NC다이노스 팬들은 왜 '택진이 형'을 찾을까?

조회수 2020. 12. 7. 10: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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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11월, NC다이노스가 KBO 한국시리즈 6차전에서 우승을 확정한 순간이었다. 선수단이 커다란 검을 높게 들고 환호했다. 엔씨 다이노스 선수들이 야심차게 선보인 건 다름 아닌 엔씨소프트 대표 게임 '리니지'에 등장하는 '진명황의 집행검'. 155cm 크기에 화려한 디테일을 더한 이 검은 게임 아이템을 현실에 그대로 구현한 모습이었다.

출처: NC다이노스 제공

과거 엔씨소프트가 창단 의향서를 제출했을 때, 업계에는 우려가 많았다. 엔씨소프트가 투자의향서에 명시한 2009년 매출은 6300억 원. 기존 구단들은 매출 1조 원도 미치지 못하는 회사가 매년 투자를 필요로 하는 프로야구단을 안정적으로 운영하겠냐고 비판했다. 우려가 무색하게도 김택진 엔씨소프트 대표 겸 구단주는 투자를 아끼지 않았고 빠른 시기 내 야구단을 안정적인 궤도에 올렸다. 2014년부터 2017년까지 4년 연속 포스트시즌에 진출했으며 창단 9년 만에 통합 우승도 이뤄냈다.

김택진 대표는 평소 유명한 야구 팬이다. 엔씨 다이노스 출범 당시 "야구 자체가 목적인 구단을 만들고 싶다"고 포부를 드러낸 그는, 이후 야구단에 아낌없이 투자하며 팬들 사이에서 '택진이 형'이라는 친근감 있는 별명을 얻기도 했다. 한국시리즈 기간에도 매 경기 고척돔을 찾아 관전하며 팀에 힘을 실어줬다.

그 때문인지 엔씨 다이노스와 엔씨소프트는 끈끈한 관계를 구축한 모습이다. 엔씨소프트는 야구를 게임으로 가져오는 건 물론, 게임을 세상 밖으로 꺼냈다. 엔씨소프트 게임 캐릭터들은 엔씨 다이노스 유니폼을 입고, 엔씨 다이노스는 국내 최대 게임전시회인 지스타에서 팬사인회를 개최한다. 한국시리즈 우승 이후 선수단이 선보인 집행검은, 서로 시너지를 내고 있는 모기업과 구단의 관계를 잘 보여준다.

'택진이 형'은 야구에 진심이니까

야구는 데이터 싸움이라고들 말한다. 야구팀 창단 이후 엔씨소프트가 가장 먼저 한 것도 데이터정보센터에 야구데이터팀을 만든 것이다. 당시 데이터와 인공지능(AI)에 크게 투자하던 엔씨소프트는 엔씨 다이노스의 데이터 관리에도 적극적으로 뛰어들었다. 야구 커뮤니티에서 세이버메트릭스(야구 통계분석 방법)에 의거한 분석글을 올리며 유명해진 임선남씨에 러브콜을 던지기도 했다. 현재 그는 다이노스에서 데이터팀 팀장을 맡고 있다.

엔씨 다이노스와 엔씨소프트는 함께 모바일 전력 분석 시스템인 'D-라커'를 개발하기도 했다. 설계는 야구단이, 개발은 엔씨소프트가 담당했다. 선수들의 장단점을 객관적으로 분석할 수 있는 시스템이었다. 2013년 선수단에게 공개된 D-라커를 통해 선수들은 자신의 타구·투구에 대한 데이터를 태블릿PC로 직접 살펴볼 수 있었다. 상황·경기별 영상 및 데이터가 차곡차곡 축적돼 선수들은 구체적인 수치로 자신의 컨디션을 점검할 수도 있다. 트랙맨 데이터도 시각화돼 있고 데이터팀의 코멘트도 덧붙여져 있다.

출처: 페이지 앱 캡쳐 ​

사실 엔씨소프트는 선수단 공개용이 아니더라도 꾸준히 AI에 야구 데이터를 입히는 기술을 개발해왔다. 2018년 선보인 야구 정보 앱 '페이지'도 그중 하나다. 야구 경기가 끝나면 AI가 경기 내용을 편집해 앱에 바로 올려준다. 선수 기록도 AI가 분석해 제공한다. 선수는 물론 팬도 페이지 앱을 통해 응원하는 선수의 기록이 어떤지 확인할 수 있다. 게임 캐릭터 스탯창을 볼 수 있는 것처럼, 선수들의 장단점이 시각화돼 보여진다.

엔씨 다이노스는 이런 정보를 구장에서도 공개했다. 창원 NC파크 구장 내 전광판에는 다양한 정보가 나온다. 구속, ops, whip 뿐만 아니라 구종, 체감 구속, 타구속도, 비거리 등 실시간 데이터와 맞춤형 정보가 나타난다. 엔씨 다이노스 관계자는 "창원 NC파크는 IT를 접목한 스마트 경기장으로 첨단 IT를 활용해 정보를 공유하는 게 팬들과의 소통의 시작이라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선수들이 기획한 '집행검'
마케팅 효과 톡톡

이런 지원은 모기업에 대한 선수들의 신뢰로 이어졌다. 한국시리즈에서 가장 주목받은 집행검은 사실 선수단 사이에서 나온 아이디어다. 정규 리그 우승이 확정된 후 주전 내야수인 박민우 선수가 처음 제안했고, 엔씨소프트가 이를 흔쾌히 받아들였다.

