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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상현실에 등장한 영화관, 실제 극장 몰아낼까?

조회수 2021. 1. 14. 0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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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작년, 친척 집을 방문했을 때 일곱 살 조카 아이는 스마트폰 배달 앱으로 능숙하게 음식을 주문해줬다.


'네가 나보다 배달 앱을 잘 쓰는 것 같다'고 하자 이렇게 얘기했다.

여기에는 없는 음식이 없어요.
정말 어마어마하게 큰 식당이에요

듣고 보니 맞는 말이다. 아이는 손바닥에 놓인 스마트폰을 통해 거울 세계(mirror world) 메타버스에 차려진 거대한 음식점을 편하게 들락거렸다. 얼마 전 만났을 때 그는 오큘러스 퀘스트2를 뒤집어쓴 채 깔깔대며 웃고 있었다. 빅스크린 앱을 통해 미국에 있는 친구들과 함께 실시간으로 영화를 보고 있다고 했다. 가상 세계(virtual world) 메타버스에 세워진 극장에서 친구들과 노는 중이었다.

매장에 가서 먹거나 전화로 사람과 대화를 통해 주문하던 치킨, 극장에서 친구들과 팝콘을 나눠 먹으며 함께 보던 영화를 조카 아이는 모두 메타버스에서 즐기고 있다. 그렇다면 메타버스는 치킨집과 극장을 현실 공간에서 몰아낼까?

오프라인 치킨 매장, 계속 늘려야 할까?

얼마 전 치킨 프랜차이즈 기업의 요청으로 컨설팅을 진행했다. 그 기업은 배달 시장의 지속적 성장이 자사의 사업 방향에 미칠 영향에 많은 관심을 보였다.

오프라인 매장 매출 비중이 점점 더 감소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오프라인 매장을 계속 유지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아예 배달 중심으로 가야 할까요?

메타버스에 거대한 음식점을 차려놓은 배달의 민족, 요기요, 배달통 등에 맞게 비즈니스 방식을 전환할까에 관한 고민이었다. 그 질문에 나는 이런 질문으로 답했다.

혹시 팀장님은 매장에 가서 치킨을 먹었던 경험 중 가장 기억에 남는 경험이 언제였나요?

반대로 치킨을 배달해서 먹는 경우는 주로 언제, 어디서인가요?

클라이언트는 잠시 망설이다가 이런 답변을 했다.

사람들로 북적대는 매장에서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친구들과 치맥을 즐겼을 때가 최고였고요.

주문은 주로 집에서 야식을 먹거나, 주말 오후에 나가기 귀찮을 때 시키는 것 같네요.

음식 배달 시장의 규모는 2005년 1조 원 규모였으나, 2010년부터 급성장하기 시작하였고 2020년에는 코로나19 여파로 규모가 15조 원까지 성장했다. 2020년에는 코로나19 영향으로 매장을 중심으로 한 외식업체가 큰 타격을 받았으나, 통계청 자료를 보면 2007년부터 2019년까지 외식업 매장의 규모도 비교적 꾸준히 증가해왔다. 오프라인 매장과 배달, 양쪽 모두 전반적으로 증가하는 추세다. 배달 앱 산업이 오프라인 매장기반 외식 산업에 어떤 영향을 줄지, ‘경험’이라는 측면에서 살펴보자.

기업이 제공하는 제품, 서비스를 소비자가 구매하고 소비하는 과정에서 어떤 경험을 하는가를 분석하는 기법 중에 구매자 효용 지도(buyer utility map, 블루오션스트레티지가 제시하는 모델임)를 파악해 보자.

배달 앱으로 치킨을 소비하는 과정을 보면, 구매 과정에서의 단순성, 배송의 편리성이 강점이다. 반면 뒷정리에 해당하는 처분 과정에서 불편함이 따른다. 일회용 포장 용기로 인해 환경 친화성이 낮다는 문제도 있다.

매장에서 월드컵 경기를 관람하면서 즐겼던 치맥을 얘기했던 클라이언트의 경험에는 사용(취식)과정에서 재미와 이미지가 압도적으로 높았다고 볼 수 있다. 먹은 것을 직접 치우거나 일회용품 발생이 없으니, 이 부분도 배달 상황과 반대다. 기업 입장에서 보면 치킨과 함께 맥주를 포함해서 다양한 보조 메뉴를 판매(구매 효용 지도에서 보충에 해당)하기에는 매장이 더 유리하다.

구매자 효용 지도 ㅣ김상균

요컨대 똑같이 조리된 치킨을 제공하는 경우에도, 구매~처분의 여섯 단계(X축)에서 소비자와 기업은 배달과 매장 판매에서 각각 다른 경험을 하는 지점(Y축)이 많다.

“오프라인 매장의 매출 비중이 점점 더 감소하는 것 같은데, 그래도 오프라인 매장을 계속 유지하는 게 좋을까요? 아니면, 아예 배달 중심으로 가야 할까요?”

