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는 왜 삼겹살의 민족이 되었을까? 한국인 소울푸드의 기원

조회수 2021. 2. 2.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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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식을 할 때면 삼겹살집에 가고 야구장에서는 치맥을 즐깁니다. 점심시간에 간단하게 제육볶음이나 국밥을 한 그릇 뚝딱 먹고 여름에는 냉면을 먹습니다. 졸업식날에는 짜장면을 먹기도 합니다.

삼겹살, 치킨, 제육볶음, 국밥, 냉면, 짜장면. 이 음식들의 공통점이 무엇일까요? 바로 한국인의 소울푸드라는 점인데요. 그렇다면 이 음식들은 도대체 언제부터 우리 삶에 들어오게 된 것일까요? <양식의 양식>을 제작한 JTBC 송원섭 부국장님과 함께 한국인 소울푸드의 기원을 알아봤습니다. 


출처: JTBC 제공
JTBC <양식의 양식> 제작발표회 현장

Q.

<양식의 양식>을 촬영하시며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은 무엇인지 궁금하다. 

A.

6개월간 8개국을 다니다 보니 여러 일이 있었다. 가장 기억에 남는 건 뉴욕 촬영이다. 그때 집을 한 채 빌려 숙소 겸 스튜디오로 사용했다. 출연자와 제작진이 같이 잤다. 먹는 프로다 보니 출연진은 많이 먹었지만 제작진은 끼니를 건너뛰는 일이 많았다.

백종원 대표가 그걸 보고 "밥도 못 먹고 고생하는데 내가 뭐라도 해줄게"라며 밥을 두 번 직접 해주셨다. 한 번은 부대찌개를 해주셨고 다른 한 번은 꼬리곰탕이었다. 백종원 대표가 직접 마켓에서 꼬리뼈를 사 고아줬는데 맛이 어마어마하더라. 꼬리곰탕이 정성의 음식이다. 일단 끓인 뒤 백종원 대표는 일이 있어 숙소 위로 올라가야 했는데 "새벽 세시 쯤 꼭 물을 보충해야 한다"고 하셨다. 정말 신신당부를 하셨다.

알았다고 하고 그러고 있는데 새벽 2시 55분에 백종원 대표가 내려오시더라. "너네를 못 믿어서 내려왔다"고 하셨다. 프로의 완벽주의란 이런 거구나 싶더라. 거기다 쌀국수도 담가주시고 꼬리를 건져서 찍어 먹으라고 양념장도 만들어주셨다. 정말 맛있었다. 지금도 생각하니 군침이 돈다. 



Q.

<양식의 양식>을 보면 우리나라가 돼지고기 자체를 먹기 시작한 지 얼마 안 됐다는 이야기가 있었다. 삼겹살은 한국인의 소울푸드라 이미지만 보면 신라시대 때부터 먹었을 것 같은데.

A.

그렇다. 신라 화랑들이 멧돼지를 잡아 삼겹살을 구워 먹고 그랬을 것 같지만, 그런 기록이 전혀 없다. 조선 후기까지 와도 돼지고기를 먹은 기록은 전부 양념구이다.

여러 이유가 있다. 기록을 찾아보면 우리나라 토종 돼지는 지금 우리가 먹는 돼지보다 훨씬 작았다. 지금 우리가 먹는 건 외국 돼지와의 혼혈이라 몸무게가 80~100kg 가량 나간다. 토종돼지는 30kg 정도로 강아지에 가까운 체격이었다. 또 돼지는 불결하다는 인식도 많았다. 심지어 한국 사람에게 '고기'라 하면 지난 5000년간은 소고기였다. 다른 고기는 아예 생각하지 않았다.

1931년, 처음으로 우리나라에 '세겹살'이라는 말이 등장했다. 그 기록을 보면 세겹살이 돼지에서 가장 맛있는 부위라는 설명이 나온다. 다만 세겹살은 삶아먹는 방식이었다. 조선시대에는 석쇠밖에 없으니 돼지고기를 굽는 게 위험한 방법이었다. 캠핑에서 돼지고기를 구워보면 알겠지만 잘 구워지지 않는다. 기름이 많이 떨어져서 겉은 타고 속은 안 익는 경우가 많다. 속이 안 익으면 기생충 때문에 위험하니 푹 삶아 먹는 게 주된 섭취 방법이었다. 해방이 지나고 1970년대 넘어서야 식당에 '삼겹살'이 등장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Q.

삼겹살이 IMF 때 폭발적으로 성장했다는 말도 있다. 

A.

그때 인식이 가장 많이 변한 것으로 보인다. 1986년 아시안게임부터 IMF 전까지는 대한민국의 전성기였다. 그때는 희망과 돈, 인심이 넘쳐났다. 회식을 해도 꽃등심을 먹는 그런 시절이었다. IMF로 사람들이 힘들어지며 회식을 하게 되면 저렴하고 양도 풍부한 삼겹살을 찾게 됐다. 삼겹살 앞에서 소주 한두 잔 마시며 "내일이면 회사를 그만둬야 하는구나" 이러며 서로를 위로했다. 한국 사회의 변화 속에서 삼겹살이 넘버 원 고기로 등장하게 된 것이다. 서글픈 이야기다.

사실 치킨도 폭발적으로 성장하게 된 계기가 IMF다. 직장을 그만두고 나오신 분들이 너무 많았다. 생계를 위해 가장 많이 뛰어든 업종이 치킨집이었다. 경쟁을 위해 다양한 레시피를 계속 개발하다 보니 파닭 등 다양한 메뉴가 나왔고, 한국 치킨 문화가 전체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성장했다.


