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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살았고 죽었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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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20년 8월 1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산타모니카 자택에서 한 여성 화가가 세상을 떠났다. 1920년 11월에 태어났으니 자신의 100번째 생일을 4개월 앞두고 있었다. 이 화가의 이름은 루치타 허타도(Luchita Hurtado). 처음 듣는 이름일지도 모르겠다. 사실 나도 잘 모르는 화가였다.

그의 그림은 부고 기사를 읽으면서 처음 봤다. 그림도 그림이지만 내 마음을 확 잡아 끈 점은 2가지였다. 그의 인생 스토리와 100살이라는 나이가 믿기지 않는 건강하고 아름다운 할머니의 모습이었다.

루치타 허타도

출처Oresti Tsonopoulos

베네수엘라에서 태어난 허타도는 재봉사 어머니를 따라 8세에 미국으로 이민을 갔다. 어머니는 허타도가 패션을 공부하길 바랐지만 허타도는 미술 수업을 들었다. 그림이 좋았기 때문이다. 고등학교를 졸업한 후 한 스페인어 신문사에서 자원봉사를 했는데, 여기서 한 신문기자를 만나 결혼했다. 그의 나이 18세 때였다.

허타도는 이때부터 그림을 그리는 사람들과 교류를 했다. 마르셀 뒤샹, 이사무 노구치 등과 뉴욕의 갤러리를 함께 돌아다녔다. 미술 공부도 했다. 하지만 첫 남편은 아이를 낳은 뒤 허타도를 떠났다. 허타도는 먹고살기 위해 백화점에서 윈도우 드레서로 일했고 프리랜서 패션 일러스트레이터 작업도 했다.

그러다가 화가 친구들의 소개로 두 번째 남편 볼프강 파알렌(Wolfgang Paalen)을 만나 1940년대에 멕시코로 이주한다. 파알란은 유명한 초현실주의 화가이자 미학자. 허타도는 멕시코에서도 예술가들과 활발하게 교류를 했다. 대표적인 화가가 프리다 칼로였다.

하지만 첫 번째 결혼에서 나은 아들이 소아마비로 숨지자 허타도는 슬픔에 빠진다. 두 번째 남편 파알란과 아이를 더 낳고 싶었지만 파알란은 자식을 낳고 싶지 않아 했다. 둘의 관계는 식어갔다.

미국으로 돌아와 캘리포니아에 정착한 허타도는 세 번째 남편 리 뮬리칸(Lee Mullican)을 만났다. 그 역시 화가였다. 뮬리칸과는 1956년에 결혼한 뒤 아들 둘을 낳는다.

허타도는 남편과 두 아들의 뒷바라지에 몰두했다. 낮에는 영화판에서 엑스트라로 일을 하기도 했다. 하지만 모두가 잠든 밤 부엌의 식탁에서 그림을 그리곤 했다. 그는 그림을 그려야만 했다고 한다. 그림을 그리는 건 그에게 “마치 이를 닦는 일과 같다”고 했다.

루치타 허타도, 1973년 산타 모니카

출처Matt Mullican/Hauser

계속 그림을 그린 덕분에 1974년에는 작은 전시회를 갖기도 했다. 하지만 그뿐이었다. 그는 이 전시회를 거의 기억하지 못한다고 최근의 인터뷰에서 말하기도 했다. 허타도는 굳이 설명을 하자면 ‘전시회를 딱 한 번 한 유명 화가의 부인’ 정도였던 셈이다.

세월은 흘러갔다. 물론 그림은 계속 틈틈이 그렸다. 남편은 죽고 두 아들은 성장해서 화가와 영화감독이 됐다. 그러다가 2015년이 됐다. 1998년에 사망한 남편 뮬리칸의 유작들을 정리하는 작업이 시작됐다. 이 과정에서 ‘L.H’라고 싸인된 그림들이 무더기로 발견되다. 뮬리칸의 그림들과는 다른 풍이었다. 유작 정리를 맡은 스튜디오 디렉터가 허타도를 찾아왔다. 누구 그림이냐고. 그는 “저에요!”라고 답했다. ‘LH’는 루치타 허타도의 이니셜이었다. 그는 루치타 허타도가 아니라 남편의 성을 따라 루치타 뮬리칸으로 알려져 있었기 때문에 아무도 몰랐던 거다.

