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익빈 부익부' 고착화·세습화 단계에 접어들었다?

조회수 2020. 12. 30.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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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말린다고 말려질 사람이 아니고요…."

10월 외교부 국정감사 당시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코로나19 재확산 국면에 남편인 이일병 연세대 명예교수가 요트를 사러 미국을 방문했던 것에 대신 사과를 표하며 풀어놓은 자초지종의 한 부분이다. 일부 아내들 사이에서 '남편은 못 말려(짱구는 못 말려 패러디)'라는 웃지 못할 공감대(?)가 형성되기도 했던 이 장면에는 사실 이 시대 한국 사회가 떠안은 중대한 과제가 내포됐다. 그 정체는 안전과 경제적 위기에서 자유로운 소수 기득권층과 상대적으로 그런 자유를 누릴 수 없는 대다수 서민이 병존(竝存) 하는 양극화 사회의 도래이다.

"팬데믹은 소수민족과 여성, 저소득층을 겨냥해 사망자의 대규모 양산과 생태계 파괴를 불러왔다. 이는 향후 몇 년간 또 다른 경제적 분열을 일으킬 것이며 백신 접종을 할 수 있는 나라와 그렇지 않은 나라 간의 격차 또한 심화할 것이다."-뉴욕타임즈 12월 25일자 기사 일부

2020년은 계층별, 직업별 경제생활의 양태가 극적으로 대비된 한 해였다. 자영업자를 비롯한 소상공인은 폐업의 갈림길에서 고통받는가 하면, 고소득 전문직 종사자 사이에선 명품 사재기라는 정반대 모습이 나타났다. 한편으로는 2030 세대가 주도한 주식 열풍과 국정 운영의 블랙홀로 작용했던 부동산 문제는 부의 불평등이란 화두 아래 숱한 대립과 갈등을 양산하는 전초 기지가 됐다. 비단, 외교부 국정감사뿐만 아니라 한국 사회 곳곳에서 이번 팬데믹 국면에 계층별로 엇갈리는 일상의 차이를 확인했다는 여러 목격담이 나타난다. 더불어 이 공통의 경험은 당분간 경제 전망이나 사회·문화 현상을 설명할 때 '빈익빈 부익부'가 단골처럼 쓰일 것을 예고한다.

지난 달 1일 오전 서울 중구의 한 백화점의 명품 매장에 들어가기 위해 사람들이 줄 서 있는 모습. 조만간 이 매장의 제품 가격이 올라갈 것이라는 소문이 온라인에 퍼지면서 이날 긴 줄이 이어졌다_출처: 뉴스1

고용 시장에 드리운 K자의 그림자

국내총생산(GDP)과 증시, 고용통계 등 한 사회 전체의 생산력 지표가 급감할 것으로 전망되던 코로나 확산 초기, 그 회복의 정도를 놓고 'V자' 'L자' 등의 경로가 물망에 자주 오르내렸다. 이 논의의 핵심은 '경제 회복이 될 것이냐' 하는 회복 유무(정도), 또는 '된다면 언제 이뤄질 것이냐'라는 데에 있었다.

그런데 최근 기획재정부가 발표한 2021년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년도 경제 성장률이 3.2%로 제시된 상황(회복된다)에서 그 경로와 과정이 'K자형'을 띨 것이란 각종 연구기관이나 전문가의 예상이 늘어난다. 이제는 논의의 초점이 회복이 계층별로 상이하게 이뤄지는 '빈익빈 부익부'의 시나리오를 따져보는 단계로 옮겨가는 것이다.

기획재정부나 한국은행 등은 내년도 취업자 수가 올해 감소폭의 70% 정도가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고용이 경기후행 지표인 것을 감안하더라도 청년층의 취업난 고충이 지속될 것이라고 추정할 수 있는 상황이다_출처: 게티

고용시장은 이런 'K자 예고'의 주된 근거로 활용된다. 기재부는 앞선 조사(2021 경제정책방향)에서 내년 취업자 수를 15만 명이 될 것이라고 예상했다. 이는 올해 감소폭 추정치(-22만 명)의 70% 수준. 2019년 취업자 수(30만 명)와 비교해도 그 절반에 그치는 정도이다. 그나마도 15~64세 고용률 전망치(65.9%)가 올해(65.8%)와 비슷한 수준이다. 늘어나는 전체 일자리 중에서 고연령 취업자가 차지하는 비중이 높아지는 대신, 2030 청년층의 취업 갈증을 지속될 수 있다는 것. 한국은행(한은)도 비슷한 수치의 내년도 취업자 수 전망치를 내놓았다.

문제는 그런 고용시장에서도 업종별로 회복의 속도 차가 커질 수 있다는 점이다. 회복 속도가 너무 느린 일부 업종은 아예 폐업의 기로로 내몰리거나 이미 인력을 대체하는 수단을 마련하고 있다. 결과적으로 업종별 고용 회복에서도 심각한 양극화가 나타날 수 있는 것이다.

