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00억대 작품을 그린 화가의 죽음의 진실

조회수 2020. 7. 23. 18: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출처: 출처: Mark Rothko with his daughter Kate, early 1950s © 2016 Kate Rothko Prizel und Christopher Rothko
쓸쓸한 죽음
1970년 2월 25일. 유명 화가의 조수로부터 걸려온 한 통의 신고전화. 모호한 색과 불분명한 경계를 통해 인간의 기본적인 감정을 표현한 색면화의 대표 화가, 마크 로스코. 바로 그의 자살을 알리는 전화였다.
출처: 출처: © 1998 Kate Rothko Prizel und Christopher Rothko Untitled, 1970
예술가, 마크로스코

평소 예술품이 그저 부자들의 소유물에 지나지 않는 걸 비난해온 그. 예술가로서 자존심을 갖고 예술성을 지키려 노력했다. 그에 보답하듯 예술성뿐만 아니라 상업적 성공까지 이뤄내지만 이로 인해 정체성을 잃는 것 같아 혼란스러워한다. 죽기전까지 우울증을 앓고 있던 걸로 알려진 마크로스코. 그런 심경변화에 따라 1950년대에 들어서부터 무채색을 이용한 작품을 여럿 그린다. 강렬한 레드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주로 검은색과 낮은 채도의 색이 커다란 캔버스에 사용됐다.

출처: 출처: © 1998 Kate Rothko Prizel und Christopher Rothko Untitled, 1947
밝혀진 진실

자살로 치부하기에 미심쩍은 점들이 있었다. 로스코의 사망 소식이 언론에 알려지기 전에 미리 지인들에게 소식을 알린 사람이 있었는데, 그는 로스코 재단의 공동 디렉터였던 테오도르스 스타모스다. 그는 로스코의 조수가 사망을 발견하기 전에 이미 지인들에게 사망 소식을 알렸으며, 원인도 손목을 그은 것이 아닌 약물중독이라는 잘못된 정보를 알렸다. 또한 로스코의 지인들은 그가 우울증을 겪고 있긴 했지만, 평소 성격으로 비쳐보아 유서를 남기지 않고 자살했다는 걸 믿을 수 없었다고 한다.

죽기전까지 우울증을 앓고 있던 걸로 알려진 마크로스코. 그런 심경변화에 따라 1950년대에 들어서부터 무채색을 이용한 작품을 여럿 그린다. 강렬한 레드를 사용하기도 했지만 주로 검은색과 낮은 채도의 색이 커다란 캔버스에 사용됐다.

출처: 출처: © 1998 Kate Rothko Prizel und Christopher Rothko Untitled, 1969
예술은 비극성과 무한성을 지닌다.

많은 대중을 감동시키는 작품을 남긴 마크 로스코. 그는 비참한 마지막을 맞이했지만, 우리를 영원히 감동시킬 무한함은 남기지 않았을까.


Contributing editor 박이나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
타임톡beta

해당 콘텐츠의 타임톡 서비스는
제공사 정책에 따라 제공되지 않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