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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국 서점 살렸던 제임스 던트, 미국 서점도 살릴까?

조회수 2021. 1. 29.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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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의 대표 기업형 서점인 '반스앤노블'은 아마존의 진출 이후 침체기를 겪어왔다. 다양한 도서와 온라인 주문의 편의성을 갖춘 아마존으로 소비자를 빼앗긴 탓이다. 기업 가치, 매장 수, 매출액까지 모든 지표에서 하락세를 보이던 반스앤노블에 2019년 8월 '제임스 던트(James Daunt)'가 새로운 CEO로 취임했다. 독립 서점 창업부터 기업형 서점 CEO까지 '서점에 특화된 커리어'를 가진 그는 반스앤노블의 경쟁력을 되찾겠다고 선포했다.


전성기를 누리던 반스앤노블은
어쩌다 몰락했을까?

1990년대 반스앤노블은 독서를 즐길 수 있는 넓고 쾌적한 시설로 소비자를 공략했다. 오늘날 독서와 문화 활동의 즐거움을 제공하는 '리딩 테인먼트형' 서점 이른바 기업형 서점의 시초였던 셈이다. 1998년 미국 시장에만 1,000여 개 매장을 오픈한 반스앤노블은 동네 서점을 잠식한다고 비난받을 정도였다.

하지만 아마존의 등장과 함께 반스앤노블의 전성기는 막을 내렸다. 블룸버그에 따르면 2020년 기준 미국에서 판매되는 도서 중 3분의 2 가량은 아마존에서 거래됐다. 반스앤노블의 매장 수는 1998년 1,000여 개에서 2020년 6월 기준 600여 개로 감소했다. 2019년 연 매출액은 2012년 대비 약 36억 달러 줄어들었고, 2016년 약 20억 달러였던 기업 가치는 3년 만에 4억 달러로 급감했다.

출처: 반스앤노블(Barnes&Noble)

경영난을 극복하기 위해 2013년~2019년 CEO를 5번이나 교체했음에도 효과는 미비했다. 편집숍 콘셉트로 각종 액세서리를 판매했지만 매출을 확보하지 못했고, 레스토랑을 선보일 것이라고 발표했다가 소비자들에게 질타를 받기도 했다. 2012년 아마존을 벤치마킹하며 전자책 리더기인 '눅(Nook)'을 출시했지만 5년 만에 매출액은 85%의 하락세를 보였다. 반스앤노블의 잇따른 실패에 대해 뉴욕타임즈는 "반스앤노블이 오프라인 서점의 의미를 잊은 것 같다, 아마존에 휩쓸리지 않고 오프라인 서점만의 정체성을 지키려는 노력이 필요하다"고 표현했다.

반스앤노블의 구원투수
서점 특화형 CEO '제임스 던트'

영국 최대 서점 '워터스톤즈(Waterstones)'를 보유한 '엘리엇 매니지먼트'는 반스앤노블을 인수하는 과정에서 워터스톤즈의 전 CEO인 제임스 던트를 스카우트했다. 취임 소식이 알려지며, 월스트리트 저널을 비롯해 유명 언론사들이 제임스 던트에 대해 보도했다. 그의 독특한 이력 때문이다. 반스앤노블의 이전 CEO들과 달리, 제임스 던트는 서점에 특화된 커리어를 갖췄다. JP 모건에서 금융원으로 일하던 그는 1990년 자신만의 독립 서점인 '던트 북스'를 오픈했다. 기업형 서점의 전성기였음에도 매장을 5개까지 늘리며 자리를 잡았다. 워터스톤즈를 인수했던 러시아의 억만장자 '알렉산더 마무트'는 던트 북스의 성공을 눈여겨봤고, 2011년 제임스 던트를 CEO로 스카우트했다. 당시 투자자들은 "작은 물고기가 어떻게 해변의 고래를 구하겠냐"라며 부정적 견해를 내비쳤다. 하지만 제임스 던트는 2011년 대비 2015년 연 매출액을 10% 끌어올리며 4년 만에 사업을 흑자로 전환시켰다.

출처: 반스앤노블(Barnes&Noble)

워터스톤즈의 CEO로서 그가 중시했던 것은 오프라인 서점의 역할이었다. 구매할 도서가 확실할 때 접속하는 아마존과 달리, 서점은 즐겁게 책을 경험하고 싶을 때 찾는다는 것이다. 책을 즐겁게 발견하는 경험이 선행되어야 구매를 유도할 수 있다고 강조했다. 제임스 던트의 전략은 본사 중심의 운영 방식을 벗어나는 것이었다. 매장 매니저들에게 많은 권한을 부여하고, 매장 특성에 따라 가구와 진열 방식을 다르게 적용했다.

