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플레이리스트 음악의 등장, 백예린 음악의 의미

조회수 2021. 2. 9. 12:07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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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람들이 백예린의 음악을 좋아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백예린 음악과 함께 ‘플레이리스트 음악의 등장’이라는 의미에 대해 짚어봤다. 

음악 평론가이자 MBC 라디오 <배철수의 음악캠프> 작가인 배순탁은 백예린의 <tellusboutyourself>(2020) 앨범을 소개하며 이런 문장을 썼다. “이것은 플레이리스트를 따로 짜거나, 찾을 필요가 없는 음악이다. 굳이 유튜브에 접속하지 않아도 이 앨범을 플레이하면 그 이상의 만족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플레이리스트를 다시 짤 필요가 없는 음악, 즉 플레이리스트의 일부가 아닌 플레이리스트 그 자체가 되어버린 앨범이라는 의미다.


플레이리스트가 앨범이 되었다는 건 어떤 의미인가. 명확한 정의를 내리기 전에, 이 논의를 본격적인 대중공론의 장으로 끌고 온 스트리밍 시대 이야기를 하지 않을 수 없다. 대부분의 사람은 이제 음악을 소유하려 하지 않는다. 일상의 소음처럼 그저 흐르게 둘 뿐이다. 유니버설이나 워너 뮤직 그룹, 소니 뮤직 엔터테인먼트 같은 대형 음반사들의 이름은 흐릿한 기억 속으로 사라지고, 그 자리는 스포티파이나 애플뮤직, 유튜브의 이름이 대신 채웠다. 플레이리스트는 그 혼돈의 한 가운데 급격하게 성장했다.


사실 플레이리스트는 새로운 음악 소비 개념은 아니다. 라디오가 보급되면서 누군가 의지를 갖고 재구성한 음악 리스트란 언제나 대중 곁에 있었다. 클럽의 ‘디제잉’, 매체는 사라지고 명칭만 남은 ‘믹스테이프’까지 모두 그 영향 아래에 있다. 스트리밍 시대의 플레이리스트가 다른 점은 그것이 ‘개인’과 ‘취향’의 가치가 중시되는 시대의 급격한 변화와 호응하고 있다는 점이다. 기하급수적으로 불어나고 있는 새로운 음악과 인터넷 발달과 함께 부쩍 가벼워진 음악 소비 환경 변화, 그와 동시에 이루어진 전문가의 권위 하락은 시대가 낸 균열에 플레이리스트를 채워 넣기에 더없이 좋은 환경이었다. 지금의 대중이 원하는 건 ‘죽기 전에 들어야 할 명곡 1001’이 아닌 ‘어쩐지 외로운 밤 내 마음 같은 노래 25곡’이나 ‘헤어진 다음 날 울지 않게 도와줄 10곡’인 것이다. 

여기에서 다시, 백예린이 등장한다. 백예린의 <tellusboutyourself>, 그리고 그로부터 딱 1년 전 발매된 <Every letter I sent you.>(2019)는 백예린이 그렇게 변한 지금 이 시대에 더없이 잘 어울리는 아이콘이라는 증거였다. 실제로 백예린은 한국 대중음악 시장에서 최근 수년간 ‘아래로부터의 혁명’이라는 단어가 가장 잘 어울리는 음악가였다. K-팝 3대 기획사로 유명한 JYP 소속의 싱어송라이터라는 다소 애매한 위치에서 출발했지만, 그가 2015년 발표한 첫 미니앨범의 타이틀곡 ‘우주를 건너’는 ‘느낌 있는 음악’ 좀 듣는다’는 이들의 입소문을 탄 스테디셀러가 되었다. 물과 공기처럼 언제 어떤 장르와 붙여도 자연스럽게 녹아드는 그의 음악은 2010년대 중반부터 유튜브나 음원 사이트를 통해 서서히 세를 불려 나가기 시작한 음악 플레이리스트의 단골 손님이 되었다. 팝이라는 느슨한 장르 영역 안에 자신만의 실키하고 우아한 분위기를 담는데 탁월한 재능을 가진 백예린의 목소리가 시대의 부름에 응한 것이다.


JYP를 떠나 자신의 레이블 블루바이닐을 연 백예린의 행보는 거침이 없었다. 총 열여덟 곡을 두 장의 CD에 담은 첫 정규앨범 <Every letter I sent you.>는 부드럽고 센치한 어쿠스틱 팝과 R&B를 중심으로 그의 목소리가 가진 색깔과 향기를 꾹꾹 눌러 담았다. 2집 <tellusboutyourself>는 이제는 시그니처가 되어 버린 백예린식 팝 R&B를 바탕으로 하우스(‘0415’, ‘HOMESWEETHOME’), 레트로 팝(‘I’ll be your family!’), 드림팝(‘‘I am not your ocean anymore’) 등 다채로운 영역을 넘나드는 장르 실험의 장이었다.

이 모두를 하나로 묶는 건 마치 따뜻한 물 속을 유영하는 듯한 백예린의 목소리 단 하나다. ‘네가 지금 뭘 듣는지 신경 쓰지 마, 그냥 느껴봐’라며 손을 내미는 그의 노래들은 마치 하나의 제목 아래 질서정연하게 늘어선 플레이리스트의 선곡 목록처럼 통일성에서 오는 안정감과 새로운 발견의 기쁨을 동시에 전한다. 대부분 영어로 이뤄진 노랫말은 노래와 노래 사이의 경계, 아티스트의 뚜렷한 자아의 영역을 흐릿하게 만들어주는 중요한 매개다. 수채화처럼 번져 나가는 목소리에 안겨 백예린과 그의 동료들이 곱게 모아놓은 취향의 플레이리스트가 흐른다. 그 음악 타래는 곧 그를 사랑한 이들의 취향으로 영역을 확장하며 그 어떤 것으로도 대체 불가능한 궁극의 취향 저격 플레이리스트로 거듭난다. 백예린의 목소리를 중심으로 강고하게 다져진 취향의 연대 안에서, 서사와 작가주의를 기둥으로 삼았던 ‘앨범’의 어법은 어느새 과거의 유산이 되어간다. 백예린이라는 음악가의 존재감, 나아가 앨범의 의미까지 되새겨보게 되는 흥미로운 흐름이다.


Writer 김윤하(음악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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