팬데믹 시대의 불편한 화두, '코로나 수용소'로부터의 탈출

조회수 2021. 2. 16.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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코로나19(Covid-19)의 확산을 막기위한 정부의 방역 정책에 첨단 정보통신(IT) 기술이 대거 활용됐다. 공공기관이나 음식점, 체육시설을 드나들 때 QR코드를 찍는 것도 그중 하나. 역학 조사관이 확진자의 휴대전화 위치정보나 신용카드 사용 내역을 분단위로 확인하는 '역학조사 지원 시스템'도 또 다른 하나이다. 이 얼굴 없는 감시기술은 이제 전혀 거부감이 들지 않는 일상의 한 부분이 됐다.

동해안 해변을 전면 통제했던 연말연시. 대대적인 방역 지침(사회적거리두기 등)이 떨어진다. 당시 기준 △5인 이상 집합 금지 △다중이용시설 폐쇄(지자체별) △9시 이후 영업 금지 등 전국 각지에서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다. 이 정도로 포괄적인 인원 통제와 봉쇄 조치가 동시에 실행된 것은 1980년 광주민주화운동 당시 계엄군이 광주 도심을 봉쇄했던 때로부터 사실상 처음있는 일이다.


지난해 2월 국회 본회의에서 의결된 예방·관리법, 검역법, 의료법 개정안 등 '코로나 3법'은 이렇게 대대적인 통제를 가능하게 한 토대였다. 방역 우선주의란 기치 아래, 정부와 각 지자체가 일사분란하게 시설과 사람을 통제할 수 있었던 것도 이런 법적 근거조항이 마련됐기 때문이다. 얼굴 없는 감시기술도 마찬가지. 코로나 확산세를 막는데 치중하는 사이, 감시통제 시스템은 그렇게 보이지 않는 곳에서 뿌리내렸다.


"아직 팬데믹이 채 끝나지도 않은 상황이다" "아직은 그런 논의를 하기에는 이른 시점이다" 등등의 반론이 나올 수도 있겠다. 이에 대해 사회과학이나 개인정보보호 분야의 전문가들은 "방역과 감시사회에 대한 견제는 양축의 바퀴와도 같아서 함께 작동해야 한다"라고 조언한다. 왜 그럴까.


중국에선 코로나 확산을 막기 위해 각 지방 정부가 주민들에게 건강 코드 앱(애플리케이션)을 깔게 한다. 알리바바 등의 현지 플랫폼 업체의 기술이 도입됐다. 개인이 이 앱을 통해 개인 정보(의료기록과 흡연 등의 생활습관 포함)와 여행 이력 등을 입력하면 그 결과에 따라 빨간색(14일 자가격리), 노란색(7일 〃), 녹색(지역 내 이동 가능) 등의 코드를 부여받는다. 지난해 5월 항저우시부터 시작해 200여 개 중국 도시 전역으로 확산 적용된 건강 코드는 해외 입국자에게도 적용된다.

이미 중국은 2017년 산둥과 광둥 등의 주요 도시 교차로에 안면인식 전광판을 설치했다. 무단 횡단을 할 경우 전광판에 신상 정보가 뜨게 하는데 벌금이나 사회봉사를 해야 지워지게 한 것이다. 코로나 시국에 이 기술은 식당이나 체육 시설 등에도 활용되는 추세. 위 QR코드와 함께 전방위적인 얼굴 없는 감시 체계가 기술적으로는 이미 완성된 셈이다.

Scene 01

이스라엘은 지난해 3월, 이전까지 대테러 작전에 쓰던 디지털 추적(스마트폰 위치 추적)을 코로나 방역 정책에 활용할 수 있게 했다. 일본에선 후생노동성이 제공하는 코로나 확진자 알림 앱(다운 받고 블루투스를 켜두면 14일간 내 동선에서 확진자 동선과 겹쳤던 적이 있는지 알려준다)이 논란이 되고 있다. 감시통제에 대한 견제가 아니라 오히려 지난해 9월부터 안드로이드에서는 제대로 작동되지 않은 사실이 알려진 게 발화점이었다.