제임스 던트의 3가지 전략

제임스 던트는 워터스톤즈에서의 전략을 반스앤노블에도 적용하는 중이다. 취임 직후 그는 추후 경영 전략을 3단계로 제시했다. ▲투자 가능한 범위 안에서 매장의 기본적인 부분을 리뉴얼한다(1단계) ▲소비자를 확보함으로써 18개월 이내에 실적을 회복한다(2단계) ▲ 증가한 수익을 바탕으로 매장에 재투자하여 각 매장의 경쟁력을 높인다(3단계). 지난 1년 동안은 매장 리뉴얼 전략에 집중했다. 팬데믹으로 인해 24개 매장을 제외한 전체 매장을 폐쇄했던 기간에 약 350개의 매장 리뉴얼과 소형 매장 기획에 힘을 쏟았다.

가구 및 진열 방식에 대한 개선


제임스 던트는 매장의 모든 요소가 '책을 즐기고 편하게 찾는 경험'을 지원하도록 재구성했다. 먼저 둥근 테이블을 진열대로 활용했다. 각진 테이블보다 많은 소비자들이 돌아가며 책을 둘러보기 적합하며 고객 동선에 방해가 되지 않기 때문이다. 사소한 부분이지만, 둥근 테이블의 활용은 워터스톤즈에서도 그가 강조했던 부분이다. 소비자의 관심사에 맞춰, 다양한 도서를 큐레이션하기 위해 진열 방식도 바꿨다. 도서의 주제나 유형에 따라 한 단계 더 구체적으로 분류하는 방식이다. 마케팅 코너에서도 디지털 마케팅, 콘텐츠 마케팅, 오프라인 이벤트로 도서를 구분하며 동일한 소설책도 하드커버용과 소프트 커버용 코너에 분류해서 진열하는 것이다. 또한 기존에 낡은 가구들을 전면 교체하고, 베스트셀러용 책장은 진열 각도를 3도로 맞춰 천장 조명을 활용해 가시성을 높였다.

매장의 사소한 것에서부터 시작한다면, 반스앤노블의 경쟁력을 되찾을 수 있습니다.

제임스 던트(반스앤노블 CEO)

매장 매니저에게 높은 권한 부여


제임스 던트는 매장 매니저에게 기존보다 높은 권한을 부여했다. 반스앤노블의 획일화된 운영 방식을 개선하여 현지화된 매장을 만드는 것이 그의 목표였다. 반스앤노블의 운영 방식은 철저하게 본사 중심이었다. 본사의 바이어들이 구매 도서를 정한 후 리스트를 공유하면, 매니저들은 해당 도서를 주문해 재고를 확보했다. 특정 도서의 판촉 행사를 진행하며 출판사에게 받는 비용이 주 수익원이다 보니, 도서 매입이 본사 중심일 수밖에 없었다. 하지만 제임스 던트는 구매 도서부터 진열 방식까지 매니저들도 결정할 수 있도록 운영 방식을 바꿨다. 판촉 행사는 당장의 수익 확보는 가능하지만, 매번 예상 판매량보다 낮아 재고 부담으로 이어지는 만큼 지속적인 수익원으로 보기 어렵다는 것이 그의 판단이었다.

출처: 반스앤노블(Barnes&Noble)

새로운 매장 운영 방식은 다음과 같다. 매니저와 팀원들이 상권 니즈에 맞는 도서를 선정한다. 이후 해당 도서들의 기존 판매량 혹은 유사 도서의 판매량을 고려해 최소 수량을 매입한다. 장기적으로는 판매량을 보며 재고 발주량를 조정한다. 매장에서 선정한 도서의 비중을 늘려 상권 니즈를 반영하는 것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사례가 반스앤노블의 욘커스(Yonkers) 매장이다. 어린이 도서 코너를 담당하는 데브라 에드워즈는 'Rifles for Watie (1957)' 도서의 판매량이 늘어나는 것을 본 후 재고를 확보해 매출을 증진시켰다. 'Rifles for Watie '는 고전 도서이다 보니, 다른 매장에서는 판매량이 낮았던 반면 전체 소비자 중 어린이의 비중이 높은 욘커스 매장에서는 제품 니즈가 높았던 것이다. 지하철역이나 공원 인근 매장은 역과 공원에서 독서를 즐기는 소비자를 타겟으로 휴대성이 좋은 소프트 커버와 핸디북의 비중을 늘렸다. 또한 매니저들은 팀원들과 함께 새로운 코너를 기획했다. 크리스마스와 같이 특정 시즌에 어울리는 도서를 큐레이션하거나 자기계발, 소설 등 매장 직원들이 추천하는 도서로 코너를 구성하는 방식이다.

