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컴백, '마이카 마이홈'시대

조회수 2021. 3. 1.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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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년 전과 뭐가 달라?

2020년은 그야말로 비즈니스 풍토가 극적으로 변한 한 해로 꼽힌다. 골목 상권은 처참히 무너졌고, 배달 및 플랫폼 사업과 같은 비대면 산업만 홀로 고공비행한다. 최근 10년간 산업계를 뒤흔든 각종 비즈니스 모델이 그 생존 여부를 놓고 최종 시험대에 올라선 모양새. 이에 따라 각 비즈니스 판(산업) 위에서 바삐 움직이던 사람들의 일상도 크게 요동치고 있다.

펀드 조성 때마다 100조 이상의 자금을 운용하는 소프트뱅크그룹의 손정의 회장. 그가 미래 핵심 산업으로 선택했던 '공유경제'도 시험대에 올라간 비즈니스 모델 중의 하나다. 그 위세는 한때 인공지능(AI)과 함께 4차 산업혁명기의 대표주자로 손꼽힐 만큼 대단했다. 하지만 2010년대 말로 접어들면서 각종 편법 논란과 기존 이해관계자와의 갈등, 최고경영자(CEO)의 모럴 해저드 등이 겹치며 그 열기는 급격히 식어갔다.

손정의 소프트뱅크 회장(왼쪽)은 우버(맨 오른쪽, 트래비스 캘러닉 전 우버 CEO)와 위워크(가운데)에 대규모 자금을 투자하며 공유경제가 새로운 경제 패러다임으로 부상할 것이라고 예견한 바 있다.

공유경제는 팬데믹 시국에 내리막길을 지나 아예 벼랑 끝으로 내몰리는 모습이다. 공유경제의 얼굴, 승차 공유 서비스를 제공하는 우버는 3월 20% 인력 감축을 발표했다. 공유 오피스 '위워크' 또한 파산의 기로에 서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미국의 저명한 경제학자인 제러미 리프킨이 2000년 저서 '소유의 종말'을 통해 내다본 '소유권 시대의 폐막'은 이로써 경로 이탈의 수순을 밟는 듯하다(그가 내다본 접속의 시대는 유효하다).

대신에 자신만의 안전한 통근 수단, 생산적인 공간을 마련하려는 '마이카 마이홈'의 라이프스타일이 다시금 트렌드로 떠오른다. 공유경제의 대척점에 있는 삶의 양식이다. 1980~90년대 고도 경제성장기를 대표하던 그 표어가 30여 년 만에 다른 태생 목적에 의해 다시 주목받고 있는 것. 나만의 청정구역을 찾아 나선 이 시대 '불안 사회'의 구성원들이 자산의 공유가 아닌 소유가 생존을 위한 어쩔 수 없는 조건이라고 보는 것이다.

내 차로 안전한 통근, 국내 여행

최근에는 부인이 남편을 직장까지 데려다주고 자신은 집으로 돌아오는 세칭 '키스 앤드 라이드(Kiss and ride) 시스템도 조금씩 확산되는 추세. 주부 신정숙 씨(48·강남구 대치동)는 "아침에 버스편이 없는 아들과 남편을 위해 기사 노릇을 한다"라고 밝히고 남편 직장 부근에 주차할 마땅한 공간이 없어 남편을 시내까지 데려다주고 집으로 돌아온다고 말했다.

위 글은 요즘 상황을 묘사한 기사 스케치가 아니다. 30년도 더 이전인, 1988년 12월 동아일보 지면에 실린 기사(6일자, 마이카족 지하철 출근 늘고 있다)이다. 자가용(영업용, 관용차 제외) 차가 이제 막 174만 대 등록된, 마이카 시대 초창기의 모습이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그때보다 자가용 수가 12배 이상으로 커진(국토교통부, 2019년 기준, 2191만 대) 지금의 통근·통학 모습과도 일부 겹친다. 이렇게 키스 앤 라이드를 하게 된 이유가 안전에 초점을 맞추고 있다는 게 차이 날 뿐이다.

대중교통을 이용하다가 코로나가 확산하던 올 하반기부터 자가용으로 출·퇴근하기 시작한 직장인 박모 씨(34·여·은평구). 감염 우려에 그가 최근 출퇴근 수단으로 선택한 자가용은 이전까진 주로 주말 나들이용으로 쓰였다. 교통 체증에 대중교통을 이용하는 편이 빠르기도 하거니와 직장 근처 주자창 비용 부담도 만만치 않아서였다. 박 씨는 "처음에는 돈이 더 나가고 이전보다 빨리 집에서 출발해야하는 번거로움이 있었지만, 마음이 더 편해(안전해) 자가용 출퇴근을 시작했다. 이제는 자가용 통근의 적인 저녁 술자리도 없어지고, 외부 미팅도 사라지면서 이 방식이 더 편해졌다"라고 말했다.