코로나19는 고용유발 효과가 높은 서비스업에 가장 큰 타격을 가했다. 음식점이나, 상가가 줄폐업한 거리가 속출한다. 비용 절감을 위해 울며 겨자 먹기식으로 자동화주문기기 등의 시스템을 도입한 곳도 늘었다. 이런 상황에서 그간 줄였던 인력을 재확충할 의지가 있는 사업자가 과연 얼마나 나타날지, 의문이 생길 수밖에 없다. 반대로 상대적으로 피해 정도가 약했던 반도체 시장이나 정보통신(IT) 업종과 같은 고소득 전문직, 비대면 종사자 수 비중은 늘어날 전망이다.

결국 코로나19 시국에 정규직으로 남은 사람과 탈락했던 사람, 전문직과 비전문직 간의 소득 격차와 고용 안정성의 차이는 심해질 수밖에 없다. '부모의 계층 → 자녀의 학벌 → 자녀의 고소득 일자리 취업'으로 이어지는 한국 사회 불평등(인용, 책 '세습 중산층 사회', 2020, 조귀동)구조의 한 축이 더욱더 분열 양상을 보이게 되는 것. 어렵사리 임시직으로 생계를 이어가다가 이번 사태에 그 일자리마저 잃은 청년층 사이에서 결혼이나 자녀 출산을 그저 희망사항 정도로 여기는 문화가 확산하는 것도 이런 맥락으로 풀이할 수 있다.

사다리를 찾아서?
주식, 부동산 투자 열풍

이번 사태 초·중반 한국 사회에 휘몰아쳤던 주식 시장에서의 '동학 개미' 열풍에서도 새로운 계층의 사다리를 찾아 나선 2030의 열망을 확인할 수 있다. 더욱이 0%대 초저금리 및 마이너스 경제 성장기의 경제 여건은 빚을 내서라도 투자를 감행하도록 부추긴다.

강남의 한 부동산 중개업체에서 일하는 7년 차 직장인 김모 씨(34·서울시 영등포구). 그는 "부모님 지원 없이 오피스텔 월세를 내며 살아가는데 한 달에 저축으로 모을 수 있는 돈은 기껏해야 50만 원 정도이다. 내 힘만으로 가정을 꾸리거나 자산을 쌓기는 불가능한 상황"이라며 "언제까지 이 직장에 있을 거란 보장도 없는데 어차피 잃을 게 없다면, 그래도 (대규모 자금 획득에) 기회가 있는 주식 투자에 올인하는 게 맞지 않겠나"라고 말했다.

올해 늘어난 신규 주식거래계좌는 602만 개로 추정된다_출처: 인터비즈

금융투자협회에 따르면 23일 기준 주식거래활동계좌수는 3538만 개이다. 이는 지난해 말(약 2936만개)보다 602만 개 이상으로 늘어난 것이자 2007년 통계를 집계한 이후 연간으로 가장 많이 증가한 수치이다. 또한 최근 10년간 130만 7000여 개를 나타낸 연평균 증가폭의 4배 이상에 해당한다. 그리고 그중에는 김 씨처럼 계층의 사다리를 찾아 나선 2030 투자자도 상당수라는 게 업계의 평가이다.

'영끌(영혼까지 끌어모은) 투자'로 대변되는 부동산 투자도 마찬가지. 치솟는 전셋값과 각종 규제에도 꺾이질 않는 집값은 "지금이라도 유산계급으로 갈 수 있는 '막차(마지막 차)'를 타자"라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이는 한은이 24일 발표한 금융안정보고서에서도 확인할 수 있는데 20, 30대 부채비율이 급격히 늘어난 것이다. 한은에 따르면 올해 3분기(7~9월) 말 기준 30대 이하 소득대비부채비율(LTI)은 지난해 3분기(200.3%)대비 20.8% 포인트 늘었다. 그 위험성이나 윤리적 타당성 문제를 떠나 이런 자산 투자에 대한 열기에는 그간 계급 이동의 최후의 보루로 여겨지던 '좋은 일자리를 얻을 기회'마저 좁아진다는 시대의 인식이 반영됐다는 분석이다.



독일의 저명한 사회학자 울리히 벡은 저서 '위험사회'를 통해 인간이 자초한 위험에 의해 현대 사회가 각종 위험에 노출 될 것이라 내다봤다. 그러면서 내놓은 일성이 "부에는 차별이 있지만 스모그에는 차별이 없다"라는 것이다.

이는 "인간이 자초한 위험은 대상을 가리지 않고 인류 공통의 부담이 될 것"이란 뜻이지만, 지금의 시국에선 조금 다르게 읽히기도 한다. 2020년, 우리가 목격한 스모그(경제적 위험)는 분명 경제적 취약계층에게는 더욱 혹독했고, 더불어 계층 이동의 가능성도 줄어들게 했다. 기본소득을 포함해 각종 사회안전망 제도를 강화해야 한다는 주장도 이런 문제 인식에서 출발한다. 그런데 한편으로는 이 또한 울리히 벡의 저 말과 일맥상통한다는 해석도 나온다. 위험이 차별적으로 영향을 미치는 이 양극화 문제를 그대로 방치하면, 종국에는 사회 시스템 전체가 마비되는 '공통의 위험'이 될 것이란 설명이다.

인터비즈 김재형 에디터·김경수 디자이너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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