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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순실의 시대'에 살고 있는 건가

[앵커브리핑] 상실의 시대, 아니 '순실의 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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누군가가 인터넷에 이런 사진을
한 장 올렸습니다.

'순실의 시대'

무라카미 하루키의 소설 제목, '상실의 시대' 를 패러디한 사진.

가슴 왼 편이 뻥 뚫린 젊은이의 모습은 상실의 시대조차 아닌 누군가의 시대를 살게 된 우리의 모습을 그대로 보여주고 있는 것만 같습니다.

그러고 보면 하루키의 대표작인 이 소설의 원 제목은 이것이 아니었습니다.

'노르웨이의 숲'. 비틀스의 노래에서 가져왔다는 소설의 제목은 우리나라에서만은 유독 신통한 반응을 얻지 못했습니다. 사실 비틀스 노래 속 가사는 노르웨이의 숲도 아니고 노르웨이산 가구, 혹은 목재라는 것이 더 정확한 해석이라고들 하죠.

아무튼 1989년. 한 출판사가 '상실의 시대' 라는 이름을 붙여 다시 출간한 이후에야 책은 독자들의 선택을 받기 시작했고 첫 해에만 무려 30만 권의 판매를 기록했습니다.

왜 그랬을까요, '상실' 이라는 단어가 우리의 마음을 울린 이유는 무엇이었을까요.

당시 마흔을 앞두고 있었던 작가 하루키가 전하려 했던 상실은 문득 아련함을 잃어버린 젊은이가 느낀 상실의 마음이었다지만 독자들은 그 안에서 각자 자신이 잃어버린 무언가 결핍을 공유하며 다친 마음을 치료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독자들은 그 안에서 각자 자신이 잃어버린 무언가 결핍을 공유하며 다친 마음을 치료했던 것은 아니었을까.

우리는 어떤 나라에서 살고 있는가.

모두의 마음은 며칠사이 분노보다는 차라리 자괴에 아팠습니다.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인지, 영문도 모를 상처를 입어야 했고 그 상처가 다시금 긁혀나가 또 다른 생채기가 생겨버린.. 무어라 말로는 표현하기조차 어려운 '상실의 시대'.

최고권력자는 고개를 숙였다지만 그 사과를 바라보며 느껴야 했던 또 다른 갈증과 상실감..

많은 언론들은 어제와 다른 말들을 쏟아내기 시작하지만 그 갈증과 상실감을 과연 채워줄 수 있을까..

무엇이 맞고 무엇이 그렇지 않은 것인가. 그 혼돈의 시간 속에서 우리가 의지하고 마음 둘 곳은 과연 어디인가.

그렇게 가슴 왼 편이 휑하니 뚫려버린 것만 같은.. '상실의 시대'. 아니 '순실의 시대'.

오늘(26일)의 앵커브리핑이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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