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합 검색어 입력폼

팀장이 되고나서 두통이 시작됐다

조회수 2020. 10. 22. 17:00 수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번역중 Now in translation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다양한 분야의 재밌고 유익한 콘텐츠를 카카오 플랫폼 곳곳에서 발견하고, 공감하고, 공유해보세요.

처음 팀장이 된 것은 2002년이었습니다. 직원이 30명인 보안 솔루션 개발회사의 마케팅 팀장이었죠. 팀원은 한 명 뿐이었습니다. 초창기라 제품 개발과 투자에 집중했고, 본격적으로 마케팅과 영업을 시작하는 때 팀장이 된 거죠. 출근 첫날 회의록 양식을 만들었던 기억이 납니다. 나중에 들은 얘기로, 제가 예전 회사에서 작성했던 문서들(PPT)이 마음에 들어 대표가 채용을 했다고 하더라고요.


입사 후 얼마 간은 팀장이란 자리에 대해 깊이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직접 처리해야 할 일이 산더미처럼 많았기 때문입니다. 밑에 있던 직원은 통번역 담당이사 정식 팀원이 아니었습니다. 대표가 지시하는 업무는 대체로 제 몫이었죠. 팀장이지만 따지고 보면 예전 회사에서 팀장 지휘 하에 일하던 것과 별반 다르지 않았습니다.

초보 팀장의 이상한 면접

팀원을 뽑게 되면서 본격적으로 팀장 자리에 대해 고민하기 시작했습니다. 몇 개월 동안 고군분투하며 회사소개서, 영업제안서, 제품/기술설명서, 투자제안서 등 기본적인 영업 베이스를 만들어 놓고 사람을 구하기 시작했습니다. 아무도 팀장이 어떤 자리고, 어떤 일을 해야 한다는 사전학습이 없던 저는 면접 전날 서점에서 면접 관련 책을 찾아봤습니다. 눈에 들어온 건 마이크로소프트에서 한다는 면접 질문 리스트였습니다. 질문들을 곱씹으며 어떤 것들을 물을지 정리해보았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서울 시내에 맨홀이 몇 개 있을까요?"


면접 자리에서 야심차게 질문을 던졌습니다. 답을 찾아가는 논리를 보는 질문이긴 했는데, 지금 생각하면 창피함에 머리끝까지 빨개지는 것 같습니다. 저 역시 그 질문을 이해하고 했던 건 아니었습니다. 어떻게 끝났는지 모를 어색한 면접이 끝나고 다행히 두 명의 팀원을 뽑을 수 있었습니다. 당시 제가 어렸기 때문에 한 명은 동갑, 한 명은 한 살 위였습니다.

하늘이 노래지는 팀원들의 동반 사표

팀원 두 명이 출근했던 첫날의 기억이 생생합니다. 회사소개를 하고 업무를 시작하려던 계획은 갑작스런 대표의 호출로 어그러졌습니다. 간단히 인사만 나누었죠. 바로 지방 미팅을 가서 자리를 며칠 비우고, 업무가 바빠 팀원들과 제대로 얼굴을 마주할 짬이 나질 않았습니다. 결국 제대로 된 회사소개는 팀원들이 출근한지 2주가 지나서가 가능했습니다.


그 후에도 사정은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뭔가 교육을 할까 하면 대표가 부르고, 고객사가 부르고, 내부 유관팀장이 부르고. 하루에 미팅이 8개까지 있기도 하던 시절이었습니다. 바빴지만 성과가 있었기에 저는 만족감을 갖고 있었는데 당시 팀원들은 의기소침했던 모양입니다. 그러던 중 일이 터졌습니다.


PR팀장이 회사 홍보 자료를 작성해달라고 요청해와 팀원에게 업무를 맡겼습니다. 마감 당일 보니 품질이 문제가 됐습니다. PR팀장이 뭐라고 해대는 통에 자존심이 상했죠. "미안합니다" 한 마디만 하고 제 자리에 와서 다시 제가 작성을 했습니다. 화가 나는 건 전데 옆에서 팀원이 억울하게 질책을 받았다며 속상해하는 게 보였습니다. 제대로 설명도 못 들었지만 본인은 최선을 다했다는 거였죠.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감정이 격해진 나머지 "진짜 속상한 사람은 접니다!"라고 가시돋친 말을 내뱉고 말았습니다. 팀원은 울면서 나갔고, 깜짝 놀란 다른 팀원이 들어와 그간의 상황을 설명해줬습니다. 제가 대표와 외부로 돌고 있던 사이, 타 부서에서 두 팀원에게 업무요청을 많이 해왔다고 하더라고요. 입사 해 제대로 된 교육도 받지 못한 상태지 업무 처리가 쉽지 않았겠죠. 팀장은 팀장대로 바빠 업무를 봐 줄 여유가 없고. 그간의 스트레스가 쌓여 홍보 건으로 터진 거였습니다.


그간의 상황을 알겠다고 하고 나오는데 정말 머리가 터질 것 같더군요. 이러면 안 되겠다 싶어 반차를 냈습니다. 집에 다닿을 쯤에 인사총무팀장의 전화가 왔습니다.

김 팀장님, 쉬시는데 죄송한데요. A대리하고, B대리가 방금 사직원을 제출했습니다. 아직 대표님께는 보고 안 드렸습니다.

