국열차

신발 주제에 모자를 꿈꾸었던 사람의 이야기, 내가 사는 세상 그 밖을 고민한 사람의 이야기, 다음 세대에게 어떤 세계를 물려줘야할지 생각한 사람의 이야기. 어떠한 이야기로 읽더라도 인류에 대한 고민으로 돌아오게 되는 영화. 다가오는 찬 겨울에 뜨겁게 고민하며 에피소드와 영화를 달려보자. 해석의 문은 어떻게 열리더라도 상관없다.

지적 대화를 위한 팟캐스트 방송.
채사장, 이독실, 김도인, 깡선생의 <지대넓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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