이처럼 해외로 눈을 돌려보면, 코로나 시기에 구축된 이런 얼굴 없는 감시 기술의 오남용 가능성을 예상해 볼 수 있다. 역사학자 유발 하라리는 파이낸셜타임스와의 인터뷰에서 "전체주의적 감시와 시민이 자신을 통제할 자발적 권한 사이의 선택의 기로에 섰다"라고 진단했다.

한국은 2014년 세월호의 비극과 2015년 메르스 사태를 겪으며 대규모 안전사고나 지금과 같은 팬데믹 시국에 안전·재난 정보를 투명하게 공개해야 한다는데 일종의 사회적 합의를 이뤄낸다. 2020년 한국 사회는 그 합의대로 방역에 효과적으로 대응했다. 팬데믹이 일상이 된 21세기 모범 시민의 표본으로 칭송받기까지 한다. 어쩌면, 그런 위상을 오래 유지하기 위해서라도 지금 필요한 것이 이런 우려에 대한 견제의 시선이 아닐까.

Scene 02

재택근무가 시작되자 그래도 집에서 좀 더 자유롭게 일할 수 있을 것이란 기대는 깨졌다. 회사가 근태 관리를 한다는 명분으로 팀 단위로 세 시간마다 줌(Zoom·화상회의 시스템)을 통해 '팀원 스스로가 일하는 모습을 보이라'는 지침을 내렸기 때문이다. 나를 포함해 팀원 전원은 집안에서 일을 하다가 그 시간이 되면, 몸을 추스르고 노트북의 캠 카메라를 켠다. "이상 없습니다." 줌 화면에 비치는 팀원들의 모습이 독방에 갇힌 수감자처럼 느껴지는 건 왜일까. -금융권 기업 직원 A 씨

팬데믹 국면에 등장한 장면중의 하나이다. 기업은 자의반 타의 반으로 도입하게 된 재택근무를 좀 더 효율적으로 운영하기 위해 각종 근태관리 시스템을 도입했다. 직급체계가 있는 사무실에서야 그 공간에 있는 것만으로도의 근태 관리 효과가 나타난다. 하지만 일 하는 공간이 분리되자 기업은 새로운 관리 기법이 필요해졌다. 위 사례(Scene2)에서 나타나는 자발적 감시 시스템은 그렇게 해서 나온 대안이었다.

직장인 A 씨는 "인사팀이 직원 노트북과 네트워크를 연동해 근무 시간 중에 컴퓨터 스크린이 30분 이상 꺼져있으면 알람이 뜨게 만든 곳도 있다"라며 "24시간, 회사의 감시통제 아래 놓여있는 것은 아닌지 무서운 기분이 들때도 있다"라고 말했다.

Scene 03

행안부는 지난해 7월부터 기존 안전신문고 사이트에 코로나19 신고 기능을 추가했다. △집합 금지 조치 위반 모임·영업 △자가 격리자 무단이탈 △출입자 관리위반·마스크미착용 등의 사례를 시민들이 직접 발견해 신고할 수 있게 했다. 더불어 행안부는 우수 신고자 15명에게 행안부 장관 표창을, 100명에게는 온누리상품권 10만 원권을 지급하며 신고를 독려했다. 그러자 지난해 말 안전신문고 신고 건수가 급증하고, 포상금을 노리고 신고를 남발하는 일명 '코파라치' 문제가 불거진다.

실제, 지난해 7월부터 12월까지 6개월간 총 6만 4283건이 신고 접수돼 85.7%가 처리됐다. 이는 그 직전까지 같은 기간(2020년1월~6월) 동안 신고 접수된 4만 7366건 보다 35% 이상 늘어난 수치이다. 행안부는 올해 포상금 지급을 철회하기로 발표한다. 그럼에도 설 연휴를 앞두고 '맘 카페'에서 시댁 신고라는 웃픈(웃긴데 슬픈) 제목의 게시물이 속출할 정도로 자발적 신고는 어느덧 익숙하고 거부감 없는 체계로 굳어졌다.