엔씨소프트는 집행검 모형을 제작하는 동시에 리니지2M 광고에서 김택진 대표 등 경영진이 직접 대장장이로 분장해 뭔가 만드는 장면을 선보였다. 광고에서 뭘 만들고 있는지 공개되지 않았기 때문에, 리니지2M 팬들 사이에서는 새로운 아이템이 등장하는 게 아니냐는 의견도 있었다. 다들 광고가 어떤 의미인지 궁금해했고 광고는 그 자체로도 큰 이슈가 됐다. 다들 어떤 의미를 담고 있는지 의아하게 생각했으나, 그것이 한국시리즈에 등장할 집행검이었던 셈이다.

출처: 리니지2M 광고
리니지2M 광고에 등장한 김택진 NC소프트 대표

현장에서 집행검을 뽑아든 양의지 선수는 예전부터 리니지를 즐긴 것으로 유명하다. 2019 시즌 종료 후 감사 행사에서 그는 "리니지 레벨이 88"이라고 밝힌 바 있다. 팬들 사이에서도 '린의지'라는 별명을 갖고 있다. 양의지 선수는 경기 후 MVP 인터뷰에서 "리니지가 우리를 먹여 살리고 있다"며 "구단주의 자부심을 살리기 위해 예전부터 우리 선수들끼리 준비하고 있었다"고 말했다.

독특한 퍼포먼스는 해외에서도 큰 이슈가 됐다. 미국 스포츠 매체들은 집행검을 트로피로 오인하기도 했다. 미국 스포츠 매체 디애슬레틱은 트위터에 "모든 스포츠를 통틀어 최고의 트로피"라며 "KBO 리그 한국시리즈 트로피가 말 그대로 검이라는 사실에 우리는 주목해야 한다"는 글을 올리기도 했다.

출처: 디애슬래틱 트위터 캡쳐

게임 아이템을 야구에 자연스레 녹여낸 이 퍼포먼스는 리니지를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자연스레 게임을 홍보했다. 또한 집행검을 단순한 게임 아이템에서 승리의 아이콘으로 바꿨다는 평가도 받고 있다.

한국시리즈 우승하면
게임 쿠폰을 준다고?

한국시리즈를 앞두고 엔씨소프트와 엔씨 다이노스는 함께 특이한 시도를 진행하기도 했다. 엔씨소프트는 리니지M 유저들이 '엔씨 다이노스 응원 상자'를 구입할 수 있도록 이벤트를 진행했다. 그 안에는 한국시리즈 응원 티켓, 엔씨 다이노스 응원 휘장 등이 들어 있다. 만약 엔씨 다이노스가 한국시리즈에서 우승하면, 한국시리즈 응원 티켓은 'TJ의 쿠폰'으로 바뀐다. 우승하지 못하면, TJ의 쿠폰을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김택진 대표의 이니셜을 딴 TJ의 쿠폰은 이름만큼이나 강력한 성능을 자랑한다. 엔씨소프트측은 사전에 쿠폰 효과를 공개하지는 않았지만, 게임 팬들 중심으로 기대감이 높아졌다. 지난해 11월 리니지2M에서 엔씨소프트측이 합성에 실패한 아이템을 복구할 수 있는 성능을 가진 TJ의 쿠폰을 발급한 바 있기 때문이다.

출처: NC소프트
리니지M이 한국시리즈 진출을 맞아 '다이노스 응원 상자' 이벤트를 진행했다.

실제로 한국시리즈 이후 공개된 TJ의 쿠폰은 이와 맞먹는 성능을 가지고 있었다. 리니지와 리니지2의 경우 오는 9일까지 강화 실패로 소멸한 장비를 원하는 캐릭터로 복구할 수 있도록, 리니지M은 카드 합성에 실패했던 이력이 있을 경우 재도전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했다. 한국시리즈 우승이 게임 아이템과 직결되는 만큼, 야구를 즐기지 않는 리니지 팬들 사이에서도 한국시리즈는 이슈가 됐다.

엔씨 다이노스가 엔씨소프트와 함께 이벤트를 진행한 건 이번이 처음은 아니다. 지난 11월에는 리니지, 리니지2, 아이온, 블레이드&소울, 리니지M, H2 등에서 돌림판을 돌려 엔씨 다이노스 응원봉을 획득할 수 있는 이벤트를 진행했다. 이용자는 2020 시즌 최고의 선수를 뽑는 보너스 이벤트에서 선수 친필 사인볼과 엔씨 다이노스 굿즈도 받을 수 있었다.

지난 2014년 엔씨 다이노스는 지스타 현장에서 MD상품샵을 운영하기도 했다. 나성범, 이재학, 박민우 선수와 팬사인회를 진행하기도 했다. 선수단이 경기에 블레이드&소울, H2, 아이온 등과 콜라보한 유니폼을 착용한 적도 있다. 관계자는 "콜라보 마케팅은 다이노스 팬뿐만 아니라 엔씨소프트 게임을 즐기는 팬들에게도 즐거움을 줄 수 있는 방향이라고 생각한다"고 설명했다.

올해는 엔씨 다이노스에 있어 특히 기억될만한 해다. SNS를 통해 미국 노스 캐롤라이나 지역 AAA 구단인 '더럼 불스' 팬들과 소통하며 구단 이름을 알렸고, 처음으로 통합 우승을 거머쥐기도 했다. 집행검을 선보이며 엔씨소프트와 끈끈한 관계를 자랑하기도 했다. 엔씨 다이노스는 다시 한번 우승에 대한 열망을 나타내고 있다. 엔씨 다이노스는 "시작만 할 수 있다면 멈추지 않을 것이기에 승리는 이미 어제의 일"이라고 각오를 다졌다.

인터비즈 서정윤
seo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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