"네... 내일 출근하면 얘기해보겠습니다. 우선 붙잡아야죠. 그때까지는 보고 말아주세요." 


하늘이 노랄 수도 있다는 걸, 그때 처음 알았습니다.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관리자에게 필요한 3가지 능력

'나는 열심히 일했는데, 어디서부터 잘못된 것일까?' 머릿속이 풀 수 없는 매듭이 가득 찬 것 같았습니다. 답답한 마음에 전 직자 상사께 전화를 하려다 면목이 없어 걸지 못했습니다. 한참 걷다 서점으로 향했습니다. 팀장이 할 일에 대해 제대로 말해주는 책이 있을까 해서요. 불행히도 딱 맞는 책이 눈에 들어오지 않았습니다. 당시만 해도 '팀장'을 타깃으로 한 책을 찾기 힘들었습니다. 인사 관련 서적이 있는 매대만 맴돌았습니다. 그러다 뽑아든 '조직행동론'이란 대학교재에서 저의 두통의 원인을 알게 되었습니다.


책에서는 관리자를 실무(일선), 중간, 최고 층으로 구분해놨는데, 이를 실무자, 팀장, 임원으로 치환해서 이해해도 될 것 같았습니다.

관리자에게 요구되는 세 가지 능력, 로버트 카츠

"Technical Skills(업무 능력)은 해당 업무를 수행할 수 있는 실무 지식과 직무 능력을, Human Skills(대인 능력)은 동기 부여, 관계 유지, 갈등 해결 능력 등을, Conceptual Skills(개념화 능력)은 현상을 보고 본질을 파악하여 의미를 부여하며 구조화하여 의사결정을 하는 능력을 말한다."


'아... 팀장인 나는 실무자였을 때와는 완전히 다른 능력을 요구받고 있었어. 팀원이었을 때는 그냥 내 일만 잘 하면 됐었고, 어차피 결정은 팀장이 할 테니까. 대인 관계라고 해봤자, 팀장과 같은 팀 팀원들이 대부분이었잖아. 근데 지금은 아니지. 폭발적으로 확대된 거야. 대표와 유관부서 사람들을 상대해야 하고, 팀원도 챙겨야 하는데, 실무는 많고, 때때로 중요한 의사결정까지 해야 할 판국이니... 두통약도 소용없었지.'

출처: 게티이미지뱅크

진짜 팀장으로 거듭나기

다음 날, 팀원 두 사람과 면담에서 그들의 말을 먼저 들었고, 진심으로 사과했습니다. 한없이 바빴던 제 상황에 관해서도 설명했습니다. 그리고 퇴사원 제출은 3개월 후로 미뤄달라고 부탁했습니다. 그동안 제가 변함없다면 그때 다시 내라고요. 바로 대표와 면담도 했습니다. 팀 상황을 설명하고 일주일에 적어도 반나절은 팀원 교육 시간으로 할애하기로 약속받았습니다. PR팀장, 개발팀장, 인사총무팀장에게도 협조를 구했습니다. 팀원들의 실력이 올라올 때까지 도와달라고 하고, 업무협조는 저에게 직접 해달라고 했습니다.


팀원들을 위한 몇 번의 미팅을 마치고 나니 이제야 '진짜 팀장'이 된 것 같았습니다. '나'가 중심이 아니라 '팀원'이 중심인 게 진짜 팀장의 모습이었습니다. 퇴근길에 팀원들에게 한 잔 하자고 문자를 보냈습니다. 다행히 두 사람 모두 시간을 내주었습니다. 맥주가 달달하다는 걸 느낀 하루였습니다. 나중에 팀원들과는 사석에선 친구처럼 지내게 됐습니다.


안타깝지만 지금도 많은 기업이 준비할 기회를 주지 않고 팀장을 임명합니다. 직장인 커뮤니티를 살피면 팀장이 됐는데 뭘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고민이 자주 올라옵니다. 회사는 팀장이란 직책은 주지만 리더십까지 주진 않습니다. 팀장이 된 본인의 상황인식과 특별한 노력이 필요합니다.


리더십을 갖는 것은 그 자리에 필요한 능력에 대해 명확하게 인식하는 것이 필수적입니다. 팀장은 팀원이 성과를 만들도록 환경을 만들고 독려하는 자리이며, 이를 위해 대인 능력, 개념화 능력이 팀원 위치 때와는 구별될 만큼 요구됩니다. 바로 이 점이 처음 팀장이 된 분들이 맞는 첫 번째 도전입니다. 또한 이미 팀장인 분들도 자신의 리더십의 현재 상황을 돌아보는 좋은 잣대가 될 수 있다고 봅니다.

■ 필자 김진영 (jykim.2ndlife@gmail.com)

■ 정리 인터비즈 박은애

대학에서 문학을, 대학원에선 경영을 전공했다. 22년 동안 대기업 중견기업 벤처 공공기관 등을 거치며 주전공인 전략기획 외에 마케팅 영업 구매 인사 등 다양한 업무를 경험했다. 현재 개발도상국 전자정부 컨설팅부서에서 프로그램 매니저를 맡고 있다. '성장과 발전은 끝이 없음'을 신조로 삼고 있으며, 코칭과 강의로 사람들을 만나고 있다. 최근 관심사는 조직의 변화와 새로운 리더십이다. 현재 <팀장클럽>에서 '팀장으로 산다는 건'을 연재하고 있다.
이 콘텐츠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