모두 '자발적 감시'를 강요하고 주도하는 사례들이다. '직원의 일하는 모습'을 스스로 공개하게끔 회사가 요구하고, 타인의 엇나간(?) 행태를 포착해 신고하는 게 대수롭지 않게 여겨지는 듯한 모습이다. 이런 분위기가 언젠가 사회 전반으로 확산하지 말라는 법도 없다. 반대편에서 이를 견제하는 시선은 없을까. 온라인 공론장을 살펴봤다.

지난해 1월, 이란 사령관을 저격한 미국의 드론 폭격은 사건의 맥락을 떠나 신 기술의 파괴력을 보여주는 충격적인 장면이었다. 최대 석유 기업인 사우디 아람코에도 비슷한 일이 벌어진 지 3개 월여 뒤였다. 이 사건을 다룬 기사나 여기에 달린 댓글에는 드론과 더불어 얼굴 없는 기술에 대한 우려가 함께 논의됐다. 그런데 활용 목적의 차이를 감안하더라도 지금의 코로나 시국에 이 드론에 대한 반응은 완전히 달라진다.

위 그래픽(GIF)은 강릉시 정찰 드론 활용 계획안을 보도한 기사에 달린 댓글을 분석한 것이다. 해당 내용을 보도한 △연합뉴스 △서울경제 △서울신문 △jtbc △노컷신문 △SBS △중앙일보 △MBC △MBN △KBS △뉴스1 등 11개 신문·통신·방송 보도에 달린 650여 개의 댓글을 활용했다. 형태소별 어느 것의 빈도가 높게 나왔는지(첫 번째 워드클라우드 장면), 연관어의 관계도는 어떤지(두 번째 장면)를 살펴본 것이다.

방역 수칙을 지키지 않는(을) 사람들을 강력히 처벌하고, 감시 행정을 강화하자는 바람이 드러나는 댓글들이 자주 눈에 띈다. 정찰 드론 활용에 우려를 나타내는 내용은 좀처럼 찾아보기 힘들다. 이는 다른 행정 감시용 드론을 소개하는 기사에서도 비슷하다.​

아고라의 폐지 이후 온라인 공론장 역할을 수행하는 청와대 국민청원사이트의 분위기도 크게 다르지 않다. 확진자의 신상정보를 공개하라거나 특정 집단에 대한 혐오와 낙인을 추동하는 청원글이 다수 눈에 띈다. 입법 기관인 국회에서도 사생활 침해 문제나 감시 통제 가능성에 대한 문제 제기는 찾아보기 힘들다.


견제 기능을 수행해야 할 이 사회의 소통 창구마저 이미 방역 우선주의로 기울어져 감시통제에 대한 견제는 후순위로 밀려났음을 방증하는 것일 수도 있다. 정말 그렇다면, 코로나 이후 한국 사회의 진로는 어느 쪽이든 한쪽으로 급격히 기울어질 가능성이 커진다. 감시사회로의 길 말이다.

공론장 분석을 하면서 자주 접한 문구이다. 국가나 정부나 강력하게 통제하는 것이 팬데믹에서 탈출하는 효과적인 방법이란 일종의 가설이다.


이는 코로나 이후 국가 패러다임이 작은 정부에서 큰 정부로 넘어갈 것이란 여러 전망과도 맞닿아 있다. 2008년 글로벌 금융 위기 이후 수년간 이어지던 작은 정부 기조는 관세 정책을 펼치던 트럼프 집권기를 거쳐, 이번 시국에 완전히 큰 정부로 흐름을 갈아탈 것이란 전망이다.


그렇다면 큰 정부는 전대미문의 이번 사태를 벗어나기 위한 유일한 선택지일까. 국가의 감시와 통제를 강화하는 것만이 방역의 효과를 높이는 길일까. 박광국 가톨릭대 행정학과 교수를 만나봤다.