기업의 사업 방식에서 오프라인 매장을 통한 고객 경험의 총 가치가 배달 앱을 통한 경우보다 더 크다면, 매출과 수익 측면에서 오프라인 매장 확대가 더 유리할 수 있다. 물론, 반대라면 배달 앱에 집중하는 게 유리하다. 비슷한 맛, 메뉴로 구성된 치킨을 소비자에게 제공한다고 해도 각 기업마다 사업 방식이 다르기에 현재 우리 고객이 매장과 배달 중 무엇에서 더 큰 경험의 가치를 얻는가를 획일적으로 판단할 수는 없다.

넷플릭스, 오큘러스가 극장을 몰아낼까?

치킨과 같은 물리적 제공품이 없는 서비스 중심의 산업은 어떨까? 극장 산업을 살펴보자. 미국의 극장 산업을 보면, 2000년 이후부터 약간의 등락은 있으나 극장 방문객 수는 전반적으로 감소하는 추세다.

미국 극장 산업 추세 | White Hutchinson

반면 넷플릭스의 매출은 매년 꾸준히 늘고 있는데, 2020년 3분기 매출은 64억 4000만 달러를 기록, 지난해 같은 기간보다 23%나 증가했다.

넷플릭스의 매출 추세 | Statista

이런 상황에서 넷플릭스와 같은 구독형 개인 콘텐츠 서비스에 대항하기 위해 미국 최대 극장 체인인 AMC는 영화 구독 서비스를 제공하고 있다. 월 20~24 달러를 지불하면 프리미엄 아이맥스, 3D 영화를 매주 3편씩 볼 수 있다.

이는 앞서 언급한 구매 유틸리티 맵(구매자 효용 지도)을 놓고 보면, 구매 단계에서의 소비자 생산성(가격)을 놓고 경쟁하는 전략이다. 극장 산업에 넷플릭스 얘기를 덧붙여 언급했다고 해서 극장 산업과 넷플릭스가 절대적인 경쟁관계에 있다는 주장은 아니다. 넷플릭스와 같은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제공되는 TV 서비스)와 극장 산업이 같은 시장을 놓고 경쟁하는 관계라 보는 시각이 있고, 반대로 두 산업이 콘텐츠 시장 자체의 크기를 키우고 있기에 상생 관계라는 견해도 있다.

넷플릭스보다 좀 더 극장다운 모습으로 오프라인 극장을 닮아가는 기업이 있다. 빅스크린(Bigscreen Inc.)은 가상현실을 통해 극장의 경험을 대체하는 전략을 추구하고 있다. 가상현실 장비로 빅스크린에 접속하면 매표소, 좌석, 스크린 등이 극장과 비슷한 모습으로 나타난다. 심지어 음료, 팝콘 등도 제공된다. 물론 실제 입에 넣을 수는 없으나 가상현실 글로브로 음료와 팝콘을 잡고 내려놓거나 던질 수도 있다.

빅스크린의 VR극장 ㅣ 빅스크린

빅스크린은 앞서 치킨집 사례에서 언급한 ‘사람들로 북적대는 매장에서 월드컵 경기를 보면서 친구들과 치맥을 즐겼을 때’를 메타버스 안에서 재현하기도 한다. 운동 경기, 콘서트, 로켓 발사 장면 등과 같이 실시간 특성이 중요한 이벤트를 녹화가 아닌 실시간 참여를 통해서만 일회성으로 제공한다.

극장 개봉작을 넷플릭스가 실시간으로 올려준다면, 넷플릭스가 막강한 자본력으로 극장보다 다양한 영화를 제공한다면, 빅스크린이 오큘러스를 통해 한층 높은 실재감(presence, 어딘가에 실제로 존재한다는 느낌)을 전해준다면, 극장은 더 빠른 속도로 쇠락할까? 우리는 극장을 찾던 발길을 끊을까? 구매자 효용 지도, 경험의 축(실재감, 응집도, 기인점)을 놓고 볼 때, 이런 질문에 확실히 ‘그렇다’라고 답하기는 어렵지만, 일정 부분 그럴 수 있다는 추측을 해본다.

오프라인 공간과 메타버스를 놓고, 양측의 경쟁은 앞으로 더 첨예해지리라 본다. 그러나 경쟁이 아닌 협력을 통해 오프라인 공간과 메타버스의 경험을 연결하고 확장해서 시너지를 내는 접근도 가능하며, 여기에 전통 산업과 빅테크 기업들이 공존하면서 고객 가치를 높일 해법이 있다. 배달 앱이 치킨집을 대체하거나, 넷플릭스와 오큘러스가 극장을 밀어내기보다는 메타버스가 현실 세계를 오히려 더 특색이 있고,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경험의 공간으로 자리 잡게 하는 역할을 하길 기대한다.

필자 김상균 강원대 산업공학전공 교수

- 국가공무원인재개발원 자문교수
- 삼성인력개발원 자문교수
- 삼성청년소프트웨어아카데미 자문교수
- 저서 <메타버스: 디지털 지구, 뜨는 것들의 세상> <가르치지 말고 플레이하라> <기억거래소>
인터비즈 윤현종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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