Q.

치킨은 사실 미국 음식이다. 그런데 요즘 K-푸드, 한류를 말할 때 대표적인 우리나라 음식으로 꼽힌다.

A.

치킨을 처음 만든 건 미국 흑인들이다. 미국 백인들은 노예들에게 소고기나 돼지고기를 줄만큼 좋은 사람이 아니었다. 안먹는 닭 부위를 주며 먹으라 했다. 그런데 아프리카에는 원래 동물 기름으로 다른 동물을 튀겨먹는 문화가 있었다고 한다. 그런 기억을 가지고 있었기 때문에 돼지비계 이런 걸 녹여서 닭 부속물들을 튀겨 먹었다. 지나가다 보니 냄새가 맛있어서 백인들도 그 문화를 흡수했다. 흑인들이 먹는 음식을 백인이 흡수해, 그걸 가지고 돈을 번 거다.

우리나라는 6.25 전쟁이 끝나고 식량 지원을 많이 받았다. 미국에서 많이 나오는 잉여 농산물 중 하나가 콩이었다. 이 콩은 치킨에 두 가지 의미를 갖는다. 먼저 콩이 많으면 닭의 먹이로 쓸 수 있고, 다음으로 콩을 짜면 기름이 나온다. 닭이 많아졌고 기름도 많아졌다. 그럼 뭘 할 수 있을까? 닭을 기름에 넣는 건 너무 당연한 일 아닐까? 말하자면 우리나라는 빨라야 1950년대에서 1960년대에 닭을 튀겨먹기 시작했다.

IMF 이후 가장들이 먹고 살기 위해 치킨집을 열고, 그 치킨집을 보고 프랜차이즈들이 치열하게 경쟁했다. 어마어마하게 치열한 경쟁이 다른 나라에서는 볼 수 없는 다양한 레시피를 만들어냈다. 그게 한국 치킨의 첫 번째 경쟁력이다. 



출처: JTBC '양식의 양식' 방송 캡쳐

Q.

그렇다면 치킨을 한식이라고 표현할 수도 있을까?

A.

방송을 기획·진행하며 불안했던 부분이기도 하다. 방송과 책에서 8개 음식을 소개했는데 그중 이질적인 음식이 2개 들어 있었다. 바로 치킨과 짜장면이다. 그런데 음식의 흐름은 정지해 있는 게 아니다. 사진을 스틸카메라로 찍는 게 아니고 동영상에서 컷하는 느낌이라고 볼 수 있다. 한 시점에서 누군가 좋아하는 게 한식인 거지, 지금 안 먹고 사라진 음식을 얘기할 필요는 없다. 그런 의미에서 치킨과 짜장면은 한식이라고 생각한다.

Q.

짜장면도 한국에 와서 많이 변했다. 중국 '작장면'과 뿌리가 같은 음식인데 맛은 전혀 다르다.

A.

짜장면은 1882년에 들어왔다. 임오군란을 수습하기 위해 민씨 세력이 청나라 세력을 조선에 데려왔다. 대부분 산동지역에서 오신 분들이었다. 기록에 따르면 당시 산동지역 주민들에 대한 고정관념은 키가 크고, 피부가 검고, 한 손에는 파를 들고 다른 손에는 장그릇을 들고 있는 모습이었다. 파를 장그릇에 찍어 먹으며 웃으며 얘기를 한다. 그게 산동지역 사람들의 이미지였다.

이분들이 조선에 올 때 중국장을 들고 오셨다. 국수를 볶아 중국장에 비벼 먹는 게 이분들의 주된 식생활인데, 타지에서도 어쨌든 고향 음식을 먹어야 하지 않겠는가. 먹고 먹다가 '아 이걸 왜 우리만 먹어야 하지? 조선 사람들에게 팔면 안 될까?' 해서 팔기 시작한 게 짜장면이다. 그분들이 모여 살기 시작한 동네가 바로 인천 차이나타운이다.

작장면과 짜장면은 뿌리가 같은 음식이지만 맛은 전혀 다르다. 우리가 먹는 짜장면은 화교 요리사분들이 수십 년의 세월 동안 한국인 입맛에 맞게 연구한 결과다. 대파 대신 양파를 쓰고 춘장도 달콤한 쪽으로 개발하는 등 많이 달라졌다. 그래서 지금은 중국인들이 먹어보면 뭔지 모르겠지만 맛있다고 느끼는 그런 새로운 음식이 됐다.



Q.

지금 우리가 먹는 빨간 김치도 그리 오래된 전통이 아니라는 말이 있다.

A.

김치를 만들기 위해서는 고추가 있어야 한다. 고추는 임진왜란 직전에 들어왔다고 보는 게 정설이다. 그렇게 먹었어도 들어오자마자 김치에 고춧가루를 활용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다. 200년 정도는 계속 실험을 했던 것으로 보인다. 이걸 먹으면 죽을까, 안 죽을까? 용감한 사람이 시도를 했거나 아니면 실수로 고춧가루를 푹 쏟았는데 먹어보니 괜찮았을 수도 있다. 

Q.

음식은 결국 실험정신 아니면 실수인 것 같다.

A.

그렇다. 지금은 버섯을 먹을 때도 그 많은 버섯 중 어떤 게 독버섯이고 어떤 게 먹어도 되는 건지 알고 있지 않나. 그걸 알아내는 과정에서 인류를 위한 희생이 얼마나 많이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인터비즈 서정윤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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