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리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낸 건 다름 아닌 '소'다(?)

조회수 2020. 11. 17. 18:00 수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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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면서 평생 전기를 써본 적 없는 사람들이 있다. 누군가는 전기를 사용하기 위해 왕복 4시간을 걸어 충전소에 가야 한다. 유엔(UN)이 지난달 발표한 자료에 따르면 세계 인구의 13%는 여전히 전기 사용 환경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다. 에너지 문제는 교육 문제와 맞물린다. 가난한 아이들은 학교에 갈 시간에 일을 하고, 그 때문에 어른이 되어서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없다. 또 그들은 결혼해 자녀에게 일을 시킨다. 악순환의 반복이다.

개발도상국에서 주로 발생하는 빈곤과 교육의 굴레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까. 국내 태양광 에너지 스타트업 요크(YOLK)는 태양광 에너지를 이용하면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수 있다고 믿는다. 태양광을 기반으로 한 스마트폰 충전기 '솔라 페이퍼'를 만들던 요크는 최근 '솔라 카우'로 주목을 받고 있다. 지난해 솔라 카우는 미국 시사주간지 타임지가 선정한 '2019년 최고의 발명품'에 이름을 올렸다. 문재인 대통령이 내년에 주최할 '녹색성장 및 글로벌 목표 2030을 위한 연대(P4G)' 정상 회의에 한국 기업 최초로 파트너에 선정되기도 했다.

출처: 요크 제공
장성은 요크 대표(오른쪽)

지난 14일 진행된 인터뷰에서 장성은 요크 대표는 "솔라 페이퍼로 큰 사랑을 받기는 했지만, 태양광을 이용해 그보다 조금 더 절실한 문제를 해결하고 싶었다"고 설명했다. 장 대표는 시카고 예술대학에 다니던 시절부터 태양광 에너지에 관심이 많았다. 2015년에는 첫 프로젝트로 종이처럼 얇고 가벼운 태양광 충전기 솔라 페이퍼를 선보였다. 미국 크라우드 펀딩 사이트인 '킥스타터'에서 솔라 페이퍼는 45일 만에 100만 달러(약 12억 원)를 펀딩 받았을 정도로 큰 인기를 끌었다. 하지만 그것으로는 부족했다.

장 대표는 "태양광 에너지가 가장 필요한 곳은 개발도상국이라고 생각했다"고 회상했다. 아프리카는 땅은 넓고 인구는 적다. 에너지 자체가 부족한 곳이기도 하다. 장 대표는 에너지가 없고 빈곤에 시달려 공부를 하지 못하는 아이들을 돕고 싶었다. 그래서 '솔라 카우 프로젝트'를 기획하기 시작했고, 2018년 8월 케냐에 처음으로 솔라 카우를 선보였다.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야 할 이유를 만들어 준다면?

솔라 카우는 소 모양의 태양광 충전 시스템이다. 학교에는 솔라 카우를 설치하고, 아이들에게는 우유병 모양의 배터리를 나눠준다. 아이들은 배터리를 들고 학교에 와 솔라 카우에서 배터리를 충전시킨다. 학교가 끝나면 집으로 돌아가 핸드폰을 충전하거나 전구로 배터리를 사용한다. 장 대표는 "충전 단자를 독특하게 만들어 배터리가 솔라 카우에서만 충전이 되게 설계하고, 급속 충전도 불가능하게 만들었다"고 말했다. 충전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단자를 독특하게 설계한 데에는 이유가 있다.

"처음 케냐에 갔을 땐 정말 막막했어요. 우리가 아이들을 어떻게 도울 수 있을까, 도울 수는 있을까? 이런 생각이 머릿속을 떠나지 않았어요. 저희는 아이들에게 뭔가를 제공한다는 접근보다는 케냐 사람들이 직접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도와줘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그러다 교육이 생각났어요. 우리나라도 자원이 없지만 교육으로 발전한 나라잖아요. 그러다 보니 자연스럽게 교육이 떠올랐어요."

하지만 교육과 관련해서도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보통은 학교를 지어주면 아이들이 학교에 다닐 수 있겠다고 생각한다. 아프리카에는 그보다 더 복잡한 문제가 있었다. 아이들은 소를 키우느라, 동생을 돌보느라, 여자아이라는 이유로 학교에 가지 못했다. 장 대표는 "'너는 조금 있으면 시집을 가는 데 왜 학교에 가느냐, 여자아이가 왜 교육을 받느냐'는 이야기는 우리나라에서도 있었던 문제"라며 "관습적인 인식 때문에 학교가 있어도 가지 못하는 아이들이 있다는 걸 알게 됐고, 인식을 바꾸는 게 어려운 일이라는 것도 깨달았다"고 말했다.

모두를 만나 설득할 수는 없었다. 반대로 장 대표는 학교에 가는 아이들에게 '보상'을 주기로 했다. 아이디어는 아이들이 휴대폰을 충전하기 위해 매일 왕복 4~5시간을 걸어 유료 충전소에 가는 것에서 착안했다. 아이들이 학교에서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면 부모에게도 '아이들을 학교에 보낼 이유'가 생긴다.

