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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구는 잊으라 하고,
누구는 맞서라 한다

트라우마에 대처하는 두 가지 자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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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대넓얕 작성일자2016.08.18. | 48,581 읽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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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워지지 않는 상처가 있다.


시간이 꽤 흘렀는데 조금도 희미해지지 않는다. 떠올리는 것만으로도 소스라쳐, 입 밖으로 꺼낸다는 건 상상조차 할 수 없다. 이런 기억은 건드리고 싶지 않다. 밟지 않도록, 조심조심. 터지면 어떻게 될지 모르는 마음속 지뢰.


바로 ‘트라우마(trauma)’다.

원래는 의학용어로 생명에 위협을 느낄 만한 큰 충격을 받아 생긴 정신적 상처를 뜻한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라고도 한다. 이 개념은 전쟁 후 심리적 후유증을 앓는 군인들을 치료하는 과정에서 규정됐다. 1차 대전 당시는 ‘탄환 충격’, 2차 대전 중에는 ‘전투 신경증’ 등으로 불리다가 베트남전을 계기로 본격적인 연구의 대상이 됐다.

트라우마 장애를 갖고 있는 이들은 상처가 발생했던 과거에 묶여 현재 일어나는 일을 객관적으로 바라보지 못한다. 과거의 상처가 뇌에 착각을 일으키기 때문이다. 


부모에게 버림받았거나 학교에서 따돌림을 당했거나 교통사고로 큰 부상을 입는 등의 안 좋은 사건은 ‘이미 지나간 과거’의 일이다. 하지만 트라우마 장애가 생기면 지금도 위급한 상황이라고 판단(착각)한 뇌가 신체를 비상체제로 전환시킨다. 심장이 쿵쾅거리고, 현기증이 나고, 호흡이 답답해진다. 수십 년 전의 그때와 똑같은 고통이 찾아오는 것이다.

피하느냐 맞서느냐

“상처에서 벗어나려면
상처를 똑바로 바라봐야 해.”

사람들은 이야기한다. 결국은 아픈 기억을 꺼내 당당히 맞서야 한다고. 그러나 그렇게 단순한 문제는 아니다. 마시멜로 테스트로 유명한 미국의 심리학자 월터 미셸(Walter Mischel)은 “섣불리 트라우마와 대면하는 건 상태를 악화시킬 수도 있다”고 경고하기도 했다. 무작정 과거를 끄집어내는 게 아니라 충분히 준비된 때에 조심스럽게 상처와 마주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상처와 대면할 시간을 마냥 미룰 순 없다. 떠올리는 게 고통스럽다고 해서, 언제 터질지 모르는 마음속 지뢰를 영원히 내버려둘 순 없지 않은가. 트라우마와 관련된 모든 상황을 회피하려는 태도를 심리학에서는 ‘해리’라고 한다. 나의 상처를 떠올리게 하는 이야기가 나올 때 우리는 반사적으로 대꾸한다.

“그 얘기 꺼내지도 마.”

해리는 일시적 위안은 될 수 있을지 모르지만 근본적으로 문제를 해결해주지는 못한다. 트라우마와 자신을 분리하려다가, 인격 자체가 분리되어 2개 이상의 자아가 생기기도 한다. 지킬 박사와 하이드 같은 이중인격(Dual personality)이 대표적이다.  

누구는 잊으라 하고, 누구는 맞서라 한다.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나간 일’이라는 주문


전쟁의 트라우마를 가진 사람은 전쟁이 끝나고 이제는 길거리가 안전한데도 집 밖으로 나가기 두려워한다. 자동차 사고의 충격이 있는 사람은 그냥 주차돼 있는 차를 봐도 불안에 휩싸인다. 학창시절에 따돌림을 받았던 사람은 공공장소에 사람들이 모여 있기만 해도 자신을 욕하는 소리가 들린다.


이미 지나간 일을 지울 수는 없다. 그러나 그것이 ‘지나간 일’임을 인지할 수는 있다. 이는 트라우마에서 벗어나고자 할 때 가장 중요한 부분이다. 전문가들은 상처받았다는 사실을 우선 받아들이는 태도가 치유의 시작이라고 말한다.

‘10년 전 상처를 입었다.’

그런 다음, 과거의 상처로 고통을 느낄 때 자신의 감정과 신체감각이 어떻게 변하는지 관찰한다.

‘그때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

‘숨이 막힐 것 같은 기분’은 과거에 느꼈지만 트라우마에 사로잡힌 뇌는 이를 ‘현재진행형’으로 착각하고 있다. 따라서 의식적으로, 또 반복적으로 이를 바로잡아준다.

‘숨이 막힐 것 같았던 것은 지나간 일이다.’

한 번에 되는 일은 아니지만 거창한 계획이 필요한 것도 아니다. 큰 비용과 시간을 들일 필요도 없다. 다만, 바쁜 일상을 잠시 멈추고 홀로 있을 시간이 필요하다. 고요하게 자신의 내면을 구석구석 살펴보는 훈련이다. 꾸준하게, 마치 주문을 외듯.

지적 대화를 위한 팟캐스트 방송.

채사장, 이덕실, 김도인, 깡선생의 <지대넓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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