허타도는 말했다. “제가 어떤 그림을 그렸는지 잊어버렸어요. 그릴 때는 그리 대단해 보이지도 않았고요.”

디렉터는 허타도의 작품을 전시해야겠다고 생각했다. 그렇게 2016년 허타도가 96세가 되던 해, 그의 과거 작품 전시회가 LA에서 열렸다. 작은 전시회였다. 하지만 열화와 같은 성원과 좋은 평가가 쏟아졌다. 이후 허타도는 ‘갑자기’ 유명해졌다. 2019년에는 타임지가 선정한 영향력 있는 100인에 선정됐다. 올해 초부터는 LA에서 대규모 전시회 ‘루치타 허타도: 나는 살았고, 죽었고, 다시 태어날 것이다’ (Luchita Hurtado: I Live I Die I Will Be Reborn)가 열렸다.

Luchita Hurtado: I Live I Die I Will Be Reborn, Los Angeles County Museum of Art, 2020, art

출처Museum Associates/LACMA

모두 그가 95세가 넘어 일어난 일이다. 아무런 조명도 받지 못하다가 갑자기 90대에 유명해지다니…. 신데렐라 스토리 같지만 사실은 거의 80년에 걸친 노력과 열정이 녹아 있는 이야기다.

‘열심히 살다 보면 결국 세상이 알아준다’는 얘기를 하고 싶은 건 아니다. 90세가 되기 전에 돌아가셨다면 아마도 LH가 누군지 몰라 그가 그린 그림들은 빛을 보지 못했을지도 모르겠다. 나는 이 멋진 할머니의 삶의 과정을 들여다보고 싶었다. 세상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좌절하지는 않았을까, 아무도 봐주지 않는 이따위 그림을 왜 그려 하면서 때려치우고 싶지는 않았을까, 어떻게 평생을 이렇게 살았을까, 그 많은 끼와 재능을 어떻게 감당했을까.

그러다가 여성 잡지 ‘엘르’에서 다음과 같은 내용을 발견했다.

“그녀를 끊임없이 움직이게 한 것은 타고난 유머 감각과 낙천성이었다. 작품이 보여주듯 루치타 허타도는 어둠보다 빛에 가까운 사람이다. “우리 이모는 나더러 ‘넌 감옥에 가더라도 즐거운 시간을 보낼 아이야’라고 말했죠.””

그의 인생을 전부 알 수는 없지만 나의 궁금증은 일부 해소가 됐다.

허타도는 90대에 처음으로 자신만의 작업실을 가졌다. 고령에도 매일 20분 바닷가 길을 걸어서 작업실에 갔다고 한다. 그리고 매일 그림을 그렸다. 그러다가 100세를 조금 앞두고 돌아가셨다. 이런 게 행복한 말년이 아닐까 싶다.

루치타 허타도, Encounter, 1971

출처ARTnews

'가장 늦었다고 생각될 때가 가장 빠른 때다'라는 말이 있다. 켄터키 프라이드치킨 창업자는 60세에 창업을 해서 자신의 레시피를 통해 세계적인 프랜차이즈를 키웠다. 나이는 숫자에 불과하다고 한다. 모두 다 맞는 얘기다. 하지만 나는 허타도를 보면 성공한 화가가 보이지 않는다. 평생을 좋아하는 일을 하며 열정적으로 산 여성이 보일 뿐이다. 그렇게 살다 보니 어쩌다가 죽기 전에 유명해진 게 아닐까.

우리가 삶을 사랑하지 않는 동안에도 삶은 우리를 사랑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삶이 우리를 속일지 몰라도, 우리는 빛으로 나아갈 수 있다. 그 끝이 100살이든 어느 날이든 간에.


필자 김선우

- 전 동아일보 기자
- 새로운 삶을 발견하기 위해 현재 미국 시애틀 근처 시골에서 작은 농장 운영 중
- <지속가능한 삶을 모색하는 사피엔스를 위한 가이드> 작가
- 이메일 구독서비스 '노멀 피플' 운영 (blog.naver.com/wildwildthing)

인터비즈 정서우 정리
inter-biz@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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