박 교수는 지난해 5월 '포스트 코로나 시대의 정부 역할과 시민문화(박광국-김정인 공동 저)' 한국행정학보에 실었다. 코로나19 이후 강한 정부가 등장할지, 등장한다면 정부-시민 간의 관계는 어떻게 변화할 것이며 시민 문화는 어떠한 역할을 담당할 것인지를 탐구한 논문이다.

박 교수는 인터뷰에서 "정부의 개입이 강하게 들어오는 것이 방역 효과를 높이는 선택은 맞는다"라며 큰 정부의 시대를 예견했다. 또 한편으로는 그 효과가 나타나기 위한 단서를 달았는데 "정부의 역량(투명성, 집행력 등)과 시민들이 정부에 보내는 신뢰가 뒷받침 되지 않으면 정부의 개입이 강해도 그 방역 효과는 미비할 것이다"라고 밝혔다

박 교수의 논문에 따르면 사실 한국은 조사 대상인 OECD 35개국 중에서 '강한 정부(정부범위+정부역할)'에 속하지 않는다. 정부 범위 및 정부 역할 점수를 기준으로 한국은 24위, 노르웨이나 스웨덴, 핀란드와 같은 북유럽 국가가 나란히 1~3위를 차지했다. 4~5위는 각각 프랑스와 덴마크이다.

이처럼 한국이 강한 정부가 아니었음에도 분석 당시 기준 높은 방역 성과를 보였다고 평가받을 수 있었던 원인으로는 집단주의(개인주의 반대)를 공유하는 시민문화를 꼽았다. 집단주의가 강한 사회에서는 사회구성원들 간 응집력이 강하며, 외부 사건(위기) 발생 시 정부의 조치에 적극적으로 협조하는 경향이 나타난다는 것이다. 결국, 한국은 정부의 정책 못지 않게(아니면 오히려 그 이상으로) 시민들의 협조가 방역의 성패를 가르는데 크게 영향을 미쳤던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다.


어쨌든 팬데믹 국면에서는 국가 패러다임이 강한 정부로 넘어갈 수밖에 없다는 점에서 박 교수는 이런 변화에 따른 감시사회의 도래 가능성에 대해서도 우려를 표했다. 방역 효과를 높이는데 시민문화 보단 정부의 강한 조치가 더 부각되면서 정부의 개입 범위는 갈수록 늘어나고, 감시 통제 범위도 확장할 수밖에 없어서다.

박 교수는 여기서 한 번 더 시민문화를 강조했다. 방역에 대한 협조와 함께 커져가는 행정부, 감시통제 장치에 대한 견제의 눈초리를 동시에 견지해야 한다는 얘기다. 그렇게 협조와 견제의 양 진영에서 담론이 오가다 보면 사회가 방역과 감시통제 사이의 적정한 균형점에 도달할 것이란 추론이다.

코로나 사태 이전까지 우리는 스마트폰으로 만인이 만인을 감시하는 '디지털 파놉티콘'에 대한 우려를 자주 공론화 했다. 지금까지 늘어놓은 이 불편한 이야기는 코로나 시국에 잠깐 끊어졌던 것일지도 모를 이 논의를 계속 이어나가 보자는 취지. 견제의 시선이 닿지 않으면 얼굴 없는 감시 기술은 우리를 판옵티콘으로 인도할지도 모를 일이다.

다음 이야기는 한국에 거주하는 프랑스인 대학생 세 명이 '한국의 코로나와 프라이버시 문제'란 주제로 토론했던 내용이다. 개인 정보 전문가인 김보라미 변호사(경실련 소비자정보센터 위원)의 온라인 프로파일링(맞춤형 광고 등), 개인정보동의에 대한 문제 제기도 들어봤다. 수면 아래에 있던 불편한 이야기를 조금만 더 꺼내보려 한다.

기사 김재형 ㅣ 디자인 김경수
제작인턴 조지윤 성균관대 ㅣ 이소영 동국대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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