어딜 가나 똑같은 책과 진열 방식을 보이는 반스앤노블은 소비자의 기대를 무시하고 있다. 상권 니즈를 잘 아는 매니저의 관리하에 각 매장의 다양성을 확보해야 한다.

제임스 던트(반스앤노블 CEO)

뉴욕타임즈는 제임스 던트의 전략에 대해 "기업형 서점의 효율성과 구매력을 바탕으로 각 매장의 현지화 전략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표현했다. 또한 전문가들은 기업형 서점인 반스앤노블이 독립 서점을 벤차미킹하는 것이며, 이는 다양한 서점을 운영해 본 제임스 던트의 경험이 반영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소형 매장의 확대

최근 반스앤노블은 상권별로 수익성이 낮은 대형 매장을 폐점하고 외곽 지역에 소형 매장을 오픈하고 있다. 대부분의 반스앤노블 매장은 쇼핑몰 혹은 도심에 위치한 대형 매장이었다. 문구류, 생활용품 등 과도하게 많은 제품을 같이 판매했기 때문이다. 제임스 던트는 상권별 큐레이션으로 재고량을 줄인 후, 도서 위주로 내부 콘텐츠를 구성하면 소형 매장으로도 경쟁력이 있다고 판단했다. 과도한 매장 규모로 임대료 부담이 높다는 점도 간과할 수 없었다. 매장 면적을 줄인다고 해도, 편리한 소비 경험을 제공하기에 충분한 공간 확보가 가능했다.

출처: 반스앤노블(Barnes&Noble)

2020년 6월 반스앤노블은 UPPER EAST SIDE 매장을 폐점했다. 임대료 부담이 컸기 때문이다. 12년 동안 반스앤노블의 플래그십 스토어라고 불릴 정도로 상징적인 매장이었지만 과감히 결단을 내렸다. 대신 주변에 공략 가능한 외곽 상권에 매장을 냈다. 같은 달 반스앤노블은 사라소타(Sarasota) 외곽 지역에 소형 매장을 오픈했다. 매장 기획을 총괄한 제임스 던트는 기존보다 30% 이상 면적을 축소했다. 장르별로 도서를 큐레이션해 독립형 책방 공간을 만들었고, 인근에 도심형 매장이 있는 점을 고려해 매니저가 선정한 도서의 비중을 큰 폭으로 늘렸다.

올 2월에는 westport 지역에 새 매장을 열 예정이다. 23년간 운영하던 포스트 플라자 쇼핑센터의 매장을 닫고 오픈하는 것으로, 포스트 플라자 매장 대비 50% 이상 면적을 축소했다. 반스앤노블 공식 카페 체인인 'B&N 카페'도 입점시키지 않는다. 대부분 매장에 B&N 카페가 입점해 있지만 주변 상권에 카페가 많은 점을 고려했다. 대신 어린이용 육아 도서 코너를 확대할 계획이다. 소형 매장을 추구하며 상권에 따라 매장 구성을 다르게 하려는 전략에 따른 것이다. 앞으로도 수익이 확보되는 도심형 매장을 유지함과 동시에, 외곽 상권에 소형 매장을 적극적으로 도입할 전망이다.

상징적이지만 동시에 큰 문제인 매장이 많았다. 장기적인 관점에서 폐점을 결정해야 했다.

제임스 던트의 새로운 전략이 통했는지 아직 확인하긴 어렵다. 매장에 변화를 주는 와중에 오프라인 매장 운영에 악영향을 끼치는 팬데믹이 덮쳤다. 지난해 1~7월 매출은 전년 동기 대비 20% 이상 감소했다. 다만 아직 초기 단계인 만큼, 매장 리뉴얼 이후 효과가 기대된다. '인디고(Indigo)' '츠타야(TSUTAYA)' 등 제임스 던트가 강조한 '책을 발견하는 공간으로서의 서점' 콘셉트로 성공한 사례들이 있다. 서점에 특화된 CEO 제임스 던트의 마법이 이번에도 통할지 이목이 집중되고 있다.

제작 이한규 박은애 ㅣ 디자인 홍지수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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