서울시(열린데이터 광장)에 따르면 2019년 기준 서울에서 통근·통학 시 이용하는 교통수단 중 승용차만 쓰는 사람들의 비중은 20.5%이다. 이외 버스 이용률은 27.1%, 지하철은 8.9%, 버스와 지하철을 동시에 이용하는 비중은 23.1%로 전체의 60%에 가깝다. 올해 교통수단별 통합 자료는 아직 집계되지 않아 직전 연도와 직접 비교는 어렵지만, 버스나 지하철 이용 현황이 예년에 비해 떨어진다는 점을 개별 통계로 확인할 수 있어 자가용 이용자 비중의 증가를 충분히 추정해 볼 수 있다.

출처: 티머니 통계자료

자가용의 여행 플랫폼으로의 변용도 감지된다. 이는 해외여행이 어려워지고 사회적 거리 두기의 여파로 영화관이나 체육시설 등 여가활동을 즐길만한 도심 다중이용시설을 이용할 수 없게 되자 반대 급부로 나타나게 된 현상이다. 특히 차는 더 이상 이동 수단에만 그치는 게 아니라 한적한 외지에서 숙식을 해결하고 영화나 음악을 감상하는, 그 안에 있는 것 자체만으로도 또 다른 여행이 되는 그런 공간으로 탈바꿈하고 있다.

유튜브 콘텐츠의 단골 소재가 된 '차박 열풍'이 이를 가장 잘 대변한다. 차박에 용이한 대형 스포츠유틸리티차량(SUV)의 선전과 차박 전용 캠핑 용품의 급증, 캠핑카 개조 산업의 활성화는 기존 여행, 레저를 뛰어넘어 완성차 업체의 비즈니스 구조에도 영향을 미친다. 국내 완성차 5개사(현대차, 기아차, 르노삼성, 쌍용차, GM대우)의 1~11월 실적을 살펴보면 대형 SUV의 내수 판매량은 12만 2000여 대로 지난해(7만5000여 대)보다 4만 대 이상 판매량이 늘었다.

각 완성차 업체들은 자사 차량에 특화된 캠핑 용품을 내놓는가 하면, 2월 *자동차관리법 하위규칙 개정으로 캠핑카 튜닝 산업도 기지개를 켜는 모습이다. 한국교통안전공단의 11월 자료에 따르면 올해 2월 28일~10월 31일까지 캠핑카 튜닝 대수는 5618대로 전년 동기(1529대) 대비 3배 이상으로 성장했다. 캠핑카 업계 관계자는 "자동차, 레저 업계 내부적으로 이들 시장의 최대 적은 해외여행에 대한 수요라는 말이 나올 정도로 팬데믹 초반, 수요가 급감할 것이란 우려와는 달리 자동차 내수 캠핑카 산업은 선방하고 있다"라고 설명했다.

넓은 공간감을 마케팅 포인트로 활용한 현대차의 신형 투싼 광고 한 장면(맨 위, 2021 투싼). 캠핑을 소재로 한 영상을 소개하는 인기 유튜버 '캠핑맨'의 한 장면. 코리아센터가 내놓은 소형 캠핑카 '로디'(맨 아래).

홈○족, 신 인류의 탄생

#1. 젊은 세대 사이에 급속히 번지는 이 같은 신형 집들이는 대부분 집 부근까지 친구들을 초대해 이뤄지고 있으며 교통 편을 고려, 직장 근처 음식점에서 행사를 갖기도 한다. 일단 음식대접이 끝난 뒤에는 초청 손님들과 함께 집으로 가 여흥시간을 갖는 경우가 많다. 이에 따라 집들이 행사가 빈번해지는 요즘 서울 대규모 아파트 단지와 주택가 부근 대형 음식점들은 변형 집들이족으로 짭짤한 수입을 올리고 있다.