출처: 요크

요크가 배터리 충전 시간을 느리게 만들고, 단자를 독특하게 설계한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다. 아이들은 좋든 싫든 학교에 오면 배터리 충전이 끝날 때까지 기다려야 한다. 그 시간 동안 자연스레 수업을 듣는다.

장 대표는 "아프리카는 정말 가난한 지역도 모두 휴대폰을 가지고 있어 휴대폰 충전이 무척 중요한 일인데, 에너지가 비싸다"며 "이 지역에서는 핸드폰을 충전하는 것과 불 켜는 것 정도에 에너지를 사용하는 데, 그게 월 소득의 15%를 차지한다"고 말했다. 우리나라로 따지면 한 달에 300만 원을 버는 직장인이 핸드폰 충전에 45만 원가량을 사용하는 셈이다. 이어 그는 "충전소는 집과 왕복 4시간 거리에 있는 경우가 많다"며 "그러다 보니 부모들이 자발적으로 아이들을 학교에 보내게 됐다"고 설명했다.

코로나19로 학교에 가지 못한 아이들

그렇다면 솔라 카우는 왜 소 모양으로 만들어졌을까. 장 대표는 "소가 우유로 아이들에게 영양분을 전달하는 것처럼, 솔라 카우가 태양광 에너지를 통해 아이들에게 양분을 공급할 수 있다는 것을 설명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단순히 배터리를 충전기에 꽂아놓는 게 아니라, 디자인을 통해 서사를 전하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출처: 요크

장 대표는 "현지에 있는 분들도 소 모양을 보면 흥미롭게 이해하고 받아들였다. 그게 저에게는 의미가 있었다"며 "왜 이런 시스템을 만들었는지, 아이들의 교육이 왜 중요한지 등 쉽게 설명되다 보니 많은 분들이 프로젝트 자체에 애정을 가지고, 관심을 가지고 접근해 주셨다"고 말했다.

최초로 만든 솔라 카우에는 한 번에 50개씩 충전이 가능했다. 장 대표는 지난해 한국국제협력단(KOICA)와 함께 탄자니아에서 솔라 카우 프로젝트를 진행하며, 시스템을 대대적으로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그는 "직접 학교에 가보니 아이들이 많았다"며 몇 백 명씩 있는 아이들을 보며 조금 더 실용적으로 가야겠다는 생각이 들어 아이들이 더 많이 쓸 수 있고, 더 안전하게 쓸 수 있고, 비용은 절감하는 방향으로 개편했다"고 설명했다. 현재는 한 솔라 카우에 125개의 배터리를 충전할 수 있다.

출처: 요크
솔라카우 배터리를 전등으로 활용한 모습

최근에는 학교에 보급하던 솔라 카우를 다른 방향으로 전환하기도 했다. 코로나19 팬데믹 여파로 아프리카의 학교들도 휴교령에 들어갔다. 아이들이 학교에 가지 못하니 배터리를 충전하지 못하는 일이 벌어졌다. 교육도 받지 못했다. 장 대표는 "국제기구에서는 라디오를 통해 계속 교육을 해보자고 했는데, 실효성 차원에서 문제가 있었다"며 "라디오는 줄 수 있지만 전기는 단시간에 빠르게 줄 수 없었다"고 지적했다. 이어 그는 "솔라 카우 배터리와 라디오를 함께 지급하는 방식으로 진행해 기존 문제를 해결하는 중"이라고 설명했다.

라디오만 듣는다면 배터리 하나로 일주일 정도를 쓸 수 있다. 장 대표는 "코로나19 팬데믹 상황이기는 하지만 1주일에 한 번씩은 장터에 간다"며 "장터에서 배터리를 교체해 주는 방식으로 진행하고 있다. 휴교된 상태에서도 아이들은 전기를 공급받을 수 있고, 라디오로 교육도 받을 수 있다"고 말했다.

솔라 카우 프로젝트의 수익성 부분에도 문제가 있다. 장 대표는 "지금까지는 효과성을 입증하는 단계였다고 생각한다"면서도 "수익 구조가 나와야 계속 활동을 할 수 있는 건 사실"이라고 말했다. 현재 요크는 현지 정부와 국제기구에 솔라 카우를 납품하는 형태로 주로 수익을 내고 있다.

솔라 카우는 현재 케냐와 탄자니아, 캄보디아에 설치돼 있다. 장 대표는 "앞으로 콩고에 설치할 계획이며 그렇게 됐을 때 수혜자는 학생과 가족을 모두 포함해 약 1만 명 정도가 될 것으로 보고 있다"고 말했다. 요크는 앞으로도 전력 보급이 부족하고 아동 노동이 심각한 지역을 중심으로 솔라 카우를 보급할 예정이다. 장 대표는 "지금은 동아프리카 쪽에 집중하고 있는데 앞으로 서아프리카와 아시아 쪽으로 확장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인터비즈 서정윤
seojy@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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