#2. 요즘 회식도 줄고, 외부 미팅도 줄어 연말 피로도가 줄어든 건 맞지만, 꼭 만나야 하는 친구들과도 보지 못한다는 게 너무 아쉬웠다. 직장인 하모 씨(33·구리시)는 안전하게 친구들을 만날 방법을 고민하다가 결국, 집으로 그들을 초대하기로 했다. 집에 오기 전 발열 체크를 하고 몸 상태를 살핀 뒤 이상이 없으면 오는 것으로 한 뒤, 하 씨는 함께 먹을 식단을 고민하고 있다. 하 씨는 "함께하고 싶은 사람들과 안전하게 연말을 보내는데 집만 한 곳이 없었다. 술없이 단출하게 식사하는 것으로 아쉬움을 달래기로 했다"라고 말했다.

첫 번째 사례는 1993년 동아일보가 '집들이 새 풍속'이라며 소개한 기사(1993년 4월 9일 자, "음식점서 한턱" 집들이 새 풍속) 내용의 일부. 아파트가 한국의 주류 거주형태로 자리 잡은 1990년대, 아파트 집들이는 최대 부흥기를 맞아 한국식 홈 파티 문화의 대표주자로 자리매김했다. 이 집들이 행사는 위 사례처럼 여러 번 형식을 바꿔가면서도 마치 한국의 세시 풍속인처럼 2000년대 초반까지 이어진다.

그러던 것이 2000년대 중후반으로 넘어가면서 근무 환경(워라밸 중시)과 가족형태(1인 가구, 미혼 비율 증가 ), 사회 문화(사생활 존중)의 변화로 집들이는 주변에서 좀처럼 찾기 힘든 희소한 사례가 됐다. 새 집으로 이사를 하거나 신혼집을 마련할 때와 같은 '집들이' 시즌뿐만 아니라 아예, 집에 사람을 초대하는 것 자체가 생소한 풍경이 된 지 오래다. 외식 산업이 자리를 잘 잡고 있는데 굳이 '나만의 공간'을 남에게 노출할 필요는 없었던 것이다. 아파트든 빌라든, 자가이든 임대이든 주택 종류나 거주 형태를 불문하고 집은 비슷한 개념으로 자리 잡았다.

출처: 한국외식산업연구원
홈 파티(또는 집들이)를 대체했던 외식 산업은 마이너스 성장을 할 것으로 전망된다

그렇게 약간은 헌 풍속쯤으로 여겨지던 집들이, 홈 파티 문화를 코로나19가 두 번째 사례처럼 일부 부활시키는 현상도 포착된다. 물론, 시기가 시기인 만큼 축제의 분위기로 떠들썩하거나 요란스러운 외형을 갖추는 게 아니라 친분이 두텁고 안전이 검증된 사람들과 내밀한 소통을 나누는 조용하면서도 실용적인 사교의 장으로서 말이다. 술과 여흥이 판치던 연말, 소란스럽던 거리가 휑해진 만큼 소규모로 가족과 친지, 돈독한 친구 몇몇과 모여 조용히 한 해를 마무리하는 나만의, '우리끼리의 집'이 늘어난 것이다.

이처럼 집은 그간 폐쇄적인 나만의 안식처에 머물던 것에서 개방형 공간으로 바뀌어가는가 하면, 재택근무의 확산과 체육시설의 폐쇄로 나만의 업무 공간이자 레크리에이션 기능을 수행하는 무대로 그 역할을 확장해가는 모습도 나타난다. '홈트레이닝족(홈트족)', '홈데코족' 등 집에서만 서식(棲息)하며 생산과 휴식, 오락을 병행하며 즐기는 다채로운 집안 '족(族)'들이 탄생한 것도 이런 맥락에서다.

2020년 집에서 근무하고 운동하고 놀이하려는 사람들이 늘어나면서 '홈○○족'이란 신조어도 늘어난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다"

너무나도 분명했던 이 명제는 2020년 크게 흔들렸다. 사람을 만나는 게 위험한 일이 돼버린 이 시기, 공유경제를 비롯해 공적 공간에 뿌리내린 비즈니스 모델은 위태롭게 생존을 걱정해야 하는 처지에 내몰렸다. 반면, 자동차와 집은 오히려 다양한 기능을 수행하는 확장적 공간으로 바뀌어간다. 그 변화상을 살펴보면, 인류를 휘감은 '접촉 공포'에서 벗어나 사회성을 회복하기 위한 노력도 감지된다. 20년 만에 되돌아온 마이카 마이홈 시대의 라이프 스타일은 이처럼 처절한 배경을 안고 있다. 경제 패러다임은 물론이고 어쩌면 인류의 성격마저 재조정해야 할 정도로 파고 높은 물결이다. 지금의 조류가 일시적일지, 영원할지는 우리가 2021년을 어떻게 보내느냐에 따라 달라질 것이다.

인터비즈 김재형 에디터·김경수 디자이너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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